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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판經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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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의 얼과 멋 - 편집실 1993년 09월 139호
강원 사 년 동안은 교학을 수련하는 귀중한 시간이기도 하지만 평생 중노릇하는 법을 익히는 시절이다. 이삼십 명이 한 반이 되어 지내는 사년 세월은 일도 많고 추억도 많다. 이 가운데 화엄반 시절 경전을 인 경하는 일은 유독 진한 기억으로 남는다.
반장 스님이 조장이 되어 화주h인경h제작 등의 소임을 짜고 질 좋은 한지를 구하고 인경에 필요한 도구를 갖추면 일은 시작된다. 오랜만에 장경각의 문을 열고 인경에 필요한 경전의 경판을 서가에서 내리는 작업은 가벼운 흥분마저 이다. 경판에 묻은 작은 먼지나 먹을 씻어 내고 잘 갈 아 눅눅한 먹물을 경판에 바르고 한지를 댄 다음 솜방망이로 두드려 한 장, 한 장 인쇄하는 작업은 불전에 예경하는 엄숙함에 다르지 않다, 여러 날 도안 인쇄한 종이를 관음전 지대 방으로 옮겨와 대중들이 함께 마무리 손질을 한다. 따뜻한 겨울 햇살이라도 내리는 날은 마루에 가지고 나와 한담을 주고받으며 경전을 묶는 일은 마냥 즐겁다.
이렇게 경전 인쇄의 중요한 매체인 경판은 중국에서 제작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각 종파의 소속 도량에서 자기종지를 천명한 경전을 제작하기 위해 만든 경판이 송나라 태조 때 초판대장경이 만들어지면서 인쇄 기능을 갖춘 경판의 완성을 보게 된다.
무엇보다 고려 때 만들어진 팔만대장경은 세계적인 대장경 문화의 정수를 꼽는 귀중한 자산이다. 경판을 만들던 당시의 기록을 보면 판각 작업은 눈물겨운 고행 정진에 다름 아니다.
남해안 지방의 자작나무, 후박나무를 삼 년 동안 바닷물에 담그고 다시 조각 내어 소금물에 삶아 그늘에 말리고, 다시 대패로 곱게 다듬어 경문을 새겼다. 글자 한 자를 새기고 불전에 삼배를 올리는 지극 정성을 다했다. 판에 옷 칠을 하고 양쪽에 마구리를 치면 경판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십이 년 동안 81,340장의 대장경을 완성했다.
스님네의 방에서 누렇게 빛 바래 켜켜이 쌓여 있는 경전을 볼 수 있다. 얄팍하고 화려한 요즘 책들 소에서 점잖고 무게 있게 놓여 있는 경전은 있는 그대로 깊은 수행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고서도 이제는 엄청나게 쏟아지는 책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그 존재가 자꾸 잊혀져 가고 있다.
새로운 것은 좋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