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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로서 내게 다가온 여린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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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양승만 1998년 05월 195호
사회가 등 돌리고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은 그들을 위하여 나의 이 낡은 몸과

나의 이 부족한 마음을 다 쏟아붓는 것이 부처님의 뜻이라는 깨우침이었습니다. 사실 내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지 않았다면, 그래서 지금도 건강하고 여러모로 아쉬울 것이 없다면,

내 어찌 그들을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그들의 처지를 연민과 사랑으로 안타까워할 수 있겠는가

하는 데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더불어 사는 그 이웃들을 돌아볼 겨를도,

생각도 없이 얼마나 교만하고 미욱한 채로 이 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겠는지요.

몸이 불편하히여 고통받고, 또 몸이 불편하다는 그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른바 장애인들이 그들입니다. 다만 육체적인 조건이 보통사람들과 다르다 하여 그들을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정신과 마음의 장애와 육체의 장애 가운데에서 어느 것이 더 치명적이고 더 슬픈 일인지를 생각한다면, 지금처럼, 사회가 육체적인 장애자를 \'장애인’ 이라고 함부로 못박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들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편협하다고, 또 제도나 배려들이 퍽 미흡하다고 흔히들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제도를 부분적으로 개선하고 방법을 보완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거나 나아질 수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장애인을 보통 사람들과 다른 존재로 여기면서 그들을 따로 떼어놓고 보려는 사회의 인식부터가 변화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나아질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을 못쓰는 장애의 몸으로 살아온 지도 어느덧 이십여 년이 되어 갑니다. 오랜 병구완에 지쳐 두 아들을 남겨놓은 채 아내도 떠나가 버리고 하루하루가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불심을 영혼의 등불로 삼고 시를 삶의 등불로 삼지 않았더라면 몸과 더불어 마음까지도 고통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나 자신보다도 더 힘들고 여린 다른 장애인들과의 만남이 없었더라면, 나는 나의 고통에만 사무쳐 초라하고 옹졸한 마음을 그러안고 살아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문득 그들 여리디 여린 장애인들이 이 고해의 현실에 몸을 나투신 보살로서 나에게 다가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십 년 전의 일입니다. 반신을 못 쓰게 된 지 십 년 만에 시집 두권을 한꺼번에 내놓게 되었습니다. 신문에서는 이 일을 \'반신불구의 어려움을 딛고 재기한 시인\' 이라고 기사화하였고, 그런 지 며칠 뒤에 어느 독자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전북 고창에 사는 전신마비의 장애 소녀 김옥진 양이 보낸 편지였습니다. 모량성에 올라갔다가 잘못하여 떨어져 전신마비가 된 뒤로 팔 년째 엎드려서만 살아 온 그이지만 그 신문기사를 보고서 용기를 얻고 희망을 갖게 되었다는 내용과 함께 자신의 시 한 편을 적어 왔습니다.
이 어리고 연약한 소녀가 보낸 편지를 읽는 순간 내 마음에는 새로운 힘이 솟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나다. 내 처지가 비록 힘들고 부족하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 어딘가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곧바로 김옥진 양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하여 격려와 위로의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그 뒤로 날마다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테이프로 불경을 들려주기도 하고 시를 낭송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옥진 양은 전신마비로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하였지만,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하도 간절하여서, 무려 삼 년 동안 고통을 참으며 연습한 끝에 간신히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고 그리하여 줄곧 시를 써 오고 있던 터였습니다. 그로부터 석 달 뒤에 옥진 양이 사는 산골마을을 찾아가 직접 만나 보기도 했습니다. 그 곳에서 공책 두권에 깨알 같은 글씨로 가득 쓴 그의 아름답고 울음섞인 시들을 보고 감동하여, 시집으로 묶어 출판되도록 주선하였습니다.
이 소식이 또 잡지와 방송 따위를 통하여 전해지자 이번에는 여기저기에서 장애인들이며 교도소 재소자들이 편지를 보내오는 것이었습니다. 시집을 내고 싶다, 치료비가 필요하다 등등의 도움의 손을 청하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나 역시 반신불수의 늙은 몸으로 가난하게 살아가는 처지로서 무슨 힘이 있어 그들의 아픔의 소리를 해결해 줄 수 있었겠습니까. 그저 그들 한사람 한사람을 위해 부처님께 간곡하게 기도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한 깨우침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회가 등돌리고 사림들로부터 버림받은 그들을 위하여 나의 이 낡은 몸과 나의 이 부족한 마음을 다 쏟아 붓는 것이 부처님의 뜻이라는 깨우침이었습니다. 사실 내가 뇌졸증으로 쓰러지지 않았다면. 그래서 지금도 건강하고 여러모로 아쉬울 것이 없다면, 내가 어찌 그들을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그들의 처지를 연민과 사랑으로 안타까워할 수 있겠는가 하는데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나와 더불어 사는 그 이웃들을 돌아볼 겨를도, 생각도 없이 얼마나 교만하고 미욱한 채로 살아가고 있었겠는지요.
그리하여 그 날부터 절뚝거리는 몸을 지팡이에 의지하고 부처님의 심부름꾼이 되어 만행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그 곳이 어디이든지 나에게 편지를 보내온 이들을 만나려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힘든 이들을 찾아 교도소도 가고, 몸이 불편한 이들을 찾아 두메 산골에도 가고, 나를 부르는 곳이면 힘써 다녔습니다. 가서는 그들의 아픈 이야기를 한없이 들어주고 또함께 불경을 읽고 함께 기도하곤 했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대자대비하심을 한 자력이나마 그들에게 알리려고 심부름을 할 뿐일진대, 민망스럽게도, ‘보살이 오셨다’ 고 환호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턱없이 부족하고 모자란 나 자신이건만 나의 이 모자란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환희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실 따지고 보면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그 가냘픈 이들이야말로 나에게는 보살의 현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몸과 마음이 불편한 그들이 호소해오는 고통과 신음소리를 들으러 가는 나의 만행은 부처님과의 지엄한 약속으로 계속이어질 것입니다. 이따금 찾아가 생활비에 보태라고 그저 얼마씩 쥐어주는 나의 손이 한없이 부끄럽고, 그들과 같이 눈물을 흘리며 그들의 아픔을 듣고 그냥 돌아올 뿐인 내 자신이 부끄럽고, 아무것도 줄 것이 없어 그저 못난 마음 한 조각 나누고 올 뿐이지만, 그들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고 그들의 눈물이 나의 눈물이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바로 나의 도반이요, 부처님 임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이제 일흔을 바라보는 노을 길, 지나 온 세월이 눈물의 강이 되어 흐릅니다. 어느 날에나 이 어기찬 인고의 세월이 끝이 날는지, 인욕바라밀로 극락과 지옥을 끌어안고,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부처님에 의지하여 고통받는 이웃들과 더불어 부처님의 크신 미소 찾아 살아갑니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