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속에서 떠오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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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윤구병
1993년 09월 139호
며칠 전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이었습니다. 연수회를 마치고 하루 더 머물러 가까운 교육 동지끼리 회포를 풀다가 그만 폭풍 속에 갇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열차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어떻게 해서든지 이 폭풍을 뚫고 정거장까지 가야 했습니다. 마침 선생님 한 분이 소형 승용차를 가지고 와서 우리는 그 차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우리는 심한 비바람을 무릅쓰고 길을 나섰습니다. 우리 차가 똑바로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차가 커브를 꺾어서 우리가 탄 차 쪽으로 왔습니다. 저는 차가 없어서 교통 규칙을 잘 모르지만 직진하는 차에 우선권이 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어 선생님에게 저 차 지금 교통질서를 위반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빵, 빵 하는 클랙슨을 몇 번 울렸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우리 쪽에서 양보할 생각으로 차를 뒤로 뺐는데 조심하느라고 했지만 빗 길이 워낙 미끄러워서 그만 뒤를 바짝 따라오던 택시에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가벼운 접촉사고여서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았지만 저는 속으로 운전석에 앉은 선생님을 욕했습니다. 어거지를 쓰는 사람에게 고분고분 양보를 하니깐 이런 일을 당한다고요. 겨우겨우 차 시간에 맞추었기에 망정이지 만일에 그 일로 우리가 차를 놓쳤더라면 제 마음속의 원망은 더 컸을 것입니다.
워낙 비바람이 심한 데다가 우리 가운데 우산을 가진 사람이 저와 또 한 분 이렇게 두 사람뿐이었기 때문에 여섯 살 박이와 국민학교 사 학년 짜리 아이를 비를 맞지 않게 차에 태우려면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아이를 안고 뛰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차가 들어왔습니다. 저는 여섯 살 박이 아이를 안아 열차 맨 뒤칸의 승강대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또 국민학교 사 학년짜리를 뒤이어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문이 안으로 잠겨 있어서 한참 열어보려고 낑낑대다가 안을 들여다보니 화물칸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황당해서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여섯 살바기 아이를 냉큼 옆구리에 끼고 승강대를 총알같이 뛰어내려 앞 칸으로 달려 습니다. 앞 칸으로 거의 다 와서야 내 옆구리에 안긴 아이가 자꾸 내려 달라고 하는 말이 귀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내려다보았더니 여섯 살배기가 아니고 국민학교에 다니는 아이였습니다. 다행히 차가 오래 멎어 있었으니 망정이지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이런 일을 실제로 겪고 나니까 전쟁통에 그 많은 이산가족이 생기는 것이 무리가 아니라고 여겨졌습니다. 너무나 흔히 일어나는 일이어서 다들 무심히 지나치는 일이 유난하게 제 마음에 아로새겨져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까요?
기차에서 전철로 갈아탈 때 느꼈던제 마음의 움직임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아이를 제대로 돌보아야지. 이렇게 마음먹고 폭풍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는 일에 골몰했습니다. 우산을 아이의 키에 맞추지 않으면 아이의 몸은 순식간에 비바람에 흠뻑 젖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될 게 틀림없었습니다. 저는 제 몸을 바짝 낮추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짧고 앙증맞은 걸음걸이를 오리걸음으로 따라갔습니다. 제 몸의 반쪽은 폭풍 속에 드러나 빗물이 살 위로 흘러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아장아장, 뒤뚱뒤뚱, 제 발자국과 아이의 발자국이 눈 위에 찍히듯이 흔적을 남겼으면 참 볼만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아이의 발자국에 맞추어 몸을 낮추고 걷고 있으려니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만일에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의무감에서 우산을 씌어 줄 수밖에 없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모르긴 몰라도 오리걸음까지 하지는 않았을 거야. 더구나 내 몸의 절반을 태풍 속에 맡긴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겠지. 편히 서서 우산을 내 몸에 맞추어 들고 아이가 비바람에 젖는 것은 전혀 눈치도 못 챘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아이가 끌리듯이 뒤따라오는 것을 손목을 통해서 느끼고 무척 짜증스러워 했을 거야.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그 아이의 표정은 어떠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온몸에 오한이 일었습니다. 몸이 물에 젖어서 생기는 오한같이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작은 내 이웃들에게 보였단 모습이 바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온몸을 꼿꼿이 곧추세우고, 우산은 늘 내 몸 크기에 맞추어들고, 작은 이웃의 야윈 손이 내 손목에 잡혀 있다는 느낌으로 한껏 자기만족을 하며 억지로 손을 잡고 끌고.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못 따라온다고 야단을 치고.... 이런 식으로 살아온 것이나 아닐까?
벼가 익어 갈수록 점점 더 자기를 키워준 뿌리를 향하여 깊숙이 고개를 낮추듯이 민중들이 피땀 흘려 마련해 준 잠자리와 옷가지와 음식으로 등 따시고 배부르게 사는 내가 한껏 몸을 낮추어 민중들에게 우산을 받쳐 주어야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을 텐데. 그때마다 그러면 내 몸이 젖는다는 이기적인 생각 때문에 한번도 밑을 내려다볼 생각을 하지 않은 빳빳한 벼 모가지로 살아 온 것이나 아닐까? 벼 모가지를 빳빳하게 세워 속에 알맹이가 차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래도 보통 사람보다는 훨씬 더 양심적으로 살아 왔고, 민중의 애환에 동참하고자 노력해 왔다. 그리고 의식적으로는 한번도 민중의 대의를 배반한 일이 없었다. 나 자신만 이렇게 생각할 뿐 아니라 내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증언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큰소리로 이렇게 변명을 늘어놓아도 마음이 개운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침울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그 모든 ‘올바른’ 일들을 마땅히 해야 하는 것으로만 여겨 했을 뿐이지, 누군가를 사랑했기 때문에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랑이 없이 하는 일은 곁으로 드러나는 성과가 아무리 위대해 보이더라도 결국 쭉정이만 남는 듯 합니다.
이제까지 살아왔던 그 많은 세월이 빈 쭉정이로 폭풍 속에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누군가가 폭풍 속에서 나에게 이렇게 속삭이고 있는 듯했습니다. “사랑해라, 사랑해라. 끊임없이 사랑해라. 그것이 빗나간 사랑이라 해도 좋고,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랑이라고 해도 좋다. 아예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올곧은 삶보다는 죄에 가득 찬 사랑이라 하더라도 사랑하면서 엇나가는 삶을 사는 것이 훨씬 다 사람답게 사는 삶이다.”
아마도 비바람 속에 들려 온 듯싶은 그 속삭임은 위험한 유혹의 목소리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올바르지 못한 사랑이 빚어내는 비극이 얼마나 끔찍한지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철부지 아이들밖에 없을 것입니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위대한 문학 작품의 마르지 않는 창조의 원천은 바로 이 비극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해서 아들이자 형제, 딸이자 누이들을 낳은 오디푸스의 비극은 대표적인 것이라 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렇다고는 해도 사랑도, 그에 따르는 비극도 없는 세상보다는 온통 비극의 수렁을 이루더라도 우리가 사랑이 있는 세상을 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 보는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랑은 그 안에 창조의 원리이자 생명의 원천을 숨겨 담고 있습니다. 하다 못해 길에 밟히는 이름 없는 잡초도 사랑의 힘으로 뿌리를 내리고 사랑의 힘으로 새순을 내밀어 사랑으로 대지를 덮고 있는 흙과 만나고, 사랑으로 산과 들을 가로지르는 바람과 만나고, 사랑으로 허공을 달려 온 햇살과 만나지 못한다면 단 하루도 살아 남지 못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