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보는 이제 완전히 새 옹기 제작에 골몰했습니다. 하늘에 펼쳐진 커다란 무지개와, 단풍숲 새를 뚫고 나온 햇살이 개울물 위에 펼쳐 놓은 작은 무지개의 빛깔을 그는 한시도 잊을 수 없었습니다. 밥을 먹을 때나 잠을 잘 때도 그의 몸은 무지개에 관한 생각으로 충일 해 있었습니다.
“내가 만든 옹기 그릇들에 일곱 빛깔의 무지개가 확연히 살아날 때 사람들은 분명 옹기그릇을 다시 찾게 될 거야. 그들은 아마도 이렇게 말하겠지. 백자나 청자보다 더 아름다운 그릇들이 이 지상에 태어났다고 말이야. 그래, 어떤 사람들은 무지개가 새겨진 그릇들을 보고 잃었던 꿈을 되찾게 될지도 몰라.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는 어린 시절 우리 모두가 꿈꾸었던 그런 신비의 세계였으니까 말이야.”
풋님이 또한 무척이나 좋아하며 달보의 새 옹기 계획을 부추겨 주었습니다.
“너 참 굉장한 생각을 해냈구나. 무지개가 하늘이 아닌 옹기그릇에 떠오른다는 생각만 해도 난 즐거워져. 그렇게만 되면 넌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공이 될 거야. 어쩌면 카라얀이나 피카소, 릴케보다 더 유명한 인사가 될지도 몰라. 설마, 그때 가서 이 풋님이를 모른다고 하지 않겠지?”
풋님이는 생각에 골몰한 달보의 이마를 시원하게 식혀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이런 행복한 상상과는 달리 문제는 좀더 현실적이었습니다. 옹기그릇에 무지개를 새겨 넣는다는 기본 계획은 선셈이지만 구체적으로 무지개를 새겨 넣는 방법이 문제였습니다.
“새로운 안료를 개발해야 되.”
달보는 그렇게 생각하고 무지갯빛을 낼 안료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이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일곱 가지 빛깔 가운데에 어느 한두 개쯤은 이산 저 들판을 헤매다 보면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일곱 가지의 빛깔을 완벽하게 찾아낸다는 것은 자신이 생각해도 어렵고 막막한 일이었습니다.
달보는 집을 떠났습니다. 도시나 시골, 저자 거리를 가리지 않고 무지개의 빛을 찾아 나설 셈이었습니다. 십 년이 걸려도 좋고 그 이상이 걸려도 좋다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 어느 구석엔 가는 분명 그가 찾는 무지갯빛의 안료들이 그 재료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거의 확신에 가까운 신념이 그의 몸을 들뜨게 하였습니다.
“꼭 찾게 될 거야. 어려울 때면 내 이름을 불러 줘. 내 곧 찾아갈 테니 말이야.”
“풋님이는 떠나는 달보의 옷자락을 흔들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달보는 생전 처음 서울에 올라와 큰 백화점도 보고, 지하철도 타 보았습니다. 영화관에서 ‘늑대와 춤을’이라는 영화도 보았고 대학생들이 거리에서 시위를 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그 모두가 무지개의 빛깔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잠은 기차역이나 버스 대합실 같은 데서 잤습니다. 새우처럼 허리를 구부리고 밖에서 잠을 자면서도 그의 마음은 늘 봄 들판이었습니다.
그렇지요. 태평양 한가운데 사는 한 마리의 새우가 정녕 굽은 등을 펴지 못하는 까닭은 그 바다가 너무 좁아서 자기의 뜻을 펴지 못한 때문이라는 옛 선사들의 이야기가 바로 지금 달보의 심사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 빛깔들을 샛길 염료들을 찾아내는 날, 그때 가서 휘었던 등을 곧추 펴리라. 대합실 의자 위에 웅크린 달보의 꿈이 꼭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달보의 염료 찾기 여행은 쉬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 해가 꼬박 다 가도록 남한 전역을 뒤져보았건만 그가 찾는 염료는 나타날 기색이 없었습니다. 먼저 달보는 예로부터 유명하다는 지방의 가마터들을 찾아가 보았지만 옹기장이들은 이미 세상을 뜬 뒤였습니다. 설령 여든 살쯤 된 전통 옹기장이 하나쯤 아직 살아 숨쉬는 경우도 없이 않았지만 달보의 이야기를 들은 그 노망한 옹기장이는 “옹기에 무지개가 떴어? 맞아, 오늘 아침 내 똥에도 무지개가 떴다구” 하면서 달보의 손을 잡을 따름이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벌교 어디선가 만난 한 쪽쟁이(염색장)는 그나마 달보에게 한 줌의 희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가 발현한 색상의 비단이나 삼베를 가지고 파리의 디자이너들이 일으킨 패션쇼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기사를 읽고 달보는 그 쪽쟁이를 찾아갔습니다.
“옹기그릇에 무지개를 새겨 넣고 싶다구요? 그것참 대단한 기획이군요. 어디 한번 이야기해보십시다.”
그는 쪽물이 퍼렇게 든 뭉툭한 손으로 달보를 끌어 햇볕이 잘 드는 툇마루에 앉혔습니다.
“난 내 옹기그릇에 생명을 넣어주고 싶소. 그것들은 이제 막 숨이 끊어질 지경이오. 아무도 옹기 같은 건 거들떠보지도 않으니까... 난 내 옹기에 무지개를 새겨 넣을 결심을 했소. 하늘과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깔의 무지개를 말이요. 무지개는 내 옹기들의 꿈이자 바로 내 꿈이오.”
달보의 이야기를 들은 쪽쟁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였습니다.
“모시나 삼베에 염색을 들이는 방법도 거의 명맥이 끊어질 지경까지 왔지요. 이 쪽풀에서는 푸른빛의 색이 나오지요. 잇꽃에서는 아주 아련한 분홍색의 빛을 뽑을 수 있답니다. 치자꽃에서는 노랑이나 주황의 염료를 만들어내지요. 내가 지닌 색상들로 무지개의 일곱 가지 빛깔은 만들어 낼 수 있어요. 그렇지만 당신의 옹기그릇에도 그 빛깔들이 재대로 살아나게 될지는 자신할 수 없습니다. 옹기 가마 속의 뜨거운 열을 이 식물성 염료들이 지탱해낼지...”
달보 또래의 이 쪽쟁이는 결코 불가능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달보가 필요하다면 그가 지닌 전통 염색의 비법들을 그대로 일러주겠노라 달보에게 얘기했습니다.
달보는 그 집에서 한 달 가까이 묵으며 전통 염색에 대한 방식들을 익혔습니다. 물론 이 방법들이 그의 옹기그릇들에 적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아니 정확히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이 방법들이 그에게 전혀 소용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깨달음 가운데에 하나는 빛깔이란, 색이란, 이 지상에 무한하게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얼핏보면 초록색으로 보이는 봉숭아의 잎이 손톱에 물을 들이면 붉은빛의 물이 드는 것처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만나는 새로운 색소의 발견은 그에게 새로운 기대를 안겨 주었습니다.
게다가 쪽쟁이는 “난 여태껏 내 염색방법들에 대해서 많은 회의를 했었소. 도대체 이 짓이 할만한 짓인가 하고 말입니다. 예전의 염색 방법들을 다시 하나씩 찾아내는 일도 힘들고, 물건을 만들어 놓아도 이걸 좋아하는 우리 나라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은 나보다 열 배, 백 배 힘든 일이요. 이제 내 일을 좀더 열심히 해야겠소. 꼭 무지개를 찾아내시오.” 하는 격려의 말과 함께 얼마쯤의 여비까지 보태주는 것이었습니다.
달보는 다시 세상을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눈 덮인 산과 진달래가 피는 언덕과 원추리 꽃이 바람에 하늘대는 들판을 그는 오직 한 가지의 꿈으로 떠돌아 다녔습니다.
그렇게 또 한 해가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달보는 새삼 자신의 눈앞이 환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먼 산과 가까운 언덕이 모두 새 빛으로 아른대며 빛나고 있었습니다. 가을이었고 단풍이 곱게 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달보는 단풍 속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떨어지는 잎들 속에는 무언가 조금 짭짤한 그런 기운이 바다내음이라는 것을 달보는 알고 있었습니다. 모르는 사이에 달보의 걸음은 달보의 고향 가까이 향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신발 아래 푸석푸석 밟히는 낙엽의 감촉이 좋아서 달보는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니 단풍 새를 뚫고 들어오는 햇살의 빛이 깨끗하고 맑았습니다. 달보는 잠시 귀를 기울였습니다. 만약 가까운 곳에 개울이 있다면, 삼 년쯤 전 가을날 자신이 보았던 그런 무지개가 어딘가에 또 펼쳐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달보의 귀에 물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달보는 떨어진 단풍잎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가슴으로 한아름씩 수북수북 끌어 모아 작은 산처럼 쌓았습니다. 그리고 바닥을 고르고 달보는 단풍잎 속으로 들어가 몸을 눕혔습니다.
이내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바람이 조금 쌀쌀하지만 달보의 몸은 조금도 춥지 않았습니다. 서걱이는 단풍잎들이 달보의 몸에 조금이라도 더 온기를 주려고 자꾸만 살을 부벼대는것을 달보는 느꼈습니다. 그 바스락거림이 그렇게 포근하고 아늑할 수 없었습니다. 달보는 옷을 벗었습니다. 하나 둘 집을 떠나 올 때 입었던 옷들을 다 벗은 뒤 달보는 그대로 단풍잎 속으로 다시 기어 들어갔습니다. 단풍잎 속은 여전히 따뜻하고 아늑했습니다.
하늘에는 별이 맑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그 별들은 색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영락없는 이승의 단풍 빛깔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별들은 끝이 없는 단풍의 바다를 달보의 눈앞에 펼쳐 내고 있었습니다. 달보는 그 단풍의 바다 속으로 어언 자신의 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단풍 길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끝 모를 그 길을 다 걸은 뒤에 달보는 자신이 찾고자 하는 그 집 앞에 다다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집의 문패에는 색색의 빛깔로 ‘무지개’라는 세 글자가 또렷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똑똑똑, 달보는 그 문을 두드렸습니다.
“어인 일이신가? 이 먼길을.”
무지개가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물었습니다. 능소화꽃들이 작은 종처럼 바람에 흔들리며 피어난 아름다운 창문이었습니다. 달보는 한동안 말문을 열 수 없었습니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무지개를 직접 만날 수 있다니... 옹기그릇에 무지개를 새겨 넣는 그의 꿈이 어쩌면 이제 이루어질지도 모른다고 달보는 생각했습니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 세상을 떠돌아 다녔습니다. 제가 만든 옹기그릇들에 당신의 빛과 형상을 새기고 싶었습니다. 제게 용기를 주십시오.”
달보의 얘기를 들은 무지개는 한동안 고개를 갸웃하며 무엇인가 생각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대의 계획은 아름답다. 그대가 잘 알겠지만 세상에는 크고 작은 수많은 무지개가 있다. 그 무지개들이 사는 곳은 일정하지 않다. 그대가 정성껏 빚은 옹기그릇 속에 들어가 살지 말라는 법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묻겠다. 그대의 옹기 속에는 산과 들과 강과 바람이 존재하는가. 그것들이 존재한 다음에야 우리들 무지개도 그대가 펼쳐 놓은 새로운 땅으로 옮겨 갈 수 있을 것이다. 생각컨데 산과 강들에게도 함께 이주할 마음이 있는지 한번 더 물어 보시게나.”
달보는 산을 찾아 나섰습니다. 어느 큰 산 앞에서 달보는 물었습니다. 제가 빚은 옹기그릇 속으로 이사해 주십시오. 아름다운 무지개가 늘 빛날 것입니다. 산이 대답했습니다. 이곳에도 무지개는 살고 있어. 게다가 이곳에는 오래 전부터 내가 사귄 많은 친구들이 있다구. 그들과 떨어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달보는 다시 강을 찾아갔습니다. 제가 빚은 옹기그릇들 곁에 머물러 주십시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과 물고기들이 노닐게 할 것입니다. 친구 분들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타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강의 대답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난 늘 새로운 곳을 향하여 흐르고 있어. 네가 생각하는 꿈도 아름답지만 우리가 흘러가는 곳 또한 늘 새롭고 신비해. 언젠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네가 만든 옹기그릇들을 꼭 보고 싶어. 달보는 그만 절망에 빠져들었습니다. 무지개를 직접 만났는데도 이럴 수가...
아침이 되었습니다. 달보는 단풍이 든 산자락을 밟아 나갔습니다. 한나절이 지나자 달보의 눈앞에 낯익은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늙은 당산 나무와 솟대 그리고 낯익은 사람들. 무엇보다 자신의 젊은 날을 바친 옹기가마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달보는 비탈길에 단숨에 달려 내려갔습니다. 가마터에는 자신이 구워낸 옹기들이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놓여 있었습니다.
“많이들 기다렸지. 그럼. 그렇구 말구. 내가 무지개를 얻어 왔단다. 이제 너희들의 마음 안에 이 무지개만 새겨 넣으면 너희들이 빛을 보게 될 날도 멀지 않았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너희들을 부러워하고 너희들을 그리워하게 될 거란다.”
마을 사람들은 돌아온 달보가 자신이 구워 낸 옹기그릇에 색색의 단풍잎을 붙이고 있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달보의 벗은 몸은 조금도 추운 기색이 없었습니다. 그 순간 제법 큰 회오리바람이 일었었습니다.
수북히 쌓인 단풍잎들이 소용돌이치며 달보의 몸을 감싸 안았습니다.
계속
곽재구 님은 광주에서 태어나 전남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사평역에서」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시집으로「전장포 아리랑」「한국의 연인들」등 다수가 있고, 최근에는 참새 한 마리의 삶에도 아름다움과 꿈이 있다는「아기참새 찌구」라는 동화집을 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