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안거가 지나면 곧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서늘한 그 바람이 잎을 떨군 미루나무의 야윈 모습은 가을이 우리 곁에 다가왔음을 알려 준다.
청량사는 해인사의 산내암자 가운데서 가장 멀리 있는 암자이다. 흔히 사람들은 청량사 뒷산을 매화산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데, 본디 이름은 천불산이며 해인사에서는 이 산을 해인사의 남쪽에 있다 하여 남산이라고 부른다. 청량사는 이 산의 남쪽 기슭, 월유봉月留峰 아래 자리하고 잇다.
청량사는 원당암과 더불어 오랜 역사를 간직한 암자로 통일신라시대의 암자이며 처음에는 해인사와 무관한 독립된 사찰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불상이나 불탑, 석등들이 통일신라 전성기인 9세기쯤의 것이고 또 삼국사기에 따르면 최치원 선생이 즐겨 이 곳에 왔다는 기록으로 보아 청량사의 초창 연대를 신라 통일 뒤인 9세기쯤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 뒤로 중년에 폐사 되었다가 1811년에 회은悔隱대사가 중건하였는데, 삼 년 동안 법당과 요사를 지었고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조금씩 퇴락한 가람을 고쳐 오다가 최근에는 원타화상이 도량을 완전히 해체 복원하여 대가람을 이루어 옛 모습은 거의 찾을 길이 없다.
필자가 70년대 퇴설당에서 지낼 때, 동안거 용맹정진을 끝낸 뒤 도반들과 남산 제일봉을 거쳐 눈에 미끄러지면서 어울려 갔던 아담하고 조금은 옹색했던 옛 가람은 자취도 없고 이젠 번듯한 새 가람이 서 있다.
여름날 청량사 앞마당과 평상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면 유난히 별이 많았다. 법연스님은 별을 쳐다보며 마당을 거닐다 발을 헛디뎌 축대에서 떨어졌는데 기이하게도 몸에 상처하나 없던 그 유명한 돌 축대, 큰 호두나무와 잔잔한 대나무 그리고 이가 시리도록 시원한 물맛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런저런 추억들이 많은 청량사가 해체 복원되어 한편으론 기쁘고 한편으론 슬프다.
새록새록 솟아나는 자잘한 보물이 두 점이나 있다.
먼저 국보 266호인 삼층석탑으로 총 높이가 485센티미터로서 전형적인 통일신라 석탑 양식을 보이고 있다. 두 단으로 이루어진 기단석 위에 방형方形석탑을 이루고 있다
상하기단의 우주隅柱와 장주掌柱는 3∼4개로 이루어졌고, 갑석甲石 가운데에는 몰딩Moulding을 나타내어 상층 중석을 받고 있으며 탑신에는 우주만 있을 뿐 다른 장식은 전혀 없다. 옥개석의 층계 받침은 5단이며 낙수면落水面은 매우 완만하고 전각의 반전은 심한 편이다. 상륜부는 노반만 남았고 잘 처리된 탑의 각부는 아름다운 조화를 보이며 조각 수법도 경쾌하며 명량하여 우아한 가작佳作이라 할 만하다.
그 앞의 석등은 9세기의 석등을 대표할 만한 수작으로 보물 제 253호이다. 석등의 총 높이는 340센티미터이다.
넓직한 사방 지대석 위에 팔각의 하대석을 놓았으며 팔각 측면석에는 안상眼象을 새기고 또 안상 안에는 각면 사자를 부조했다. 팔각 대석 위에는 겹으로 각기 복련을 조각하고 팔각마다 삼산형三山形의 귀꽃을 조각했다.
연화대 윗면에는 소박한 문양의 괴임석이 있으며, 그 위에 다시 24잎의 복련을 돌렸다. 중대석은 고복석과 같은 형식의 간주로 상하 양단에 연잎 조각과 꽃무늬를 가득 조각했으며 중앙부에도 꽃무늬를 장식하여 매우 아름답다. 상대석은 여덟 잎의 큼직한 앙련仰蓮을 조각했고 화석은 4면에는 사천왕을 양각했다. 옥개석은 각 전각에 반전이 있어 경쾌하며 옥개석 위에는 보개로 보이는 석재가 얹혀 있다. 이 석등은 9세기 후반기의 장식적 수법이 우수한 석등이다.
또 하나의 보물로 여래좌상이다. 이 불상은 광배와 대좌를 지녀 완전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보물 제 265호이다.
불상의 높이는 210센티미터이고 대좌 높이는 75센티미터로서 통일신라 경주 석굴암 불상의 유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4각형 대 위에 결가부좌한 불상의 머리는 나발을 보이며 위의 육계는 현저히 낮아지고 이마는 넓고, 코와 입과 눈은 조금 작으나 강한 의지를 나타내며 목에는 3고가 뚜렷하며 가슴은 잘 발달된 편이고 손과 가부좌한 다리 등에서 전체적으로 풍기는 인상은 풍만하다.
법의는 우견편단이고 광배는 주형거신광舟形擧身光이며 두 가닥의 볼록 선은 두광과 신광을 표시했다. 외부에는 비천문과 불타오르는 문양을 조각했고 두광 위에는 화불을 부조했다.
대좌는 상대가 모난 받침의 각형이고 중대는 짤막한 높이의 4각형으로 각 모서리에 우주가 있고 각면 2구의 보살을 부조하여 모두 8구의 보살상을 나타내고 있다.
보살은 손의 위치가 모두 다르며 각기 공양물을 받들어 올리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모두 원광을 지녔고 몸은 영락 등으로 장엄하여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를 보이고 있다. 그 수법이 퍽 정교하고 아름답게 나타나 있다.
법당 마루 아래 있는 하대석은 상대석과 같은 크기로 일면 4구의 안상을 넣었고 그 밑에 연화문을 조각했다. 또 연화문 아래에는 1면에 2구의 비천상을 보이고 있어 격조 높은 불상 조각의 수법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의 사찰 시리즈「해인사」에서 전제
청량사는 십 년 전만 해도 퍽 한가로운 암자였다. 하루종일 있어도 꽃밭 위로 벌나비나 오가거나 새들이 날아올 뿐 인적이 드문 산중 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등산 붐이 일어나면서 등산객들이 천불산에 몰리고 특히 사찰 입장권이 끊지 않아도 되는 이점을 이용하여 그쪽으로 관광객들이 몰려 주말은 말할 것도 없고 평일도 이제는 조용하지 않다. 관광객이 몰리니 각종 장사들이 전을 벌리고 대형 횟집이나 갈비집 들이 성행하는 것을 보면 새삼 격세지감과 우울한 감정이 든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막 피어나는 한 무리의 들국화만이 옛 같이 그 순수를 지키고 있다.
시명스님은 통도사 극락암에서 출가하였다. 일찍이 통도사와 해인사에서 교무 소임과 월간「해인」편집장을 맡은 바 있으며, 지금은 해인사 포교국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