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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시鹿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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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이은윤 1998년 06월 196호
왕유 \"녹시\"는 “공산에 사람은 보이지 않으나 소리가 들리고,
깊은 산속 바위 이끼에 석양빛이 비쳐 반사한다\"는 모사로서 대자연에서 느끼는 자신의
미묘한 검정적 체험을 통해 철리哲理를 깨닫고 있음을 나타내 보여 주고 있다.
다시 말해 왕유가 이 시를 통해 밝히려 한 선의禪意는 깊고 그윽한 참선수행 과정 가운데
활연대오를 읊조렸다고 할 수 있다. 그의 구체적인 깨달음은 색(현상)을 통해
공(본체)를 보는 체용일여體用一如의 우주관을 체득한 것이다.
바로 선과 시가 보완관계를 이루면서 감로수 같은 선미禪味를 물씬 풍겨 주는 선시다.

빈 산속 사람은 안 보이 고,
사람의 말 소리 만 들릴 뿐이네 ,
지는 햇빛은 깊은 숲속 들어 와,
다시 파란 이끼를 비추네 .
공산불견인空山不見人
단문인어향但聞人語響
반경입심림退景入深林
복조천태상復照天苔上

스스로를 부처님 때의 「유마경」을 설한 유마힐거사에 비유 \'왕마힐王摩詰\'이라 자처한 중국 당나라 시인 왕유(701~761)의 ‘녹시(사슴 우리의 울타리)’ 라는 선시禪詩다.
후세에 ‘시불詩佛’로 칭송되기도 한 왕유는 시선 이백, 시성 두보와 함께 당나라3대 시인의 한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향적사를 지나며(過香積寺)’, ‘종남산의 별장(終南別業)’ 등 많은 선시를 남긴 초기 선종의 거사였다.
‘녹시’는 시의 분위기가 차갑고 고요하며 편안함이 가득차있는 선시의 백미白眉다. 특히 시의 맨 첫줄에 나오는 ‘공산’ 은 이 시의 주안점이면서 선적인 이미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먼저 ‘녹시’ 가 상징하는 선적 공간을 보자. 산에 사는 야생 사슴의 우리는 산 전체가 그대로 우리이기 때문에 ‘우리’ 라는 제한적 공간이 있을 수가 없다. 하물며 그런 사슴 우리의 울타리가 있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왕유의 시제詩題 ‘녹시’는 산 전체, 대자연, 우주를 뜻하며 울타리 없는 선의 무한공간을 상징한다.
반경近景은 석양이 비치는 햇빛이다. 왕유는 사슴이 뛰노는 공산심림에 비치는 석양 빛을 통해 선의 공적하고 유심幽深한 경계를 묘사하고 있다. 앞의 두 구는 산의 공적함을 묘사하기 위해 빈 산에 사람을 진입시켜 소리를 내게 함으로써 산속의 고요를 파괴하는 반츤법을 동원한다. 그리고는 독자들을 사람의 말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지 모르는 신비한 부지不知의 세계로 안내, 산 속의 적정을 깨닫도록 한다.
뒤의 두 구는 깊은 산속의 그윽함과 어둠을 묘사하는데 어둠에 정반대되는 한 줄기 석양빛을 숲에 끌어들이는 반츤법을 활용한다. 그 한 줄기 석양빛은 어두운 밀림 속을 어렵사리 뚫고 들어오면서 미약하지만 황금빛 햇살을 흐트린다. 석양의 광반光班은 차가움을 나타내는 푸른빛의 이끼 위에 떨어짐으로써 선이 지향하는 바 냉철함과 무소유의 가난을 상징한 ‘차가움’ 을 한껏 고양시키면서 그런 경지를 획득하도록 권유한다.
왕유는 사람의 말소리와 석앙빛을 끌어들여 깊은 산림 속 혼암昏暗(미망)을 깨부수고 독자들로 하여금 혼암보다도 훨씬 더 감동을 주는 선적인 유암幽暗(깨달음)의 세계를 열어 준다. 청나라 시인 이영의 저술인「시법간이록詩法簡易錄」은 \"사람의 말소리는 성聲이고 반경은 색色이다. 공산을 성과 색이 없는 것으로 묘사하지 않고 유성유색有聲有色으로 묘사해 공空을 더욱 확실히 보도록 했다. 이는 ‘장관의 파도\'로 이른바 영롱척투玲瓏剔透(뺏속을 사무치는 옥소리)라 할만 하다\" 고 왕유의 \'녹시\' 를 극찬했다.
심산 밀림의 고요가 단지 무성, 무색을 투영하는데 그친다면 죽어 있는 사적死寂이요, 암혹이요, 차디찬얼음 덩어리일 뿐이다. 이러한 선의 경지나 선시라면 사선死禪에 불과할 뿐 아무 맛이 없다.
‘녹시’ 의 예술적 묘미는 시의 제목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선적 경계를 아주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 특히 조시선에서는 현상(色)에서 본체(空)를 보고, 무無에서 유有를 보며, 손님과 주인이 자유자재하게 자리를 바꾸는 회호回互, 왕환任還이 이루어진다. 이것이 바로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다. 왕유는 심산의 적정을 무성, 무색으로 묘사하지 않고 사람의 말소리와 석양빛이라는 성색을 통해 선이 추구하는 고요를 한층 심화시켰다. 그래서 공산은 죽어 있는 정적이 아니고 계속해 작용하고 있는 공의 본질을 상실하지 않는다.
왕유 ‘녹시’ 는 “공산에 사람은 보이지 않으나 소리가 들리고, 깊은 산속바위 이끼에 석양 빛이 비쳐 반사한다”는 묘사로써 대자연에서 느끼는 자신의 미묘한 감정 체험을 통해 철리哲理를 깨닫고 있음을 나타내 보여 주고 있다. 다시 말해 왕유가 이 시를 통해 밝히려 한 선의禪意는 깊고 그윽한 참선수행 과정 가운데 활연대오를 읊조렸다고 할 수 있다. 그의 구체적인 깨달음은 색(현상)을 통해 공(본체)을 보는 체용일여體用一如의 우주관을 체득한 것이다.
조금은 어려운 왕유 거사의 ‘녹시’를 이처럼 장황하게 감상해 본 것은 요사이 계절적으로 산사를 많이 찾는 산행에 도움이 될까 해서다. 특히 많은 실직자, 정년 퇴직자들이 산행으로 소일을 하는 예가 날로 늘고 있다. 산행을 하다 보면 좋든 싫든 늘 산사山寺를 마주하게 된다.
산을 갈 때면 언제나 자연스럽게 깊고 차가운 궁벽한 심산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그리고 그 심산유독에는 붓을 들어 그리지 않았어도 천추千秋에 변함 없는 명화名畵인 청산이 있고, 줄이 없어도 만고불변의 거문고 소리를 내는 푸른 계곡 물이 흐르고 있다.
고통스러운 심정의 실직자들이여!
먼저 이 ‘청산녹수靑山綠水’를 벗해 대자연의 고마운 선물을 즐기라. 다음으로는 혹시 산사를 들르거든 ‘녹시’ 를 떠올려 무릇 모든 형상을 지어 나타나 있는 현상계는 모두가 허망할 뿐이라는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으로 허전한 마음을 달래소서.
저 바다와 같이 광활하다는 불법세계도 산행에서 흔히 보는 푸른이끼가 있고 그 이끼에 석양이 비쳐오는 심산으로 형상화될 수 있다. 이 같은 불법의 구체적 형상화가 없다면 범부들이 어찌 불도佛道를 맛보고 만져 볼 수 있겠는가. ‘녹시’ 는 바로 선과 시가 보완관계를 이루면서 감로수 같은 선미禪味를 물씬 풍겨 주는 선시다. 이 시에 담긴 깊고깊은 선리禪理는 뒷날로 미루더라도 일단 고통스러운 찰나의 순간을 \'영원’으로 승화 시키는 가운데서 마음의 안정을 도모해 볼 수 있다.
불생불멸의 심산유곡 바위 위에 끼어 있는 푸른 이끼를 잠시 비치고 가는 석양이 연출하는 구체적인 경치 속에서 찰나의 순간(석양빛)을 영원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비탄스러운 시류時流의 통한을 침잠시킬 수도 있으리라.
실직의 아픔이 오늘을 괴롭히더라도 내일 아침이면 밝은 해가 뜬다. 그리고 모레 아침에도 해는 뜬다. 오늘의 산행은 킬링 타임Killing time이 아니라 내일을 향한 준비가 되어야 한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