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을 맞는 재가자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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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8년 05월 195호
5월 3일은 부처님 오신날이다. 부처님 오신 날이면 전국의 사찰은 불자들로 붐빈다. 불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절을 찾아 등을 밝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두말할 것도 없이 부처님 오신날은 절집에서는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다. 그래서 부처님 오신 날 한달 전쯤부터 절은 바빠지기 시작한다. 등을 만들랴, 제등是燈 행사를 위해 이것저것 준비하랴 눈코 뜰 새가 없다. 가장 큰 대목을 맞아 서울 조게사 앞 불구佛具 상가들도 덩달아 술렁이기 시작한다.
이맘때면 각 사찰이 마련하는 불교 알리기 행사도 늘어난다. 다른 종교와 견주어서는 포교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불교이지만 이 시기에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불교를 믿고 있는 기쁨을, 내가 불자라는 뿌듯함을 만끽하는 순간은 제등 행렬에 참여하는 순간이다. 연등을 밝히고 길옆에 줄지어 늘어선 시민들을 향해 자비로움이 가득 담긴 미소를 머금고 큰 길 한복판을 걸을 땐 일종의 선민의식選民意識까지 갖게 된다. “보이라, 우리는 진리 가운데 최상의 진리를 만난 사람들이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승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사람 몸 받기 어렵고, 불법佛法을 만나기는 더욱 어렵다는데 그 회유하고도 귀중한 인연을 가진 사람들이란 말이다. 그대들도 어서 이 위없는 가르침을 만나 윤회의 고통을 벗어나 해탈의 세계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들을 아마도 대부분의 불자들은 제등 행렬을 하는 순간 가져 보았을 것이다.
사실, 불자들이 이런 생각을 갖는 것은 매우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불교와 같이 심오한 교학체계를 가진 고둥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으로서, 한낱 자신의 인생을 그 존재가 있는지 없는 지도 모르는 절대자에게 떠맡기는 부류들과는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님 오신 날 밝히는 연등은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한다. 또 이 지혜에 바탕 해 일어나는 자비를 나타내기도 한다. 불교는 이처럼 지혜를 중시하는 종교이다.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올 때면 습관처럼 되뇌이는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온누리에 가득하길 기원하는 발원은 부처님께서 우리 인류에게 알려 주신 지혜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기를 바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불교에서 지혜는 이처럼 절대적이다. 불교를 간단히 말할때 지혜의 종교라고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부처님이 이 사바세계에 오신 것을 불교에서는 일대사一大事 인연이라고 한다. 일대사를 불교에서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탄생하신 것’으로 해석한다. 부처님의 중생제도는 지혜의 전달을 통해 이루어진다. 곧, 반야般若를 확산시켜 무명無明을 물리치고자 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오신 의미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무지無知로부터의 해방(해탈)이다. 부처님이 오심으로 해서 사바세계의 중생은 삶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되었다.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올바로 잘 살아가는 것인지의 바른 기준을 알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무지로 인해 벌어지는 갖가지 부작용이나, 부조리, 죄악들을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지혜로운 가르침으로 인해 벗어날 길을 찾게 된 것이다.
둘째는 신神의 굴레로부터의 해방이다. 우리 인류는 참으로 오랜 기간동안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신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예속된 삶을 살아왔다. 절대적인 힘과 능력을 가진 신을 설정해 놓고 그의 힘에 의해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어리석음을, 적어도 부처님이 세상에 오시어 연기緣起라는 우주의 법칙을 설파하시기 이전까지는 여과 없이 받아들였다. 부처님 이전의 인류는 그저 피조물이요, 그 절대자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존재에 불과했다. 절대신의 도구요, 종이었다. 심지어 나를 당신(절대자)의 도구(또는 종)로 써달라고 애원하거나, 절대신을 주인主人으로 모신다는 의미를 가진 호칭을 오늘날에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이처럼 부처님이 오심으로 인해 인류는 스스로가 무한한 가능성과 능력을 가진 자주적인 존재 임을 비로소 자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셋째는 계급(차별)으로 부터의 해방이다. 인류가 만들어 놓은 세습적 계급제도의 해악에 의해 많은 사람은 엄청난 고통 속에 살아왔다. 천민은 영원한 천민이요, 왕족이나, 귀족, 제사장의 자리를 점한 계급은 언제나 군림하며 살아가도록 되어 있었다. 부처님께서 탄생하면서 선언하신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는 대 선언이 없었던들. 엄격한 계급사회였던 인도사회에 부처님께서 모두가 불성을 기진 소중한 존재이므로 출신으로 인해 차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선언을 하지 않았던들, 그리고 부처님을 따르는 제자들로 이뤄진 승가僧家를 통해 계급이 없는 평등공동체를 나다내 보이지 않았던들. 인류가 저마다 고귀한 인권과 주권을 가진 존재로서 자리매김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과 희생이 불가피 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부처님 오심을 진정으로 기리는 일은 바로 이러한 부처님 오심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면서, 이의 실천과 발양을 다짐하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불자들이 맞이하는 부처님 오신 날은 어떠한가. 과연 부처님 오신 날을 제대로 맞이 하고 있는 것인가. 안타갑게도 그렇지가 못한 것 같다.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오신 뜻을 발양하고, 되새기고, 그 뜻을 따를 것을 다짐해야 할 부처님 오신 날의 모습을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일일이 표현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오늘날의 부처님 오신 날은 매우 상업적인 행사로 변질된 지 오래다. 이같은 경향에는 승속에 구분이 없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불교의 합된 가치를 선양하는 행사보다는, 그럴듯한 명분 아래 내용적으로는 돈과 복을 구하는 행사가 가장 큰 규묘로 판을 치고 있다.
지혜를 그토록 강조하신 부처님이 오신 이 뜻 깊은 날, 사찰이나 행사장에선 들려오느니 ‘복을달라 ‘~을 하게 해달라‘ \'~을 하고자 하니 가피나 위신력을 내려달라’ 는 소리들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입각, 어떠 어떠한 일을 해보겠다는 결의를 부처님 앞에서 다짐하기보다는 그저 달라, 해달라는 타령뿐이니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 도무지 이런 모습들에 부처님께서 그토록 경계해마지 않았던 절 대신에 매어달려 사는 부류들과 어떤 점에서 다르단 말인가.
이를 경계해야 할 출가 대중도 문제이겠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지 앓고 복을 구하기에 급급한 재가자들에 있다. 경제적 기반을 재가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출가자들이 일관되게 복을 구해 달라고 요구해 오는 사람들을 언제까지 외면할 수 있으랴. 부처님 오신 날은 이런 의미에서 지금 행해지고 있는 재가자들의 신앙 행태를 반성하는 대참회의 날이 되어야 마땅할 지도 모른다.
부처님이 어떤 삶을 살다 가셨고, 어떤 가르침을 남기셨는지에는 무관심한 채, 자신이 다니는 절에서 부적을 팔지 않는다고 무당집이나 점집을 찾는 재가자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사업이 번창하기를 원하며 백일기도를 올렸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부처님을 원망하는 재가자들이 없어지지 않는 한. 그리고 어느 절 부처님, 어느 스님이 영험이 있느니 없느니 하면서 영험이나 좇는 재가자들이 엄존하는 한 부처님은이 땅에 영원히 오시지 않을 것이다. 부처님의 제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여전히 무지하고, 신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갖가지 차별심으로 가득 차 있는데 부처님이 어느 곳으로 오실 수 있겠는가. 밤새 천불천탑을 조성하면 미륵이 오신다는 믿음으로 혼연일체가 되어 불상과 탑을 조성하던 사람들이 결국 한사람의 거짓말로 인해 미륵의 하생을 보지 못했다는 운주사의 전설은 이런 맥락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교훈을 전해 주고 있다. 운주사에서 불탑을 조성하는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모든 중생이 부처님의 진리대로 살아가고자 혼연일체가 되어 정진하는 날 부처님은 사바세계에 오신다는 교훈, 그리고 한 사람이라도 진리에 어긋난 삿된 행동을 했을 때 미륵은 오시지 않았듯이 부처님이 이 명에 오시기 위해서는 모든 중생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널리 전하며 실천하는데 정진해야 한다는 교훈이 이 전설에 담겨 있다
이제부터라도 부처님을 부탁하면 들어주는 절대자나 수퍼맨 정도로 폄하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을 이 전설은 응변으로 알려 주고 있다. 따라서 불자들은 올 부처님 오신 날을 운주사에서 불탑을 조성했던 사람들이 가졌던 것과 같은 마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익히고 바르게 실천하며, 또 널리 전하는 다짐으로 맞이해야 할 것이다. 미륵을 맞기 위해 하룻밤 안에 천불천탑을-조성하던 그 간절함과 정진력으로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할 때, 우리는 우리 곁에 오신 부처님을 만날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에야 비로소 우리 모두가 저마다 부처임이 확연히 드러날 것이기에 말이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