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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님이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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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최인호 1998년 06월 196호
솔직히 말해 나는 한때 스님이 되고 싶었다. 90년대 초 나는 경허스님의 행장을 소설화했던 「길 없는 길」이란 작품을 중앙일보에 연재하고 있었다. 삼년에 걸쳐 일천회쯤 연재하였는데 경허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이었으므로 자연 경허스님이 오랫동안 주석했던 수덕사를 중심으로 한 호서지방의 사찰들을 순례하고 있었다.
동학사에서 견성하였던 경허는 천장암에서 확철대오 하였고 그 뒤로는 수덕사를 비롯하여 개심사, 부석사, 정혜사와 같은 암자들을 돌아다니시다 말년에는 해인사의 방장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그 뒤에는 행방을 감추어 함경도의 작은 한촌에서 신분을 감추고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열반에 드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자연스럽게 경허스님이 동진 출가했던 청계사를 비롯하여 그의 행장을 따라 거의 모든 사찰들을 탐사할 수밖에 없었다.
만나는 스님마다 어찌나 잘 반겨 주었는지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띈다. 영화감독 배창호 군과 이명세 군과 어울려 청계사에서 한밤 중 번개 치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일. 동학사에서였던가, 비구니 암자에서 허락을 얻고는 부처님 옆에서 잠을 자다가 새벽 예불 소리에 깜짝 놀라 깨던 일.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수덕사에서 있었던 일들은 아직도 추억이 되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때에 주지 스님이었던 법성스님은 내게 법당에서 가장 가까운 요사채 하나를 공짜로 주셨다.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수덕사에 들러 한 여름에도 공양을 준비할 때마다 아궁이로 연결된 뜨끈뜨끈한 방구들에 허리를 지지면서 학질 들린 사람처럼 땀을 빨빨 흘리며 지내곤 했었다.
그 무렵 나는 정말 스님이 되고 싶었다. 실제로 도반이던 무법스님에게서 승복을 빌려 입고 밤 깊도록 압구정동의 번화가를 걸어 보기도 했다. 밀짚 모자를 쓰고 먹물 입힌 승복을 입고 나는 탐욕과 쾌락이 번쩍이고 있는 환락의 거리를 걷기도 했다. 아무도 내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법정스님이 어떤 수필에 썼던가. 처음으로 출가를 결심하고 효봉스님으로 부터 허락을 받은 뒤 승복을 입고 거리로 처음 나설 때 가슴속에서부터 환희심이 솟구쳐 올랐다던가.
승복을 입고 걷는 내 마음에도 알 수 없는 이상한 환희심이 흘러넘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출가를 하기 위해 아내를 떠나 가정을 버리고 아이들과 헤어질 그런 용기는 없었다. 우리의 인생이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잘 모르이만 사내의 몸을 받은 대장부로서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중노릇 한번은 해 볼만하다는 절실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니는 차마 머리를 삭발하고 내 있던 자리를 벌떡 일어나 박차고 가출할 용기는 없었다. 내 그런 마음에 한가닥 희망을 준 것은 어느 날 무법스님이 큰 선물을 가져온 뒤부터였다. 무법스님이 수백 년 묵은 소나무 등걸을 구해다가 그 위에 수덕사의 방장 스님인 원담스님의 선필을 새겨온 것이었다.
\'해인당海印堂\'
나는 오래 전 부터 그 깊은 뜻은 잘 모르지만 해인삼매란 불교 용어를 좋아하고 있었다. 직역하면 바다 위에 뜻을 새긴다는 해인이라는 말의 의미가 너무 좋아서 언젠가 무심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새로 짓는 집의 이름을 해인당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 말을 귀 기울여 들은 무법스님이 나무 등걸에 해인당 이라는 옥호를 새겨 직접 우리 집까지 날라다주었다. 나는 이 현판을 우리집 이층 바깥벽에 내어 걸어 두고 있다.
이 현판뿐만 아니라 무법스님은 내게 액자까지 하나 선물해 주었다. 역시 원담스님이 써 준 글씨인데 경허스님의 선시 가운데 한구절을 인용하여 써 준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여청산하자시世與靑山何者是
춘광무처불개화春光無處不開化.\"
이 구절은 경허스님이 확철대오하였던 천장암에서 읊은 노래인데 그 노래를 본 순간 내 마음은 불을 지핀 듯 밝아졌다.
\"세상과 청산은 어느 것이 옳은가.
봄볕이 있는 곳에 꽃피지 않는 곳이 없구나.\"
경허스님의 이 선시를 본 순간 내가 비록 머리를 깎고 청산으로 갈 수는 없지만 이 세상 모든 것에 청정한 도량道場임을깨달았다.
내가 찾아갈 곳이 청산이냐 세상이냐 어느 것이 옳을까 하며 시비를 거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비록 내가 세속에 머물러 있다 하더라도 내 마음이 봄볕을 비추는 곳을 찾아가고 있다면 그 곳이 어디든 꽃이 필 것이 아니겠는가 내 몸이 비록 청산을 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 마음껏 봄볕을 향한다면 그 곳에는 반드시 꽃이 피어날 것이 아니겠는가.
아직도 눈올 감으면 내 마음엔 그때 그 무렵 내가 순례하였던 그 청산들과 그 신속에 숨어 있던 사찰들과 암자들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르고 있다.
요즘도 눈을 뜨면 나는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고 싶다. 조그만 암자 속으로 들어가 온전한 내 모습과 싸우며 죽기를 각오하고 생사를 초탈하고 윤회에서 벗어나고 싶다. 티뱃의 고승이었던 밀라레빠가 노래했던 것처럼 모든 욕망버리고 눈 덮인 히말라야의 설산으로 가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수도하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어가는 그런 은수자隱修子가 되고 싶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