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 5 . 10. 토
어제 저녁부터 아들의 서기에 꽂혀있는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1」을 읽었다. 한번 읽어보기로 했으면서도 지금까지 기회가 닿지 않았던 책으로 읽고 난 지금 한마디로 말하자면 잘 쓴 책이다. 새로 배운 것도 많다. 다만 계속 가르치려 드는 그의 어조가 조금 거슬릴 뿐이다. 좀더 같이 향유하는 어조였으면 하는 아쉬움과 절에 사는 스님들의 문화재에 대한 ‘무식’ 을 너무 조롱하는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 스님들은 문화재 관리자가 아니다. 스님들은 다는 아니겠지만, 삶의 전부를 걸고 도에 매달린 이들이다. ‘아버지를 만나면 아버지를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일’ 스님들에게 문화재와 다른 사물과의 차이는 극소화 될 수있다.
물론 사찰 안의 문화재 거의가 불교의 성물聖物이니 스님이면 누구나 아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스님들이 용맹정진하는 길에 문화재 애호가 때로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마음의 여유가 있어 스님 자신이 몸을 의지하고 있는 절의 문화재들을 완성하고 보호하고 의미를 되새기고 새 의미를 부여한다면 찬사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 스님도 적잖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님의 본분은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득도와 아울러 다른 사람도 득도를 하도록 이끄는데 있을 것이다. 득도로 이끌지 못한다해도 적어도 남의 아픔을 같이하고 그것을 어루만지는데 있을 것이다. 종교에 있어서, 특히 우리 불교의 골수骨觀인 선에 있어, 인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하튼 선禪의 도량에서 몽둥이가 사라진 것은 애석한 일이다. 실제로 학교에서도 매가 사라지고 있으니 당연한 추세가 이닌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선 도량에도 민주주의 ‘새교육’ 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선승의 몽둥이질은 체벌이 아니고 하나의 의식인 것이다.
들은 바에 따르면 성철스님이 계실 때 어느 회의에서 한 학자가 스님에게 “스님이 주장하시는 돈오돈수란 어떻게 가능합니까? 실제로는 불가능한 것 아닙니까?” 했다 한다. 임제종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 도전은-나는 내가 좋아하는 단하丹霞 화상이나 대혜大慧화상이 걸은 길과 만나기 때문에 임제종에 관심이 많다-주위에서 적당히 끼어들어 화해를 본모양이나 선이 한창이었을 시절 같으면 성철스님이 몽둥이를 그에게 내밀며 “그렇다면 나를 쳐라!” 했을 것이다.
만일 그 학자가 머뭇거렸다면 스님은 즉시 할을 하고 몽둥이를 들어 그를 때렸을 것이다. 그 호쾌한 행동에 때린 사람도 맞은 사람도 통쾌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에피소드는 한국 선의 살아있는 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마음 속에 담게 되었을 것이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