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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와 불자들의 현명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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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7년 11월 189호
12월 18일은 앞으로 오년 동안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대통령을 선출하는 중요한 선택의 날이다. 이 날의 선택은 21세기를 맞이하는 한국의 장래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지도자를 잘못 선택했을 때에 다가오는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우리 국민은 지난 시절 피부로 절감해 왔다. 한 가정의 가장이 그 역할을 못하고 잘못된 길을 걸을 때 그 가정이 파괴되는 것과 같은 경우가 나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러한 확인을 한 것이 지난시절 우리 국민이 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어낸 유일한, 그리고 소중한 성과였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 국민은 또 다시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앞으로 이 나라를 이끌어 갈 새로운 지도자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을 한 달 남짓 남겨 놓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새로운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끌벅적하다. 전에 없이 후보가 많이 등장해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이번 대통령 선거가 지금까지의 선거와 두드러지게 다른 점은 영남권에서 후보를 내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후보마다 영남의 표를 얻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때 아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기승을 부리고 있고, 영남권의 주요 사찰에는 여야의 후보군이 줄을 잇고 있다. 영남권에서 불교세가 강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불교표를 얻는 것이 영남의 표밭을 일구는 중요한 관건일 것이므로 후보의 사찰 방문은 이미 예상된 일이기는 하다.
옛 사지를 복원해 주겠다는 후보, 지신을 유신론자라고 하면서도 스님과 법당에서 삼배를 올리는 후보가 있는가 하면 가족 가운데 스님이 있음을 내비치는 사람, 종교에 평등한 점을 누누이 강조하고 부처님이 참으로 위대한 분이라고 역설을 하면서도 법당의 부처님 앞에서 결코 존경심이 어린 것 같지 않은 어설픈 합장을 히는 후보도 있다.
지난 92년 대선에 이어 이번에도 후보 가운데 불교신자가 없어 불교표는 영남표와 마찬가지로 부동표가 많을 수 밖에 없고 이를 모를리 없는 후보들은 당연히 불교표밭 갈이에 심혈을 쏟을 수밖에 없는 정황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분명한 사실은 일천만 명이 넘는 불자들의 선택이 이번 대통령 선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이다. 불자들의 현명한 선택이 그 어느 때보다도 요구된다. 그렇다면 불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솔직히 말해 여기에 정답은 있을 수 없다. 종교적 신념으로 후보를 선택할 수 있다면-물론 이는 결코 바람직스러운 것은 아니지만-불자 후보를 선택하면 되겠지만 아쉽게도(?) 다섯 명의 유력한 후보군에는 불자가한 사람도 없다.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의 부인이 진여심훨如心이란 법명을 가진 불자이고, 조순 민주당 후보의 부인이 강남의 봉은사와 능인선원에 열심히 나가는 불자라는 것이 불교와 대권후보들간의 반연이라면 반연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결국 불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어느 후보가 편항된 종교관이 없는지, 자신의 종교에 대한 도그마를 가지고 있지 않은지를 면밀히 살펴서 가장 공정하고 평등한 종교정책을 펼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선택하는 수 밖에 없다.
물론 그 선택은 후보들이 늘어놓는 대불교 공약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그 후보의 인물됨과 평소의 행동거지 등이 충분히 고려돼야 할 것이다.
지난선거에서 ‘내 종교가 소중하면 다른 사람의 종교도 소중하다’ 는 식의 발언을 믿었다가 선거가 끝난 뒤 불교가 당했던 종교불평등 정책에 의한 피해를 다시 입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또 후보들의 종교, 종교관과 함께 우리 민족문화에 대한 인식수준을 아울러 살피는 것도 우리 민족문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불교를 믿는 불자로서는 반드시 주시해야 할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불자들이 주의해야 하는 것은 후보의 종교나 종교적 성향만으로 지지 후보를 선택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스럽지 못한 일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지지 후보를 고르는 여러 가지 요소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어느 후보가 불교에 잘해 줄것같다거나 불교의 이익을 잘 보장해 줄 것이라는 소아小我적 선택 기준보다는 가장 형평성 있고 평등한 종교정책을 펼 것인지를 살피는 대아大我적 판단이 필요하다. 종교적 관점에서 지지 후보를 고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선택의 기준은 어느후보가 정보화와 세계화 시대라는 21세기를 선도해 이끌어 나갈 만한 자질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정확히 판단하는 일이다. 따라서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각 후보들 관련 보도나 문건들을 그냥 스쳐 보낼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와 민족의 앞날에 중요한 역할을 할 가장 유능한 대표를 뽑아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세심히 살펴보는 일이 중요하다. 지지 후보를 선택하는 기준은 과연 그 후보가 인류문명의 대변혁기라는 21세기를 선도할 능력과 지혜, 명철한 판단력과 포용력, 그리고 용기와 경륜을 두루 갖추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이어야 한다.
솔직히 말해 그 동안 우리국민은 본질적인 것보다는 부수적인 것을 가지고 후보를 선택해 오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버릴 수없다. 선거에 있어 후진성을 면치 못해 온 점이 없지 않다는 말이다. 대통령이 해야 하는 일이 결코 운동선수나 수퍼맨이 하는 일과 같지 않고, 더구나 각 지역의 이익을 대변하는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후보의 나이나 건강, 출신 지역 따위를 후보 선택의 결정적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허다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런 점들이 전혀 지지 후보 선택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본질이 아닌 부수적인 기준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흐름은 이번 선거에도 여전히 위세를 떨칠 것으로 보인다. 국민 전체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자리에 있는 나라의 대표를 뽑으면서 이러한 부수적인 기준에 흔들리는 구태를 우리 불자들 만이라도 속히 벗어나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부처님께서 사위성에 계실 때, 제자 아련에게 대표자를 뽑는 기준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일 열 가지 법을 갖추면 따로이 논하여 일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으로 뽑힐 수 있느니라. 계를 잘 지키고, 들은 것이 많으며, 양편의 규칙을 잘 외우고, 그 이치를 널리 이해하며, 말이 분명하여 질문에 대답을 잘 할 수 있어 듣는 이를 기쁘게 할 수 있고, 싸움을 잘 조정할 수 있으며, 편애하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고, 어리석지 않은 사람이다.” (사분율 제47 ; 멸쟁건도)
이 가르침은 물론 승단의 대표를 뽑을 때의 기준을 말씀하신 것이지만 한 나라의 대표를 뽑는 올바른 기준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곧 도덕성을 갖추고 있고, 학식과 경륜이 높을 것이며, 여러 이익단체나 각 나라의 속사정에 정통하고, 그들의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며, 언설이 뛰어나 누구에게든 잘 설득을 해서 국민을 히나로 뭉치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외교력과 정치력으로 전쟁이나 분쟁을 예방하고, 불편부당하며, 화를 내지 않고, 용기가 있으며, 지혜가 있는 후보를 선택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물론 지금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후보들 가운데 이러한 열 가지의 기준을 모두 충족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면밀하게 살펴보면 이 열 가지의 기준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는 후보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불자들이 부처님께서 제시하신 이러한 기준을 가지고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지지 후보를 선택한다면 오는 12월 18일은 불교는 물론 우리 국민에게 희망찬 출발의 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불자들의 현명한 판단에 나라와 민족의 명운이 달려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