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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당신이 새해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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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여연 1986년 12월 58호
동안거를 하여 많은 스님들이 산문 밖 출입을 끊은 지도 벌써 한달 이란 시간이 흘렀다. 달력의 수지를 짚어보면 올 한해도 몇 모타리 남지 않았음을 홀껍데기 옷 한쪽 걸친 것만큼이나 출게 느끼게 하는것은 다만 세월의 빠름에 대한 회한의 느낌에서만은 아닐 것이다.
산문 밖 앙상한 가지에 까탈스럽게 앉아 울어 제끼는 때까치의 소란을 한바탕 듣는다. 그것도 세모의 저녁 무렵에. 우리의 주름 패인 어머니 아버지들은 그런 때 까치 소리를 고향 떠난 자식들의 소식인양 들으며 먼산바라기를 한숨처럼 하였다지.
대중방 벽에 걸린 용장방(龍聽樣)에는 몇 분 스님의 이름이 올려지지 않은 채 어스름이 괴여 있다. 그 스님들은 다름 아닌 국제선원이란 거창한 담벼락이 쳐진 구치소의 차가운 바닥에 수감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 그 스님들만이 추운 겨울을 그곳에서 지내야 하며, 왜 우리는 같은 먹물옷을 걸치고 같은 부처님의 성을 딴 석씨 문중들이라고 하면서 그들을 그대로 방치한채로 묵묵 부답들인가 해인사의 그 가을의 붉은 함성과 의지들은 정녕 한순간만 푸르르 타버리고만 불쏘시개감들의 외침이었던가.
해인사 승려대회 이후로 그 잘난 우리들 총무원은 무엇을 했는가 했다면 과연 대중들의 그 열화와 같은 뜻에 상용하는‘관시의 접촉’이었는가. 또 그 접촉의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세속과 승단이 한데 묶어준 힘과 뜻을 동에 업고서 과연 몇 발자욱이나 떼어 뭇을 관철시켰으며 소신을 밝혀보았는가.
지금 도 가슴속에 생생한 7년 전의 그 수모 치욕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겪었던 희생자들이었고, 지난 10 ·27대회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아실 다른 곳도 아닌 조계사 어른들이, 그날에 아침부터 앞뒷문 할 것 없이 삼엄한 경비와 사슬로 똥공 쳐매어 모여드는 대중들을 저지한 고 저의를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봉은사 대회 이후로 많은 스님들이 구속 있을 때, 같은 승려의 처지에 있으면서 또 종단을 이끌어 가는 어른들이면서, 마치 세속 정치쟁이의 머리에서나 나옴직함 돌맹이 같은 방법으로 그 스님들을 싸잡아 용공분자로 몰아부친처사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는 것이 많은 젊은 스님들이 가지는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이제까지의 구태와 예속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진정으로 자율적이고 자주적인 불교를 만들자고 하던, 그렇게 카랑카랑한 소리로 2,000 대중의 피끓듯 뜨거운 박수를 받았건만 설령 그박수가 엉겁결에 받은 박수라손 치더라도, 종단을 대표하는 분들이라면 마땅히 일말의 신뢰성을 입술에 달고는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 바램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젊은 스님들
의 가슴이 심한 배반감과 좌절감으로 속이편치 못한 까닭은.
며칠 전에는, 구속된 스님들에 대해서는 입도 뺑긋하지 않던 총무원이 금강산댐 건설에 대한 정부의 발표가 나오기 무섭게 그 어떤 단체에 앞서 팔뚝을 걷어 부치고 금강산댐 건설 저지 규탄대회를 치루었다. 주먹과 피켓을 높이 쳐들고 핏대를 세워 외쳐가며. 젊은 스님들의 불교 자주화 대회의 방법에 대해서는, 그렇듯 근엄한 얼굴로, 성직자의 체신 운운하며 꾸짖던 그 총무원이 말이다. 그러한 들러리 역할이 진정한 호국이나 종교적 애국심 에서 비롯되었다면 또 몰라도 그렇지도 않은 바에야. 뭣 주고 뺨 맞는 격으로 하고 많은 세월에 협조와 어용으로 얼룩진 것이 우리의 종단사 인데도, 자기 밥그릇 하나 제대로 못 챙기는 처지에 또 얼마나 더 굽신 거리며 가사(袈婆)를 용되게 하려는지.
우리네와는 처지가 사뭇 다르고 어마어마한 뒷배경이 있고는 하지만 이 살얼음판 같은 시국에서도 곧잘 데모를 주도하고 정국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하여도 말발이 서고 추앙받는 명동 성당네의 식구들 가운데 그 어느 한 신부도 구속되었다는 소식 없고 보면 참으로 대한민국에서나 볼수 있는 아이러니라 아니 할 수 없다.
물론 이것은 우리 승려들이 깨끗한 흰칼리에 성화(聖化}를 흠뻑 입고 있는 신부와 동등한 대우를 받자거나 특권을 누리자는 얼토당토 않는 요구도 아니며, 속 좁은 놈의 시기심 많은 투덜거림도 아니다. 다만 이 사대의 아픔을 대변하는 구치소에 갇혀 깨어지고 짓밟힌 사람들과 더불어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는 승려들이 오히려 참되게 민중적이며 뭇 사람들과 서러움을 함께 나누는 보살들일 성싶기에 하는 말이다.
어찌하였거나 이 지지리도 못난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오고 있다. 아무리 해가 바뀌어도 그 밥에 그 반찬일 따름으로 달라질 것도 없지만 한 점의 희망도 버릴수 없는 우리의 절실한 처지로서는 넝마 같은 희망과 꿈으로나마 해어진 우리의 상처를 싸매고 새해의 희뿌연 창문이나 바라볼 밖에.

부처님 당신이 새해이시어
신 새벽의 언 종을 치소서.
고통받는 곳에 자유를, 그리고
어둠의 세상 온통 깨부수어
생명의 빛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