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교수와 함께 안내 받은 곳이 1956년 공주 송산리 6호 고분이었습니다.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던 때였지요. 묵직한 철제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역사나 고고학 미술사에 관한 상식조차 지니지 못한 제게 흰 호랑이 벽화부터 한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리고 드는 의문이 지하인데 어떻게 이렇게 건조할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육이오 전쟁 때 뒷산에 방공호를 파고 들어갔던 경험이 있던 그로선 하룻밤만 지나도 습해지는 땅 속이 건조한 것이 의아했다. 바닥 중앙부를 관통해 있는 골도 눈에 띄였다. 농부의 괭이 끝에 걸린 배수로 벽돌이 고분 발견으로 이어졌다는 안내인의 설명을 듣는 순간 그는 수수께끼를 푼다.
천정을 포함해 전체 벽면과 뛰어난 벽화를 마른 상태로 유지시키고 있는 메커니즘이 바로 배수로 표면의 낮은 온도 덕분이라고 추리한 것이다. 선생은 배수로란 지하수를 뽑아내기 위한 물길이 아니라 고분 내의 수증기를 응축하는 대단히 과학적인 장치임을 깨닫게 된다. 고분내부 공기가 배수로를 따라 고분 안을 고르게 순환하며 증발하고 응축하는 사이 다른 벽면에 생길 수분 결로 현상을 방지했던 것이다.
과학이라는 이름 없이 축적된 경험을 통해 이루어진 놀라운 지혜! 이태녕 박사가 무려 천사백 년 전에 설계된 백제 고분에서 마주했던 충격은 \'옛 것은 진부한 것이고 무관심하다\'고 여겼던 삶의 방향을 백팔십도 뒤바꿔 놓은 계기가 된다.
그로부터 십 년 뒤 선생은 덕수궁에서 열린 석굴암 관련보고 회에 참석했다. 석굴암 내부에 샘물이 발견되었다고 발표하는 유네스코 쪽 학자의 강의를 들으며 그는 내심 반가웠다. 강의 뒤에 그는 손을 들고 발표를 했다.
물이 스민다는 발표에 동의하지 못하겠다, 지하수는 석굴암벽을 보다 완벽하고 선명하게 보존할 수 있도록 응축시키는 \'제습 효과\' 일 것이라는 가설을 설명했다. 그의 체계적인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 외국언 학자는 얼마 되지 않아 이집트 아스완댐의 유적지가 수몰되는데 유네스코에서 어떻게 도와야 할지를 그에게 문의해 왔고 문화재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위해 그는 미국으로 떠났다. 뉴욕대학에 머물면서 뉴욕 보존과학 센터의 강의를 들었다. 그러나 이처럼 문화유산에 대해 몰입하게 만든 덕수궁 보고회의 참석을 그는 하루에도 ‘골백번’후회한다.
\"모두들 아무 일 없는 듯 살고 있는데 이 땅에서 나 홀로 고민 떠 안고 사는 것 같습니다. 석굴암에 시멘트로 덧집 지어 물 빼내는 일이나 해인사에 골프장을 짓는 일이나 세상이 온통 수천 년 내려온 지혜를 망가뜨리는 일들뿐이지요. 그런 걸 차라리 몰랐던들 속편 할 일이 잖습니까? 보수하고 복원한다해서 반듯하게 보존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같이 망치고 있지요.”
어려서부터 잔병치레를 많이 했다.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늘 경전 연구하며 독경하는 어머니를 보고 자랐다. 집안의 제사도 절에서 모셨다. 그런 지중한 인연 공덕이 쌓여 있었기 때문일까. 해인사 장경각을 영원히 보존한다는 명목으로 박정희 시절, 시멘트 건물로 신장경각을 지을 때 이태녕 박사가 초빙된다. 그 때 처음 마주했던 장격각. 요즘 같지 않은 초라한 온도계를 들고 온·습도를 측정해 봤다. 새벽마다 재보니 놀랄 정도로 균일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언제 어느 때고 장경각 구석구석을 동시에 측정해 봤으면 하는 원을 세웠던 것도 이즈음이다. 1993년 문화재 위원회가 구성되어 고려대장경 보존을 위한 전문가들이 모였다. 이태녕 박사를 팀장으로 전국의 대장경 관련 전문가들이 작업을 시작했다. 방대한 작업이었다. 한쪽에선 대장경의 옻칠 완성을 시도하고, 한쪽에선 대장경의 나무·성분을 분석하고 또 다른 쪽에선 대장경의 곰팡이를 연구하는 등 칠백 년 세월 동안 이어져온 보존의 지혜를 오늘의 과학으로 재단하고 분석하는 방대한 작업이었다. \"조사 연구를 하면서 감탄을 거듭했습니다. 가령 경판을 일렬로 세워둔 건 그 사이로 바람이 통할 수 있는 굴뚝 역할을 하게 만든 것이죠. 경판과 경판 사이에 손을 대보면 바람이 솔솔 통하는 결 느낄 수 있어요. 동서 사간고의 경판도 절대 눕혀 두어선 안 됩니다. 장경각은 바닥에서 지붕까지 고스란히 숨쉬는 집입니다.”
산바람이 들어와 들고 날며 경판 하나 하나가 숨쉬게끔 이루어 주는 장경각, 그곳은 선조들의 불심이 숨쉬고 지혜가 숨쉬고 살아있는 집이라는 의미로 들린다.
선생은 특수 주문 설계해서 센서를 건물마다 32개를 단다. 기록된 온·습도는 컴퓨터에 입력되어 일주일 단위로 키스트로 전송이 되고 키스트에선 이태녕 박사의 연구실로 보내와 연구 작업을 했다. 햇살이 뜨겁거나 눈비 오거나 장경각의 온·습도가 균일한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이태녕 박사는 고려대장경의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했다. 말하자면 \'종합진단 기록\'의 과정이었다. 환자의 번호를 기록하고 병명을 정리해 두듯 고려대장경의 두께와 길이, 중량, 경판의 변형과 균열 등에 대한 데이터 베이스를 만든 것이다.
힘줄만이 앙상하게 솟아 있는 손으로 선생이 컴퓨터를 켜면 어느 경판이 장경각 어느 쪽에 배치되어 있는지 그 순서에서부터 정밀한 가로, 세로 길이 두께까지 화면에 떠오른다. 과거에 있었던 수리 사실의 유무에서부터 미생물의 번식에 의한 피해 여부까지 오늘날 한장 한장의 경판의 실태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앞으로의 보존을 위해서나 손상된 경판의 원인 규명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수적인 자료지요. 단순한 검색 조작만으로는 과거엔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무엇부터 보수할 것인지, 무엇을 미리 예방할 것인지, 한눈으로 파악이 가능한 일이지요. 예산문제로 일 년 만에 마무리된 게 안타깝습니다.\"
적당히 포기해도 좋으련만 그는 문화재 보존을 담당하는 당사자들의 몰이해 때문에 화를 내고 그 화를 홀로 새기느라 밤새 앓기도 한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또다시 그 감정 저버리고 찾아가 연구를 하고 보존을 위한 고민을 한다. 문화유산에 대한 선생의 애정은 어떤 것일까?
\"내가 주인입니다. 그래서 보존 담당자들이 귀찮아해도 가고 수모를 줘도 찾아가지요. 찾아가 조사하고 내 할일 찾아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올 수 있는 건 바로 그 책임의식 때문입니다.\"
그가 모두가 내친 일을 나몰라라 버려두지 않고 온전히 매달리며 살아가는 힘은 순전히 주인의식 때문이다. 모두가 지쳐 떠나가 버려도 내가 부여안고 살아가야 할 몫으로 여기는 외길 인생. 그건 한평생 창씨개명 하지 않고 양복 한번 몸에 대본 일 없는 선친의 꼬장꼬장한 성품조차 그대로 대물림된 듯하다.
얼마 전 이태녕 박사는 참으로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고려대장경연구소에서 집대성한 「고려대장경판 보존을 위한 학술 연구서」를 접한 미국의 한 교수로부터 \'참으로 의미있는 작업\'이란 평이 실린 작은 책자 한 권을 받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그 작업을 두고 꼼꼼히 밑줄 그어 읽어가며 작업을 독려하는 이웃이 없던 터에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날아온 작은 책 한권은 그에게 큰 힘을 실어 주었다.
\"고려대장경의 보존관리에 옛 분들은 참으로 꾸준하게 정성을 바쳐왔습니다. 경판의 정밀성과 균일성, 도량형법제의 발달까지 놀랄 만한 수준이지요. 한판 한판에 호국의 염원을 담고 불심의 결정판으로 탄생된 경판 앞에선 겸허해 집니다. 중요한 건 그런 옛 지혜까지 보존하는 자셉니다.\"
올해 일흔다섯의 노학자는 아침이면 아내가 싸주는 도시락을 들고서 서초동 집에서 동숭동 연구실로 출근한다. 고려대장경 관련 홈페이지를 만들 구상 속에 인터넷 그 정보의 바다에 푸욱 빠져 하루를 보내기도 하고, 경전의 데이터 베이스화 작업을 힘겹게 해내기도 한다. 일주일 동안 프린터기의 잉크를 두통씩 쓰다보니 이젠 손수약품으로 잉크를 만들어 쓰고, 길에서 이면지를 주워 들고와 재활용하기에도 익숙하다. 앞으로 완성될 홈페이지에는 고려대장경뿐 아니라 선친의 국학관련 자료도 실을 계획이다. 컴퓨터 세대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서 그들의 정신적 뿌리를 찾아주는 일이 그의 마지막 원력이다. 선조들의 뛰어난 지혜와 숨결을 세계화하는 일 말이다. 전철막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동숭동 언덕길을 뛰어내려올 만큼 선생은 온종일을 선조들의 뛰어난 지혜 담긴 고려대장경과 더불어 산다.
선생의 작업은 국학과 근본적으로 다른 길이었지만 문헌으로 다양한 자료를 찾아 읽고, 자연과학을 전공한 눈으로 우리 고유의 것을 새롭게 평가하고, 긴 세월 역사 속에 녹아든 농익은 신심을 되찾은 작업이란 점에서 어쩌면 선친과 한 길에서 만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연구실 대문 앞에 여전히 선친의 문패가 붙어 있는 까닭도 그런 이유이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