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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가장 영원한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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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이진욱 1993년 09월 139호
지난 우월 초순에 나는 산사에서 지내고 싶은 낭만적인 꿈이 드디어 이루어진다는 기쁨으로 해인사에 내려왔다. 고려대장경의 추진하는 대장경연구소 일을 도와야 하는 큰 일이 있지만, 그래도 산사에서 지낼 수 있게 된 것은 좋은 경험이자 기분 좋은 일이다. 서울 생활이 십여 년이 넘으니 거의 서울 사람이 되어 예전엔 배부른 소리라고 비웃던 시골에 대한 향수 어쩌구 하는 소리를 나도 하게 되었다. 그렇듯 서울의 생활은 짜여진 일상과 규격화된 삶의 모형으로 우리의 삶을 왜소하고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서울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해방감을 느끼게 하는지... 그렇지만 놀러온 게 아니라 일하러 온 것이니 너무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고 오히려 앞에 닥칠 절 생활의 엄격함을 지키는 일이 더욱 걱정거리였다. 종교적인 심성이 부족한 나에게 절 생활은 종교적인 심성을 기르고 불심을 돈독히 하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는 막연한 희망을 갖고서 서울을 떠났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종교의 필요성을 느낀 적이 별반 없던 것으로 기억된다. 고등학교 시절 사춘기 소녀의 알 수 없는 아련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절을 찾아가 법당에 촛불을 켜고 앉아 있었던 일이 내가 가장 종교적이 자세에 가까운 모습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는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불교 써클에 가입한 것이 다음으로 자발적인 종교 행동이었다. 그 뒤 대학 생활은 국내의 정치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나타나는 여러 사건들과 그 속에서 느끼는 절망감 그리고 탈출구를 찾으려는 애씀이 더욱 중요한 문제였고 불교는 정서적인 동질감은 있지만 불만에 찬 투정의 대상이었다. 그 무렵 나는 불교의 모습에 신심을 일으키기는커녕 답답해했다. 답답하게 느낀 불교에 대해서 더 이상의 미련이나 애정이 있을 리가 없었다. 눈앞에 닥친 일들을 해결해 나가고 살아가기 위해서 온통 정신을 팔아야만 했다. 어느 날인가 불교 단체에서 일하는 선배를 찾아간 것이 인연이 되어 다시 불교를 엄밀하게 말하자면 스님을 알게 되었다. 스님들은 엄격함 속에서도 자유분방한 사고와 지혜로움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스님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불교의 무한한 세계를 느낄 수 있었고 세상에 대한 막연한 불만과 정신적인 갈증을 불교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 때문인지 그 뒤로 나는 불교 일을 이 년 동안이나 하였다. 그러나 불교 일이 주는 일로서의 실망감과 불편함 때문에 종교 생활과 일은 분리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지금도 불교 일을 하고 있지만 단순히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역사적인 불사에 동참한다는 마음이 더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 팔만대장경이 봉안되어 있는 해인사에서의 생활은 상상했던 산사 생활과는 사뭇 다르다. 총림이라는 규모 때문인지 많은 스님들이 공부에 정진하고 있어 조용하고 한적한 느낌보다는 치열하다는 느낌이다. 거기에 수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재가자들을 위한 행사도 날마다 열린다. 아무리 교통이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깊은 산속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가고 모여서 공부하며 산다는 것이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사찰 가운데 하나라는 말이 실감나며 천이백 년 전에 사찰을 건립한 선조들의 지혜로움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연구소에는 국내외의 학자들과 언론인들의 방문이 잦다. 고려대장경의 전산화가 갖는 의미가 그 만큼 큰 탓도 있겠지만 무소유로 평생을 살아온 스님들이 맨손으로 거대한 불사를 시작한 그 용기와 삶의 방식이 더욱 찾아오고 싶고 얘기를 듣고 싶어하는 것이리라. 연구소에 찾아온 언론인들이나 외국학자들은 팔만대장경을 직접 보고 싶어한다. 특별한 배려가 주어지는 언론인과 외국의 귀한 학자 손님 덕에 나에게는 장경각을 여러 번 들어가는 행운이 왔다. 말로만 듣던 팔만대장경의 실체를 보는 순간 나는 묘한 경이로움에 휩싸였다. 팔만대장경을 만든 역사적 배경이나 그 주조 과정은 이야기로서도 충분히 감동적이고 우리 민족의 자랑이지만 직접 장경각 안을 들어간 느낌은 어떤 말로도 위대함과 자랑스러움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팔만 장이라는 엄청난 양의 목판본이 분류되어 천장부터 빼곡히 들어차 있는데, 장경각 안은 칠백 년이 된 건물과 팔백 년이 된 목판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거미줄 하나 벌레 한 마리 심지어 먼지조차 쌓여 있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장경각 건물 구조가 이러저러한 과학성을 지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그 불가사의함을 대신할 수 있을까. 아니면 장경판 제조 과정에서 삼 년 동안 바닷물에 담구었고, 자작나무로 만들었으며 옻칠을 어떻게 했다는 분석이 이 위대함을 설명할 수 있을까. 장경각을 둘러보고 나온 뒤 멀리서 팔만대장경을 보려고 온 많은 관광객들의 시덥지 않은 표정이 안타까웠다. 돌 하나 기와 한 장을 무의미하게 놓지 않는 선조들의 정성과 마음을 지금 어디에서 느끼게 한단 말인가. 모두가 장경각을 들여다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처럼 몸소 체험하게 할 수도 없고, 벽에 걸린 대장경에 대한 안내 글이 터무니없이 초라하게 보였다. 장주스님이 들려주신 옛날의 대장경 친견하는 의식은 지금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일 년에 두 번, 곧 춘분과 추분에 대장경 친견 의식이 있었는데, 그 법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일 주일 전에 해인사에서 일 주일 철야 용맹정진 기도를 마치고 낮과 밤의 시간이 똑같아질 때 백팔 계단을 올라와 해탈문을 지나 일만육천 권의 불경이 모셔 있는 장경각을 지나간다. 이런 법회는 춘분과 추분 때에 팔만대장경을 머리에 이고 부처님을 친견하면 성불한다는 말에서 유래되었단다. 모든 것은 항상함이 없다는 부처님 가르침을 새기면서 팔만대장경이야말로 불법의 영원함을 조여주는 증거가 아니겠는가라는 중생심을 내본다. 물질적 풍요와 육체적 안락을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세속 삶의 끝은 무엇인가. 그 삶의 지향점을 어디로 향해야 할 것인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지만 우리 중생의 마음을 영원히 이끌어 주고 의지케 하는 가르침의 세계가 있다는 것은, 아니 그 가르침을 접하여 알게 되었다는 사실은 모든 방황이 무지 때문이었음을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