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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홍왕과 이차톤의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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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 편집실 1986년 05월 51호
·법홍왕과 이차톤의 순교
신라본기」에 의하면 법흥왕 즉위 14년(AD.527)에 소신 이차돈(異次願)이 불법의 홍왕을 위해 순교했으니 이 해에는 달마스님이 인도에서 중국으로 온 해이며 동시에 낭지법사 (郞智法師)가 영축산에 도량을 연 해이다.
당나라 헌종 연간인(A.D.806~820)에 남깐사의 일념(一念) 스님이 「촉향분례불결사문(體香慣훔佛結삼文)을 찬술했는데 이차톤의 순교에 관한 일을 팩 상세하게 기술하였다.
옛날 법흥왕이 나라를 다스릴 때 언제나 이렇게 염원하였다.
“옛적 한나라 명제가 꿈에 감응을 받고 나서 불교가 동쪽으로 흘러 들어왔다. 나는 즉위하면서 부터 백성을 위하여 복을 닦고 죄를 없게 할 사원을 세우려고 염원해 왔다”
그러나 여러 신하들은 왕의 깊으신 뜻은 헤아리지 못하고서 단지 치국(治볍)의 대의만을 준봉하여 사원의 창건을 반대하였다.
법흥왕은 탄식했다.“아아 내가 부덕한 몸으로 대업을 계승하여 위로 하늘의 조화가
순조롭지 못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즐거움이 없으므로 정치하는 여가에 마음을 불도에 두고 있으나 누구와 더불어 동반자가 될까 ! ”
그즈음 안으로 수양에 힘쓰고 또 임금님의 마음을 혜야리는 이가 있어 성을 박, 이름을 염촉厭觸) 즉 이차돈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누군지 알 수 없고 할아버지는 아진(阿珍) 벼슬에 있던 종(宗)이었다. 진염촉은 성품이 대쪽같이 곧고 거울같이 맘은 뜻을 품었으며 성품이 너그럽고 착해 모든 조정의 중신들에게 사랑을 받는 어진 신하였다.

\" 형라가목을버l매목에서
하얀파가한길이나솟아나\"

그때 나이 스물 두살 사인 (舍A)의 직책에 었으면서 용안을 우러러보고 왕에게 아뢰었다.
“신이 들으니 옛 사람은 하찮은초부와 목동같은 미천한 자에게도 슬기를 물었다 하오니 폐하께서는 이 소신에게도 마음에 뜻하시는 바를 물어 주시읍소서. 중최를 무릅쓰고 원하융니다”
왕은 말했다.
“네 알 바가 아니니라”
이차돈은 물러나지 않고 아뢰기
“나라를 위하여 몸을 없애는 것은 신하의 지절이요, 임금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은 백성된 자의 의리입니다. 폐하께서는 소신이 폐하의 뭇하는 바를 그릇 행했다는 핑계를 대시고 소신의 목을베십시요. 그러면 만민이 다 굴복하여 폐하의 교명을 감히 어기지 못할 것입니다”
왕은 이르기를
“살을 저미고 몸을 덜어서라도 한마리의 죽어가는 새를 살려주려하고 피를 뿌리고 목숨을 끊어서라도 가축까지 불쌍히 여기거늘 어찌 나의 뜻을 펴려고 무죄한 사람을 죽이겠느냐, 네가 비록 나의 뜻 을 헤아려 공덕을 쌓고자 하나 죄를 피하는 것이 좋으리라”
“가장 귀중하여 버리기 어려운 것이 각자의 생명임을 아나이다. 그러나 소식이 저녁에 죽음으로써 아침에 거룩한 가르침이 행해져 불일(佛日)이 다시 중천에 떠오르고 성주(聖主)가 길이 편안하시게 된다면 그 이상 무엇을 아끼리이까”
그 말에 왕은 감동하시어 한탄하기를
“난(薦)과 봉(鳳)의 새끼는 어려서도 구만리 하늘에 솟구칠 마음을 지니고, 기러기와 고니의 새끼는 나면서부터 파도를 헤치고 나갈 기세를 품는다더니 네가 이와 같구나 가위 큰 사람의 행실이라 할만하도다”

“ 나라를위하여몸을없애는것은신하의지절이요
임금을위하여목숨을바치는것은백성된자의의리 ”

이에 왕은 짐짓 위의를 정제하고 사방에 두루 형구(形具)를 벌여 놓고 신하들을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문책하였다.
“그대들은 내가 염촉으로 하여금 천경림을 베고 절을 지으려 한다는 소문을 들었는가?”
그리고는 짐짓 못마땅한 태도를 지었다. 그러자 뭇 신하들은 전전긍긍 절대로 그런 일이 없노라고 맹세하였다.
왕은 이차돈을 불러 힐책했으며 목을 베도록 명령하였다.

\" 한칼아래목숨이없어진뒤
절마다쇠북소리반을흔드누나\"

이차돈은 죽음에 임해 맹세하기를 “대성법왕이 불교를 일으키고자 하므로 내 이제 신명을 돌아보지 않고 얽힌 인연들을 버리오니 신령하신 부처님께서는 길조를 내리시어 두루 백성들에게 보이소서”
형리가 목을 베매 목에서 하얀 피가 한 길이나 솟아 을랐다. 갑자기 청명하던 하늘은 컴컴해지며 저녁 햇살이 광명을 감추고 땅이 진동하며 빗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왕은 실패하여 용포자락에 눈물을 적시고 재상은 놀라 조판에 땀이 내배었다. 샘물은 갑자기 말라고기며 자라들은 다투어 뛰어오르고 나무가지는 부러져 원숭이들이 큰 소리로 울었다.
춘궁(春宮)에서 말 고삐를 나란히 했던 친구들은 눈물 흘리며 서로 돌아보고 월정(月底)에서 소매롤 맞잡던 벗들은 애끊이며 석별할 때 판을 바라보고 우는소리 부모를 여윈 듯 했다.
모두들 말하기를 “진나라의 충신 개자추(介子推)가 왕을 위해 다릿살을 베어내던 것도 염촉의 희생적 충절에 견줄 수가 없고, 홍연(弘演)이 배를 갈랐던 일도 그 어찌 염촉의 장렬함에 견줄 수 있겠는가”
라고 했다.
이것은 곧 임금님의 신앙심을 붙들어 세우고 아도화상의 본뭇을 성취시킴이니 참으로 거룩한 성자이다.
머리가 떨어졌던 금강산언 북산에 장사를 지내고 그를 애도하여 좋은 터를 잡아 절을 지어 자추사(刺根좋)라 이름했다.
이로부터 집집마다 불교를 믿고 불도를 행하여 많은 이익을 얻게 되었다. 진흥왕 즉위 5년 서기 544년에 대홍사를 지었고 동왕 8년에는 양나라에서 사리(舍利)를 가져왔으며 진나라 문제 6년(서기 565)에는 사신 유사(劉思)와 함께 승려 명관(明觀)과 함께 불경이 들어 왔다. 이리하여 신라 땅에는 절들은 별처럼 벌여 있고 탑은 마치 기러기의 행렬처럼 늘어서게 되었다.
당(樓)을 세우고 범종을 매어다니 훌륭한 스님들은 세상의 복전(播田)이 되고 대숭과 소숭의 교법은 나라의 자운(慧雲)이 되었다.
타방의 보살이 세상에 출현하고 서역의 명숭이 이 땅에 강림했다.
이로 삼한을 아울러 한나라로 삼았고 사해(四海)를 한 집안으로 삼았다. 그래서 진리를 위해 죽은 거룩한 이름은 월계수로 씌어졌으며 신이한 자취는 은하수에 비쳐졌다.
이 어찌 3성(三聖)인 아도화상파 법흥왕과 이차돈의 위덕을 말하지 않으리요
이에 일연스님은 이차돈 성사의 행적에 이렇게 찬(護)했다.

놀랍다 의를 쫓아
목숨을 가벼이 했음이여
하늘꽃과 흰피는
더욱 더 놀랍구나
어느덧 한 칼 아래
목숨이 없어진 뒤
절마다 좌북소리
장안을 혼드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