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대사는 신발 한 짝을 들고 파미르고원을 넘었고
인도와 중국을 가로막는 파미르고원은 \'세계의 지붕\' 이라고 일컫는다. 중국에서는 이 곳을 총령 嶺이 라고 불렀다. \'조사서래의祖師如來意’ 의 주인공인 달마 대사의 이야 에도 파미르 고원이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후위後鏡의 송운宋雲이 사신으로 갔다가 총령에서 신발 한 짝을 들고 서쪽으로 돌아가는 달마스님을 만난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역경승들에게 파미르 고원은 혜초스님의 표현대로 \"눈물을 천 줄기나 흘려야\" 넘어갈수 있는 구법의 의지를 시험받는 곳이기도 했다. 「고승전」권3「담무갈전曇無婚傳」(대정 50권 338 중하)에는 이 부분이 특히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총령(파미르 고원)에 오르고 설산雪山을 넘었다. 기후는 변화가 심하여 겹겹이 장애가 되고 층층이 쌓인 눈과 얼음은 만 리에 뻗어 있었다. 아래에는 큰 강이 있었는데 쏟살같이 급하게 훌렀으며, 동쪽과 서쪽 두 산의 허리에 줄을 매어 다리로 삼았다. 열 사람이 한번에 건너가 저쪽 강가에 닿으면 연기를 피워 표시를 하였고, 뒷사람은 그 연기를 보고 도착을 일아 바야흐로 다시 나아 갈수 있었다. 만일 오랫동안 연기를 보지 못하면 곧 폭풍이 줄을 날려 사람이 강물에 떨어 졌음을 알았다. 떠난지 삼 일이 지나다시 큰 셜산을 넘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는 안전하게 발디딜 곳이 없었으며, 암벽의 곳곳에서 모두오래된 말뚝구멍을 보았다. 한 사람이 각각 네 개의 말뚝을 가졌으며, 먼저 아래의 말뚝을 빼고 손으로 위의 말뚝을 잡고 기어올라 계속해서 서로 도와 올라갔다. 하루를 보내고서야 겨우 그 곳을 통과할 수 있었다. 평지에 도착해 남은 사람을 헤아려 보니 스물다섯 명 가운데 열두명을 잃었다.\"
파미르 고원을 넘은 최초의 중국 숭려인 법현法顯은 「불국기」에서 그 애로 못지 않게 사막을 건너는 괴로움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이 구절은 강원 사미반의 교과서인 「치문경훈觸門驚訓」의 주註로까지 인용되는 유명한 구절이기도하다.
“나쁜 귀신과 열풍이 많다. 이를 만나게 되면 모두가 죽기 때문에 남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도 없고 땅 위를 달리는 짐승도 없다. 사방을 바라보아도 방향조차 잡을 수 없었으며, 다만 죽은 사람의 뼈만을 표지판으로 삼을 뿐이었다?\"
이와 같이 험난한 산과 사막의 길을 통과하기 위해선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구도에 대한 간절함을 아울러 필요로 했다. 그 길은 세월이 얼마나 걸릴지, 그리고 살아서 다시 돌아올지도 알 수 없는 그런 길이었다.
종합판 「구법여행기」 저술을 발원하다
신심도 없고 체력의 열세 그리고 구도의 간절함 부족으로 인하여 인도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대륙 및 서역을 관광객 자격으로도 아직 둘러보지 못했다. 하지만 IMF 사태가 해결되고 또 통일이 된다면 북한과 중국을 지나 서역을 거쳐 인도에까지 이르는 길을 달려 역경승들의 고단했던 혼적을 따라가면서 그 어려움의 일부분이라도 함께 나누어 보고 싶다. 그리고 형편이 허락한다면 중국, 서역, 인도는 말할 것도 없고 북한까지 아우르는 종합판 「구법여행기」를 한 권 남기고 싶다. 그런데 그게 잘 팔리려나 모르겠다. 口
원철스님은 지금 은해사 승가대학원에써 정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