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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세워야 할 가정의 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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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신봉승 1998년 05월 195호
20세기가 배출한 가장 훌륭한 역사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영국인 석학 아놀드 토인비(AJ.Toynbee) 교수는 자신의 역저 「역사의 한 연구(AStudy of History)」에서 ‘도전挑戰과 응전應戰’ 의 관계가 문명을 만들어 낸다는 탁견을 제시하여 세계의 학계를 흥분하게 하였습니다.
토인비 교수의 \'도전과 응전\' 이론은 고대문명이 발생하는 논리적인 배경을 그의 탁월한 시각으로 서술한 것이지만, 인간이 필연적으로 체험해야하는 고난과 고통을 극복하고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지혜를 함께 제공하였다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 토인비 교수의 탁견 중에서 우리가 곱씹어 보아야 할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의 제자가 물었습니다.
\"만일 지구에 종말이 오고, 오직 선생님만이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무엇을 가지고 가시겠는지 한가지만 말씀해 주십시오.\"
석학의 대명사나 다름이 없는 토인비 교수는 마치 준비하고나 있었다는 듯 거침없이 대답하였습니다.
\"한국의 가족 제도를 가지고 가겠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난감한 처지도 토인비 교수의 이 명쾌한 대답에 귀를 기울이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는 지난 20세기 일백 년 동안 소중히 간직하여 자손 대대로 이어가게 해야 할 가정의 법도와 규범을 깡그리 깨부수면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이 참담한 이야기를 다른 각도로 돌려서 말하면, 지금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이른바 IMF의 고통도 실상은 우리의 무지가 저지른 경박함과 오만함에서 비롯되었다는 뜻입니다.
한집안에는 그 가문家門 나름의 내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같은 가문의 내력을 또 가통家統이라고도 합니다. 가령, 할아버지의 성품이 아버지를 뛰어넘으면서까지 손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든가…, 출가한 왕고모의 모습이 오십 년쯤 뒤에 태어나는 장조카와 흡사한 경우를 우리는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김동인金東仁 선생의 단편소설「발가락이 닮았다」를 우리 문학사의 첫장에 기록하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와 같이 한가문의 흐름을 관통하는 내력을 부정할 수가 없다면, 한민족을 형성하여 도도하게 이어 내리게 하는 특유의 정서가 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비슷한 예가 되겠습니다만, 한국인은 아버지의 앞에서는 담배를 피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스승이나, 일정한 수준의 연장자의 앞에서도 담배를 피우지 아니합니다. 이것은세계의 어느 나라의 풍속이나 관행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만의 정서이기도 하지만, 누구도 가르쳐 준 일이 없는, 그야말로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져 내려오는 아름다운 정서이기에 삶의 형태가 다채로워진 오늘의 신세대들도 감히 파기할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또 명절이나 제삿날이 되면, 나이 어린 아들에게 음복을 권하는 것도 누구나 경험하였을 것으로 압니다. 그때 어린 자제들은 반드시 잔을 돌리면서 잔을 비우는 아름다운 광경도 목격하였을 것입니다.
gms히 같은 유교권이라고 설명되는 중국의 풍속은 서로 시선을 맞부딪치며 술잔을 비웁니다만, 같은 한문문화권에서 사는 우리 민족은 그것올 용인하지 않습니다. 집안의 어른이나 연장자의 앞에서 술잔을 마주 들지 않는 것은 앞서 말씀드린 담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교과서에 실려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수백 년 동안 아무 저항없이 지켜가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바로 이점이 민족특유의 정서가 엄존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며, 가정에는 반드시 그 가문나름의 법도가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여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는 세상 바뀌면 생각도 바꿔야 한다는 단순논리를 아무 비판없이 받아들이면서, 세계화 또는 국제화라는 용어에 현혹되어 어처구니없게도 우리 고유의 정서를 훼손하였고 우리 민족의 저력을 형성해 온 \'가족 간의 공동체의식\' 을 왜곡하고 내동댕이 칠 만큼 경박한 처지로 전락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선조님의 제사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런날에는 아버님을 위해서는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라는 위패(지방)를 모셔야 하고, 할머니를 위해서라면 현조비顯祖批 유인孺人 강릉최씨신위江陸崔民神位라는 지방을 써야합니다.
경건한 마음가짐을 다하여 붓글씨로 쓴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싸인펜으로 쓴다 해도 나무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한자漢字로 쓰지 않고 한글로 쓴다 한들 누가 탓하겠습니까만, 그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쓰고 있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또 ‘학생부군’ 이나 \'유인’ 이라는 글자는 그분들의 묘비墓碑에도 새겨져있는 탓으로 우리와는 조금도 낯설지 않은 단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도 ‘학생부군’ 과 유인이 무슨 뜻인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 한 가지 분명한 사실만으로도 우리 가정의 법도가 어느 지경까지 무너지고 말았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가정이라는 공동체는 하나의 그릇으로 비유될 수가 있습니다. 그 그릇에 담겨진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먼저 깨우쳐야 하고, 그것을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온 가족들에게 바로 인식시키는 것이 우리가 살아온 내력입니다.
입에 담기 민망합니다만, 지금의 우리 가정은 법도를 내다버린 중구난방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있고, 어머니는 어머니의 도리가 무엇인지 조차도 모르는 채 날로 경망스러워지는 판국입니다. 정말로 딱한 지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망의 21세기가 눈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21 세기 초입 이 랄 수 있는 서기 2010년, 또는 2015년 무렵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핵심적인 존재들, 그 때의 30대 청년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놀랍게도 지금 그들은 초둥학교의 상급반이거나 중학생으로 응석받이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성세대는 오직 그들이 올바로 자라나게 하기 위해서 가정의 소중함과 그 안에 간직된 법도의 존엄으 일깨우고서만이 도덕의 붕괴와 가치관의 혼란을 막을수가 있을 것입니다.
아놀드 토인비 교수의 탁견을 올 \'가정의 달\'에 다시 생각해 보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