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컨대 소리란 과연 무엇일지요.
지구공전의 속도가 시속 십만팔천 킬로미터이고 적도권의 자전 속도가 시속 일천육백 킬로 미터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 속도에 소리가 없지 않을 터이니, 우리는 소리 가운데 나서 소리 가운데에서 스러진다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합니다.
몇 해 전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는 제목의 소설책이 나온 일이 있었습니다.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 이것 역시 수월하게 들어 넘길 말은 아닌 듯했습니다.
사람만 하더라도 다 제가끔의 ‘청’ 이 있어 우리는 목소리만 듣고도 누군지를 알아냅니다. 가까운 짐승들은 물론이고 새들과 온갖 찬피동물들과 심지어 곤충, 하루살이들까지 모두 제 나름의 고유한 방식으로 바스락거리고 꼬무락거립니다. 보통사람의 귀가 들을 수 있는 범위의 소리들만을 놓고 생각해도 그러할진대, 사람 중심의 잣대를 넘어서 생각해 보자면 풀과 나무, 돌과 바람과 물이, 떠도는 먼지 하나 조차 다 제 소리를 가지고 있을 터입니다. 그리고 이 고유한 바스락 거림이야 말로 우리가 사물을 분별하기 위해서 붙여 부르는 이른바 \'이름’ 이란 것 보다 한층 자명하고 본연에 더 근접하는 이름이 아니겠습니까. 그러하니 새뿐 아니라 하늘 아래 모든 \'一인 것’들은 제 소리를 내며, 제 이름을 부르며 우는 것이 되겠습니다.
일단 사물이 제 발성기관을 떨거나 또는 다른 사물에 부딪쳐 내는 소리를 우리는 대개 그 사물의 소리라고 합니다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생각해 보면 미시적 세계에서는 모든 소립자들이 입자이자 파동인 형태로 존재한다고 합니다. 입자인가 하면 형체 없는 파동이고, 파동인가 하면 또한 입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만유의 부인할 수 없는 본질이 떨림, 파동이며, 이것은 빛 또는 소리라는 것입니다.
한즉 오온으로 이루어진 온갖 거시 세계의 형상들 역시 실은 한갖 소리뭉치, 빛묶음, 신기루(Maya)에 불과하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보면 온갖 천지간 유정, 무정들의 존재의 지속이란 곧 자신의 고유한 주파수(1초당 진동수)의 지속인 것이며, 그것은 혼선의 외마디의 지속과도 같은 것인 동시에 또한 허망하기 그지없는 것이어서, 진동의 종식과 더불어 해체되어 사대四大로 돌아가는 것일 터입니다.
그러하니 우리가 목소리를 들으면 또한 그 온전성 여부를 알아볼 수도 있는 것이겠습니다. 아픈 이-존재의 자기동일성이 훼손된 이-의 소리는 그 파동이 불안정한 것인 까닭이지요. 이것은 사람뿐 아니라 모든 사물들에 적용 가능한 현상일 것입니다.
이른바 이름다운 소리, 좋은 소리가 사물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면 심지어 부처와 조사들의 설법에 있어서도 그 말과 뜻도 뜻이지만 육신의 북통을 거쳐 아름다운 영혼의 경지가 발하는 그 소리가 더 윗길의 법문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 것입니다. 말의 뜻을 몰라도 염불만으로도 성불할 수 있다는 일각의 입장, 또 육자대명주를 비롯한 정수진언들의 법력을 높이 여기는 티벳 불교의 입장 속에는 은연중 우주의 본원 파동, 시간과 공간의 처음과 끝을 열고 닫는 근본 소리에의 통찰과 그 힘에 대한 확신이 전제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소리는 진리가 자신을 드러내는 또 다른 미묘 법문일 수 있는 것이며, 모든 진지한 소리예술은 그것을 지향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써 예술은 아름다움을 넘어 거룩함의자리에까지 감히 이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허튼 소리가 종작없이 길어졌습니다만, 대장경을 음악으로 받는 일이란 거룩한 소리를, 법음을, 진리로서의 소리를, 소리의 진체를, 근원의 파동을 세우는 일이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 진리의 광대무변 속에 대장경의 조성배경이며, 동서의 구분이며, 고려불교의 호국적 성격이며 하는 것들은 모두 녹아들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음악소리는… 침묵과 병행한다.(------)음악에 있어서는 공간의 원근, 한계 없는 것과 한계 있는 것 모두가 하나의 우아한 통일 속에서 영혼의 위로와 은헤가 된다. 왜냐하면 영혼이 음악을 타고 아무리 멀리까지 간다하더라도 음악은 어디서나 영혼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다시 집으로 데려오기 때문이다. 이것이 음악이 불안한 이들에게 평온을 가져다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막스 피카르트의 말을 덧붙이며, 마지막으로 음악 팔만대장경 작업의 아름다운 완성을 빌어 마지않습니다. 그리하여 그 법음이 천지간 여리고 상처받은 것들을 어루만져 줄 때를 기다리겠습니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