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아저씨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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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돈연
1986년 12월 58호
어렸을 때입니다만 시골에서 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때는 전쟁 뒤끝이라 군인 아저씨들의 고생이 무척 심할때 였읍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틈만 있으면 군인 아저씨들에게 보내는 위문편지를 쓰게 하셨읍니다. 철이 바뀔 때는 물론이고 무슨 명절이나 특히 국군의 날이 돌아오며 작은산 물 같은 것을 챙겨 위문봉지를 만들었던 기억도 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선생님들의 뜻 밖에 누구의 지시라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좌우간 그 때 쓰던 위문편지에 대한 향수 때문에 보다 나이가 어린 군인들을 만나도 그냥 군인 아저씨라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그렇게 길들여진 저희들에겐 군인 아저씨는 정말 아저씨 이상으로 듬직하고 믿을만한 분들입니다.
아저씨 군인 아저씨 이 추운 날씨에 오랑케를 무찌르기 위해 얼마나 고생 많으십니까. 저희들은 아저씨들 덕택에 학교에서 공부 열심히 하고 있읍니다. 저희들도 이담에 커서 아저씨 같은 용감한 군인이 되겠읍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위문편지의 서두를 새삼 들출 필요없이 군인들에 대한 우리 모두의 믿음을 철썩 같다고 할 수 있읍니다.
군인들에 대한 국민의 절대적인 믿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군인은 국민의 아들 딸이며 그들은 국가와 민족을 외적으로부터 지키는 방패요 울타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요즈음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그 이유 또한 간단명료합니다. 군인들이 정치에 뛰어 들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통령이나 민정당의 대표나전에는 군인이었던 사람들, 곧바로 군에서 권력의 자리로 이동한 것 아닙니까 가장 중요한 요직을 차지했으니 거기에 따라가는 사람들이 또 얼마나 많이 있겠읍니까. 그것도 계급이 최고 지휘권에 있었다면 또 모르거니와 정보사령부 사령관이라는 자리의 서열은 모르긴 해도 너무 쳐지는 곳이니까요. 물론 군인이 정치가가 되지 말란 법도 없고 또 그 사람들의 권력 장악해 무슨 법적인 하자가 있었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다 법적인 절차는 절차대로 거쳤으므로 우리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으로서 틀림없고 집권당의 당 대표들임에 틀림 없읍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것, 우리가 겪은 것은 겪은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들의, 가슴 속에 짜안하고 서운한 감정이 계속되고 있을까요. 그리고 그 서운하고 짜안한 마음들이 턱없이 불거져 나오는 현실의 큰 문제들에 얹혀져 “그러니 별 수 없다”가 되고 “이거 원 너무 경직되어 가지 않나”에 이르고 “조마조마하니까 더 두어서는 더 큰일나겠다”로 되어간다면 그렇게 부르짖던 국민총화는 깨어지고 알게 모르게 저할 짓 해버리면 그만이E}는 불신풍토의 사회가 되어버립니다. “군인은 절대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만능이어서는 안된다” 라는 말이 있읍니다. 물은 아래로 흐르는 관성의 법칙이 있으며 낙엽은 가을에 떨어집니다. 사물을 오랫동안 관찰해 보면 거기에는 그 어느 것으로 재어보아도 딱 들어맞는 분명한 길이 있고 나름대로의 선이 있읍니다. 정치 경제 또 어떤분야 건 다 마찬가지이지요. 종교인에게는 종교인에 알맞은 길이 있으며 정치가에게는 정치가에게 맞는 직분이 있고 군인에게는 군인으로서의 명예와 의무가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법칙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연 법칙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읍니다. 자연 법칙은 절대적입니다. 그러나 자연 법칙도 만능일 수는 없읍니다.
국가가 위태롭다 해서 또는 사회가 어지러워졌다 해서 군인이 정치에 뛰어들고 종교인이 사회의 권력을 휘어잡는다면 처음에는 잘 되는 것 같지만 끝내 그대가는 아름답지 못하게 끝이 납니다. 왜냐하면 길을 잘못 들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육상 경기에서 남의 선을 침범해 방해를 한 것과 같은 결과를 낳기 쉬운 것입니다. 도중에 늦었지만 순발력을 발휘해서 앞에 가는 사람을 따라 잡을수 있는데 떡 버티며 가고 있으니 그 사람 또한 옆 사람의 선을 범하게 되고 또 그 침범은 다론 침범을 연속적으로 낳아 그 레이스는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제오공화국 출범 이후 그러한 순리에 따른 권력 승계 절차가 생략되어버린 데에서 오는 보이지 않는 혼란과 불평불만 들어 사회의 저변에 깔리고 쌓여 엉뚱한 방향에서 터진다고 볼 수 있읍니다.
얼마 전에 국무총리를 맡으신 분이 막힌 것을 뚫고 맺힌 것을 풀겠다고 했는데 다 그런 맥락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읍니다.
나라의 살림을 꾸려나감에 또는 그 살림꾸림의 소임을 맡음에 있어 절차의 정당함은 국민 감정이 뚫리고 풀리는 근본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조사의 말씀에 처음에 터럭 끝만큼의 오차가 있을지라도 종내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난다는 가르침이 있읍니다. 부처님 말씀에도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으며 끝도 좋아야 한다 하셨읍니다. 덧붙여 말하면 동 기와과정과 결과가 모두 잘못이 없어야 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나라에 위기가 닥쳤다고 판단하여 군이 개입을 했다면 그 자세는 위기가 사라질 때까지 만 절대적이어야 했던 것을, 만능이 되겠다는 우를 범했으니 돌아갈래야 돌아갈 터전이 없는 배수진을 친 결과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내친 김에 우리가 살림을 떠맡자”가 되었고 그러다보니 그것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는 비평이 없을 수 없고 그것을 우격 다짐으로 다스리니 여기서 삐꺽 저기서 삐꺽 사회가 살얼음판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군인 아저씨들,
여러분들 얘기를 하다보니 어쩌다 여러분들의 선배 이야기를 하게 되었읍니다. 그분들의 잘 잘못을 따질 처지도 아니고 또 그럴 필요도 없읍니다. 맺은 사람이 푸는 것이요(結者解之), 맡은 책임이 있고 하는 일이 있으니 허(功)은공대로과(過)는 과대로, 일하고 난 뒤에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 있겠지요. 국민은 말이 없고 말없는 것이 국민이지만 역사의 경험에서 알수 있듯이 국민은 결코 우둔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묵묵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국민이 결정하고 책임지고 심판합니다. 그 심판은 언제나 준엄했고 그리고 자비로 왔읍니다. 위기를 막았으니 그 공으로 권력을 주고 권력을 주었으되 그의 잘못 휘두름이었다면 역사는 언제나 냉엄하게 꾸짖었던 것입니다. 짧지만 우리의 근대 역사 과정이 그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읍니다. 믿음직스런 군인 아저씨들. 요즈음종교지도자들 간에도 웃기는 사람이 많이 있읍니다. 위기 떠맡기를 자청하고 나선 군인들처럼 자기들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종교자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중 엔 스님도 있고 목사도 있지요. 종교의 참 뜻은 사람의 마음 속에 착함을 심어 그들로 하여금 청정한 사회를 일구고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군인이 절대적이되 만능이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종교에도 종교인이 행동해야 할 분명한 테두리가 있읍니다. 이 테두리를 벗어나면 외도(外道)이지요. 남의 선을 침범하는 것이지요. 종교인이 행동해야 할 곳은 사람의 마음 다스림 입니다. 이익을 대변하는 집단에 서게 되면 벌써 본질적으로 틀린 일입니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수도자는 수행의 힘이 근입니다. 수행의 내용에는 너와 내가 없고 악과 선이 없읍니다. 수도자라도 정당인이 되면 당의 정책 노선에 따라야 하는데 당은 당의 이익이라는 것이 있읍니다. 먼저 이익을 주장하고서 어떻게 상대를 편안하게 할 수 있읍니까. 때문에 성직자가 정치일선에 나섰다면 군인이 그 힘을 이용해 정치권력을 휘두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잘못하는 것이지요. 군
인이 권력을 잡는 것은 국민에게 죄를 얻는 것이 불과하지만 성직자가 권력을 잡으면 국민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죄를 얻기 때문입니다. “바보들”하고 욕해도 싸지요. 자업자득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군대처럼 훈련이 많고 질 좋은 무기를 소유했다고 해서만 강한 군대인 것은 아닙니다. 국민으로부터 절대적인 믿음을 얻고 건전한 정신과 의무감으로 충만된 군대야말로 깨뜨리기 어려운 강군입니다. 좋은 무기와 강한훈련의 군대가 무너진 보기는 허다합니다. 월남 같은 경우가 좋은 경험입니다. 중생이 있기 때문에 부처가 있고 어린양들이 있기때문에 목자가 필요하듯 병사가 있기 때문에 장군이 있습니다. 전쟁의 지휘는 장군이 하지만 그 힘은 병사에 있읍니다. 병사의 뭇이 모이고 쌓여 군을 이루고 있읍니다. 몇몇의 장군
이 군을 이끌어간다는 인식이야말로 커다란 잘못이 아닐 수 없읍니다.
잘못된 역사 인식에서 출발한 무분별한 권력의 쟁취는 당장은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끝내는 그 무리했던 행방이 막힐 곳에서 터지고 뚫릴 곳에서 막혀버려 “경직된 사회’라든지 “스포츠 공화국”과 같은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십상입니다.
섣부른 행동은 커다란 재앙을 자초하는 수가 많습니다. 그것이 정치나 종교와 같이 범위가 큰 일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근래 우리의 정치사가 일부 군인들 때문에 얼룩지고 혼란스러웠다는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읍니다. 우리는 그점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군이 군림해서는 안 된다. 군인은 영원히 기억되어야 한다” 는 것을 믿으려 합니다. 알게 모르게 경직되어 가는 이 사회의 동인(動因)을 살펴보면 누구나 그 사실을 느끼지 않을수 없읍니다.
군인 아저씨들 심판 받는 군인이 되지 말고 영원히 기억되는 군인으로 남아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