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에 주지 스님이었던 법성스님은 내게 법당에서 가장 가까운 요사채 하나를 공짜로 주셨다.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수덕사에 들러 한 여름에도 공양을 준비할 때마다 아궁이로 연결된 뜨끈뜨끈한 방구들에 허리를 지지면서 학질 들린 사람처럼 땀을 빨빨 흘리며 지내곤 했었다.
그 무렵 나는 정말 스님이 되고 싶었다. 실제로 도반이던 무법스님에게서 승복을 빌려 입고 밤 깊도록 압구정동의 번화가를 걸어 보기도 했다. 밀짚 모자를 쓰고 먹물 입힌 승복을 입고 나는 탐욕과 쾌락이 번쩍이고 있는 환락의 거리를 걷기도 했다. 아무도 내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법정스님이 어떤 수필에 썼던가. 처음으로 출가를 결심하고 효봉스님으로 부터 허락을 받은 뒤 승복을 입고 거리로 처음 나설 때 가슴속에서부터 환희심이 솟구쳐 올랐다던가.
승복을 입고 걷는 내 마음에도 알 수 없는 이상한 환희심이 흘러넘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출가를 하기 위해 아내를 떠나 가정을 버리고 아이들과 헤어질 그런 용기는 없었다. 우리의 인생이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잘 모르이만 사내의 몸을 받은 대장부로서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중노릇 한번은 해 볼만하다는 절실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니는 차마 머리를 삭발하고 내 있던 자리를 벌떡 일어나 박차고 가출할 용기는 없었다. 내 그런 마음에 한가닥 희망을 준 것은 어느 날 무법스님이 큰 선물을 가져온 뒤부터였다. 무법스님이 수백 년 묵은 소나무 등걸을 구해다가 그 위에 수덕사의 방장 스님인 원담스님의 선필을 새겨온 것이었다.
\'해인당海印堂\'
나는 오래 전 부터 그 깊은 뜻은 잘 모르지만 해인삼매란 불교 용어를 좋아하고 있었다. 직역하면 바다 위에 뜻을 새긴다는 해인이라는 말의 의미가 너무 좋아서 언젠가 무심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새로 짓는 집의 이름을 해인당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 말을 귀 기울여 들은 무법스님이 나무 등걸에 해인당 이라는 옥호를 새겨 직접 우리 집까지 날라다주었다. 나는 이 현판을 우리집 이층 바깥벽에 내어 걸어 두고 있다.
이 현판뿐만 아니라 무법스님은 내게 액자까지 하나 선물해 주었다. 역시 원담스님이 써 준 글씨인데 경허스님의 선시 가운데 한구절을 인용하여 써 준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여청산하자시世與靑山何者是
춘광무처불개화春光無處不開化.\"
이 구절은 경허스님이 확철대오하였던 천장암에서 읊은 노래인데 그 노래를 본 순간 내 마음은 불을 지핀 듯 밝아졌다.
\"세상과 청산은 어느 것이 옳은가.
봄볕이 있는 곳에 꽃피지 않는 곳이 없구나.\"
경허스님의 이 선시를 본 순간 내가 비록 머리를 깎고 청산으로 갈 수는 없지만 이 세상 모든 것에 청정한 도량道場임을깨달았다.
내가 찾아갈 곳이 청산이냐 세상이냐 어느 것이 옳을까 하며 시비를 거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비록 내가 세속에 머물러 있다 하더라도 내 마음이 봄볕을 비추는 곳을 찾아가고 있다면 그 곳이 어디든 꽃이 필 것이 아니겠는가 내 몸이 비록 청산을 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 마음껏 봄볕을 향한다면 그 곳에는 반드시 꽃이 피어날 것이 아니겠는가.
아직도 눈올 감으면 내 마음엔 그때 그 무렵 내가 순례하였던 그 청산들과 그 신속에 숨어 있던 사찰들과 암자들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르고 있다.
요즘도 눈을 뜨면 나는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고 싶다. 조그만 암자 속으로 들어가 온전한 내 모습과 싸우며 죽기를 각오하고 생사를 초탈하고 윤회에서 벗어나고 싶다. 티뱃의 고승이었던 밀라레빠가 노래했던 것처럼 모든 욕망버리고 눈 덮인 히말라야의 설산으로 가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수도하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어가는 그런 은수자隱修子가 되고 싶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