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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유인이 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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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국효문 1993년 09월 139호
내 몸을 쪼개어 더 이상 나눌 수 없을 만큼 미세한 입자가 될 수도 있을까. 이제는 그처럼 쪼개고 또 쪼갤 수 있음이 믿어진다. 그렇다면 마음을 나누고 나눈다면 어디까지 나뉠 수 있을까.
그렇게 쪼개고 나누는 일은 몇 겁을 두고 윤회를 하면서까지 해야 할 일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 몸과 마음이 무한히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가르쳐 준 것은 바로 불교이다. 불교화의 만남, 이는 내 생애에서 가장 소중한 만남이다. 나 자신 스스로 불교 신자라고 말하지만 아직 그렇게 신자로서의 자격을 충분치 못하지만 불법의 진리를 조건 없이 믿고 따르는 것은 영원을 가는 길이지 싶다.
구경할 요량으로 절에 다니거나 불경을 감상적으로 해석하곤 했던 나는 어느 날 초발심의 환희심이 살포시 스며들었다. 어릴 적 할머니는 고운 올베 손수건에 백설기를 싸 가지고 와서 이 떡은 부처님 전에서 가져온 떡이니 먹어라하며 꼭 한 쪽씩 입에 넣어 주고는 나머지는 작은집 동생들에게 먹인다면서 가지고 갔다. 나는 그때 떡 한 쪽을 입에 넣으면서 할머님의 모습이 너무나도 경건하다고 느꼈다. 할머니의 신앙심 때문인지 나는 사람에게 의지하지 못하는 어려움은 부처님께 의지하면 된다는 마음을 어렴풋이 나마 지니고서 자라 왔다. 대학생이 된 뒤 문단에 데뷔하고도 마음의 행로를 설정하지 못해서 방황할 때는 희미하나마 불교가 나를 이런 질곡에서 구원해 주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가정에서 형제들의 죽음을 겪으면서 무상함을 느끼고, 시간의 덧없음에 많은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때 나는 ‘연등 앞에서’라는 시를 썼는데 연등으로 상징되는 불교가 정말 우리의 번뇌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과 몸부림을 썼던 것 같다.
나는 그 뒤로 오랜 시간을 계속 방황하다가 전남대에 교환 교수로 와 있던 뉴욕 주립대 종교학과의 박성배 교수를 만나 여러 얘기를 나누었다. 그 분은 나에게 불자가 될 수 있는 여러 선근과 여건, 인연에 대하여 얘기해 주었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송담스님과 청화스님과의 만남을 내가 불교인이 되는 길을 터 주었다. 나는 스님을 통해서 종교란 말이나 글로 깨치는 게 아니라 몸소 수행을 함으로써 깨닫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곧 초발심의 환희심에 젖게 된 나는 불경 하나 독송하지 못할뿐더러 절의 예의 범절조차 제대로 모르는 풋내기인 처지에,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덤벼들 듯이 스님과 온갖 문답을 나누면서 끓는 세포를 잘 가라앉히는 법을 조금씩 배웠다. 그리고 몇 생을 잘 닦아 부처의 모습에 다가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우러러 보이더니, 마침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는 복을 가졌구나 하는 확신이 들면서 아무 조건 없는 믿음으로 줄달음쳤다. 정말 보살이 된다는 것은 겉보기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아픔과 고행의 길이지만, 보살 행을 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하고 무한한 자유가 주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자기를 분해하고 해체해서 형체도 없는 허공 같은 경지까지 도달하므로 노력함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내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나와 똑 같이 생각한다면, 나와 네가 둘이 아니라는 말이 진심으로 믿어진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아무리 미미한 벌레조차도 그 생명이 소중함을 깨닫자 진정 몸과 마음이 자유로워짐을 느끼게 되었다. 그때부터 깊은 참선이 잘 안 될 때는 늘 관세음보살을 칭하는 칭명 염불을 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잡다한 번뇌가 잠시 요동치더라도 관세음보살을 염하면 흐트러진 참선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었다. 예전에는 모든 경전과 기도가 그리 유치하게 느껴졌으며 오히려 그것들이 왠지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그런 가운데 초발심의 환희심이 찾아온 것과 때를 같이 하여 집안에 겪기 힘든 어려움이 찾아 왔다. 현실적으로는 힘들고 억울하였지만, 인과법 특히 전생의 인과법을 알고부터는 그런 마음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나는 그때 큰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관세음보살 보문품」에 나오는 구절처럼 때에 따라서는 원수의 몸으로 또는 부처의 몸으로 나툰다는 부처님 말씀이 절절이 마음에 와 닿는 것을 느꼈다.
이 불쌍하고 철없는 나에게 그런 지독한 악마의 모습으로 나투면서 인과법을 가르치려고 했구나 하고 생각하니 환희의 눈물이 나왔다. 어쩌면 나를 낮출 수 있는 만큼 낮추려고 노력하면서 살지만 어쩌면 내가 불교에 입문한 것이 큰 바다의 한 방울 물을 바라보고 만져보고 느끼는 소리라는 것도 나는 안다. 그러나 어느 한 순간 순간 몸과 마음만이라도 진정 자유인이 되어가고 있다는 환희심을 가질 수 있어 이 길은 자유로 직통하는 길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끝없는 빛의 꽃길로’라는 초발심의 시를 쓴 적이 있는데 나의 소원 그대로 그 끝없는 빛의 꽃길을 이제 막 걸어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