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많은 제자 가운데에서 가장 엄격한 수행으로 뛰어났던 마하가섭은 그러한 수행정신 때문에 흔히들 그를 두타제일(頭院第一)이라고 하거나 행법 제일(行法第一)이라고 후세인들은 일컫는다. 그는 언제나 의식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검박하고 간소한 생활 규율과 엄격한 금욕생활을 지켰다.
그러한 수도정신은 지금도 모든 수도자들의 귀감이되고 있으며 그 뿐만 아니라 선종(輝宗)에서는 그를 부처님의 법을 이은 제일대(第一代) 조사(租師)로서 받들어 왔다.
마하가섭은 마가다 사람으로 바라문 출신이었다. 아버지의 이름은 음택(欲澤)이요 어머니의 이름은 향지(香至)였다.
전둥록(傳燈錄)에는 마하가섭에 대하여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아주 오랜 옛날 비바시불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사부대중이 탑을 세웠는데 탑 안에 외신 불상의 얼굴에 금빛이 조금 파괴되어 있었다. 이 때에 어떤 가난한 여자가 금구슬을 가지고 단금사에게 가서 불상의 얼굴을 장식해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같이 서원을 세우되
「우리들 두 사람은 육체관계(뼈)가 없는 부부가 되자」
고 하였다.
이 까닮에 91겁 동안 몸이 모두 금빛이었고 뒤에 하늘에 태어났다가 하늘의 복이 다한 뒤엔 중인도(中印度) 마가다의 바라문의 집에 태어나서 가섭이라 이름하였다.
마하가섭은 그의 다른 형제와 함께 처음에는 고행과 불을 섬기는 무리에 끼여 었다가 그를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부처님의 교단으로 들어온 분이었다. 마하가 섭이라는 이름도 그의 형제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형이었기 때문에 다른 형제와 구별하여 부르기 위하여 마하(大)가섭이라고 하였다.
부처님의 만년(曉年) 입적할 즈음에 가섭은 마가다국에서 전도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부처님께서는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는 소식을 듣고 가섭은 제자들을 데리고 부처님의 열반지(륨쩔地)에 이르렀다.
너무나 부처님의 열반을 슬퍼하고 있는 마하가섭에게 이미 열반에 드신 부처님께서는 관 밑으로 양쪽 발을 내밀어 부처님의 마음을 부촉하였다.
그 때까지 아무리 다비(茶略)를 행할려고 부처님의 유해가 든 관에 불을 불이려 하였으나 관에 불이 불지않았다. 그러나 마하가섭이 불을 붙이자 곧 불이 붙으며 다비를 할 수 있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곽시쌍부의 일화이고, 부처님이 다자탑상에서 설법하실 때 껄법좌를 어디 갔다 늦게 온 마하가섭에게 자신의 자리의 반을 내어 주며 가사를 둘러 주시며 “이 가사를 너에게 부촉하노니 이 가사를 잘 지니고 있다, 미륵불이 세상에 출현할 때까지 단절함이 없도록 하라”고 부촉했다는 이야기를 일러 삼처전심이라고 하고 곧 이는 마하
가섭에게 부처님의 정법을 부촉했다는 구체척인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체적인 일화보다 가섭존자의 위대한 행적중의 하나는 그가 부처님의 정법이 오래 가지못할 것을 염려하여 칠엽굴에서 최초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5백명의 아라한과 함께 결집(結集) 했다는 사실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결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하가섭은 상수제자(上首弟子)가 될만한 분이며 이땅에 영원히 꺼지지 않게 한 위대한 공덕을 남긴 위대한 성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