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연화사 탐방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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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교현장을 찾아서 - 시명
1986년 05월 51호
나날이 새롭게
을해는 유난이 여륨이 빨리 오는 모양인지 5월에 들면서 30도를 오르내리고 었다.
한 달 전에 봄빛을 픽었던 차창 밖은 초여름의 햇살아래 초록이 한결 싱그럽다. 아카시아 꽃이 바람에 날릴 때마다 달콤한 꽃 향기가 콧끝을 스쳐 온다.
고도(古都) 진주-촉석루와 남강과 논개의 충절이 도시의 전통이자 시민들의 긍지와 자부심인 진주는 서부 경남의 행정의 중심도시이기도 하지만 그런 의미보다는 문화와 예술과 민족혼이 살아있는 도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시대적 상황이 물질과 이권으로 피폐할 때에 진주와 같은 때묻은 고도(古都)가 있음으로 하여 정신문화의 훈향을 맡을 수 있음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런 때문인지 진주에는 전통을 중(重)히 여기는 풍조와 함께 불교의 뿌리가 깊은 도시이다. 따라서 유명한 절도 많고 불심(佛心)도 또한 강하다.
진주의 연화사는 호국사와 의곡사와 더불어 진주를 대표하는 사찰의 하나이다.옥봉북동에 자리 잡고 있는 연화사는 포교의 전당으로 선각자적 길을 걸어왔으며 30여년 전부터 불교 유치원을 개원할 만큼 일찍부터 개화의 길을 달려 왔다.
그런 전통있는 연화사에 원학스님께서 84년에 주지로 부임하고 나서 더욱 포교에 진력하여 최근에는 진주사회에 또 다른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마침 필자가 연화사를 찾아 갔을 때는 초하루 법회를 주지스님이 주관하시고 있었고 이곳에는 초하루 법회 말고도 수 차례의 신도 법회가 있고 그밖에 거사림회, 대학생불교연합회, 고둥부, 아동부 학생회동 법회 일정이 꽉짜져 있어 하루도 한가로운 날이 없다고 한다.
사실 스님은 이미 불교계에서는 불미전(佛美展)에서 최고상의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는 서예인이자 최근에는 동양화까지 국전에 입선할 만큼 상당한 실력을 갖추신 분이며 여러 제방의 강원에서 강의를 하셨던 강백이기도 하다.
스님은 1984년 10월에 부임한 이래 낡아 허물어져가는 연화 유치원에 겨우 27명의 원아 밖에 없어 폐원직전의 유치원을 2세의 포교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2천여 만원을 들여 유치원 중창불사를 시작하여 세면장 및 교실과 운동장을 확장 85년에는 2개 반을 모집 운영하였으며 86년도에는 600여 만원을 들여 급식시설을 확장하고 3개 반을 모집하는둥 명실상부한 유치원으로 발전시켰다.
현재에는 교사 5명에 고전무용 선생님을 특채하여 어린이들에게 개인적 소질을 개발하여 주고 있으며 지난 해에는 어린이들을 정서적 발표력을 길러주기 위하여 학예발표회를 개최하였으며 우리의 전통 예절을 가르치는 등 교육적인 면에서도 온갖 정성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한 열성 때문인지 원학스님은 현재 진주시 유치원 교육협의회 회장직을 맡아 보고 있으며 6월에는 진주 유치원협의회 회보(會報) 발간을 서두르는 둥 바쁜 일정으로 온갖 열고를 쏟고 있었다.
마침 필자가 찾았을 때 스님은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는 특별강연회를 준비하고 계셨는데 진주예식장에서 대학생과 일반 불자를 위하여 진주의 원로 문인파성 설 창수 선생님께서는 「불교와 문학」이라는 제목으로 원학스님은 「육파라밀의 현대적 의미」라는 제명題名)으로 강연 준비를 하고 었었다.
스님은 그런 와중에서도 서울 동국대학원 전시회에 낼 그림을 그리고 계셨고 보다 많은 포교를 위해서 폼 이 한 개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웃음을 지으셨다.
사람을 기르는 교육사업이나 포교사업은 하루아침에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꾸준히 성심을 다하여 실천해야만 그 결과가 얻어지는 사업인 까닭에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만한 원력이 없이는 엄두낼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세상 일에 어디 써 뿌리지 않고 거둘수 있으리오만 특히 사람을 기르는 일은 더욱 그러하리라 생각된다.
늘 이런 포교현장에 와 느끼는 것은 우리 불교계가 포교, 도제양성하고 외치지만 그 실재적 내용에서 보면 여러 면에서 아직도 미비한 점이 많음을 실감하곤 한다.
유치원에서 쓰고 있는 교재의 내용을 보면 한결같이 기독교에서 만든 내용의 책을 쓸 수밖에 없고 부교재도 기독교인이 만든 물건을 쓸 수밖에 없는 실정이어서 실질적인 포교를 위한 기누가 하루 빨리 결성 되어 야겠다는 생각이다.
포교는 지금 같은 조직사회에서 산발적인 몇몇의 위대한 큰 스님이 나온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 거대한 조직사회에서는 어떤 개인이 없는 것 보다는 낫겠지만 보다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고 생각되며 각 분야에 필요한 인재를 갈러내는 일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일임을 느낀다.
혹자는 뭐 유치원 좀 운영하고 포교 좀 한다고 너무 공치사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힘주어 말하고 싶은 말은 유치원이나 운영하고 포교하는 일이 척은 일이라고 하지 말라.
20년 전만해도 기독교 인구는 지금의 반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저들은 지금 날이 다르게 성;행}는데 우리의 교세는 그 반대로 위축되었는줄 아느냐? 이런 일들을 하찮게 여기고 큰 소리만 철줄 알지 실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위인들 때문임을 우리는 누구보다도 잘 알아야겠고 20년 전에 유치원 다닌 아이들이 지금 각 분야에서 자신을 불태우고 있음을 생각할 때 어찌 육영사업이 작은 일이겠는가.
아직까지 유치원 교재 제대로 하나 만들어 내지 못하는 주제에 흥소래 구름 잡는. 이야기만 하고 있는 사람들은 참으로 정신차려야 할 때이다. 경상도 문자(文字)로 「마음 장골이 핫바지에 똥 싼다」
라는 말이 있다. 헛된 이론만 가지고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음을 경계한 말이다.
우리에겐 지금 고담준론(高談홉論)도 필요하고 이론적인 확립도 시급하지만 그 보다는 자신의 일을 찾고, 그 일에 몰두하고 고뇌하며 실질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교육부재(敎育不在)라는 말이 오늘 내일에 논의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왜 숭려교육에서 부터 일반신도 교육과 작은 유치원 교육까지 우리들은 왜 체계있게 되는 않는걸까. 그것은 남이 하는 일에 기뻐하고 감사해주지 못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소인배적 근성 때문이 라고 생각한다.
남이 하는 일은 하찮게 여기는 풍조, 잘하는 사람에게 박수 쳐 주지 못하는 풍조가 있고서는 어디서 공덕이 나오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진주 연화사는 이 시대적 상황에 열심히 살아갈려는 뜨거운 염원이 있었다.
원학스님처럼 폼이 하나만 더 있었으면 하고 말하는 스님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모든 일을 쉬어버련 한도인(閔道A)의 경지도 좋지만 이 사바세계를 무대로 삼고 한바탕 멋있게 연극하는 스님들이 많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떠나는 진주 거리에는 부처님오신 날을 경축하는 플래카드가 여기 저기 펄럭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