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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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불교동화 - 정진채
1986년 12월 58호
아득한 옛날의 일이었읍니다. 넓은 인도 땅 한쪽에 보라니국과 타라니국이 서로 등을 맞대어 있었습니다. 보라니국의 임금님은 마음이 어질고 착하기로 널리 여름났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죄를 짓거나 벌을 받을 때는 반드시 그 인연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읍니다. 그리고 항상 욕심이 없는 깨끗한 마음으로, 보살님이나 스님 또는 가난한 이웃나라사람들에게 옷과 음식을 나누어 주는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였습니다.
보라니국의 백성들도 어진 임금님을 본받아 땀 흘리며 부지런히 일하고 착하게 살아갔읍니다. 백생들의 창고에는 그들이 일한 만큼 곡식과 옷감들이 차곡차곡 쌓이게 되었읍니다. 그리하여 ‘보라니국의 임금님을 찾아가면 양식과 의복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 널리 퍼져 나갔옵니다.
어려움을 당한 이웃나라 사람들과 지나가는 스님들도 가끔 보라니국을 찾아 왔습니다. 보라니국의 임금님은 그 때마다 길손들을 잘 대접하였고 돌아가는 길에 꼭 양식과 옷감을 나누어 주었읍니다. 손님들이 돌아가고 나면, 임금님은 가끔 신하들에게 이렇게 물었읍니다.
“저 손님들이 행복한가, 내가 행복한가? ”
그러면, 신하들이 입을 모아
“대왕마마 주는 쪽이 받는 쪽보다 언제나 더 행복합니다.”
하고 대답하였읍니다.
“그러했든가? 준 만큼 내 마음이 빌 줄로 알았는데, 오히려 가득 차는 기분이거든.”
하고 임금님은 빙그레 웃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엉뚱한 일로 큰일이 벌어지게 되었읍니다. 보라니국 임금님이 어질기로 소문이 나자 이웃나라 타라니국의 임금님은 몹시 언짢았읍니다 타라니국의 임금님은 남을 잘 시기하고 몹시 심술궂어서 예사로운 일에도 트집을 잡았읍니
다. 마침내 그 임금님은 시기심에서 보라내국을 정벌하는 군사를 일으키게 되었읍니다.
“나의 용감한 병사들아 ! 보라니국의 엉터리 임금을 치러가자 그리고 산더미처럼 쌓인 의복과 양식을 빼앗아 상으로 받도록 하자 특히, 보라니국의 국왕을 잡는 자에게는 큰 상을 내리리라.”
타라니국왕은 병사들을 휘몰아 보라니국의 국경을 넘었읍니다.
이 소식을 들은 보라니국 임금님은 깜짝 놀랐읍니다. 평화롭게 살아가던 보라니국은 모질고도 사나운 적군을 당해 낼 힘이 없었읍니다. 타라니국의 군사는 보라니국의 국경에 있는 작은 성들을 차례로 짓밟으며 보라니국의 왕성을 향하여 성난 물결처럼 짓쳐 들어왔읍니다.
“흩어졌던 군사들을 불러모으고 성문을 굳게 닫아라.”
마침내 보라니국 임금님도 적과 싸울 결심을 안할 수가 없었읍니다. 그는 백마를 높이 타고 성안을 돌면서 적을 막는 경비 상태를 살피고 있었읍니다. 임금님이 성의 동문에 이르자, 나어어린 병사 하나가 성문에 기대어 울고 있는 모습이 보였읍니다. 임금님은 달리던 말을 멈추었읍니다.
“이봐라, 나의 사랑하는 병사야. 무슨 일로 울고 있느냐? ”
“대왕마마 저의 늙으신 부모가 병으로 누워 앓고 계십니다. 전쟁이 터졌고 그래서 저는 나라를 지키러 나왔읍니다마는 저의 늙으신 부모님을 간호하고 지킬 사람이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임금님은 그 자리에서 젊은 병사를 위로하고, 집으로 돌아가 그의 늙은 부모님을 간호해 드리도록 하였읍니다. 그리고는 궁궐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을 하던 끝에 이런 결심을 하였읍니다.
‘만일 내가 전쟁터에 나가면 반드시 많은 목숨을 죽이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내 한몸을 죽여 백성들을 살리리라.’
다음날 아침이었읍니다. 임금님은 침상 위에 ‘나는 싸움을 원치 않는다. 수많은 백성들의 목숨을 대신하여 내 목숨을 적에게 주겠다. 백성들은 생업에 힘 쓰라’틴 내용의 글을 한장 남겨둔 채, 왕비님도 모르게 대궐을 빠져 나왔읍니다.
임금님은 적병들이 진격해 오고 있다는 변방의 숲 속으로 말을 몰았읍니다. 며칠 동안을 그렇게 달리다보니 이제 몸도 지칠대로 지치고, 배도 고파서 임금님의 행색은 말이 아니었읍니다. 머리 위에 썼던 모자도 길거리에서 원하는 노인에게 주어 버리고, 따가운 햇볕을 이마에 받으면서, 흐느적 흐느적 숲속으로 빠져 들어 갔읍니다.
그때 마침 숲 저편에서 걸어오는 나그네 한 사람을 만났읍니다. 임급님은 말을 세우고 쓰러질 듯 말에서 내렸습니다. 나그네는 임금님의 행색을 바라보다가 합장을 한 뒤에 이렇게 말했읍니다. |
“당신은 퍽 피곤한 모습이군요. 우선 물을 좀 나누어 드릴까요?”
임금님은 나그네가 내미는 가죽 주머니 속의 물을 몇 모금 마셨읍니다. 한결 기운이 나는 것 같았읍니다. 임금님은 물을 마시고 나서 나그네에게 물었읍니다.
“당신은 어디서 오시며 또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네에, 저는 한나라의 귀족으로 지내 오다가 집안이 기울어져서 어렵게 지내던 중에 우연히, 보리애국의 임금님이 남이 어려운 사정을 들으면 힘껏 도와쥐신다기에 이렇게 보라니 국의 임금님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당신이 찾으시는 보라니 국의 임금이 나입니다.”하고 임금님이 말하자 나그네는 깜짝 놀라 이상히 여겨 곧 물었읍니다.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이러한 모습이 되었읍니까?”임금님은 그 사정을 자세히 설명 하였읍니다. 나그네는 그말을 듣자 그 자리에서 까무라 쳤읍니다. 임금님은 나그네의 얼굴에 물을 끼얹어 그를 깨우고는 물었읍니다.
“당신은 왜 이다지도 놀라집니까? ”
“대왕이시여 ! 나는 옛날부터 이어 온 집안을 지키기 위하여 마지막 희망을 대왕에게 걸었읍니다. 그래서 멀고먼 길을 걸어서 이곳까지 왔지요. 재물을 얻기 바로 전에 왜 대왕께서 이러한 경우를 당했는지 모르겠읍니다. 그래서 한스럽고 괴로워 어쩔 줄을 모르겠읍니다.’
임금님은 나그네를 위로 하였읍니다.
“당신은 걱정을 하지 마시오. 나는 당신에게 큰 재물을 얻게 해 드리지요. 지금 적국인 타라니 국왕. 내 몸을 아직 얻지 못하였읍니다. 곧 나를 찾아 큰 상금을 걸고 먼 시골에까지 사람을 보낼 것입니다. 당신은 곧 나를 묶어서 적국의 왕 앞으로 데리고 가십시오. 그러면 적국의 왕은 당신에게 큰상을 내릴 것이오.”
나그네는 무릎을 꿇어 세 번 절한 뒤에 임금님의 손을 끈으로 묶었옵니다. 숲을 빠져 나가니 어느새 보라니 국의 변방에 있는 성이 보였읍니다. 그러나 그 성은 이미 적군에게 떨어져 타라니 국의 깃발이 성문 높이 휘날리고 있었읍니다. 보라니 국 임금님은 나그네를 재촉하여 그 성문 앞에 이르렀읍니다. 성문을 지키던 적장은 보라니국의 임금님이 나그네에게 잡혀왔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두사람을 성 안의 타라니 국왕 앞으로 데리고 갔읍니다. 그런데 붙들려 온 보라니 국의 임금님 얼굴은 밝고 평온한 미소가 피어오르고, 그를 잡아 온 나그네의 얼굴은 뜻밖에도 어둡고 괴로워 보였읍니다. 적국의 왕은 저으기 놀라면서 나그네에게 물었읍니다.
“장수는 어떤 기술로 보라니 국왕을 사로잡았소? ”
“저에게는 특별한 기술이 없읍니다. 이 분이 어려운 사람을 재물로 돕는다는 소문을 듣고 재물을 얻어 가려고 오다 저편 숲속에서 만나게 되었옵니다. 그런데, 실은, 제가 보라니 국 왕을 잡은 게 아니고, 국왕이 저를 위하여 잡혀주신 것입니다”
‘아니, 그건 또 무슨 말이오? ”
타라니 국왕과 장수들은 깜짝 놀라서로 얼굴을 마주보다가 나그네의 이야기를 재촉하였읍니니다. 나그네는 보라니 국의 임금님을 묶어서 데려오기까지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 주었읍니다.
‘------보라니국왕이, ‘당신은 내 팔을 끈으로 묶어서 적국의 왕 앞으로 인도하시면 반드시 큰 상을 받을 것이오’라고 말 하였읍니다.”
이렇게 보라니 국왕을 데리고 온 이야기를 끝맺었습니다. 타라니 국왕은 나그네의 말을 듣고 너무나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자리를 차고 일어났읍니다. 그리고는 보라니국 임금님 앞에 무릎을 꿇었읍니다.
“대왕이시여 ! 당신은 참으로 사람의 왕이요 나는 도적에 불과합니다.”
하고 감탄해 마지 않았읍니다. 그러자 보라니국 임금님은 타라니 국왕을 보고 이렇게 간절히 부탁 하였읍니다.
“대왕이시여 ! 우리는 서로 화친을 도모하여 평화와 행복을 다 함께 누립시다.”
“대왕이시여 ! 도적의 행동을 용서하여 주신다면 영원히 남을 괴롭히는 침략은 하지 않겠읍니다.”
이렇게 말한 타라니국 왕의 얼굴에는 결심의 빛이 역력히 떠올랐읍니다. 그리고 그는 곧 군사를 돌려 자기 나라로 돌아갔읍니다. 그리고 그 나그네는 보라니 국의 어진 신하가 되어 행복하게 잘 살었읍니다.
그 뒤로 오랫동안 명화가 계속되었고, 보라니국 임금님은 더욱 이름을 떨치게 되었읍니다. 사림들은 임금님의 마음을 부처님의 마음이라 칭송하였고 백성들은 그런 임금님 밑에서 참으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았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은 보라니 국을 부처님의 나라 곧 ‘불국’이라 일컬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