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해’불교서적 전시회를 점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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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3년 09월 139호
‘책을 펴자, 미래를 열자’
문민정부 이관이 이루어지기 전인 올해 1월 19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우리나라 출판문화를 책임지고 있는 각계 인사 2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93 책의 해’선포식이 열렸다. 선포식이 있기 전 작년 12월 16일에는 출판계, 도서관계, 인쇄계, 독서운동 단체 등 관련업계 모든 인사가 망라된‘책의 해 조직위원회(이하 책조위라 한다)’가 구성된 바 있다. 93 책의 해 선포식을 기점으로 책조위의 활동은 본격화된 셈이다.‘책을 펴자, 미래를 열자’는 표어를 내걸고 유례없는 대규모 행사를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펼쳐 독서의 생활화를 이끌자는 취지를 갖고 올해를 책의 해로 설정한 것이다. 이에 다라 올 상반기 동안에만도 다양한 행사를 규모있게 꾸렸다.‘삶의 질’을 풍요롭게 하는 도구로서‘책의 질’을 높히고 책을 통해 전체 문화의 신장을 꾀하고자 상당한 열정을 기울였다. 이러한 노력은 가시적인 성과와 함께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독서 문화를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전반적인 경기 위축으로 실질적인 판매량이 높게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으나, 금액으로 따지기 어려운 생활의 질이라는 가치 창출 면에서 훌륭한 성과를 보였다. 다가올 21세기는 지식과 정보의 힘이 곧 국력의 잣대가 되리라는 예상이 사회학자의 공통된 견해이다. 따라서 정보를 압축된 활자로 담은 책과 각종 출판 매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나 정보화 사회의 도래가 필연적으로 다가오고 있음에도 실상 국민 독서량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음은 대단히 우려된다. 더욱이 한국 불교계의 현실은 출판과 독서량 측면에서 사회 일반의 수차에 훨씬 미치지 못하거니와 다른 종교와 비교해도 질과 양에서 모두 뒤떨어지고 있다. 93 책의 해를 맞아 그 어느 때보다 교계 출판업 관계자들이 많은 열정을 쏟았던 올 상반기의 행사를 간단히 살펴보고, 불교 도서의 미래를 위한 의견을 종합하여 보기로 한다.
93 상반기 도서 전시회
책의 해 선포식과 함께 책의 해에 가장 큰 사업의 하나로 꼽히는 것은 93 서울도서 전이다.‘책 읽은 사람이 이끄는 사회’주제로 5월 7일부터 13일까지 7일 동안 KOEX에서 열린 서울도서전은 국내 1천 7백여 개 관련업체가 참가하여 333개 부스 30만 종의 도서를 전시한 최대 규모의 전시였으며 2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을 동원하는 실적을 올렸다. 서울도서전에는 불교출판협의회(회장/원택스님)도 참여하였다. 불출협 회원사 20여 개 출판사가 전시장 내의 3개 부스를 임대하여 경전류와 전문 서적 등을 전시 판매하였다. 주로 불교에 관심있는 일반인이, 그것도 삼사십대 층이 전시장을 찾았으며 판매된 책은 불교문학, 경전류, 입문서 순이었다. 매출액은 8백여 만 원이었다. 서울도서전이 열리지 전 대전에서는 5월 1일부터 9일까지 불교 도서 전시회가 있었다. 대전, 충남 지역에 불서를 보급하고 일반인에게 불교 출판물의 내용을 홍보하려는 취지를 갖고 마련된 이 전시회는 많은 호응을 얻어서 소기의 성과를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전통적으로 교계의 서적전시회는 5월에 집중되고 있다. 부처님 오신 날이 있는 달이라는 상징성을 전시회라는 행사와 접합시켜 홍보와 포교를 동시에 하기 위함이다. 5월 8일부터 20일 동안 불교방송국에서 열린 93 불교서적 전시회는 불출협의 연례 행사로서 불서읽기 운동과 불서 보급을 통한 포교의 장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더욱이 불교방송을 통해 행사를 안내함으로써 큰 효과를 얻었던 점이 돋보였다. 매출액이 2천 6백만 원이라는 실적만을 감안하더라도 불자들의 호응과 관심이 전례없이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같은 시기에 승가대 학인을 위한 불교 서적 전시회도 있었다. 5월 20일부터 22일까지 중앙승가대에서 열린 이 전시회는 승가대 축제 기간 중 문화 행사의 하나로 잡혔다. 그 밖에도 부처님 오신 날 행사의 일환으로 봉은사와 조계사에서 각각 불교도서 전시회가 개최되었다. 불교서적 총판업을 담당하고 있는 운주사와 명상이 각각 주관하여 일괄 공급한 불서 전시회는 특정 사찰의 신도를 대상으로 한 까닭에 주로 경전류와 입문서가 선호되었다. 연례 행사이기는 하지만 일종의 구색 갖추기 식 행사인 탓에 도서 전시회가 제몫을 다하지 못했다는 평을 받았다.
다양한 행사와 곁들어져야 책조위가 벌이는 도서 보급 사업은 형식적인 연례 행사로 만족하려는 불교계 서적 전시회 주최자에게 많은 경책을 주고 있다. 물론 정부 차원의 지원과 막대한 자료의 출연, 많은 전문 인력과 정보망의 확보 등에서 가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최적의 기획과 집행을 통해 미래를 향한 전망을 밝게 보여 나가야 한다는 지적은 면할 수 없겠다. 먼저 책을 만드는 사람과 책을 읽는 사람의 관계를 더욱 밀착시키고 문화 예술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도서의 올바른 이해를 심어 주려면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그 지방의 특색있는 문화 예술 축제 행사를 찾아 도서를 전시하고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을 만든 책조위의 기획은 본받아야 하겠다. 진해 군항제, 영월 단종제, 온양 문화제, 남원 춘향제, 강릉 단오제 등 지역 대중의 문화적 관심이 고조되는 기간 동안 직접 독자를 창출하는 행사를 벌였다. 곧 진시회의 주최자가 대중을 찾아가는 적극성을 갖고 스스로 문화 공간을 더욱 넓힘으로써 잠재된 독자층을 현재화하였다. 책조위의 사업은 홍보에서부터 고도의 전문 기술을 응용한 서비스까지 다양하게 기획 집행되고 있다. 다달이 책의 인물을 선정하는 사업은 교계에서도 쉽게 빌려 쓸 만한 기획인 것 같다. 단순히 전시회를 개최할 것이 아니라 공연을 곁들여서 문화적 충족감을 높히는 기획도 본받을 일이다. 또한‘책의 역사를 찾아가는 여행’은 불출협이 자기 사업으로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소재로 보인다.「삼국유사」의 현장을 더듬어 독자와 함께 민족사와 불교의 만남을 체험하게 해 줌으로써 불교 출판의 영양분을 축적시킬 수 있겠다. 올해 출판계의 화제를 모은 작가에는 단연 불교계 인사를 꼽을 수 있다. 석용산 스님이 대표격일 터인데‘작가와의 만남’을 적극 활용하여 서적 전시회에 버금가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상시적인 활동으로 불서 보급 운동을 교계의 서적전시회는 5월에 집중되어 있고 그 밖의 기간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연례행사로서의 형식적인 측면이 강할 뿐 서적전시회가 지닌 취지를 살리기 위한 내용은 빈약하다. 따라서 장기적인 계획, 적어도 일 년 단위의 계획이 입안되어 다채로운 행사와 접합되는 문화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불출협의 상무이사로서 불교 출판의 질을 높히는 데 큰 역할을 맡은 김형균 씨(불지사 대표)의 말을 빌리면, 의욕적인 기획이 마련되어도 예산이 태부족해서 집행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것이 불교계의 현실인 만큼 무엇보다 종단적 차원의 지원이 시급하다. 대장경의 국역사업 이후 최대의 역경이라 불리는 ‘선림고경총서’가 최근 완간되었다. 그러나 책을 만드는 불사 못지 않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독서문화의 창출도 중요하다. 그러려면 불교 출판사의 협의체인 불출협이 어려운 여건에서도 좀더 활발하게 사업을 전개해야만 한다. 불교출판영업인협의회의 회장인 이남재 씨는 불출협이 활발한 사업을 전개하려면 우선 불출협 내에 사무국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무국이 없는 탓에 실무 역량이 보존되지 못하고, 따라서 서적 전시회 등 도서 보급에 관한 연별 계획 수립이 어렵다는 점이다. 이씨는 올 상반기에 있었던 전시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취약점으로서 전시회 주최에 따른 실무진이 부족하여 섭외, 홍보, 체계적 전시, 진열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한 것을 꼽고 있다. 어차피 출판을 통한 문화적 성과가 현실로 나타나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일회적인 행사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렵다. 상시적인 행사계획과 아울러 불교 대중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행사를 전개해야겠다. 다른 종교권에는 매장이 일백 평이 넘는 중형 서점이 오십 군데 이상 있지만 불교계는 이러한 중형서점이 한 곳도 없다. 이렇게 열악한 도서 보급 현실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다가올 21세기의 불교가 어떠하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번 8월 27일부터는 책조위 주관으로 청주 등 지방 5개 도시를 순회하는 도서전시회가 열린다. 불출협 역시 이 도서 전시회에 함께 참여한다. 한국의 미래를 담당할 독서 인구가 불교 도서를 충분하게 접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불교 출판계의 주체 역량이 강화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불교인이 모두 ‘책을 펴서, 미래를 열어 가는’역사 발전의 동력이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