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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설수 같은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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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장대송 1998년 05월 195호
오늘은 4월 하순, 납설수라는 말을 되새김질하며 봉정암에 오르고 있습니다. 대아께서 말하길 납설수는 이듬해 동짓날부터 4월까지 내린 눈이 층층이 쌓였다가4월 중순이 지나 녹아 흐르는 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두고 쌓인 눈은 층층에 많은 양분을 함유하고 있다가 녹아 계곡 아래로 내려갈 때는 식물과 생물들에 겨울을 나는 동안 쇠약해졌던 몸을 그 물로 양분을 보양시키겠지요. 뿐만 아니라 납설수가 해안에 이르게 되면 봄마다 눈이 멀어 버린 숭어들이 그 차가운 물에 눈을 씻어 눈을 돼도 하겠지요.
녹색 빛을 흠뻑 먹어 산수유 몸 속에 있다가 나온 것 같은 납설수를 따라 숭어처럼 흐릿해진 마음의 눈을 씻으러 산에 올라가고 있습니다. 물론 대아께서도 얼마 전 이 길을 걸어갔겠지요. 제가 산에서 맨처음 느낀 것은 봄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초입은 여름으로 가려는지 초목이 실록을 더해 가지만 어느 정도 산이 깊어지면서 초봄이 있고 나중 12선녀탕을 지나면서는 혹독했던 지난 겨울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길 없는 길의 옆에는 나무와 풀들이 집성촌처럼 산의 고도에 맞춰 함께 모여 살고 있습니다. 저와 제 가족은 어느 높이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집성촌에 거주할까? 하는 가늠은 제 마음의 기운이 모자라 어림없을 뿐입니다.
진달래 숲을 지나 철쭉, 닥나무, 생강나무, 피나무 숲들의 층층을 지나자 층층나무 숲이 기다렸습니다. 마치 봉정암에 오르는 계단들처럼, 그런데 살아서 백 년 죽어서 백 년이라고 하는 주목은 그런 층층을 벗어나 산 것은 산대로 살고 죽은 것은 죽은 것대로 살아 있습니다. 이상한 것은 죽은 주목을 보면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고행이 떠올려졌습니다.
\'사는 게 고행이다\'는 말을 사람들은 종종하지요. ‘큰산을 머리에 이는 것, 아니 큰산을 그냥 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한쪽 귀퉁이를 이는 바람에 머리가 한쪽으로 쏠려 몸의 균형을 잃게 된다는 것’ 그런 게 사는 거라는 말을 자주 들었지요. 하지만 나는 절을 하면서 그런 것들을 견뎌내는 법을 나름대로 터득했습니다. 대아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요.
두어 해 전 선배를 따라서 절을 하러 해인사에 간 적이 있었지요. 그 때 절을 하면서 느낀 것은 절은 일흔번 하나 칠백 번 하나 힘들기는 마찬가지 였습니다. 역으로 그렇게 힘들기 때문에 산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지요. 지금도 산은 힘들기 때문에 오르는 것이라 여기며 걷습니다. 오히려 제게는 가족의 부재라는 게 힘든 삶의 한 귀퉁이로 설정되면 설정되겠지만…, 가족의 부재가 다른 어떠한 삶이 힘듦보다 커서 제겐 그것이 늘 우울증의 시발이었습니다. 따라서 삶이 힘들다는 것도 모양새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달리질 수 있음을 안 것이지요. 고행을 통해 생을 획득한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셨으니까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고행 과정을 마치셨을 때 다리는 마른 넝쿨의 매듭 같고 갈비뼈는 낡은 지붕의 석가래 같았고 등뼈는 낙타의 발톱 같다고 했습니다. 층층 없이 산 이곳저곳에 말라 비틀어져 누운 주목 나무가 그런 모습을 한 게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주목들의 그런 모습은 오히려 내게 무엇인지를 말해 주기 위한 일종의 암시라는 생각에 애써 눈길을 주지 않으려고 해봅니다. 소용없겠지만요.
대아. 솔직히 가족이라는 말의 의미를 접할 때 제게는 우울증을 유발시키는 하나의 요인이 된다는 말을 했었지요. 남들은 쉬운 말로 5남4녀의 막내이기 때문에 꽤 유복한 삶을 살아왔을 것이라는 단정을 내리죠. 그러나 그런 가족구조와는 달리 그렇지 못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부모님께서 제 생활과는 무관하다는 듯 일찍 돌아가셨고 그 뒤 형제들의 재산권 다툼에 휘말려 저는 가족의 연을 까마득한 곳에 두고 살아왔습니다. 가족의 부재, 어쩌면 그것은 제가 오늘날 글을 쓰게 된 가장 큰 요인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비틀어져 여기저기 널브러진 주목나무는 고행 뒤의 석가모니 부처님 몸 같습니다. 그 비틀린 몸은 결국 가족
의 부재라는 결핍을 쥐고 살아가는 내 한계를 꾸짖어 대는 것만 같습니다.
대아, 숭어처럼 차가운 납설수가 흘러내려 오는 곳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은 참으로 힘겹습니다. 몸도 몸이지만 부처님의 고행은커녕 가족이라는 범주마저도 설정되지 않아 절뚝이며 걷습니다. 쌍폭을 지나는 지금 날이 저물기 시작합니다. 초행길인지라 자칫 길을 잃을까 겁도 납니다. 그러나 저를 더욱 불안케 하는 것은 봉정암에 이력 전 젊어지고 온 마음의 짐을 벗지 못할 것 같은 예감입니다. 지금은 납설수 흐르는 소리가 유일한 위안일 뿐입니다. 그것도 잠시 대아께서 말했듯이 깔딱고개의 거친 숨소리에 물소리는 놓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인적없는 깔딱고개. 모자의 차양에서는 비오듯 땀이 떨어집니다. 내 생전에 이렇듯 많은 땀을 흘려 보기는 처음입니다.
어느 날 청양고추 한 개로도 이 만큼의 땀을 흘렸던 대아가 생각납니다.
땀, 물이라는 것, 그것은 관음의 몸이라는 생각을 했던 제겐 손으로 닦아줄 수밖에 없었지요. 대아께서도 기억나시죠? 물론 기억하실 겁니다. 제게는 대아가 가족이길 원했으니까요. 어줍잖은 생각이었다는 질책은 하산하여 받겠습니다.
깔딱고개를 넘어서니 다시 납설수가 흐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본 산은 어느새 하나의 거대한 어둠덩어리가 되어 있습니다. 마치 저의 우울증처럼 형체 없는 어둠 말입니다. 대아, 어떻게 하죠. 결국 마음의 눈을 씻어 준다는 납설수를 따라 올라온 길이 밤마다 고통스럽게 매만지는 형체없는 우울 덩어리라니, 어떻게 합니까? 그나마 물소리가 들리니 다행이군요.
물소리를 따라 다시 십여 분을 걷다보니 놀라운 장관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형체를 흐트러뜨리는 어둠 속에서 작게 빛나는 불빛, 봉정암의 불빛입니다. 대아께서는 그 빛을 부처님의 몸이라고 했지요. 하지만 제겐 부처님의 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집 같습니다. 납설수를 흘려 보내 마음의 눈을 씻어 주던 바로 그 집입니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