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백제 미륵신앙의 종말론적 성격
백제 미륵신앙은 미륵하생용화세계(網勳下生 龍華世界)를 이 땅 위에 실현할 구세주로서의 미륵불이 출현하기를 기다리는 종말 신앙이다. 그것도 먼 앞날에나 죽은 뒤에가 아니라, 현실의 억압과 고통이 극에 이르른 지금 당장에 미륵불이 출현하기를 갈I상하는 당래하생(當來下生)의 종말신앙 이다.
이상적인 미래 세계를 갈망하는 것은 곧 현실의 모순을 의미한다. 따라서 현실의 모순이 극대화되고 불안과 위기감이 크게 치솟는 역사의 변혁기를 맞은때 일수록, 사랑과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줄 구세주를 더욱더 강렬하게 기다리게 된다. 이러한 미륵신앙의 종말론적인 성격은 불교의 역사적 산물인 말법사상(末法思想)과 결합되어 현세를 말법 시대로 규정하게 된다. 말법 시대란 불법의 쇠퇴와 함께 인심이 흉악해지고 사회가 문란해져서 뭇 사람들이 그리고 불법을 수호하는 승려까지도 서로 다투는 때를 가리킨다. 미륵신앙은 바로 이 말법의 세상을 구할 자는 당래불(當來佛)로서의 미륵하생 밖에 없다고 인식하는 종말론의 선앙인 것이다.
궁예와 견훤의, 미륵신앙의 성격을 띤 민중혁명 운동이 전개되었던 통일신라 말기가 왕족과 귀족층과 사찰들이 대 토지를 소유하고 부를 독점하는 따위의 가혹한 민중수탈로 인하여 민중의 고통이 극에 이르렀던 말법 시대였으며, 미륵불 의 조성이 가장 활발했었던 고려 말기 또한 정치의 혼란과 왜구의 침략으로 민중 봉기가 수없이 일어났던 역사적 격동기 였다. 또, 조선 후기에 승려 여환을 중심으로 한 미륵신앙사건이 있었던 숙종 연간은 기아에 시달리던 백성이 그의 죽은자식을 삶아먹어야 했던 비참한 시대 였다. 이처럼 현실적 모순과 고통이 극에 달하던 말법 시대에 민중은 기아로부터의 해방과 공평한 분배에 대한 갈망 그리고 괴로움의 대상이 되는 왜구의 격퇴와 같은 희망을 미륵불의 출현에 두었던 것이다. 이러한 미륵불 출현에 대한 종말론적인 기대가 잘 나타나 있는 것이 하체매몰불(下 理沒佛)이다.
하체매몰불은 말법 구제와 미륵하생 출현의 관계를 지중출현(地中出現)으로 표현한 종말 신앙의 한‘보기이다. 이는 백제 미륵하생 불국신앙의 본산인 미륵사 창건 설화에 나타난 연못에서의 미륵불 출현에서 그 뿌리를 맞을 수 있는데, 지금까지 나타난 하체매몰불의 삼분의 이 이상이 구백제 지역에서 발굴되고 있다. 최근에 발굴된 전남 화순군 운주사(雲住寺)의 골짜기에는 70구의 미록석불이 는데, 발굴되기 전까지만 해도 거의 하체매몰불 이었다. 조선시대까지 만해도 천불천탑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이 운주사에서 미륵불을 상징하는 것은 다름 아닌 거꾸로 쳐박혀 있는 거대한 와불(歐佛)이다. 이것은 현실의 세상이 거꾸로 되어 있으며 따라서 미록도 불편한채로 거꾸로 있음을 표현한 것인데 이는 또한 이 미륵이 바로 일어섬과 동시에 세상이 바로 잡힌다는 것을 의미한다. 운주사 창건 민담에는 에 와불을 일으키려는 노력이 있었음에 드러나고 있으니 그것은 압박과 질곡의 수렁에 쳐박힌 민중들의 처절한 자기 해방의 노력인 것이며 이 와불이 일으켜 세워지는 그날을 미륵붙이 출현하는 용화세계로 맞이하려는 종말론적 미륵신앙의 사상인 것이다.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운주사는 실제로 미륵신앙적인 민중운동의 근거지로서 지배 왕권에 대한 커다란위협 세력을 형성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상에서 살펴 본 백제 미륵신앙의 종말론적 성격은 현시대의 모순과 미래 세계의 완성이라는 시간적 대비가 선명하게 나타난다. 또 종말론적인 미륵불의 출현으로 현시대의 모순을 변혁, 극복하여 용화세계를 실현한다는 통시성(通時性)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백제 미륵신앙에서는 미륵 용화세계가 현실과의 통시적인 대결 구조 속에서, 종말론으로 강하게 의식되고 있다. 이 같은 백제 미륵신앙의 종말론적 성격은 바로 민중 구세주의로서의 미륵신앙이 갖는 가장 원초적인 성격이다.
3. 백제 미륵신앙의 현세적 성격
백제 미륵신앙은 미륵불의 종말론적인 출현으로 말미암아 현실의 말법 시대를 혁파하고 이땅 위에 미륵하생 불국토를 구현한다는 점에서 현세적 성격을 강하게 띤다고 볼수 있다. 죽은 뒤에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왕생하겠다는 미륵신앙과는 달리, 현세에 석가가 다 이루지 못한 불법을 완성시키겠다는 미륵신앙은 현세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한다.
미타신앙은 상충 귀족들에게는 현재의 복락이 죽은 뒤의 내세에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으로 그리고 하층 민중들에게는 현재의 고통이 죽음으로 단절되어 내세에서는 극락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것으로 각각 나타난다. 그러나 미륵신앙은 현재의 모순과 고통이 미륵하생으로 말미암아 죽기 전의 현세에서 극복되고 완성되는 것을 염원한다. 시대의 모순과 고통이 극에 치다를수록 미륵신앙의 민중 구세주의는 새 세계의 출현을 더욱 절실히 희구하고 준비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구세주의 자체가 가지고 있는 현세적 성격이 미륵신앙을 통하여 강하게 발현되었던 것은 우리 민족이 본디부터 지녀 온 현세적인 세계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개똥으로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는 담은 바로 그러한 일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보기일 터이다. 따라서 현세적 기복의 성격이 강한 우리 민족의 종교 성향은 현실의 삶을 극복하기를 바라는 데에서 나온 민중 피난(避難)이지 내세적 도피(逃避)가 결코 아니다. 곧 통일 신라 때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 까지 그 동안에 조성된 미륵불의 현황을 나라전체에 걸쳐 조사해 본 결과, 득남(得男), 치병 (治炳), 기복(麻福), 수호(守護)와 같은 주술적인 민간 신앙의 형태를 챙기게 띠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와 같은 미륵불 조성의 발원 형태로 보아, 한국 미륵신앙이 주술적이고 기복적인 피난사상의 형태로 민간신앙에 흡수 된 듯한 인상이 짙다. 미륵신앙의 민간 신앙적 피난은 바로 백제 미륵신앙의 민중 토착화를 의미하며, 한편 전통적인 개벽 사장과의 습합을 통해 19세기 말의 후천개벽적 미륵신앙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된 것이라고 보겠다.
이처럼 민간신앙으로서의 백제 미륵신앙에서는 샤머니즘 적인 주술성과 미신성(迷信性)이 내세주의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뿌리에는 민중의 한(恨)어린 현실에 대한 갈망, 오랜 불행의 소산인 절대적인 행복에의 열망 죽음의 의식(優式)을 통한 더 나온 생 (生)과 부활에의 집념이 작용하고 있다. 그리하여 고통과 빈곤으로부터의 결정적인 해방 을 절실히 소망하는 민중의 현세적 욕구가 미륵신앙의 현세적 구세 사상과 결합되어 현실의 역사적, 실천적 변혁을 꾀 하는 민중 해방 운동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들판이나 산간에 서 있는 부박한 돌미륵은 억눌리고 고통받는 민중현실의 반영이며 민중의 삶 속에 실현될 미륵불의 용화세계에 대한 현세적 갈망를 대변하는 것이다. 또한 민중 안에 있는 미륵은 민중의 사회적 성화(聖化)이며 그 미륵이 일어설 때 민중도 함께 일어서게 된다. 따라서 미륵불의 출현을 앞세운 민중 운동은 민중 안에 있는 미륵이 현세적으로 발현된 것이며 민중의 주체성이 표출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미륵신앙 성격을 띤 모든 민중 운동은 민중 구세주의 로서의 백제 미륵신앙의 현세적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와 함께 아직도 민중 속에 쳐박혀있는 미륵은 오늘의 역사적 현실이 민중의 주체성을 수용하고 있지 않음을 반증함과 더불어 당대 세에 그 미륵이 바로 일어서리라는 민중의 구세주에 대한 대망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