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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탕 속에 핀 흰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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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의 부처 - 장휘옥 1997년 07월 185호
연꽃은 진흙탕 속에서 피는 꽃이라는 점에 그 특색이 있다. 연의 뿌리는 진흙 속에 묻혀 있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진흙탕 못이 없으면 연꽃도 없다. 아름답고 깨끗한 것은 더러운 것과 섞여 있을 때 더욱 아름답고 깨끗하게 보인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오탁악세五潤惡世라는 흙탕물 속에서 허우적 거리며 살아간다. 때문에 오탁에 물들지 않은 깨끗한 세계를 원하는 것이다. 번뇌 곧 보리는 대승불교의 기본적 입장이다. 번뇌가 있기 때문에 깨달음도 있는 것이다. 연꽃을 부처, 진흙탕을 중생에 비유하면, 진흙탕이 있기 때문에 연꽃이 있는 것처럼 중생이 있기 때문에 부처가 있다. 이러한 연꽃의 진리에 비유해서 인생과 우주의 참다운 모습을 설한 것이 「법화경」이다.
지금 전해지는 「법화경」에는 286년에 축법호가 번역한 「정법화경」 10권, 406년에 구마라집이 번역한 「묘법연화경」 7권, 601년에 사나굴다 등이 번역한 「첨품묘법연화경」 7권으로 세종류가 있다. 이 가운데 예부터 가장 많이 읽히는 것은 구마리집이 번역한 「묘법연화경」이다.
「법회경」의 산스크리트 이름은 ‘삿다르마, 푼다리카, 수트라’ 다. ‘삿다르마’ 는 ‘올바른 가르침’ 이란뜻이고, ‘푼다리카’ 는 흰 연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것을 해석하면 ‘올바른 가르침의 흰 연꽃’ 또는 흰 연꽃처럼 올바른 가르침’ 이란 뜻이 된다. 축법호는 이것을 「정법화경」이라 번역하고, 구마라집은 「묘법연화경」이라 번역했다.
‘묘법’ -또는 ‘정법’이란 무슨 뜻일까? 중국의 천태대사 지의智趙(538-579)는 묘법을 ‘제법실장’이라했다. 제법실상이란 일체 만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다시 말하면 모든 사물의 진짜 모습을 말한다. 대자연의 법칙에 따라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가을이 되면 낙엽이 떨어지는 것, 이것이 만물의 진실한 모습, 곧 제법의 실상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삼라만상은 각각 고유의 모습과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지만 복잡하게 얽혀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얽혀 있는 속에서도 저마다의 개성을 발휘하여 참다운 조화를 이루는 것. 이것이 불국토다. 이것은 ‘묘법’ 이라고 밖에 부를 수 없는 불가사의한 것이다. 천태대사가 묘법이 곧 제법실상이라한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법화경」은 8권 28품으로 되어 있다. 전반의 14품은 적문迹門, 후반의 14품은 본문本門이라 부른다. 여기서 ‘본’ 이나 ‘적’ 은 무엇을 의미할까? 걷는 사람은 한 사람이지만 그 발자국은 여러 개이다. 이제 걷는 사람은 본이고 발자국은 적이다. 그러므로 「법화경」에서는 무한한 생명의 영원한 존재인 법신불을 본불本佛이라 하고, 중생제도를 위해 역사상에 나타나신 석가모니를 적불迹佛이라 한다. 「법화경」의 후반부인 본문은 아득한 옛날(久遠)에 성도하신 법신불이 설한 것이고, 전반부인 적문은 그 법신불이 중생을 인도하기 위해 이 세상에 석가불로 출현해서 설한 것이라 한다. 적문에서는 제2 ‘방편품’이 중요하고, 본문에서는 제16 ‘여래수량품’ 이 중심이 되어 있다.
‘방편품’ 에서는 제법실상의 내용을 십여시十如是로 설명하여 이것을 일승묘법이라 한다.
십여시란 ‘여시상如是相 , 여시성如是性’ 등과 같이 ‘여시’ 라는 단어를 열 번 사용해서 제법실상의 내용을 설하는 것을 말하는데, 모든 존재의 참다운 모습은 십여시의 상의상관 관계에서 서로 의지하고 도움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한마디로 인과관계, 곧 연기의 법칙을 설한 것이다. 연기의 진리는 부처님의 깨달은 내용이므로 제법실상의 이치는 바로 이 연기의 법칙이다. 이와같이 제법실상 곧 연기법의 이치에서 보면 성문, 연각, 보살의 삼승은 본질적으로 모두 같은 것인데 다만 그 능력에 따라셋으로 구분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성문, 연각, 보살의 삼승은 중생을 일불승一佛乘으로 인도하기 위한 방편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의미에서 삼승방편三乘方便, 일승진실一乘眞賣의 사상을 설한다.
‘여래수량품’ 에서는 역사적 존재인 석가모니는 임시적인 모습이며, 실은 구원실성久遠實成의 영원불멸한 존재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 내용의 핵심이다. 구원실성이란 부처님의 성불이 금생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아득한 옛날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은 이렇게 아득한 옛날에 성불하신 뒤 지금까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사바세계는 물론 다른 세계에도 여러가지 몸을 나투셨는데, 이것은 모두 중생의 근기에 따라 펼친 방편이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시공을 초월히여 상주불변하신 부처님께서 입멸을 보이신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것은 중생이 언제나 부처님을 뵐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기 어려우므로 중생의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해 방편으로 나투어 보이신 것이라 한다.
이 의미를 더욱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여래수량품」에서는 비유를 들고 있다. “한 총명하고 훌륭한의사가 있었는데 그에게는 많은 자식이 있었다. 의사가 외국에 간 사이에 아이들이 독약을 먹었다. 의사가 돌아와 좋은 약을 지어 먹였더니 아이들은 다시 건강을 회복했다. 그러나 독이 심하게 퍼져 정신을 못차리는 이들은 약을 먹으려 하지 않았다. 의사는 약을 먹일 방법을 생각한 끝에 아이들을 불러 놓고 “나는 이제 나이가 많아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죽고 난 뒤에 너희들이 아프면 곤란하니까 미리 약을 준비해 놓을 테니 먹도록 하여라”는 말을 남기고 외국으로 떠나버렸다. 얼마뒤 의사는 사람을 시켜 자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게 했다. 지금까지 아버지에게 의지해 온 아이들은 이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약을 먹지 않은 아이들도 이제는 아무도 자기를 돌보아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곧바로 약을 먹고 병이 나았다. 의사는 아이들이 약을 먹고 나았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하였다.”
아버지가 외국에서 돌아가셨다고 한 것은 방편이었다. 그것은 아이들을 각성시키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아버지는 곧 부처님이고, 아이들은 중생을 의미한다. 우리 중생은 부처님이 입멸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부처님이 남겨 놓으신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게 되었으며 구원을 받는다.
「법화경」의 핵심은 결국, 부처님은 영원불멸한 우주의 생명 그 자체임을 분명히 저걱하여 우리의 인생도 유한한 생명에 사로잡혀 집착하거나 욕심부리지 말고, 그것을 초월하여 영원한 생명임을 자각할 때 인생의 참다운 모습, 나아가 모든 존재의 실상을 깨닫게 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