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한국 불교 밀교적 요소 많다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해인리포트 - 편집실 1986년 12월 58호
우리나라불교는 겉으로 보아 모두 18개 종파로 구분되어 있지만 저마다 종파로서의 뚜렷한 특색을 지니고 있지는 못하다. 그렇기보다는 차라리 밀교적 요소에서 그 특성을 찾을수 있다는 지적이 최근에 대두되고 있다. 곧, 동국대학교가 개교 80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10월 31일과 11월 1일의 이틀에 걸쳐 ‘한국불교사상학술회의’를 개최하면서 ‘밀교사상의 한국적 전개’를 주제로 다루었는데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한국 불교의 구석구석에 밀교적인 요소가배어 있음을 내세웠다.
이 자리에서 논문을 발표하고 익진(신라 밀교의 사상내용과 전개 양상), 정태혁(고려조각종도량의 밀교적 성격), 채인환(조선시대의 밀교시장),장충식(한국불교미술의 밀교적 요소),이 재창(밀교사상의 현대적 의의와 전개) 교수들은 밀교가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를 소상히 밝히고 있다. 이들의 주장을 빌어 한국에서의 밀교 사상의 전개와 그 영향에 대해서 시대 별로 더듬어 보기로 한다.
신라의 밀교는 업설(業說)→화엄→선 (禪)으로 이어지는 불교의 교리 사상과 더불어 이에 상응하는 밀교 형태를 적절히 파생시켜 이루어진 것이다. 일연의 ‘삼국유사’ 제6편 신주편 에는 신주(神呪)라는 제목에서 밀본(密本,선덕왕대), 명랑(明期,문무왕대), 혜통(惠通,효소왕대)의 세 사람이 행한 치병(治炳)이나 재앙에 관계된 주술 불교가 소개되어 있다. 신라초기에 나타난 밀교의 흐름이 구체적인 결실을 보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세 사람의 힘이었다.
밀본은 병을 고치는 주술에 약사경 (藥飼經, 灌0經) 독송을 사용하였던 이름난 밀교승 이다. 약사경에서는 무수한 천왕, 신왕 용왕 따위의 이름을 부르거나 써 붙이면 악신 마귀 독룡들이 끼치는 괴로움으로부터 수호 받을 수 있다는 주술 신앙에 관하여 설하고 있다. 밀본의 밀교적 성격은 명랑에게로 이어져 호국적인 성격으로 전환된다. 그리하여 금광명경의 사천왕 호국사상. 대방광 십륜경의 십륜 호국사상 같은 것이 생활 속에 깊숙히 스며들게 된다. 이로써 대승불교의 특성을 어느 정도 갖추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으나 ‘아함’의 교리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한 채로 초기의 ‘업설’ 중심의 전래 불교에 머무르고 만다.
그 다음을 잇는 혜통의 밀교는, 밀본과 명랑에 의한 신라 초기의 밀교 계통-잡밀(雜密) -과는 달리, 밀교적 양주(聊兄)와 단법(瓚法)만을 순밀(純密)의 교리 구조로서 취합하였다.
신라의 밀교 전래기는 34대 효성왕 때부터 40대 애장왕때에 걸친 시기로서, 중대교학(中代敎學)을 전적으혹 부정하는 남종선(南宗輝)이 들어오기 시작한 41대 현덕왕이전 이라 할수 있다. 그 뒤로 혜통의 밀교를 계승한 순밀 계통은 고려 후기의 문헌에서 나타나는 총지종(總持宗)을 성립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의 불교는 호국불교로서의 밀교의 성격을 지닌다. 태조 21년에 사천(西天)의 승려 홍범 (弘梵)이 갈마단경 (編摩瓚經)을 가지고 고려로 와서 널리 퍼뜨랬는데 이 경은 수계나참회를 할때를 위한 밀교의 의식 작법을 설한 경전이다. 이리하여 밀교의 성격을 띤 호국불교를 국시로 삼은 태조 왕건의 뜻을 이어받은 고려는 대대로 나랏일 전반을 그러한 불법에 따라 처리하였고, 그 햄은 여러 도량의 설치에서 잘 드러나 있다.
고려 오백년 동안에 이루어진 도량의 개설은 모두 l,022회 68종에 이른다. 연등회, 소재(消災) 도량, 인왕(仁王) 도량, 팔관회 들과 같은 갖가지 도량은 대체로 밀교의 성격이 짙고 한편으로는 토속 신앙과도 서로 통하고 있다. 그 도량들을 성격 별로 분류하자면 식재법(息災法), 증익법(增益法), 경애볍(경援法)으로 나눌수 있다.
식재법은 죄와 장(障)을 없앰으로써 재해를 막고 모든 번뇌로부터 해탈한다는 호마법 (護摩法)을 말한다. 호마법을 행할때에는 흰 옷을 입고 길상좌(吉詳坐)한다. 그리고 본존도 흰 빛깔로 칠하는데, 제석(帝釋) 도량이 그 대표적인 보기이다. 그 다음, 증익법은 풍요 및 연명 (延命)을 상징하는것으로서, 후손이나 재산의 번창을 위한 도량이다. 본존에게 향, 꽃, 과질,
음식 그리고 등을 밝히는 것으로 공양을 올리는데, 빛깔은 노란빛을 띠게 한다. 닥성화엄법회(落成華嚴法會), 연등회, 법화(法華) 도량들이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경애법은 모든 사람이 서로에게서 흠모와 기쁨을 느끼지는 것으로, 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신장 곧 천룡팔부(天龍八部}들올 세우고, 늘 불-보살을 마음에 두어 선행을 닦음으로써 부처를 비롯한 제
천(默)들의 보살핌을 받으려는 방법이다. 무차대회(觸廳大會), 팔관회 같은 것이 이것에 해당된다.
억불정책으로 말미암아 불교가 혹심한 탄압을 받던 조선시대에 이르러 밀교는 한층더 발전하게 된다. 밀교교학의 한 핵심을 이루는 법체관(法體觀)에서는, 그 무렵에 중국과 일본에서 보편화되어 있던 아자체대셜(何字體大說)이나 육자체대셜(六字體大說)과 같은 학설을 따르지 않고, 철대만법설(七大萬法說)과 같은 새로운 학설을 정립하여 조선시대 밀교의 독창성을 대변해 주고 있다. 이 무렵의 밀교는, 정토(渟土)사상과 함께, 여러 불교 의식 속에서 진언(眞言) 밀교의 명맥을 얼마쯤 변형된 형태로 유지한다. 그런 까닭에 독특한 비밀의괘(秘護嚴괘)는 찾을 수 없게 되었으나, 여러가지의 밀교적 의식행사가 성행하고 의식문집의 간행이 꾸준히 이루어진다. 그러면서 주로 세속적인 성취에 초점을 둔 주술적이고 영험스러운 일을 기대하는 신앙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전통적인 밀교의 교리와 시장은 없어지지 않고 어느 정도 발전을 이루게 되는데, 칠천만법설(七天萬法說)의 출현이 그것을 반증해 준다. 이 법은 선조 3년(1569년)에 소백산 풍기의 희방사에서 간행된 것으로, 법계(法界)의 본체를 지-수-화-풍-공-견-식 (地水火風空見識)의 일곱개로 본 화엄경의 견해를 수용하여 밀교의 삼대 요소인 체대
(體大), 상대(相大l 용대(用大) 가운데 체대에 관하여 밝혀‘놓았다.
한편으로 우리의 불교 미술은 그 발생의 근원을 연기설화에서 찾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그 내면에는 밀교적인 요소가 짙게 깔려 있다. 불탑만 보아도 불탑 자체가 밀단(密壞)의 형식을 지니고 있다. 곧, 불탑내부에 봉안된 사라상염(舍利莊嚴)이 바로 밀교적 성격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으며, 석탑의 외부로 표출된 여러 부조상들은 그러한 성격이 더욱 뚜렷
하다 보기를 들어, 불굴사 석가탑 탑구(搭區)에 설치된 팔방금강혜(八方金剛經)는 밀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으니, 이것은 성(뿔)과 속(洛)의 경계이며 동시에 불(佛)세계에 대한 상징적 장업을 밀교의 행법(行法) 속에서 나타낸 대표적 보기라 하겠다.
신라대의 불교미술은 8세기 중엽을 정점으로 하여 정체되면서 점차 사양길로 접어드는데, 말엽에 가서는 선종이 흥하면서 화엄의 교리가 밀교 미술에 수용되는 형식을 취한다. 토함산 석굴암의 조각상을 보면 그 전방후원(前方後圓)의 특수한 형식이 철저한 계획 아래 주도면밀한 교래의 이해를 선행 조건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본존 뒤 벽면의 중심에 있는 십일면 관음상은, 석굴암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핵심으로, 밀교 조각을 대변해 주는 것이다. 8세기 조각의 정점을 이루는 이 석굴함의 조각상들은 밀교의 사상을 조형화 함에 있어 새로운 본보기를 보여 준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밀교가 이십세기에 와서 새삼스러이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원전의 대량발굴에 이어 그것을 교정, 출판한데에 기인한다. 그리하여 그 전에는 그저 단편적 것만 연구되어 오던 밀교가 마침내 그 전모를 드러내기 시작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원시 불교 지상주의 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대승불교가 갖는 종교적이고 의례적이며 신화적인 면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
어지게 되었다. 다시 말해, 밀교가 종교인 실천 철학으로서 이해되기 시작한 것 이대 이러한 움직임은 특히 2차대전이 끝난 뒤에 두드러졌으니 그때부터 세계적으로 밀교에 대한 인식이 광범위하게 변모하게 되었고 따라서 종래에 단순히 소재(消災), 기복의 주술적인 신앙으로 신비시해거나 경시하던 태도를 버리고 밀교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기에 이르른것 이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이 보편화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밀교 운동은 인도에서 4세기 무렵에 일어나 7세기 초에 우리나라에 전래되었고,그 뒤로 꽤 많은 밀교승이 배출되는 가운데, 특히 만다라(曼茶羅) 사상을 국토 수호를 위한 신앙으로 응용함로써 한국적인 성격을 갖추게 된다. 곧 만다라를 우리국토 배열시켜 국토를 하나의 생명체로 인식 였는데, 이것은 우리 강산에 대한사랑 불 신앙으로 고취시킨 것이라 하겠다를 잘드러내 보이는 보기로 신라 말 도선(道詵)의 산천비보(山川裨補) 사상에 의한 사탑 건립을 들 수 있다. 고려시대에 와서는 기도 도량을 설치하는 등 현실적으로 이땅에 부처님의 자비가 내리도록 하는 의례적인 것들이 흥하였다. 이것은 밀교의 수행 형태인 실천철학과상징철학을 충분히 응용한 한국 밀교의 특정이다.
오늘날 우리나라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이라 할수 있는 조계종만 해도 사상적으로는 선을 표방하면서 그 의식은 밀교적인 성격을 갖는다. 다만 신앙적으로는 정토적 성격이 강하다. 조계종 밖에 태고종이나 천태종, 진각종, 법회종, 정토종 들과 같은 군소 종단들도, 비록 본존과 교의를 달리하는 종단도 있지만, 종지종통(宗旨宗統}을 비롯하여 사상이며 의식, 신앙에서 조계종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역사를 되돌아보아도 한국 불교는 뚜렷한 종파적 특색 갖지 못했다. ’5교9산이니 저폼폐합(諸宗廢合)이니 해서 기록으로 보기에는 독특한 특색을 지닌 듯도 하니, 중국어나 일본에서와 같은 입고꽤종(立辦靜宗)은 한번도 없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 있는 18개 종파의 분립도, 사상 및 신앙의 특성에 의해서 입교 개종한 것이 아니라, 다만 분파 작용의 소산일 따름이다.
엄밀히 말하여, 종파를 별도로 세우려면 종지와 종통과 종조(宗租)를 분명히 하고 종학(宗學)을 정립하여야 한다. 그와 더불어, 교의와 신앙의례는 물론 법당의 존상까지도 종명(宗名)에 맞추어 달리해야 한다. 그런데 사-실이 그렇지 못하여 서로 저마다 뚜렷한 특성을 지니지 못하다 보니 통불교(遇佛敎)라는 이념으로 모든 종파가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주
장이 나오게 되는데 그것은 현실적으로 모색하기조차 어려운 형편이다.
위와 같은 사실들은 한국 불교에 이념이 결여되어 있음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불교가 종파를 막론하고 두루 밀교적 요소를 그 기저에 깔고 있는 바 이는 밀교적 요소로서 한국 불교에 새로운 이념적 기저를 마련할 가능성을 제시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즈음 들어 부분적으로 나마 밀교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으려는 접근 방법이 일고 있는 까닭은 바로 이러한 점에 근거한다고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