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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량(  )의 노래(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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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 종림 1986년 05월 51호
유신론(有빼論)척 종교에 있어서 신은 종교의 중심개념이다. 그러나 신의 본질이나 실재를 증명한다는 것은 인간의 이성으로 증명할 수도 없지만 증명할 수도 없지만 증명할 수 있다고 해도 의미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신은 인간에게 있어서 무엇이냐고 물어야 하고 문제는 신과 인간과의 관계에 있을 것이다.
유신론적 종교에 있어서 신은 초월적 존재로서 인격성을 가지고 피조자에 대하여 구원자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신은 피조물인 인간의 의지로서는 접근할 수 없는 완전한 타자로서 존재하며, 계시로서 인간에게 자신을 나타내고 인간은 계시를 통해서만 신을 인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철학에 있어서 신은 세계의 원리나 궁극적 실제로서의 신을 말한다. 초월적인 존재이기는 하나 인격성을 가지지 않고 이신론(理빼論)이나 범신론%빼論)으로서의 신이다.
종교학에서는 인격적인 신의 기원을 일반적으로 애니미즘(Animism)에 있다고 보는데, 애니미즘은 정령 젤(精훌說)로서 자연 및 자연현상에 영혼이 있다고 믿고 이 영혼은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지고 인간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주술(맨術)과 타부(Tatoo)가 따르는데 주술은 초자연척인 정령의 힘을 벌어 인간이 하는 일에 도움울 받고자 하는 것이다.
자연 감자를 채취하는 일에는 주술이 없고 수렵이나 전쟁 동 위험하고 불확실한 일에는 주술이었다. 타부는 주술의 역 원리로 인간이 금지된 행위를 할 때에는 초자연척인 정령의 제재를 받는다는 것이다. 정형들이 신격화하여 다신교로 정리되고 교체신교(交替補敎)의 과
정을 거쳐 일신교로 발전하게 되었다. 다신교라는 것은 여러 신들 가운데 기원자의 필요에 따라 주산住빼)의 자리가 바뀌는 것을 말한다. 유신론적 종교로서 일신교도 극복되어져야 할 인류진화의 한 발전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심리학에서 신과 악마는 인간의 심리적 기능으로 이해되고, 신이라는 것은 어떤 객체가 루관속으로 들어 오듯이 무의식적인 내용이 객체인 대상에 투사된 것이다. 투사된 객체를 무의식의 심리작용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실제로 존재하는 객관적 대상이나 작용으로 느낄 때 이를 신이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 융(C G.Jhng:스위스의 심리학자)은 영혼이란 무의식의 자율적인 콤프렉스(Complex :강박관념)이고 원시인들의 귀령신앙(鬼靈信때)은 무의식적인 콤프핵스의 직접적인 반영이라는 것이다.
프룸에 의하면 도피의 메카니즘은 일차적인 유대관계의 상실로 인해 사회적으로 고립된 개인이 고독과 무력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차척인 유대관계을 모색할때 적극적으로 자유를 추구하고 자아를 실현하여 고독을 극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보다 우월한 권위를 가진 대상에 자기를 종속시켜 안주하려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태어난 원천으로서 자연, 대지, 어머니와 같은 일차적인 유대관계는 극복되어져야 할 단계인 것이다. 신화적인 설명으로 선악과를 따 먹은 인간은 다시 신의 나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자연의 질서에서 벗어난 인간은 자연의 질서나 본능의 체계대로 사는 동물이 될 수 없고, 일단 횃줄이 끊어진 이상 어머니의 품속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어린 아이로 머물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차적인 관계로서 신, 아버지, 제도나 이념 둥의 초월적인 힘과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어떤 대상에 의지하고 맹목적으로 복종함으로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신이나 대상의 세계에 안주함으로써 일체감을 가지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불안과 회의로부터 도피할 수는 있으나 권위를 가진 대상 자체가 낳은 병폐를 벗어날 수없고 인간이 독립된 자유로운 자아를 가진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하는 대가를 치뤄야 하는 것이다.
소외에 대한 불안 인간존재의 불확실이 마약중독자가 마약에 의존하듯이 어떤 대상에 의지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권위에 대한 복종은 인간 자신의 관계에서도 성립된다. 문제는 자기를 자신으로부터 도피시키는 자기 소외에 있는 것이다.
미친 사람은 완전히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사람이다. 그리고 욕망의 노예가 된 사람들 역시 소외된 상태이다. 자신은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자신이 아닌 욕망이 시키는대로 행동할 뿐이다. 이러한 욕망의 대상이 하나의 우상으로 될때 인간은 그 우상의 노예가 된다. 우상이 피조물인 인간으로

\"소외에 대한 불안 인간존재의 불확실이 마약중독자가
마약에 의존하듯이 어떤 대S빼 으l지하케 하는것이다 ”

서는 어찌할 수 수 없는 절대 타자로서의 신들인 경우 하나의 숭배의 대상이 되고 인간은 그 우상에 복종하고 그 우상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인간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우상숭배(偶像옳拜)에 있어서 개인은 불확실한 인간의 운명에 불안해 할 필요가 없어진다. 인간
의 운명은 개인의 의지나 행위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신의 뭇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다. 시비선악의 분별 역시 개인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신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다.
계시(량示)라는 것은 인간 자신의 능력으로서는 알수 없는 진리나 비의를 신이 인간에게 나타내어 보여주는 것이다. 신의 계시는 자연물 자연현상, 역사적사건, 종교적 의식둥을 매개로 하여 인간에게 꿈이나 환상의 소리 등으로 나타난다. 계시를 받은 자를 샤아만(Shaman) 예언자 등의 여러가지로 이름하고 사제(司奈), 예언(據言), 의무(뽑힐)둥의 사회적 기능을 가
지고 있었다.
계시를 주는 자로서 신(神)이 천사인지 악마인지는 인간의 능력으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고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계시를 받는 자가 생각해서 인간에게 보호적인 것은 천사이고 파괴적인 것은 악마라고 믿었을 뿐이다. 또 신이 인간에게 나타내 보인 계시의 내용인 지식이나 도덕적 판단의 시비선악은 피조물인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신은 무의식이 투사된 것이라고 한다면 계시는 무의식이 의식에 표출된 것인데 이 무의식적인 내용을 이해하고 잘 쓴다면 인간에게 구원을 주는 옳고 선한 것이 되지만 이해하지 못할 때에는 병적인 악의 상태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종교척인 경험에 반드시 유신론적인 인격신이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경험 자체에다가 인격성을 부여할수도 있으나 경험 자체가 인격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선악의 구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무신론척인 종교의 경험에 대해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에 의해서도 논의되고 있고 명상이나 선輔) 둥의 종교적 수행은 인격신의 존재를 전제로 하지도 않는다.
종교적 경험을 감각기관을 통한 지각이나 사고를 통한 추리의 인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환각(幻톨)이라고한다. 일반적으로 환각은 꿈꾸는 중이나 심한 피로 흥분상태둥 감각이나 사고의 작용이 억제되거나 차단된 상태에서 일어난다. 환각에는 환시나 환청동 여러 가지가 있고 이러한 환각은 약물 병리 종교적 체험 둥에서 나타난다. 종교적 의식으로 기도나 송경(論經) 타고(打散) 둥은 감각척인 작용을 차단하여 종교적 환각을 일으키게 하는 의식적 노력의 일종이다. 환각은 주정이나 마약 등의 약물에 의해 쉽게 일어날 수 있고 뇌의 이상이나 정신병리에 의해서도 일어난다.
종교적 체험은 일상척인 것 세속척인 것의 경험이 아닌 이상적인 체험이라는 의미에서 광기의 세계와 비슷하고, 뇌의 이상이나 정신병의 발작시에도종교적인 도취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정신분열증의 환자에 있어서는 종교적 경험과 비슷한 내용을 많이 가지고 있다. 신의 기운 즉 알 수 없는 힘에 휩싸이는느낌은분열중의 피영향체험(被影響#驗)의 형식으로 느끼고 미지의 진리나 지식은 망상이나 착상과 비교되고 망아의 황훌상태는 발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초자연척인 타자의 의식 역시 정신병리학적 체험현상이라는 것이다.
신의 계시를 받은 자로서 샤아만이나 예언자와 광인과 정신병자는 경험된 내용만으로서는 구별할 수가 없다. 그리고 신비적 경험을 체험할 때 느끼는 황홀감이나 환각은 보통의 인간이라면 감정적 정서나 이미지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신적인 어떤 것을 경험한 사람이라도 자아가 약하거나 타자로서의 무의식적인 내용이 강하여 그 힘에 합도되어 정상인으로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할 수 없으면 광인이 된다. 분열중 환자의 경우는 그의 체험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함으로써 경험된 내용을 이념화시키고 창조척활동으로 전환하는데 실때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마치 실패한 신비가(빼秘家)와 같다고 말한다.
이러한 신비적 경험을 어떤 타자와의 만남이라고 한다면 예언자는 정신척인 기능이 정상적인 상태에서 타자를 이해한 것이고 광인은 자기를 읽어 버리고 타자에게 지배되는 것이다. 또 정신병자는 타자와 자기의 이원적인 갈퉁속에 있는 것일 것이다. 예언자의 진위(質짧)는 신의 계시나 경험된 내용으로서가 아니라 건전한 양식(良識)에 의한 창조적 행위나 윤리적 실천둥의 결과로서 밖에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