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의 가르침은 제법무상, 제행무아, 열반적정,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누어 말할 수 있습니다. 제행무상은 모든 것이 다 무상하다. 곧 오온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얘기입니다. 제법무아는 모든 존재에 나라고 하는 존재는 찾을 수 없다는 의미이고, 열반적정은 모든 경계가 다 떨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열반이라느 ㄴ것은 일체 모든 고뇌와 망상이 떨어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물질적인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질에 대한 애착으로 인해 번민과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납니다. 부처님께선 물질과 현실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이것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해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사실상 우주의 모든 물질 가운데 영원히 붙들어 맬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사회가 시끄러운 것은 재산과명예에 대한 욕심과 인간의 방종 때문입니다. 물질, 명예는 영원히 존재하지 않으며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애착하지 않게 되는데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여 만들고 붙들어 놓으면 영원한 줄 알고 있습니다.
우주의 모든 존재 가치는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애착하지 말고 모든 물건을 공평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인연따라 왔다 가는 것으로 생각해야지 붙들어 매려고 하면 슬픔과 고통이 옵니다. 붙들려고 하면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버리라 하는 것이 곧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모든 물질은 끝없이 인연따라 흐릅니다. 그러므로 붙들어 매어 나라고 하는 것을 만들 수 없습니다. 작은 눈으로 보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공간적으로 보면 우주의 생명은 우스운 것입니다. 눈꼽 같은 것입니다.
제법실상이라고도 하는 열반적정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존재합니다. 시공을 초월해야 비로서 모든 현실에 대한 고민이 해결되어안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시간적, 공각적인 문제를 정확히 알고 그것을 초얼하는 길이 자아완성의 길이고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느 ㄴ길입니다.
「금강경」에 보면 수보리존자가 부처님께 묻습니다.
\"어떻게 시간과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길을 닦을 수 있습니까?\" 이에 부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지옥, 축생, 아귀, 수라, 인간, 천상의 이 세상엔 무한한 중생이 살고 있다.이러한 모든 중생을 다스리려고 하면 자존심을 갖지마라.\"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 아난존자가 아라한과를 얻지 못하여 경정결집에 참여할 수 없게 되자 상심한 나머지 가섭존자에게 가서 사정하며 묻습니다.
\"제가 부처님 살아 생전에 법문 듣기만 좋아하고 도를 닦지 못해 아라한과를 얻지 못했는데, 존자께선 제가 듣지 못한 법문을 별도로 들은 것이 있습니까?\" 그러자 가섭존자를 이렇게 말합니다.
\"찰판대 돌기둥을 거꾸로 해 부러뜨려라\"
다만 그 말 한마디뿐이었습니다. 기를 크게 세워 사찰임을 표시하는 것을 찰판대라고 합니다. 아난존자는 가섭존자의 그 말 한마디를 듣고 일 주일만에 아라한과를 증득했습니다.
이는 무슨 뜻입니까. 사람들은 저마가 깃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존심의 팻말을 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국회위원, 장관, 교수라는 명패를 붙이고 있으면 평등할 수 없습니다. 내외 사이에도 자기 존재라는 깃대를 꽂고 있으면 도저히 상대방과 평등할수 없습니다. 자기 속에 있는 깃대를 무너뜨려야 대중과 평등할수 있습니다. 자기의 깃대는 그냥 놔둔채 상대방에게 오라고하면 안됩니다. 부처님께선 “나는 모든 중생을 제도했어도 제도했다는 마음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남보다 많이 알고 명예가 있다는 모든 상, 곧 자존심을 버리지 않으면 평등할수 없습니다.
또 우리는 좋고 나쁘다는 분별심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에 아름답다라는 것은 절대 없습니다.
눈이 잘못되어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버리면 이 세상에서 탐할 것이 없습니다. 탐욕할 것이 없는데 괴로울 것이 뭐 있겠습니까. 분별심은 남이 죽든 망하든 자기만 좋은 것을 가지려 하고, 시비를 해도 상대방에게만 잘못이 있다고 합니다.
옛날 우리가 큰스님네들 모시고 정진할 때는, 무슨 일이 있으면 큰스님들이 먼저 “소승이 잘못했습니다” 합니다. 그러다보니 젊은 스님들도 자연히 따라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잘했다고 할 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불법은 잘못도니 마음을 비우는 데 있습니다. 평화는 마음을 비움으로써 얻어집니다.
그러기 위해선 늘 안목을 키워야 합니다. 불법이 아니면 아니면 자기 안목이 열리지 않습니다. 현실에 집착하지 않고 불심으로 살 때 자기 안쪽에 열립니다. 안목을 가진다는 것은 자기 생각으로 바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잘못된 안경을 벗고 바로보는 것입니다.
이젠 남을 위해 살아야 할 때입니다. 내 몸을 그 사람에게 바칠 때 그 사람이 내게로 돌아오는 것 입니다. 오로지 부처님께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버리라고 했던 법, 그 법 하나를 가지고 이 세상을 살때 비로소 우리한 시공에 걸림없이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해인사 계곡의 맑은 물에에 휴지나 비눗물, 폐수따위를 버리면 아무리 좋은 물이라도 흐려져 마실수가 없듯이, 우리 마음도 오염되어 버리면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됩니다. 물이 너무 오염되어 도저히 그 물을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바로 지옥입니다.
탐진치로 오염된 것을 들어내는 것이 「금강경」의 가르침입니다. 몸이 오염된 사람은 남의 물건을 훔치고 살생을 합니다. 썩은 물을 먹으면 피해를 입듯이, 사람도 너무 오염된 사람과 같이 있으면 피해를 입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오염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깨달아, 이 순간부터 오염된 것을 들어내려는 결의를 실천에 옮기면 언젠가는 정화됩니다. 오염 정도에 따라 시간 차가 나겠지만 반드시 정화될 수 있습니다.
히는 일마다 잘못된다고 해서 남을 원망함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전생부터 업으로 인해 오염되어 있어 그러한 것이니 누구를 원망하지 말고 스스로 정화해야 합니다.
오염 제거의 방법은 바로 수도修道입니다. 아상, 인상, 중생상을 버리는 것이 휴지를 줍는 것과 같고 다시는 폐수를 버리지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급 청정수의 몸이 되었기 때문에 누구든 그 물을 마시면 정화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오염되면 다른사람을 정화시킬 수 없습니다. 이제 자신의 잘못된 것을 비우는 작업을 시작해 봅시다. 비움으로써 청정해가 됩시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