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 연기의 현대적 조명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논강 - 소홍렬
1998년 05월 195호
공과 연기의 현대적 조명 세미나에는 모두 열두 편의 주제 발표가 예정되어 있다. 이 주제는 크게 세 가지 관점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째는 서양문화와 현대 과학과 만나게 된 불교를 조명, 둘째는 오랜 역사를 불교와 함께 해온 유교와 도교 및 종교학과 현대 철학의 관점에서 \'공\'과 연기를 다시 조명, 셋째는 불교 자체로부터 그러한 재조명을 해 보자는 것이다.
여기서는 이들 세 가지 관점들 가운데 그 첫번째에 해당하는 주제에 대한 개괄적 안내를 하고자 한다. 불교가 유럽과 미국 동 서구 사회로 전파되면서 서구 문화와, 특히 서구가 주도해 온 현대 과학과 접목하게 되는 면모를 다루게 될 주제에 대한 소개를 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볼 때 \"서쪽으로 간 불교\"는 놀라울 만큼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독교적 문화 배경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가 현대 과학과 갈등을 일으키는 면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에 견주어 불교는 오히려 현대 과학과 잘 융합될 수 있는 면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에 더욱 불교에 대한관심이 높아져 가는 것 같다. 이제는 서양불교 라는 말이 통용될 수 있을 만큼 저변이 확대되었으며 독자적 수행 활동과 연구 활동도 잘 진행되고 있다. 역시 서구적 문화의 특징 때문이겠지만 서양의 불교학자들은 왕성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서양불교’의 특이한 면모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적 개인주의와 서구 학문 세계에서의 개인주의적 독자성이 불교를 받아들이는 그들의 태도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곧, 불교를 새롭게 해석해 보면서 독자적 이해를 과시하고자 하는 서양불교학자들의 의욕이 왕성한 저술 활동에서 드러난다. 어떻게 보면 그러한 의욕은 불교적인 태도와 맞지 않는다고 할 수 있으나, 아마 그것은 불교적 문제이기 전에 \'동양적 편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서양불교는 동양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분위기와 전통을 만들어 간다고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서양의 불교학자들이 어떻게 그처럼 많은 저서를 출판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불교를 접하게 된 그들의 배경과 관심이 다양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인도불교, 티베트불교, 동남아불교, 중국불교, 일본불교, 한국불교 등이 제각기 다른 통로와 다른 \'얼굴\'로 불교를 서양에 전파하고 있다. 이러한 전통불교의 여러 가지가 서양 불교학자들의 다양한 저술 활동에 바탕이 되고 있다.
게다가, 이들 서양 불교학자들은 대부분 현대 과학의 몇몇 분야들에 대한 전문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 과학자 출신의 불교학자들도 많다. 따라서 어떤 현대 과학의 영역과 불교를 관련시켜 보느냐가 또한 다양한 불교 해석의 길을 열어 주는 것이다. 참으로 불교가 이러한 다양한 현대 과학의 영역과 접목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한편 당연한 것으로 느껴진다.
불교를 받아들이는 관심 문제에 있어서도 다양한 측면들을 보여 준다. 이것은 어떤 전통불교와 접하게 되느냐 에도 결정될 수 있으며, 어떤 현대 과학의 분야에 학문적 바탕을 두고 있느냐 에서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번 세미나에서 다루게 될 주제와 관련된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생물학의 진화론에서 진화의 개념을 확대시키고 연장시켜서 마음의 진화 또는 의식의 진화 가능성울 논하면서 불교적 수행의 과정이 우리의 의식에 가져오는 변화와 관련시켜 본다. 말하자면 불교적 수행의 방법이 마음의 진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생태학적 관심은 공존 공생을 위한 과학적 및 철학적 근거를 찾게 하는데, 과학에서는 유기체들에서 볼 수 있는 체계적 기능과 현상이 그런 근거를 제공할 수 있으며, 철학에서는 불교의 연기 사상이 그런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호의존적이고 상호 연관적인 존재 세계를 설명해 주는 불교의 연기 개념이 생태학적 관심의 새로운 토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구적 문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을 도구화할 수 있는 기술의 개발에 있다. 고안 능력에서 뛰어난 문명을 발전시켜 온 것이다. 현대적 과학기술을 개발해 온 것도 서구문명이었으며, 그 문명의 힘으로 오늘의 세계를 지배하게 할 수 있게 된 것도 고안 능력과 도구에 대한 서구인들의 관심 때문이었다. 인공 지능인 컴퓨터를 만들어 내고 발전시켜 온 것은 가장 최근에 입증된 서구 도구주의의 위력이다. 이러한 도구주의적 발상으로 「중론中論」에서 보여 준 용수의 논리적 분석 방법을 컴퓨터 프로그램화하겠다는 서양 불교학자가 나오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다. 용수의 분석 방법과 과정 또는 단계는 올바른 인식과 존재론에 이르게 하는 방편이므로 그것을 프로그램으로 만들면 유용한 임상적 도구로 사용될 수 있으리라는 발상이다.
컴퓨터의 등장이 가능하게 한 또 하나의 첨단 분야는 인지 과학이다. 물리학, 생물학, 신경 과학 등이 참여하고 전산학의 인공지능연구와 그밖에 언어학. 심리학, 인류학 및 철학등이 참여하는 학제적 분야이다. 인지 과학은 \'마음의 과학\'이라고도 한다. \'인지\'든 \'인식\'이든 \'마음\'이든 그것을 과학적으로 탐구하고자 하는 시도는 불교와 만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인지 과학이나 의식 과학적 탐구가 불교의 .무아無我’ 나 ‘무심無心\'과 비슷한 결론에 이르게 한다고 보면 불교의 마음 이해와 현대 과학의 마음 설명을 관련시키지 않을 수 없다.
이상의 몇 가지 관심 주제에서 볼 수 있듯이 서양 문화와 현대 과학을 만난 불교가 그처럼 생산적일 수 있다는 것은 또 한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의 관심과 인식 작용이 자유롭게 가지를 뻗어 나갈수록 우리는 그 가지들이 본래의 나무 기둥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인지를 염려해야 한다. 다양화나 다원화되는 불교 이해는 불교의 생산성을 말하기도 하지만 불교의 근본을 잃어버릴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서양 불교학자들의 불교 이해와 해석에도 몇 가지 우려되는 문제가 있다. 가령, 불교의 진리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일반적 지적을 할 수 있다. 현대 학문이 분화되어 가는 현상을 반영해 준다. 독백인 자기 주장을 할 수 있으려면 세분화된 영역에서 전문가가 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하지만 불교의 이해는 종합적이고 전체적인 이해를 무엇보다 중요시하고 필요로 한다.
부분적 이해만으로 만족한다는 혐의는 서양 불교학자들이 공과 연기 개념을 번역하여 사용하는데서도 느낄 수 있다. 학자들마다 서로 다른 개념으로 번역하기 때문에 공을 번역하는 개념들에는 emptlness, openness, lmpermanence 및 groundlessness가 있으며, 연기를 번역한 개념들에는 Buddhist causality, mutual causality, relational origination, dependent co-arising 및 codependent arising이 있다. 예컨대, 공이 그처럼 여러 가지 개념으로 번역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그들 번역개념 중 어느 하나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의미 전달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기의 번역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이런 기본 개념의 번역과 사용에서부터 불교의 이해를 제한하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과 연기는 다 같이 중요한 개념들이므로 어떠한 불교 이해에서든 함께 다루어져야 하는데도 서양 불교학자들 중에는 이들 개념 가운데 하냐만 임의로 선택하여 다루는 사람들이 있다. 온전한 불교 이해가 될 수 없다.
이러한 일반적 문제점의 지적만으로도 짐작을 할 수 있겠지만, 서양 불교학자들의 글을 읽어 가노라면 문득문득 “이것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일종의 직관적 반응이라고 생각된다. \"이것도 아닌데! 저것도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 그들의 독자적 주장을 따라가게 하는 것이다.
이런 체험을 하다가 용수의 중론을 생각하게 되었다. 용수가 중론에서 말해 주고자하는 것도 이런 길 안내와 같은 것이다. 길을 잘못 들지 않도록 도로 표지판을 세워 주는 것과 같다. “이 길로 가면 안 돼! 저 길로 빠지면 안 돼!”라고 일러 주는 것이다.
‘공과 연기의 현대적 조명’ 이란 주제를 내세운 이번의 세미나도 기본적으로는 \"이것도 아니야! 저것도 아니야!\"라는 부정적 논의를 하는 세미나가 될 것이다. 그러면서 공과 연기에 대한 본래적 이해를 현대적 이해로 더 풍부하게 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의 진리에 이르게 하는 용수의 중론적 안내가 왜 그처럼 소중한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세미나 자체에서도 용수가 성취하고자 한 바와 비슷한 결실을 얻을 수 있다면 참으로 뜻있는 일이 되리라 믿는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