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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 유물전시관의 운영 방안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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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원택 1997년 07월 185호
어제 아침에는 갑자기 먹구름이 끼더니 천둥번개가 치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쩍하는 소리가 기분나쁘게 들리는가 싶더니 우르릉 쾅 하며 번개가 친다. 백련암 뒷산이 곧 무너져 내릴 것 같다. 종무회의에 참석하니 학사대에 있는 가장 높은 전나무가 아침에 벼락을 맞았다고 한다. 꼭대기에서 밑둥치까지 흰살을 드러낼 만큼 표피가 벗겨져 있었다. 장경각도 대척광전도 무사했지만 전문가를 초청해 낙뢰에 대비하는 시설을 갖추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칠 년 전 해인사 성보 유물이 전시되던 구광루를 해체 복원할 때다. 누구나 알다시피 일주문을 지나 봉황문을 나서면 가피른 계단이 나오고 그곳을 오르면 해탈문이 있다. 그 문을 지나 넓은 뜰을 나오면 바로 정면에 구광루九光樓라 쓴 현판이 눈에 들어오는 2층 건물이 버티고 서 있다. 옛날에는 1층이 소금이나 잡다한 것들을 넣어두는 창고로 쓰였다. 그래서 이 기회에 1층을 잘 복원해서 성보 유물전시관으로 쓰기로 했다. 집은 다 지었으나 내부 장식은 손도 대지 못한 채 소임이 끝나 버리고 말아서 구광루 쓰임새에 대해서는 인연이 끊어지고 말았다.
지관스님이 주지로 오면서 유물전시관을 건립해야겠다는 원력을 세웠다. 구광루가 아닌 좋은 장소를 선택하여 짓기로 하고 오백여 명의 규모로 설계를 마쳤는데 불행히도 소임을 물러나게 되니, 그 후임 주지 스님은 이백열여섯 명 규모로 줄이게 되었다.
보광스님이 해인사 주지로 부임하면서 유물전시관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2002년이 되면 해인사 창건 1 ,200주년이 되는 만큼 21세기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해인사 제2창건의 정신으로 구 해인초등학교부지에 대대적인 불사를 계획하게 되니 유물전시관 규모가 천여 평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이렇게 결정이 되니 유물전시관을 짓는 것도 어렵지만, 그 큰 건물의 유지 관리는 더 큰 문제로 대두되었다.
절집에서는 유물전시관이라 하지만 사회적으로 말하는 박물관 개념과 다를 바없는 건물이다. 그러면 사회에서는 박물관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을까. 박물관이 사회적으로는 교육 기능과 연구기능 및 사회 참여를 하고 있는 것이 그 특색이라고 한다. 박물관에서 무슨 교육을 하느냐, 무슨 연구를 하느냐, 무슨 사회 참여를 하느냐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외국에서는 학교에서 다하지 못한 역사 및 문화예술의 학습을 박물관을 통해서 한다.
그러면 박물관의 재정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첫째, 국공립박물관이 국가나 공공기관의 재정 예산으로 운영되는 경우를 빼고 대부분 각 박물관이 갖고 있는 기금에 의한 자금의 수입을 들 수가 있다. 둘째, 각 박물관이 갖고 있는 맴버쉽과 그 회비를 들 수 있다. 셋째, 사립박물관의 경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원조를 받는다. 넷째, 정기적인 것은 아니지만 어떤 단체에서의 교부금이나 기부금을 모집한다. 다섯째, 박물관 자체의 입장료, 판매장에서의 수입, 임대료 등을 들 수 있다.
해인총림 임회에서 어느 노스님이 “종무소에서 천여 평이나 되는 넓고 큰 유물전시관을 건립하겠다는 계획은 참 고무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건물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유물전시관을 유지 관리할 비용은 얼마나 들며 재원 염출은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까?” 하고 질문했다. 그 질문을 받고 소임을 맡은 사람으로서 순간 움찔했다. 노스님이 걱정하는 바가 바로 나의 고민이었고, 그에 따른 정답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그래도 위의 다섯째 항목에 해당하는 것으로 대답을 했다. “예, 그 점이 참 고민스러운 부분입니다. 먼저 유물 전시관의 입장료를 받을 것입니다. 해인사 참배객이 백만 명인데 10퍼센트 쯤을 참관자로 예정하고, 기념품 판매 수입, 기념품 상가의 임대료 수입으로 운영비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하고 답변은 했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걱정스러운 마음이다.
박물관 수입에 따른 박물관 운영 지출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임금급여이며, 둘째 관리비(사무비, 통신비, 건물유지비 및 수리 보수비, 수장품의 보존관리비, 전시비, 활동비, 기타잡비), 셋째 전시품의 구입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박물관 지출에 있어 평균 60퍼센트가 인건비에 해당한다. 박물관이 박물관의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그 안에 수집되는 자료와 그것을 담아둘 건물과 이들을 움직이게 할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박물관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몇 가지의 그룹으로 니뉘어지는데. 가장 핵심적인 관원은 학예 연구직(Curatorial staff)이며 이 밖에는 박물관장을 포함한 사무관리직, 보존 연구원, 안전 요원의 확보는 필수적이다.
지출 내역을 나열해 보았지만 이것만으로도 지출이 많은 것은 짐작이 가는 일로 보인다. 유물전시관 유지 관리비도 만만치 않게 든다고 보아야 할 때 노스님의 지적처럼 유물전시관 운영재정에 대한 확보 대책이 시급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글을 쓰고 보니까 아하! 하며 머리에 와닿는 무엇이 있었다.
산중에 사는 스님이 생각해 왔던 유물전시관이란 그저 “낡았거나 오래된 물건을 진열하는 곳”이라고만 생각해 왔는데, 책을 읽고 바깥 의견을 들어보니 사찰 문화를 대내외에 알려는 엄청난 문화공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점이다. 구광루를 해체 복원하면서 원형 손상에 대해서 엄청난 지탄을 받았다. 그러나 그 때의 소신은 해인사의 기장 중요한 공간이 소금 가마, 새끼, 석회 포대나 못 뭉치나 넣어 두는 창고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 못내 가슴 아팠다. 그래서 이 곳을 해인사 제일의 문화공간으로 개방하면 얼마나 문화수준이 있는 해인사가 될 것인가하고 기대를 하면서 비난을 감내해 왔는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아직도 구광루 1층은 문을 꼭꼭 닫아 두고 있는데 대해서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다.
구 초등학교 자리에 대작불사를 하는 마당에 대중의 논의를 거쳐 구광루 1, 2층을 해인사의 조그마한 문화공간으로 하루빨리 개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해인사 구 초등학교 자리에 세워질 더 크고 웅장한 문화공간을 우리 스님네들이 소화할 수 있는 자질을 기를 수 있다고 믿는다.
조계종 산하 10여 군데의 사찰에 유물전시관을 짓거나 지었다. 그 가운데서 통도사가 1250여명으로 가장 크고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나 해인사가 두번째로 크다. 그러나 조상들의 귀중한 유산을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전시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우리 불교의 깊은 민족정통성을 알리는 사업이다. 선조들의 예지를 이 시대의 사람들이 깊이 통찰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단위 사찰만이 아닌 유물전시관을 가진 모든 사찰들이 연합체를 구성하여 그 운영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조율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유물전시관의 운영은 전문요원의 양성과 운영 자금의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스님네들 가운데서 전문 요원을 종단적으로 양성하는 방안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고, 입장료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운영 기금을 마련히는 방안도 시급히 연구해야 할 과제로 생각된다.
유물전시관이라는 문화공간의 창조는 새로운 포교의 지평을 여는 큰 불사이므로 종단의 관심과 지도가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