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불교출판의 문제점들
그러나 이처럼 불교출판이 83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크게 향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보면 아전인수(我田引水)격인 하나의 과찬에 불과하다.
그런대로 충실한 몇 권의 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책들이 내용이나 편집 장정에서 빈약할 뿐더러 출판사 또한 출판의 기본을 무시한 불성실하고 무책임한 자세로 책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해마다 수십종의 불교서적이 나오고 있지만 새로운 창작이나 저술은 드물고 거의가 신문이나 잡지 사보(寺報) 등에 발표된 것과 이 책 저 책에서 긁어모아 짜맞춘 재탕 삼탕들이거나 책의 구성도 제대로 못 갖춘 법보시 형태의 조잡한 출판물 그리고 무책임하고 몰양심적인 번역물들이 원저작도 밝히지 않은 채 서점가를 횡횡하고 있다. 게다가 한결같이 영세성을 면치 못하는 출판사의 재무구조, 그로 인한 체계적이고도 짜임새 있는 기획의 결여, 필자와 역자난(難) 일반출판에 비해 제작비의 과다지출, 그라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장과 독자층의 한계 불교도들의 책에 대한 의식구조 등 4∼5중(重)으로 겹쳐있는 구조물들이 한층 더 불서출판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좋은 책이 나오지 못하는 데에는 피자난에도 기인(基因)하고 있다. 현재의 필자로서는 우선 숫적으로도 충실한 한권의 책을 구성할 수 없을 뿐더러 그나마도 불량한 원고들이 일쑤이다. 또한 불교서적 출판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번역물들의 ⅔ 정도가 오역(誤譯)과 날림번역으로 점철되어 있다. 따라서 독자들이 믿고 읽을만한 책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필자가 경영하는 민족사의 경우도 안심해도 좋을 번역은 몇 안되고 대부분의 번역이 원서와 일일이 대조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개중에는 아예 날림번역이라든지 대리번역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역자로서는 당연히 개인의 명예가 걸린 문제이고 출판사 역시 공신력과 직관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양쪽 모두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듯이 버젓이 출판하고 있다.
문제는 필자나 역자들이 대충 처리해 넘기는 건강치 못한 사고방식과 출판사측의 무성의한 태도 그리고 불량한 원고들에 대한 과감한 수정이나 정정을 요구하지 않은 채 책을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교도들의 대부분이-스님을 포함하여 -책을 선택하는 나름대로의 기준을 갖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지금까지 나온 불서(佛書) 중에서 불교도들이 읽지 않으면 안될 명저(名著)나 양서(養書)라 할만한 것이 과연 몇권이나 있었던가? 앞서도 말했듯이 여기저기서 짜집기한 조잡한 출판물과 무책임한 번역물 등이 불교서점가를 주도해 왔으니 말이다.
사실 불교서적에 있어 양서와 악서(惡書)의 기준은 꽤나 애매모호하다고 할 수 있다. 까닭인즉 대부분의 불서들이 너나할 것 없이 “부처님의 말씀이요 조사 선지식들의 법구”라는 형태의 거창한 현수막을 앞세우고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교서적에는 악서란 아예 없고 모두가 양서가 되고 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지옥 갈 소리 같지만 불서 중에는 그야말로 가두 판매대에나 어울릴 것들이 허다하다. 때로는 책을 사러오는 사람들 중에는 “누가 지은 책” 또는 “무엇 무엇에 관한 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뭐 어떤 책이 있다던데 그런 것 없느냐”라는 식으로 물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사람은 책을 사러 책방에 온 것이 아니라 잡화상에 온 것이다. 이제는 불교인들도 정작 어떠한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냉철한 시각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불교 계통의 신문이나 잡지 등에서 종래의 무작위적 신간 소개에서 탈피해 양서를 중심으로 한 선별적이고 구체적인 소개가 이루어져야 한다. 불교인들의 기준없는 불서 선택과 함께 하루 속히 개선되어야 할 점은 무턱대고 책값을 깎으려드는 풍토이다. 여기엔 특히 일반 불교인 보다 스님들이 훨씬 적극적이어서 필자 역서 법복의 위력 앞엔 어쩔 수 없이 한숨 지을 때가 많다.
그런데 이러한 불교인들도 똑같은 책이지만 교보나 종로서적 등 일반서점에서는 꼬박꼬박 제값을 다 주고 사면서 하필 불교동네만 들어오면 깎을려고 하는지 알 수 없다.
불교인들의 이러한 의식구조, 이것이 책에만 한정되어 있지는 않다. 불교의 구석구석에 깊이 뿌리박고 있으며 그러는 한 불교는 골동품적 가치만을 가지게 될 뿐 이 시대나 사회에 소용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또 다른 문제점으로서는 유통구조의 합리를 들 수 있다. 이것은 물론 순전히 출판사와 서점에 관계된 일이지만 지금과 같은 불교서적의 유통구조로서는 원활한 판매활동이나 구매활동이 이루어질 수 없다. 대부분의 불교서적들은 조계사 앞 서점이나 일부 대형서점에만 꽂혀 있고 그 외의 군소 서점이나 지방의 불교서점에는 상당히 시기가 지나간 책들, 최근의 수필, 소설 등이 있을 뿐 불교서적의 절반 이상이 들어오고 있지 않다. 따라서 불교에 관심있는 일반인이나 불교인들은 불교서적을 손쉽게 구입할 수가 없으며 많은 독자들은 손쉬운 구입방법을 출판사측에 요청하고 있다(민족사 독자 카드 통계에 의함).
현재 불교서적 유통업(총판이나 도매상)에 참여하고 있는 곳으로는 운주사, 다보, 다보사 등이다. 이 세곳 중에서 순수하게 불교서적만을 취급하는 곳은 운주사 뿐이다. 운주사는 현재 상당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불교출판사나 서점들로부터 서서히 인정을 받아가고 있다. 따라서 불교출판에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은 성실한 총판이나 도매업체를 적극 지원 협력해서 원활환 공급과 수요로서 경영상의 호전과 넓은 독자층을 계속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지적해야 할 문제로 출판의 전문성과 종합 출판이라는 문제가 일반 출판사에 있어서나 불교서적 출판사에 있어서 큰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대다수의 출판사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성격이나 전문성을 살리는 일에 그다지 열성적이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불교라는 극히 한정된 분야에서 다시 세분화하기란 자료의 빈곤, 독자층의 한계 등으로 인해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불교출판에서도 어느 정도 자기 출판사 특유의 전문성을 살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출판사로서도 필자나 독자들로부터 꾸준한 인정을 받을 수가 있으며 독자들에게도 좋은 책을 계속 선 보일 수가 있을 것이다.
또한 불교서적을 펴내는 출판인들의 지적수준도 현재와 같은 입문정도에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 그 정도의 불교지식으로 충실한 책을 구상하고 기획하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불교출판인들 역시 불교학 전반에 걸쳐 꾸준히 지식을 습득하고 스스로의 자립향상에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3. 불교출판의 과제와 전망
워낙 첩첩산중으로 겹쳐있는 불교출판의 여러가지 문제들을 하루 아침에 고찰하고 개선한다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오늘날 불교출판의 현실과 문제점은 앞에서 대충 살펴보았고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와 전망에 대해 맺음말을 겸해서 살펴볼까 한다.
불교출판이 많이 활성화되어 좋은 기획의 책들이 출판되고 있다고는 하나 실제로 출판의 기준이나 일반출판 또는 기독교 서적과 비교해 보면 내놓고 자랑할 만한 것도 못된다. 단지 최근에 들어와서 그런대로 괜찮은 책들이 나오고 있으며 특히 어려운 실정에서도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불교서적이 출판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이고 희망적인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변에는 책임있는 책을 만들어야 할 출판인들의 자세와 빈곤한 재정에서 오는 출판사의 영세성 필자난과 역자난으로 인한 내용의 부실, 무엇보다도 고쳐야 할 불교인들의 의식구조와 책을 읽지 않는 습관, 무턱대고 깎아대는 악습, 독자층과 시장의 한계 등이 서서히 개선된다면 불서출판이 그렇게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좋은 책은 독자들이 찾아온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