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야마기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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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땅 좋은 벗 - 안혜령
1999년 01월 203호
서해가 코앞이라 드센 바닷바람앞에 언덕들은 나부죽 엎드렸고, 얌전히 오르내리는 그 결 따라 가을걷이 끝난 밭들이 잇닿아 펼쳐졌다.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구문천 3리. 그 마을에 나란히 줄지어 선 계사를 중심으로 한 5만여 평이 ‘야마기시즘 사회 경향 실현지’, 이른바 산안농장이다. –산안이란 야마기시의 한문식 표기를 그대로 읽은 것이다.- ‘돈이 필요 없는 사이 좋은 즐거운 마을’, ‘나, 모두와 함께 번영한다’는 큼직막한 글귀 앞세우고 반듯하게 앉은 ‘행복회 야마기시회 한국 사무국’에서 굽어보는 농장은 울타리 없이 사방 훤한 가운데 벽돌집 몇 채, 놀이터, 빼곡한 장독들이 정겨워 보인다.
‘행복회 야마기시회’란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어 사이 좋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수 있는 이상적인 사회’를 지향하는 사회운동체로, 1950년대 초, 일본의 야마기시 미요조라는 사람의 제창으로 비롯되었다. 그는 젊어서부터 이상적인 사회의 실현을 구상하며 양계를 포함한 소규모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유기순환체계에 따른 그의 양계법과 그 바탕을 이루는 사상이 알려지면서 이를 본받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53년에 교토에서 야마기사회가 결성되었고, 전인행복운동으로서의 성격이 분명해지면서 58년에는 뜻 있는 회원들이 모여 미에캥 가스카야마라는 곳에서 그 사상을 실현할 생활 공간을 대규모 양계장과 함께 이루었으니, 야마기시즘 최초의 실현지이다. 현재 야마기시즘사회 실현지는 일본에만도 40여 곳에 이르고, 우리나라와 스위스, 브라질, 타이,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미국등지에 퍼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야마기시즘 운동이 시작된 것은 1966년, 수원농민회관에서 열렸던 야마기시즘 특강부터라 하고, 지금의 자리에 산안농장이 들어선 때는1984년이다.
지금 산안농장에는 마흔 아홉 명이 모여 살고있다. 부부가 열 쌍이 넘고, 일흔이 넘은 노인과 갓난 아기도 있다. 세계 곳곳의 야마기시회가 교류하고 있어서, 산안농장의 젊은이 하나가 지금 스위스에, 둘이 일본에 있으며 일본인 셋이 이곳에 와 있다.
삶의 내력이 제 각각일 남남들이 모여 사는 이곳을 이들은 ‘일체사회’라 부른다. “자연과 인위, 곧 천지인의 조화”를 이룬다는 취지대로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내남없이 하나가 되는 사회를 이름이다. 또한 사람은 자연의 일부이며, 그 삶 또한 자연적 행위의 하나일 뿐이라 여긴다. 그러므로 늘 “좀더 자연스러운, 좀 덜 인위적인 삶”을 궁리하는데, 농업이야말로 자연과 인위가 가장 아름답게 어우러드는 일이 아닐까 본다. 농삿일을 통해 자연의 이치에 따라, 만물과 조화롭게 살 줄 아는 힘을 기를 수 있게 된다는 것 이다.
농장은 바로 집이자 일터로서, 일도 생산과 생활의 둘로 나뉜다. 생산부문에는 양계부, 채소부, 공급부가 있고, 생활 부문에는 의식주 관계를 맡은 각각의 생활부와 아이들을 돌보는 학육부가 있다.
양계는 야마기시즘 실현지의 토대이자 주된 소득원으로, 야마기시 양계법에 따라 길러지는 건강한 닭들이 낳는 “생명력 넘치는” 유정란이 주생산물이다. 계사 18채에 나뉘어져 있는 닭 오만마리는, 숨막힐 듯 비좁아 층층이 쌓인 ‘닭장’안에서가 아니라 흙바닥에서 “자유롭게, 사이 좋게” 살고 있다. 널찍널찍 띄어진 계사들은, 앞 뒷면을 철망으로 두르고 천정에 창을 내어 햇볕이 잘 들고 비람과 공기가 잘 통할 수 있도록 지어졌다.
양계장은 자연과 인위의 조화를 가장 멋지게 이루어낸 “작품”이라고 자부하는 것인즉, 닭도 행복하고, 땅도 기름지게 되고, 달걀을 먹는 사람도 건강해지는 이 일이 농장 식구들에게는 여간 즐거운 것이 아니다. 그러니 모이를 줄 때면 “모입니다”. “자료 왔어요”하고 닭에게 절로 말을 건네게 되나 보다.
병아리 때부터 현미와 채소, 신선한 풀들을 사료로 먹고 자라는데, 닭들이 하루에 쏟아내는 배설물만도 엄청난 양일 터이나 냄새가 심하지 않은 것은, 계사 바닥에 볏짚과 왕겨, 나무 부스러기 틀을 넣어 주어 이들이 함께 발효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발효된 닭똥은 훌륭한 유기질 비료로써 농장 밭의 거름으로 활용되고, 그 채소는 식구들의 양식이 되거니와 제주도를 뺀 전국의 활용자들에게로 공급된다. 소비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활용해 순환시킨다는 뜻에서 소비자 대신 활용자라 한다.
달걀과 갖가지 채소, 농산 가공물들을 공급해 얻는 수입은 “먹고 사는 데 충분하고, 다음 생산을 위한 준비를 할 만큼”된다고 한다. “풍부한 물자와 건강과 친애의 정으로 가득찬” 사회를 행복한 사회로 보는 이곳의 개념대로라면 그 기본조건이 충족되는 셈이다. 그러나, 자유롭지 않다면 물질은 풍족할지라도 마음은 행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바라는 행복한 사회의 참모습은 개개인 “마음의 자유를 바탕으로” 한 사회, “자유의 지대로 사는 사람들이 이루는 자유로운 사회”인 것이다.
모두가 자유로운 개개인인 만큼 누구도 특별한 사람일 수 없으니, 단체나 모임이면 으레 갖추는 공식적인 조직이나 대표가 없다. 다만 현실적인 필요에 따라 윤성열 씨가 ‘산안농장 영농조합법인’ 대표로 되어 있을 뿐이다.
마음바탕이 그래서 일까. 이곳 사람들의 일상 생활이나 일하는 품은 한갓져 보인다. 특히 오전 식사가 끝나면 으레 낮잠 한숨씩 자는 것은 여간 부러워 뵈지 않는다. 이곳의 식사는 오전과 오후 한 번씩으로, 하루 두 끼를 먹는다.
이 ‘일체사회’에서 주목할 점은 내가 집착하고 있는, 나를 옭아매고 있는 모든 것을 “풀어 놓음”으로써 ‘무소유’를 실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를 고집하지 않고, 내 가진 물질과 수단, 재능을 다 풀어 공동의 재산으로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개인이 제 소유로 할 수 있는 대상은
없다”는 생각에서 “혼자서도 여렷이서도 가지지 않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 야마기시회의 “풀어 놓기”인데, 소유욕을 부정하는 이 대목에서 더러
오해를 받기도 한다. 아이들 문제에 이르면 이 의혹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니, 이곳 아이들은 대여섯 살까지는 부모와 함께 살고, 그 뒤에는 아이들 끼리 따로 사는 집으로 옮겨간다. 아이들 문제는 뒤에 다시 짚어 보기로 한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면, 무아와 무소유란 바로 불가의 가르침인즉, 평생 비루 한 벌뿐이던 부처의 삶을 돌아보면, 이 치열한 자본주의 시대에 그 삶을 실제로 살려내고 있는 이들의 결단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러므로 이곳에서는 돈이 필요 없다. 각 실현지의 생산물이 필요에 따라 다른 실현지로 거저 공급되며, 실현지 안에서는 각종 물품을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만큼 쓸 수 있다. 원하는 물건이 없을 때는 그 이름과 수량을 적어 놓으면 연찬에서 검토되어 구입 여부가 결정된다. ‘연찬’을 짚고 가야겠다. 연찬은 이 농장이 힘을 얻는 일상적이고도 중요한 생활방식이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 그 자리에서 최고 최선의 것을 함께 찾아가는 것”이라는데, 아침에 눈 떠 잠자리 들 때까지 ‘전생활이 연찬의 연속’이다. 식구 모두가 모이는 공식적인 것들도 있고, 개인적으로 부서를 옮기고 싶을 때, 훌쩍 여행을 가고 싶을 때, 심지어 음식을 만들 때도 연찬을 통한다.
현지 안에서는 각종 물품을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만큼 쓸 수 있다. 원하는 물건이 없을 때는 그 이름과 수량을 적어 놓으면 연찬에서 검토되어 구입 여부가 결정된다. ‘연찬’을 짚고 가야겠다. 연찬은 이 농장이 힘을 얻는 일상적이고도 중요한 생활방식이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 그 자리에서 최고 최선의 것을 함께 찾아가는 것”이라는데, 아침에 눈 떠 잠자리 들 때까지 ‘전생활이 연찬의 연속’이다. 식구 모두가 모이는 공식적인 것들도 있고, 개인적으로 부서를 옮기고 싶을 때, 훌쩍 여행을 가고 싶을 때, 심지어 음식을 만들 때도 연찬을 통한다.
연찬은 ‘무고정 전진’이라는 야마기시회 철학의 바탕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고정된 것이 없으니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도 없다’는 생각은 불가의 연기법을 연상시키는데, 연찬을 통해 진실로 다가갈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 만큼 이곳에는 명문화된 어떤 규제나 규정도 없으며, 일상의 한 생각, 한 행위조차 연찬을 통해 새 의미를 새겨 간다.
농장초기에 소주를 궤짝으로 사다 놓고 마시기도 했던 것이 지금은 아무도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그런 예이며, 지금은 몸에 익은 하루 식사 두 끼가 세끼 또는 한끼로 바뀔 수도 있는 일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종종 나름대로 이곳 사정에 관한 정보를 안고 찾아온 바깥 사람들 “확 바뀐 분위기”에 놀라기도 한다.
결국, 연찬이란 제 마음 다스리는 수행이 아닐는지. “사의, 개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공의, 공동의 뜻을 실천해 나간다”는 ‘묵묵시적’인 원칙을 좇아가는 과정에서 “자신과 남의 진면목을 찾으며”, 그리하여 허울뿐인 “사이좋음”이 아니라 진실로 나아가는 ‘길’이라 함이 어떨지.
아이들은 어떨까. 이곳에서 아이들은 뭘 가르쳐서 키우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배우며 크는 독립된 존재다. 따라서 교육이란 말을 씩 않고 학육이라 하는데, 그 가장 큰 목적은 자립적인 삶이며, 어른들이 해줄 일은 그에 필요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이라 본다. 어른 또한 그 환경의 하나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 내용이나 목표가 기존 교육과는 판이한 만큼 자체적인 학교를 생각하고는 있으니-일본 야마기시회에서는 자체 내에 학원이란 것을 운영하고 있다. 아직 그럴 단계는 아니어서 아이들은 일반 유치원과 학교에 다닌다. 일단 스무살까지는 농장에서 책임지고 있지만, 그 뒤의 삶은 이이들 책임이다. 이 농장을 떠나고 싶으면 그리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대여섯 살 때 부모 품을 떠나는 것은 “풀어 놓기”의 한 단계다. 아이는 부모를 풀어 놓고, 부모는 아이를 풀고, 보기에 따라 “비정하다” 할 만한 처사일 수도 있으나, 가족 관계를 끊는 것은 아니어서 가족 연찬도 있고, 숙소도 바로 옆이다. 도리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집착이 자칫 아이를 그르치기 쉬운 현실을 생각하면 그 뜻을 새겨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곳 아이들로서는 제 부모와 떨어져 자는 외로움보다는 마흔 명 넘는 농장 식구들 사이에서 생활하며 얻는 바가 더욱 큰 것 같다. 강강술래니 윷놀이니 “여럿이니까 할 수 있는 게 많아 즐겁고”, 우스개 소리로 “늙은 닭은 젊은 닭처럼, 젊은 닭은 늙은 닭처럼” 서로서로 배울 점 찾아 존경하고 아끼는 이곳 생활에서 사이 좋음의 참뜻을 절로 몸에 익힌다. “야단쳐 주시는 어른들이 많다는 게 제일 좋다”라는 말이 그래서 나오는 것이리라.
이런 인간 관계 속에서 오만 명 땅을 놀이터 섬아 마음 것 뛰어 놀고, 닭장 일이나 농삿일을 거들며 자연과 노동의 의미를 스스로 체험하는 실물교육이 나날이 이루어지니, 이만한 참 교육이 따로 있을까.
저녁이면 로비에 모여 함께 텔레비전을 보거나, 가끔은 노래방 기계 앞에서 노래 실력 뽐내는 이 “사이 좋은 한 가족”의 생활은 여러 모로 바람직한 대안들을 보여 주는 것 같다. 나를 풀어 천지인의 조화를 이루며, 물질이 풍족하되 그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공의를 실행함이 다 이 물질만능시대에 절실히 필요한 삶의 자세들일 터. 현실적으로도, 다양한 일상들이 전문직업으로 구분되어 온 식구가 참여하니 실업이란 것이 없으며, 아울러 노인 문제니 여성문제에서도 눈여겨볼 점이 많은 곳이다.
여기 식구가 되는 일-이를 참획이라 한다-은 간단치 않다. 먼저 제 삶의 목표가 야마기시즘과 한 방향이어야 할 테고, 7박8일의 특별강습연찬 회 (특강)와 14박 15일의 연찬학교 과정도 거쳐야 하며, 식구들 모두의 합의를 얻어야 비로소 들어올 수 있다.
“자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장 본질 척인 것”을 주제로 삼는다는 특강은 현재 180회를 치렀다. 일반인도 꾸준히 찾는 한편, 80년대에는 주로 학생운동이나 노동계, 농민회 등에서 일하던 이들이 많았던 데 견주어 이즈음에는 환경운동이나 생명 운동하는 이들, 공동체나 교육문제에 관심 깊은 이들이 주류를 이룬다.
산안 농장은 터 잡고 이제껏 생활기반 닦는 데 열중해 왔다. 그러나, “한군데에 뜻 맞는 이들끼리 모여 사는 것”만을 능사로 여긴 척은 없다. 야마기시회의 목표가 “모두와 함께 번영”하는 것임을 상기한다면, 이들은 “저 혼자 행복해서는 안 된다”고 도리어 괴로워할 사람들이다. “지금은 가장 기초적인 단계”일 뿐이니, 여지껏도 농장 문은 활짝 열려 있어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렸지만 앞으로는 좀더 적극적으로 농장문을 열어 제치려 한다
특강과, 방학 때면 문 여는 계절학교인 ‘어린이 낙원촌’, 이곳의 큰 행사인 5월 5일의 ‘야기시즘사회 축제’를 꾸준히 키워나갈 일이 우선 일터이고, 자체 학원을 세우고 실현지를 확산하는 것도 앞날의 계획이다.
“모든 사람이 사이 좋게 즐겁게 사는 삶”을 알리는 일에도 나설 생각이다. 거개의 사회 단체들이 본질적인 문제에는 둔감한 채 현상 대처에 급급해 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는 하나, 손잡고 일할 것도 마다지 않는다. 매사 그렇듯이 목표에 이르는 그 과정이 즐겁고 행복한 일이니, “천천히라도 진짜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