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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 과 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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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차차석 1986년 12월 58호
업보는 선에 대한 즐거움의 겉과,
악에 대한 괴로움의 결과로 나눌 수 있다.
물론 찾함이나 악함의 기준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범위가 달라지기도
하겠지만, 대체로 사회 계약적인 성격을 가지며
또 진리의 보편성의 원칙을 충실히 따르는 것으로 보면 된다.

업과 윤회는 불교를 신앙하는 모든 사람의, 또 한국 민족 모두의 심성 속에 깊이 자리잡아 오랜 세월을 두고 사회적 윤리관의 근간을 이루어 왔음은 아무도 부인 할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마치 실과 바늘의 관계처럼 업과 윤회는 불가분의 사고방식이 되어 한국적인 체념 현실의 불만족상태에 대한 수긍과 같은 일종의 허무주의적 분위기를 형성해 왔음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과연, 불교의 사회 윤리관, 인생관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라 할수 있는 업과 윤회의 사장이 실제로 소극적이고 허무주의적인 가치관만을 지향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세계적 종교관이 현실긍정과 미래지향의 성격을 띠는데 오로지 불교의 가치관만이 그렇지 못 한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수 있다. 이에 업과윤회의 사장이 갖는 참된 뜻을 알아보고, 그것을 현실의 생활 속에 구현시킬 방법을 살피기로 한다.

‘ 업’ 이란자기의 생활모습이다.
흔히들 사람들은 일상의 생활 속에서 자신에게 관계된 어떤 일의 결과가 나쁜 쪽으로 기울어져버린 경우에 곧잘 ‘전생의 업’ 이라 하며 ‘업’ 이란 말을 쓴다. ‘업’은 또 생활 속의 부정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직업’과 같은 데에서도 쓰이고 있다. 그러면 이런 쓰임새로 익숙해진 ‘업’ 이란 말이 갖는 근본적인 뜻은 무엇일까.
업은: 쉽게 말하여, 개개인의 ‘행위’나 ‘일’올 나타내며, 인도어로는 카르마(Karma)라고 한다. 업을 발생시키는 세 가지 요소가 있으니, 삼업이라 하여 몸, 입, 의지를 일컫는다. 원시불교의 기본 윤리인 열 가지의 착한 행위나 악한 행위가 바로 이 세 가지의 업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세 가지의 업은 또한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가 있다. 한가지는 직접 현실로 나타나는 경우(表業)이고 또 한가지는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고 생각만 하는 경우(無表業)이다.
그렇게 해서 업이 형성되면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업보가 따르게 된다. 업보란 행위에 의해 발생되는 필연적인 결과인 것이다. 업보는 업의 작용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라 할수 있는데 반드시 행위자의 의지에서 나온 행위와 동반한다. 이를테면 어떤 사고가 일어났을 경우에 그것이 자기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일어났다면 그때에는 업보가 없다고 볼수가 있다.
업보는 선에 대한 즐거움의 결과 악에 대한 괴로움의 결과로 나눌 수 있다. 물론 착함이나 악함의 기준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범위가 달라지기도 하겠지만 대체로 사회 계약적인 성격을 가지며 또 진리의 보편성의 원칙을 충실히 따르는 것으로 보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행위에 대한 상대적인 반응이 업보라고 할 때에, 그것은 사회라는 질서의 틀 속에서 분명하고도 엄격한 자기 책임을 강조하는 것임을 알수 있다.
따라서, 세속적인 인간의 삶어 서로 상의상관성(相依相團性}을 가짐을 생각의 바탕으로 섬아야 하며, 그러한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너와 나 할 것 없이 자기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지는 사람이 된다면 한충 더 질서있는 세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순환론적 세계관
인도인들은 관념적인 사람들이라고 특정지워 말한다. 그리고 그런 관념적인 사고의 한 유형이 ‘윤회’라는 생사관(生死觀)을 형성시켰다고도 한다. 그런데 이 윤회사상은 인도에뿐 아니라 고대 희랍에서도 찾아볼수 있다고 하여, 학자들은 윤회 사장도 동양인이 갖는 뚜렷한 특정인 ‘동그라미 사상’의 하나라고 말하기도 한다.‘윤회’는 본디 ‘흘러가는 것 그리고 ‘세계,를 뜻한다. 곧, 이 세상을 끝없이 흘러간다는 뜻으로 생각할수 있다. 그런데 왜 이 세상을 끝없이 흘러가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진리에 대한무지(無知) 때문이다.
인도 사람들은 일찌기 그 끝없는 윤회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수행, 성도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는데, 인도의 이 사상이 뒷날 불교에 수용되어 업보설과 서로 결합하여 발전해 온 것이다. 윤회사장은, 원시 불교시대까지만 해도 아직 불교에 수용되지 않은채로 있었으나 부처님 왜 열반 뒤에 불교가 대중성을 띠게 되고 불타관이 바뀌게 되면서 함께 불교에 수용 되었다고 한다.
그뒤로 불교에서는 윤회를 멈추고 대열반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이어 왔다. 깨달음을 통하여 진여실상(眞如實相)을 체득하는 자는 고해라고 불리는 이 세상을 초월하여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윤회사상의 전개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불교의 가장 기초적인 윤리관인 업보설과 윤회사상은 서로 융합하여 대 불교에 커다란 영향을 끼쳐 왔는데, 이것은 비단 불교인뿐만이 아니라 온 아시아인들의 사회 윤리관 세계관 재변 형성에 가장 중요한 밑 바탕을 이루게 되었음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이제 윤회의 구체적인 과정과 변천에 관하여 펴보기로 하자
윤회는 삼계육도(三界六道}를 흘러다님을 말한다. 삼계는 욕계 색계 무색계를 말하고 육도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 천 등을 말한다.
삼계의 첫째 계인 욕계(欲界)란 제물욕, 색욕, 식욕, 명예욕, 수면욕외 오욕이 꿈틀거리는 세계를 말하는데, 삼계육도 에서의 ‘육도’ 윤회가 바로 이 욕 에 속한다. 그 다음의 색계(色界)는‘욕계’의 단계에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 것으로 물질적 탐욕은 여의었으나 완전히 정신적인 경지는 이루지 못한채 중간상태의 물적 성질을 갖고 있는 세계이며 여기에 18천(天)이 있다. 그리고. 무내계(無色界)는 물질적인 것에 대한 탐욕을 완전히 씻어버린 순수한 정신적 세계를 말하며 여기에는 4천(天)이 있다.
윤회는 구체적으로 이 세 가지 계를 반복하여 흘러 다님을 뜻하는데 일차적으로 업보 설과 결합하여 불교에 수용된 윤회사상을 두고 많은 학자들이 수행의 단계로서 해석하고 있다. 삼계의‘계, 는, 범주라는 뜻으로도 풀이될 수 있지만 범어에서는 무리(類)라는 뜻이 강하게 두드러진다. 그래서‘같은속성을 갖고 있는 무리’라는 개념에서 현실적인 수행의 단계로도 해석 할수있는 것이다.
윤회사상은 또 인도본래의 태생설(股生說}과 사유설(四有說)을 수용하게 된다. 그리하여 태생솔로 인하여 얼마쯤 번잡해진 면도 있지만 주로 사유설의 영향으로 관념적인 유식학파(唯識學派)에 수용되기도 한다. ‘사유’란 인간의 존재 형태를 네 가지로 분류한 것으로, 생유(生有), 본유(本有: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실질적 인간의 삶의 형태), 사유(死有), 중유(中有:죽어서 다시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형태)들올 말한다.
제법무아(諸法틀我 :모든 사물은 본디 나 라고 고집할 것이 없다)라는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에 입각하여, 그렇지 않아도 윤회의 주체 문제에 회의적이던 사상가들에게 사유설은 또 하나의 문제를 제기시켰다. 그리하여 유식학에서는 아뢰야식 이라는 식을 설정하여 불타의 근본 진리를 존재론적으로 인식하려고 시도하였다. 아뢰야식은 윤회의 주체로써 모든 업을 저장했다 보고 그 과보에 따라 중유의 과정에서 육도(六道) 윤회한다는 생각이다. 그리 하였어도 윤회에 관한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으니 그것이 본디 사회윤리를 위한 한방편이라는 면이 위축되고 오히려 불교사장의 타락 또는 번잡화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불교가 중국에 들어가 중국인들의 사유의 폭을 넓혀 주었을 때에, 윤회시상은 중국의 토착신앙과 결합하여 현실적인 사고가 강한 중국인들에게 내세관을 형성시켜 주는 데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그러면서 철학적인 속성과 현실을 중시하는 협이 강한 중국인들은 윤회사상도 중국적인 사유의 품속으로 끌어넣고 있다. 천태대사 지의는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 천의 육도 개념을 탐(貪), 진(願) 의 삼독과 결부시켜 현실적으로 해석하였으며 육도에 성문, 연각, 보살 부처의 네 가지를 더하여 우주와 인간의 세계를 설명하였다.
그뿐 아니라, 수나라의 길장대사는 윤회의 개념을 중유 속의 육도 윤회로 한정하지 않고 모든 중생들이 생유, 본유, 사유, 중유를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반복하고 있다고 해석함으로써 윤회가 갖는 사회 윤리성을 강조하고 있다. 육신은 비록 멀쩡하지만 우리의 정신적 갈등과 긴장과 결심의 순간 순간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업보설과 결합하여 불교의 윤리관을 규율하면서 일찍부터 동아시아인의 세계관 인생관, 우주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 온 윤회는 그 근본 토대가 우리들의 일상생활 곧 몸, 입,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그런 한편 윤회설은 시공을 달리하여 수행자에게는 수행의 단계로서 일반 대중에게는 그들의 삶을 규율하는 윤리로서 발전해 와 종교적 실천과 자비의 문제를 충실히 보여주고 있다.
업과 윤회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며 서로 작용하고 반응하는 가운데에서 인간으로 하여금 사색하고 슬퍼하며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