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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조기의 춤 - 꼬마요정 아사달의 세상구경(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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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 곽재구 1993년 09월 139호
난 조기야.
바닷속 여기저기를 홀로 떠돌아 다니며 살지. 굳이 역마살이 잡혔다고 말할 필요도 없어. 난 그냥 떠돌아 다니는 것이 좋으니까 말이야. 아침에 눈꼽을 떼자마자 공장에 출근할 일도 없고 자동차 할부금 때문에 부장이 꾸지람을 꾹 참아낼 필요도 없지. 전철을 몇 번씩 바꿔 타야 할 필요도 없고 금융실명제 때문에 속이 상할 염려 같은 건 더더욱 없지. 왜, 부자들은 주문한 스위스제 비밀 금고가 늦게 도착해서 속이 상하고, 가난뱅이들은 숨겨 놓은 변변한 푼돈조차 없어 속이 상하잖아! 그런 점에서 바닷속은 태평성대인 셈이지. 노동이며 자본이며 잉여가치와 같은 말은 우리에겐 도대체 필요없는 것들이지. 바다 자체가 우리에겐 거대한 아파트 단지며 밥이며 꿈이며 사랑이니까 말이야. 팔자가 쭉 늘어졌다구?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확실히 그렇지. 그러나 우리가 무턱대고 태평성대를 누리는 것은 아니야. 때가 되면 우리는 우리가 가장 불쌍히 여기는 존재 - 그것이 인간이라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를 위해서 기꺼이 우리의 몸을 바치지. 소신 공양을 하는 거야. 많은 조기들이 굴비가 되어 인간들이 식탁에 오르게 되지. 숯불이나 연탄불 혹은 가스불 위에서 몸을 지글지글 태우는 거야. 사설이 좀 길어졌어. 내가 여기 나타난 것은 바닷속이 태평성대라는 것, 많은 조기들이 소신 공양을 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것은 아니야. 내가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내 삶의 한 목표에 관한 것이지. 그걸 이루기 전에는 난 바다를 떠날 수 없어. 그 목표가 무엇이냐구? 글쎄, 그걸 설명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해. 지금부터 삼십 년 전이야. 난 한무리의 조기떼와 함께 서해바다를 거슬러 오르고 있었어. 오월 보름날 밤이었지. 그날은 내게 좀 특별한 날이었어. 난 그날 막 결혼식을 올린 참이었거든. 색시는 참 예뻤지. 모두가 부러워했어. 우린 곧장 신혼여행을 떠났지. 참 많은 조기떼들이 함께 여행을 떠났지. 그날 결혼식을 올린 조기들이 우리말고도 꽤 여러 쌍 되었어. 이미 오래 전에 결혼을 한 조기들은 모두 커다란 알주머니들을 가슴 한복판에 지니고 있었지. 사람들은 우리들의 이 여행을 산란여행이라고들 말하지. 무슨 오사리 굴비라나? 오월 보름 언저리에 잡은, 알이 꽉 찬 굴비들을 사람들이 일컫는 말이야. 어쨌든 좋아. 바닷속에 있는 동안 우리들은 행복했지. 새로 내 색시가 된 조기에 대해서 좀 이야기해 줄까. 그녀는 예술적 감각이 대단했어. 특히 수초들 사이에서 추는 춤은 일품이지. 아무리 뛰어난 수중 발레 선수들이라도 그녀만큼 아름다운 춤을 출 수는 없지.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지. 우리들 조기떼가 함께 노는 바닷속에 커다란 백상어 한 마리가 침입해 왔어. 우리들은 다들 황급히 도망을 쳤지. 그렇지만 아무래도 상어의 빠른 수영 솜씨를 당할 수는 없었어. 이제 얼마쯤의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 그런데 상어는 우리 조기떼를 공격하지 않았어. 해저로부터 바다 위로 거슬러 오르려던 상어는 대열에서 떨어진 조기 한 마리를 보았지. 누르스름한 살빛이 참 아름다운 조기였지. 그 조기는 지금 바로 자기 곁에 무서운 침입자가 나타난 것조차 모르고 수초와 수초 사이를 비집으며 헤엄을 치고 있었지. 그러다가 자기를 지켜보던 상어와 맞닥뜨리게 된 거야. 그 조기가 말했어.“아저씨는 참 크고 근사한 입을 지니고 있군요. 만일 아저씨가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난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춤을 출 수도 있을 거예요.”그 조기가 바로 내 색시가 된 조기야. 우리들이 서해의 칠산 앞바다를 지날 무렵이었지. 굉장한 큰 보름달이 달빛을 뿌리고 있는 밤이었어. 달빛들은 바다의 표피를 뚫고 바닷속 깊은 곳까지 내려왔어. 우리들은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은빛의 달빛들을 구경했지. 그 순간이었지 내 색시가 이야기했어“이상해요 달빛들이 춤을 추는 것 같아요. 잘 들어 봐요 어떤 음악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구요.”색시의 말은 틀림없었어. 아주 섬세하고 아름다운 어떤 소리 가락이 달빛들을 가만히 흔들고 있었어. 그것은 피리 소리였지. 우리들은 모두 조용히 그 가락을 들었지. 그 때 내 색시가 춤을 추기 시작했어. 아주 느리게 시작한 춤이 순식간에 빠른 속도로 변했지. 춤판은 금새 번져 갔어. 바닷속의 모든 조기떼들이 한꺼번에 춤을 추기 시작한 거야. 대단한 마력을 지닌 피리 소리였지. 난 너무 신나 내 색시에게 소리쳤어.“이건 우리들의 결혼을 축하해 주는 음악이야!”“맞아요. 모든 조기들의 신과 바다의 신이 우리의 결혼을 축하해 주는 거라구요.”나와 내 색시는 춤판 속으로 다시 빨려 들어갔어. 그리고는 끝이야. 내가 내 색시에게 한 마지막 말은“이 순간을 영원히 잊지 말고 해마다 꼭 이곳을 방문하자”는 것이었지. 춤이 끝나고 얼마 동안 우리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어.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바다에 새벽이 찾아오고 있었지 나는 물살에 떠밀려 내 몸이 바로 육지 곁의 바위 틈새에 들어 있는 것을 알았지. 아무리 찾아보아도 색시는 보이지 않았어. 보이는 것은 수십 수백 척의 고깃배였지. 참 많은 조기들이 그 고깃배에 잡혔으리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 어쩌면 내가 붙잡히지 않은 것은 바로 육지까지 떠밀려 온 때문인지도 모르지. 기억을 더듬어 보니까 난 육지의 한 큰 바위 위에서 들리는 피리 소리를 좇아 이곳까지 오게 되었던 것 같아. 이제 내 이야기는 대충 끝났어. 내 삶의 목표란 바로 그 피리 소리를 다시 한 번 듣는 일이야. 만일 그 피리 소리를 다시 듣게만 된다면. 어쩌면 잃어버린 내 색시를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르지. 아니 만나게 될 거야 나는 그걸 믿고 있지 해마다 오월 보름날이면 난 꼭 이곳 바다를 찾았지. 그것은 내 색시와의 약속이기도 했어. 그런데 그 뒤로는 한번도 피리 소리를 다시 들을 수는 없었지. 아마 삼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을 거야. 그렇지만 난 언젠가 꼭 다시 그 피리 소리가 들려오리라고 생각하지. 내가 기억을 더듬어 찾은 생각 중의 하나는 바로 그날 밤 피리 소리가 한 사람이 연주한 것이 아니라는 거야. 우리들을 처음 춤추게 한 소리와 우리들의 춤을 멎게 한 소리가 각각 달랐어. 맞았어. 두 사람이야. 각기 다른 두 사람이 연주를 했어. 두 사람은 아마도 우리처럼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는지도 몰라. 그렇다면 언젠가는 다시 자신들의 이야기를 피리로 연주하게 될 거라는 것이 내 생각이지. 오늘이 바로 그 밤이야. 하늘에서 쏟아지는 저 달빛 좀 봐. 그날도 이렇게 달빛이 휘영청 밝았지. 물살에 떨어진 달빛을 비집고 헤엄치는 기분은 누구도 잘 모르지. 참 그때는 굉장히 많은 조기떼가 몰려 왔었는데 오늘밤은 어떻게 혼자 왔는지 궁금하겠지. 그건 조기들의 수가 현저하게 줄어 들었기 때문이야. 사람들이 굴비를 만들기 위해서 아주 작은 조기들까지 다 잡아갔어. 살아남은 조기들도 이젠 굳이 칠산 바다에까지 올라와 알을 낳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지. 바닷물이 너무 더러워진 때문이야. 태평양 쪽의 바다와 칠산 쪽의 바다는 완전히 다르지. 이곳 바다에 들어오면 숨을 쉴 수가 없을 것만 같아. 그런데도 내가 이곳 바다에 찾아온 이유는 하나야. 피리 소리. 그 피리 소리를 듣기 위함이지. 그렇게 말을 마친 조기는 달빛 속을 서서히 헤엄쳐 가기 시작했습니다. 워낙 달빛이 밝은 탓에 찬찬히 보면 숨을 제대로 쉬기 힘든 바닷물조차 마치 투명한 보석의 표면처럼 빛났습니다. 크르르 크르 조기는 힘겹게 숨을 내쉬었습니다. 달빛에 드러난 조기의 모습을 사람으로 치면 백발 노인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마의 비늘이 벗겨져 살점이 드러나 있었으며 아가미에는 깊은 주름살이 새겨져 허연 수염을 세 개씩이나 양 입술에 매달고 있는 모습도 특이했지요. 크르륵 크륵. 거칠게 호흡을 하며 헤엄쳐 나가던 늙은 조기는 잠시 자신의 눈앞에 떨어진 달빛들의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순간 나는 자신의 눈을 몇 번 껌벅였습니다. 그 눈앞에 떨어진 달빛들은 분명 자신이 본 다른 때의 달빛들과 조금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달빛들이 움직이고 있어. 봐, 조금씩 조금씩...”늙은 조기의 눈동자는 점점 커졌습니다. 그 달빛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을 그는 분명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수십 년 동안 이 바다를 떠돌며 기다려 온 바로 그 순간이 이제 막 펼쳐지리라는 한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늙은 조기는 자신의 몸 어딘가에 자꾸만 신명의 싹이 돋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들려오는 피리소리! 분명 꿈속에서조차 잊을 수 없던 바로 그날의 피리 소리였습니다. 늙은 조기는 지금 자신의 눈과 귀를 충분히 의심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현실이었습니다. 그의 눈앞에서 달빛들이 파도처럼 툭툭 튀어오르며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피리 소리는 오히려 그 옛날의 가락보다 훨씬 섬세하고 정교했습니다.“아아, 그날이 드디어 왔어. 기다려 온 날이 드디어.”탄식과 함께 늙은 조기는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바다를 박차고 물 위로 튀어오를 때마다 그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바로 그때 늙은 조기는 자신의 눈을 한없이 크게 뜨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하나의 물살을 바라보았습니다. 달빛을 충분히 받은 그 물살의 한가운데에는 젊은 고기 한 마리가 피리 가락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늙은 조기는 그 젊은 고기가 예사 고기가 아니라는 것을 금새 알아차렸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 고기는 바로 자신의 옛 색시였습니다. 신기한 것은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자신의 색시는 옛날 모습 그대로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두 마리의 조기는 한데 엉켜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애절한 피리 가락이 그들의 춤 주위에서 물기둥처럼 솟아올랐다가 다시 내려앉곤 했습니다.“하나도 늙지 않았어. 옛날의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야.”늙은 조기의 눈자위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는 자신이 끌어 앉은 바다와, 달빛과 자신이 색시를 바라보았습니다. 이윽고 피리 가락이 멈추었습니다. 먼 곳에서 새벽이 빛을 틔우며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서서히 정신을 차린 늙은 조기는 비로소 자기 자신이 혼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품에 꼭 안겨 춤을 추던 색시 조기의 모습은 신기루처럼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늙은 조기는 이제야말로 자기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늙은 조기는 자신의 몸이 물살에 떠밀려 나가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그의 몸은 곧 어떤 바위 곁에 이르렀으며 그가 바위 틈새에 자신의 몸을 완전히 눕혔을 때 그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깊은 잠 속에 빠져들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