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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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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 임철우 1990년 04월 98호
옥창 너머 밤하늘에 달이 둥실 떠 있었다. 빈대떡을 닮은 보름달이 오늘따라 유난히 푸짐하게 보였다. 달을 멀거니 올려다보며 주저앉아 있자니, 춘향은 문득 허기가 느껴졌다.이럴 때 집 뒤란 장광에 담아둔 식혜라도 한사발 향단이년 한테 떠 오래서 훌훌 들이마셨으면 얼마나 좋을꼬, 춘향은 입을 쩝쩝 다셨다.
아까 옥졸이 가져온 주먹밥을 그녀는 손끝 하나 대보지 않고 되물렸었다. 세상에, 그게 어디 사람 먹으라고 주는 음식이람. 그런데도 옥졸은 다른 방 죄수들이 눈치챌까봐 연신 곁눈질을 해가며 그 밥덩이를 건네주던 거였다.
“이거, 보리 안섞인 순 쌀밥으로만 눙친 주먹밥인디, 특별히 자네한테만 주는 것이니께, 남 보기 전에 후딱 먹어치우게나.”
필시 그 옥졸도 그녀의 어미 월매에게서 뒷전으로 떡고물을 얻어먹은 눈치였다. 엄마도 참. 기왕 구워 삶을 바엔, 집에서 준비한 밥하고 반찬을 찬합에 싸서 몰래 넣어주든지 할것이지 … 춘향은 어미에 대한 원망 반, 한편으로 아까 그 주먹밥이나마 못이기는 척하고 먹어둘걸
그랬다는 후회 반으로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데앵. 데에앵 … 멀리 종루에서 종소리가 울려왔다. 오경을 알리는 소리였다. 올 때가 훨씬 지났는데도, 월매는 아직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춘향은 공연히 짜증스레 칼머리 끝을 툭툭 두들겨 대었다.
“아이, 빨랑 좀 오실 게지, 뭘하느라고 이리 늑장일꼬. 혹시 깜박 잠이 들었으면 어쩌지 ? 안그래도 한번 곯아 떨어졌다 하면 업어가도 모르는 엄만데.”
어깨죽지가 뻑적지근하게 아파왔다. 그래도 춘향의 목에 걸린 칼은 옥졸이 매듭을 몰래 느긋하게 풀어준 덕택에, 그런대로 목을 이리저리 돌려볼 수가 있었다. 그 역시 월매가 잽싸게 외교적 수완을 발휘한 결과였다. 초저녁에 찾아온 월매가 옥가락지 하나를 빼어 뒷주머니에 슬쩍 넣어주고 간 뒤, 옥졸은 깔고 앉을 새 거적대기까지 춘향의 옥방에 넣어 주었던 것이다.
얼마 후 교대해 들어온 다른 옥졸들 역시 춘향에게만은 특별대우였다. 사실 남원골 포졸치고 월매네 집 단골 아닌자가 없었고, 또 그들 대부분이 적잖은 술값을 외상으로 달아놓고 있는 처지였던 것이다. 진드기같이 외상값을 제때 안값는다고 월매는 늘상욕을올 퍼부어대곤 했었는데, 오늘은 오히려 그 외상값 덕을 톡톡히 보는 셈이었다.
아하함. 춘향은 한바탕 늘어지게 하품을 터뜨린 뒤 벽에 등을 기대었다. 슬슬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기떼가 어찌나 극성을 부리는 통에 눈을 붙이기가 어려웠다. 바닥에선 개미들이 쉴새없이 기어올랐다. 옥안을 가득 채운 온갖 악취는 콧구멍을 터뜨릴 것 같았고, 옆방 죄수들이 잠에 취해 줄기차게 코를 골고, 이빨을 갈고, 양념삼아 방귀까지 풍풍 뀌어대는 바람에 춘향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때 옥문 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춘향은 고개를 바짝 세우고 귀를 모았다. 문턱에 앉아 졸고 있던 옥졸들이 일어나 문올 열었다. 월매가 해죽이 눈웃음을 치며 살그머니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건 뭣이여 ?”
“아뭇 소리말고 풀어보기나 하시우. 출출할텐디, 입가심하라고 삶은 도야지 고기 몇점 썰어 왔응께.”
월매는 들고 온 보퉁이를 옥졸의 품에 안겨주고 춘향의 옥앞으로 다가왔다.
“엄마, 왜 지금 오는 거유. 갑갑해서 정말 미치겠수. 목덜미랑 어깨가 금방 무너져 내릴 것 같애. 아이구, 허리 무릎 팔다리야”
춘향이 콧잔등을 잔뜩 쩡그리며 우는 소리를 했다.
“에구, 이 철딱서니 없는 것아. 좀 참아라. 지금 만사가 척척 맞아 떨어져가는 중이니께 말이여.”
“그으래 ? 서방님한테서 기별이 왔어 ?”
“기별이 아니라, 아예 제 발로 찾아왔더라. 아니나 다를까, 영판 거지꼴을 해갖고 왔지 뭐냐. 속으로는 우스워 죽겠드라만,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침을 떼고서 마구 구박을 해 줬지. 아이그, 예나 지금이나 그 사람도 어리숙하기는 변함이 없드라. 으흐훗.”
“하여간 엄마내숭은 알아 줘야해. 근데 그이가 장원급제한 건 틀림없겠지 ?”
“틀림없다마다. 어미가 한양의 믿을만한 소식통에게서 받은 확실한 정보라니까 자꾸 그러는구나. 한양바닥에선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소문이라드랑께.”
“세상에 어쩜, 용키도 해라. 그이한테 그런 재주가 다 었었다니.”
“그러기에 내가 뭐라드냐. 이 월매 눈썰미 하나는 매섭잖다든? 이서방이 생긴 것이나 됨됨이가 좀 어리벙하고 어리숙하게 뵈긴 해도 책방에 앉아 그저 융통성없이 글자만 파는 지구력 하나만은 내가 일찌기 알아 보았지. 그래서 널더러 향단이랑 같이 일부러 광한루로 나가 그네를 뛰고 있으라고 시켰던 게 아니냐, 으흐흐훗.”
“맞아, 그땐 멋지게 해냈었잖우. 그 순진한 사람이 날 보자마자 금방 얼이 쑥 빠져버렸으니까 말유. 근데, 참말 그이가 한양으로 데리고 가 줄까, 엄마?”
“나한테 맡기랑께 그래. 네가 수청 거절하고 옥에 갇혔다는 얘기가 세상에 퍼지면 넌 열녀로 청송이 자자하게 될테고, 그리되면 이서방의 부모도 우릴 조금은 달리 생각해 주지 않겄냐? 그러니 내일 아침까지는 내가 시킨대로 연극을 잘해야 한다이. 두고 봐라. 변사또가 생일잔치 여홍으로 널 끌어내어 곤장을 치려하기 직전, 틀림없이 이서방이 어사출도를 할 것이니께. 으흐훗”
월매는 좋아 죽겠다는 양 호들갑스레 웃었고, 춘향이도 절로 입이 찢어졌다.
“아참, 내 정신 좀 봐라이. 얘, 이서방이 방자 데리고 이리로 안왔냐?”
“아아니 ? 난아직 그이, 팔도구경 못했다우.”
“거, 이상타. 잠깐 소피보고 올란다고 나간 사람이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기에, 필시 널 보려고 먼저 와 있겠지 싶어 이렇게 뒤따라온 참인디 …?”
월매는 고개를 가웃거렸다.
“그나저나, 이서방을 보거든 눈치 못채게 잘해야 한다. 암행어사라는 사실은 전혀 모르는 척, 그저 일편단심 서방님을 기다리다가 이제 죽게 되었으나 후회 같은 건 추호도 없노라고, 아주 감동적으로 슬피 울어대란 말이여. 알았제 ?”
“엄마좀봐. 이 춘향이가누구유? 그 순진한 치는 눈물엔 특히 약하거든?”
“그래 그래, 너만 믿는다이. 하지만 기생 딸 주제에 양반댁 안방차지하기가 어디 쉬운 일이냐. 지금까진 각본대로 잘 되었다만, 오늘밤이야말로 우리 모녀의 장래가 결판나는 운명의 순간이란 사실을 부디 명심하거이.”
그렇게 속닥이고 있는데, 누군가 옥안으로 불쑥 들어섰다. 방자였다.
“아니, 어째서 너 혼자만 오는 거냐. 이서방은?”
“큰일났소, 큰일 ! 이서방이고 빈대떡이고 다 소용없게 되었단 말이오‘ 자칫하면 춘향아씨만 진짜로 죽게 생겼소. 내일아침 어사출도는 없을거랍니다. 이서방님께서 남원고을은 생략하고, 곧장 담양골로 내려간다잖소 글쎄. 지금쯤 어사일행은 벌써 몰래 성문밖을 빠져 나가 몇십리 밖에 가있을 거요.”
“뭐, 뭣이여 ? 그건 또 무슨 소리다냐, 으응?”
“우리가 미처 모르고 있는 사실이었었등만요. 이도령이 장원급제를 하긴 했지만서두, 알고보니 그게 다아 뒷전으로 외교를 잘한 덕택이랍디다. 심사위원 중 에 변판서란 어른이 이도령 춘부장하고 오래 막역한 사이라는디, 그집의 사팔뜨기 딸하고 이도령을 혼인시키기로 집안간에 약조를 했었다지 뭐요.”
“아이구머니, 저런 쥑일 놈이 다 있나 ! 그럴 수가! ”
“그런디, 그 변판서란 양반이 누군 줄 아슈? 바로 변학도 사또의 큰아버지라지 뭐요. 그러니 이도령 주제에 감히 우리 고을에 출도를 할 수 있겠수?”
“와이고오. 우린 이젠 죽었구나. 내딸 춘향이만 처녀귀신 되게 생겼어어 ! ”
“난 몰라 몰라 ! 그 바보 천치 머저리 같은 게 날 버리다니 ! 제까짓 게 감히 날 ! 아이구우”
두 모녀는 와악 통곡을 터뜨렸다. 손바닥으로 땅을 땅땅치고, 발을 동동 굴러대고, 정정 눈물 콧물을 흘러대는 통에 옥안은 온통 야단법석이 났다. 옥졸이 황급히 달려와 말렸지만 그녀들은 막무가내였다.
이윽고 한바탕 비통한 울음보따리를 풀어낸 다음, 월매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흐유. 우리 팔자에 되는 일이 뭐 있을라드냐. 어리숙한 푼수이긴 해도 명색이 양반집 종자인디, 장원급제 하고 보니 그녀석이랍시고 막상 딴마음 생기지 않을 리가 만무하제. 그나저나 이제 어떡한다? 얘, 춘향아. 다른 도리 없다. 처음 계획했던 대로, 차선책을 택하는 수 밝에.”
춘향 역시 실망과 분노에 찬 눈물을 닦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엄마. 차라리 잘된 건지도 모르잖우? 솔직히, 나이가 좀 많다는 것 말고는, 사내다운 풍채로 보거나 재물 넉넉하기로 보거나 또 장래성으로 보거나, 변사또 쪽이 그 푼수보담야 몇배 더 낫지 뭐. 더구나 변사또는 얼마 전에 애첩을 잃었다는 소문이든데, 운 좋으면 나라고 그 자리에 대신 들어앉지 말라는 법도 없는 거구. 안 그러우 엄마?”
춘향의 말에 월매는 갑자기 큰 힘을 얻은 눈치였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웃음꽃이 활짝 핀 얼굴로, 영리한 딸의 손목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래그래. 꿩 대신 닭이라고, 참말 “확실하게”선택 잘했다, 잘했어. 날이 밝는대로 변사또님한테 달려가서, 춘향이가 드디어 마음을 “확실히”비웠노라고 기별을 올릴란다. 아이고, 내 정신 좀봐. 얼른 집에 가서 향단이년 보고 네 목욕물부터 뜨끈뜨근하게 데워 놓으라고 시켜야겠다이 ! ”
월매는 벌떡 일어나더니, 어느 새 허둥지둥 옥문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그녀의 뒷모습을 한동안 멀뚱히 바라보던 춘향은 문득 긴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