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성 은빛으로 눈부신 도약의 정기를 발산하는 한빛탑이 미래를 대변이라도 하듯 우뚝 자리하고 있다. 이십세기를 마감하는 자긍심으로 도도해 보이기조차 한다.
대전 엑스포.
그곳은 어린 시절 도화지에 위에 그린 미래 세계를 그대로 모형화해 놓은 것과 같다.
마치 우주 도시를 닮은 작은 세계처럼.
한동안 우리의 관심은 엑스포 주변을 표류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을 기특하게 바라보고 내일을 미루어 짐작하며 서로의 기쁨을 고무시키면서 말이다.
우리가 살아서 이런 세계를 볼 수 있다니, 아니면 우리가 살아갈 공간이 바로 이런 것이겠거니 생각하면서 열심히 ‘관람’할 것이다.
이러한 곳에서 불교는 어떠한 빛깔로 이 은빛 도시를 포용할 수 있을까.
흔히 하는 말로 불교라는 정신 세계가 먹혀들까 하는 의구심과 걱정이 앞섰다.
어쩌면 사람들은 내면 세계의 안정과 풍요로움을 더더욱 갈구할지도 모른다.
엑스포 타운에 임시로 종교관이 설치되었다. 불교, 천주교, 기독교, 이슬람교관이 이층에 나란히 있다.
창문에 대나무 발을 걸어 놓고, 하얀 한지 위에 붓글씨로 ‘불교관’이라고 써서 걸어 놓았다.
페인트 냄새가 채 지워지지 않은 신도시 공간에서 대하는 먹물 향이 반갑다.
옅은 재색 법복의 서늘함으로 원행스님의 움직임이 사그락 거린다.
대전 자광사에서 주지 소임을 보고 있다.
요즘 스님은 동그랗고 작은 얼굴에 편안한 웃음을 잃지 않는다.
정신없이 바쁘다.
법당이 생각보다 훨씬 널찍하다.
목불 부처님을 모셨고 부처님 좌측에는 여래상을 표구하여 걸어 놓았다.
‘대전 세계박람회 성공 기원 백일기도 도량’이라는 현수막이 입구 쪽에 걸려 있다.
그리고 법당 한쪽 벽에는 컴퓨터 몇 대와 비디오가 설치되어 있다. 모두 불교 관계 목록과 화면을 관람하는 데 편리함을 주려는 배려에서 설치한 것이다.
“사실 출발이 많이 늦었습니다. 기독교와 천주교는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 놓고 엑스포를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불교는 기관으로부터 불교관 자리를 다른 종교에게 내주어야겠다는 독촉을 받은 뒤에 이곳에 들어와서 개관도 7월 27일에야 뒤늦게 했습니다. 다른 종교관은 이미 한 달 앞서 개관한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럽고 속상해요. 작은 공간이라도 활용하여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일에 더욱 마음을 기울여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불교인들은 너무 소극적이고 타성에 젖어 사는 듯싶어요.”
늘 걸림돌이 되는 불교인들의 침묵과 정체성을 지적하는 얘기이다.
백 일 가량의 행사에 유동 인구는 참으로 많을 것이다. 게다가 아파트 사 백 세대에 사는 사람들과 엑스포 종사자 8,000여명은 이곳에서 생활한다.
무심히 스치고 지나갈 수 있는 시점이 아니지 싶다.
그래서 스님은 이들이 백 일 동안만이라도 지속적으로 종교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힘써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조직의 성격은 내, 외국인에게 불교 문화를 소개하고 궁극적으로는 우리 불교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과학과 문명 이기의 발달이라는 가시적인 현상이 우리 인간 삶의 전부가 아님을 부처님의 말씀을 통해 알려야지요. 그렇게 해서 과학 세계 속에도 불교의 뿌리가 여전히 여여함을 인식토록 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 정신의 뿌리가 불교임은 분명 소중한 일이며 우리는 한국불교를 계승 발전시켜야 합니다.“
스님의 바람과 열의가 앞으로 남은 팔십여 일 동안 원행스님을 동분서주케 하는 원동력이 될 듯싶다.
이곳 불교관의 하루는 사분정근 기도로써 그득히 채워진다.
스물 여덟 개 각 종단에서 며칠씩 맡아서 기도를 한다.
물론 담당 스님은 그 기일 동안 이곳에 머문다.
무엇보다도 종단은 다르지만 부처님 법에 의지하며 수행하는 각 불제자들과 종단의 후원과 참여가 가슴 벅차다. 각 종단의 참여로 원행스님은 더욱 바쁘겠지만 스님이 이를 큰 기쁨으로 받아들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남은 행사 일정을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에서 더욱 그러했다.
“사실 불교 문화 행사 계획을 실현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일종의 경쟁입니다. 제공된 공연 장소가 없으니 공연할 만한 곳을 물색해야지요. 그리고 다른 종교와 지분 확보에 관한 타협도 해야 합니다. 행사는 각 종단에 균형 있게 배분되어야 하구요.”
이런 일들로 정신이 없다는 몸짓을 하며 스님은 웃는다.
끊임없이 전화벨이 울리고 찾아오는 이의 노크 소리가 잇달아 들린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입니다. 그 누군가가 제가 됐을 뿐이구요. 사람은 어느 장소, 어느 시기에나 해야 할 일이 반드시 있습니다. 나라에 큰 행사가 있는 이때에 스스로 할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 불교인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첨단과학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음을 알리는 이곳으로 모였다 흩어진다.
중생들이 있는 곳.
그 곳이 바로 부처님 말씀을 전파할 곳이라는 얘기리라.
오늘날 우리 중생의 삶이 과학 속에서 이루어짐을 부정할 수는 없다.
과학과 종교는 서로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는 듯하지만 생활의 터전인 과학과 삶을 넉넉하게 살찌우는 종교와의 긴밀성을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스님은 얘기한다.
“한 법도 받은 법 없으나 한 법도 버릴 것이 없다. 하나가 많은 것이고 많은 것이 곧 하나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불교적인지 아닌지 따지고 분별할 필요가 뭐 있겠어요. 대승적 불교로 포용해 통일하면 되지요.”
엑스포를 두고 불교적 입장을 따로 운운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인 듯하다.
당면한 과제마다 부처님의 원대함으로임하고 행하면 되리라.
스님은 개인적으로 화엄사상의 대승적 입장을 마음에 깊게 담고 있다.
월정사에서 출가하여 탄허스님에게 받은 가르침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한다.
스님이 수행하는 데 근본을 이루고 있는 사상이다.
“지역적 대립, 종파의 분규 등은 모두 분별 심에서 비롯합니다. 머지않아 통일이 되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한국불교가 남한 불교라는 의미에서는 아니 되지요. 적어도 통일 세계에 적합한 넉넉한 불교가 되어야 합니다. 이십세기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한 세기가 도래합니다. 요즈음은 어느 것이 진정 도덕적이고 인간적인지 답을 내릴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러워요. 이러한 시점에서 불교는 도덕적 흐름의 골을 터 유유히 흐르도록 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저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막힘 없는 대승사상을 화엄사상에서 찾고 있습니다.”
시대에 맞는 불교여야 함을 의미하는 얘기리라.
이십일세기 첨단과학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삶을 더욱 기름지게 하고 우리의 정신문화를 보존하려면 우리 모두가 하나되어 불법을 발전시켜 나가야 함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우리 불자들은, 새롭게 변신하려는 각오와 변화에 이끌리기보다는 변화를 이끄는 능동적인 자세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9월 4일에 전통음식제를 열고, 9월 5일에는 ‘부처님과 10대 제자 구현’이라는 가장행렬을 할 예정이다.
남부 주차장에서 한빛탑까지 도보로 행진하며 불교를 알리려는 뜻에서 준비된 행사이다. 그리고 11일은 천태종 주최로 문화제를 개최하기로 하였단다. 스님은 11월 7일까지 계획한 행사 열람 표를 펴서 열심히 설명한다. 행사를 문제없이 진행시키고 원행스님은 앞으로도 보이지 않는 손길이 되느라 밤잠을 설쳐야 하리라. 그래도 스님은 기쁘기만 한지 번거로운 기색 하나 없이 하나하나 꼼꼼히 짚어 가며 설명한다.
불교관 입구에는 유명 사찰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빽빽이 진열되어 있다. 웅대한 산과 어우러져 안긴 듯 고즈넉한 사찰의 낮은 기와지붕들이 이마를 맞대고 엄숙하게 잦아들어 있다.
원행스님은 여러 사찰들과 팀을 구성해 고찰을 순례하는 코스도 만들어 놓았다.
사찰은 엑스포의 건조한 화려함에서 벗어나 찾아오는 이들에게 많은 것을 줄 것이다. 무엇이라고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울렁거림 같은 것을.
엑스포가 끝나면 한가로워지겠다는 질문에 스님은 “한가한 게 뭔데요? 한가함이 우리에게 어울리는 일입니까. 제가 이 일을 하리라고 예측하지 못했듯이 이 일이 끝나면 제가해야 할 일이 분명히 또 있을 겁니다. 평생 그래왔거든요.”
이 일이 끝나도 스님은 탄허스님 문화재단 일로 바쁠 것이다.
차원 높은 화엄경 원전 강독과 학술 세미나를 통해 불교 교학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한다.
어떠한 일도 그 누구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없다며 스님은 있는 자리에서 필요한 모든 일을 하겠다는 결연함을 보인다.
모두 엑스포 관람이 바쁜지 이곳 타운 주변은 조용하기만 하다.
스님이 뜻대로 법당에는 몇몇 엑스포 직원이 가부좌를 틀어 앉아 부처님을 마주하고 있다.
그 분들은 쉬어 가는 것이다. 아니 충전을 위해 자신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리라.
앞사람과 뒷사람에게 당기고 말리느라 버거워진 어제를 잠시 정리하고 오늘을 다짐하는 불자들이다. 이것이 우리의 일상적인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스님은 뒷 손님에게 밀리듯 나서는 나에게 미안한지 어쩔줄 몰라 한다. 그래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미 스님의 바쁜 하루가 시작되었으니.
엑스포 국제관을 보면서 역시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은 마음과 몸짓이라는 생각을 한다. 자기 나라를 작은 공간을 통해 최대의 효과로 알리려는 뜻으로 세워진 국제관.
이른바 잘 사는 나라의 전시관은 볼 맛이 안 난다. 기계 소품과 설명조의 인쇄와 활자가 그들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읽지 않고는 그 나라를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잘 사는 나라 축에서 조금 비켜나 있는 나라의 전시관의 전시관은 민속공예품과 그들의 역사를 짐작하게 하는 물건들을 그들다운 방법으로 전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느낌이라는 미묘한 흐름으로 그 나라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
흥미로 발걸음을 멈추고 호기심과 애정으로 그 사람들을 바라보게 한다. 우리들은 다른 문화를 가졌지만 같은 인간임을 확인한다. “시냇물과 시냇물이 흐르고 흘러 능히 머물지 않아 마침내 큰 파도를 이룬다.” 원행스님이 소중히 여기는 얘기다.
결국 깨끗함도 더러움도 짠 한 맛이 된다는 얘기다. 바닷물처럼 되어야 한단다.
엑스포가 무리 없이 치러지길 바라며 긴 행렬 끝에 한 사람으로 줄을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