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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늘 가족을 항해 열어 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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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안혜령 1998년 05월 195호
얼마 전 일입니다. 아파트 단지를 에두른 뒷산을 올랐다가 내려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한낮 같지않은 적막함에 쌓인 아파트단지 아래 주택가 골목으로 짱짱하니 맑은 봄볕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제 곁으로 사내아이 둘이 지나쳐 갔습니다. \"형, 나 따라가면 안돼?\" \"안돼.\" 형인 듯 싶은 아이는 고개를 숙여 제 발끝만 쳐다보며 걸었고, 동생인 듯 싶은 아이는 처질세라 잰걸음으로 형을 따라가며 자꾸 물었습니다. 상황이 훤히 짐작되었습니다. 두 아이가 다음 모퉁이를 꺾어 들어가는 바람에 그 뒤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곧잘 보게 되는 광경이었습니다. 형제가 있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그런 추억이 있고, 그래서 흐뭇한 미소를 띠고 돌아볼 수 있는 정겨운 모습이지요.
그런데 저는 그만 가슴이 찡하니 아파오는 것이었습니다. 동생 아이의 목소리가 왜 그리 애처롭게 들리 던지요. 행여 형이 기어이 저를 떼어놓고 가지나 않을까, 조바심이 그 아이의 간절한 목소리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형의 단호했던 말투로 짐작컨대 그 아이는 혼자 남겨졌기 십상이었습니다. 그 때, 혼자 떨구어졌을 때 아이가 느꼈을 한순간의 절망감, 그 아픔이 제 마음을 흔들어 놓은 것이지요.
든든한 의지처인 형을 잃었다는 상실감, 익숙지 못한 세상천지에 저만 달랑 남겨졌다는 두려움과 무력감 같은 것. 그건 외로움일 터입니다. 놀이터나 구멍가게 앞, 또는 번잡한 큰길 한 귀퉁이에서 엄마 손을 놓쳐 울고있는 아이들의 마음과 한가지겠지요. 낯선 시공간 안에 저 혼자임을 깨닫는 순간 왈칵 이는 무섬증, 누구라도 제손을 잡아주기를 바라는 사무치는 외로움을 어찌할 수 없어 그토록 아이들은 목을 놓아 우는게 아닐는지요.
가족은 그 때 손을 잡아 주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부모가 자식의, 형이 동생의 울타리가 되어 주는 것, 몸과 마음의 의지처가 되어 주는 것, 같은 핏줄로 묶이고, 나아가 함께 살 부대끼며 사는 동안 특유의 동질성과 유대감으로 묶이는 그런 인연 말입니다.
삶의 어느 순간에는 깨닫게 될 터입니다. 제 마음의 한구석은 가족 안에서도 온전히 채워질 수 없다는 것을 사람은 저마다 다른 \"자기 앞의 생\"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 다른 삶의 갈래 속에서 서로 다른 세계와 가치관을 펼쳐나가게 됨을.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며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라는 피붙이가 어쩌면 서로 다른 일상의 자잘한 모습까지도 서로 이해하지 못할 그런 낯선 타인이 되어 버릴 수도 있는 일입니다.
가슴이 서늘해지도록 두려운 일이지만 어쩌겠습니까. 비록 부모의 몸을 빌었다고는 하나 사람은 태어날 때도 저 혼잣몸이요, 이 세상 떠날 때도 혼잣몸이 아니던가요. 그래서 더욱더 소중한 것이 가족이 아니던가요. 저마다 다른, 그래서 때로 부딪치고 상처를 주기도 하는 그런 가치들마저 다 소중하게 받아들여 감싸고 다독이는 그런 가족 말입니다.

지난해 늦여름 한 달 남짓, 저희 식구는 상처투성이가 되었더랬습니다. 돌이켜보면 어이없는 그 대립과 갈등은, 부끄럽게도, 저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지난해 고등학생이 된 큰아이가 한 학기 동안 성적이 뚝 떨어져버렸습니다. 이 아이가 차분히 제 마음 다스리기보다는 바깥일에 더 열심이어서 학생회와 풍물반에 들어 학교 안을 휘젓고 다니는가 하면, 자율학습 끝난 늦은 시간에 친구들 카운셀러 노릇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공부 타령 별로 해본 적이 없는 엄마를 믿는 마음도 있었기에 그렇듯 마음놓고, 즐겁게 대한민국 고동학생답지 않은 분주한 생활을 했겠지요.
걱정스러워 하시는 담임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나서 갑자기 화가 나고 조급해졌습니다. 그 때 제 마음은 저도 지금껏 모르겠습니다. 느닷없이 저는 아이에게 “번듯한 대학”과 “앞날”의 상관관계를 자주 들먹이기 시작했고, 아이의 “본업” 밖의 생활에 일일이 까탈을 잡았습니다. 딸 아이는 갑자기 변한 엄마를 불신할 수밖에요. 사이가 멀어질 수밖에요.
한 달 넘어를 그렇듯 신경전을 벌이면서 저나 딸아이나 다 지쳤습니다. 남편이나 작은 딸이라고 그 나날이 평안했겠습니까. 두사람의 불편한 관계가 전염되더군요. 서로 짜증을 내는 일이 빈번해지고, 큰소리가 자주 오가고, 부녀간에, 모녀간에 대화가 끊기기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어느 날 문득, 이건 가족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녕 그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이해와 용서는커녕 그저 일방적인 지시와 강요뿐이었습니다. 무엇을? 실상은 제 자신조차 거부하고 싶은 상투적인 가치가 아니던가요.
\"대부분 상처는 상투성에서 온다 - 롤랑 바르트.\"
앞뒤 문맥 잘린 채 달랑 낡은 공책에 쓰인 이 글귀는 그저 책 속의 죽은 글자일 뿐이었습니다. 진실을 입으로만 외우고 다니거나 머리 속에 담아 놓을 줄이나 알았지, 몸으로 살아내지 못한 미련함으로 저는 식구 모두에게 큰 상처를 입히고 말았던 셈입니다.
활달한 사회성과 지도력, 주위 사람에 대한 세심한 배려, 딸아이의 그런 미덕들이 오로지 \"대학 입시\" 라는 명분 아래 한순간에 쓰레기통에 버려져야 했으니, 그 아이의 자부심과 삶의 가치는 비틀리고 깨어졌겠지요.
\"마음먹기 따라서\"하는 흔하디 흔한 말이 얼마나 어렵고 귀한 삶의 진실인지를 뼈 시리도록 실감했습니다. 한순간의 분심에서 비롯되었던 저희 식구의 불신과 반목은 제 마음의 까닭없는 조급함을 가라앉힘으로써 거두어졌습니다. 온전히 거두어졌는지는 모를 일이지요. 다시 또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겠지요. 그렇더라도 마음만은 늘 식구들을 향해 열어두리라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랑이지 싶습니다.

한 가족의 사는 모양이 이럴진대 숱한 가족이 모이고 모인 이 세계는 얼마나 크나큰 고해인지요. 사람들 사이의 괴로움이 넘치고 넘쳐 삶의 터전인 지구까지도 비명을 지르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 삶의 토대를 이루는 자본주의 사회는 경쟁의 사회, 소비의 사회라지요. 그 속성을, 아침에 눈떠 밤에 자리들기 까지의 생활이 어제 오늘이 크게 다를 수 없는 저 같은 평범한 대중이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휘둘리지 말고 살면 좋으련만, 사람의 마음이 한결 같을 수는 없겠습니다. 유한한 사람의 삶에 무슨 지름길이나 있는 양 요령을 부려가며 허덕허덕 걸음을 재촉합니다. 가족은 점점 찢겨나가 \"따스한 안식처\"는 고전의 개념이 되어 가고 있나 봅니다. 그뿐인가요. 사람의 도리는 사라지고 물질문명이 가져다 주는 안락함 만을 쫓는 치열한 욕망이 그 자리를 대신해 가고 있습니다.
인간이 문화를 누리고 산지는 35만년 된 데 반해 진화의 역사는35억 년이나 된답니다. 진화사란 바로 생명의 역사겠지요. 35억 년, 까마득한 그 시간 동안 광대한 우주와 지구의 상호 운동에 의해, 모든 생명체의 얽히고 설킨 관계를 통해 지금, 제가 여기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생각할수록 신비롭습니다. 제 몸 하나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의 지금, 여기 있음이 참으로 신비롭고 소중합니다. 그런 인연의 타래를 생각하면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햇볕과 빗방울 또한 어찌 제 가족이 아니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마음이 참된 사람의 도리를 살리는 길이 아니겠는지요.
딸아이에게도 그렇게 이르겠습니다. 사람된 도리를 다해 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단다. 그러려면, 늘 열린 마음이어야겠습니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