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이런 의심은 비단 오늘날에만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약산 유엄(751-834)스님의 다음과 같은 일화가 그것을 증명한다.
약산 스님이 하루는「대열반경」을 보고 있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늘 경전을 보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스님은 왜 보십니까?”
㉠“나는 눈을 달래주고 있을 뿐이다.”
“저도 스님처럼 경을 읽어도 되겠습니까?”
“아서라. 네가 내 흉내를 내어 경을 읽는다면, ㉡끝내는 쇠가죽도 구멍이 날 것이다.”
이 부분은 선사들이 경을 보는 입장을 딱 맞게 말해준다. ㉠의 원문은「조당집」(권4)에는 “我要遮眼”,「종경록」 (권1)에는 “只爲遮眼”,「경덕전등록」(권14)에는 “我只圖遮眼”이다. 각 본마다 뉘앙스의 차이는 있으나 내용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遮’를 ‘가리다’ \'막다‘로 읽어, “눈을 가리다”로 흔히 번역한다. 그러나 이 번역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분명히 경전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평소에「열반경」을 즐겨 읽었다는 것은「종경록」에서도 분명히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이 문장은 경전을 읽지 않았다는 변명이 아니라, 약산스님의 경전 읽는 법을 드러내는 말로 보아야 한다. ‘遮’자는 ‘가로막다’라는 뜻 말고, ‘달래다’는 뜻도 있다. 배고픈 아이를 젖으로 달래고, 울적한 마음을 노래로 달래는 그런 의미의 ‘달래다’이다.
그렇다면 “눈을 달래 주고 있을 뿐이다”란 무슨 뜻인가. 눈에는 사물을 보는 본디의 기능이 있다. 문자를 읽을 수 있는 눈의 기능을 있는 그대로 살려서 경전으로 눈을 달래 주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경전에 얽매이지 않고 주체적으로 자기 쪽에서 경전을 읽어 간다는 말일 것이다.
이런 추측은 뒤에 이어지는 대화에서 좀더 분명해진다. 약산스님은 자신의 눈을 달래 주느라고 경전을 읽지만, 그러나 만일 질문하는 그대는 경전에 진리가 있다고 여겨 온 마음을 거기에 쏟으면 쇠가죽에 쓴 경전이라도 빵구가 나고 만다는 것이다.
㉡의 원문은「조당집」,「종경록」,「오등회원」에는 “牛皮也須穿過로 되어 있는데 이 때의 ‘須’는 ‘반드시∼해야 한다’라는 당위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고, ‘도리어’ ‘반드시’ ‘끝내는’의 뜻이다.
그런데「경전전등록」에는 “牛皮也須看透”로 되어 있다. ‘穿過’를 ‘看透’로 고친 셈인데 이는 고쳐서 오히려 더 나빠진 경우이다. 잘못 고치는 바람에 ‘須’가 당위를 나타내는 ‘반드시∼해야 한다’로 되고 말았다. 이 문장대로라면 “가죽도 반드시 꿰뚫어 보아야 한다”로 된다. 전혀 다른 말이 되고 만다.
선사들이 경전을 보는 자세나, 선서를 거울에 비유하는 심정에는 서로 통하는 그 무엇이 있는 듯하다.
Ⅲ
위산潙山 영우靈祐(771-853)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근기가 뛰어난 이는 참선을 하고, 그만 못한 이는 교리 공부를 해서 부처님의 말씀을 익혀라.” 이런 견해는 달마스님 이후 선가의 가풍을 잘 대변해 준다.
또 “참선하는 이라면 제 마음을 단박에 깨쳐 단계적인 수행에서 벗어나라”고 한다. 이 태도는 또한 돈오무심을 밑바탕으로 한 것으로 마조스님의 손자답다. 마조스님의 제자가 백장스님이고 백장스님 문하에 황벽스님과 위산스님이 나온 것이다.
이렇게 돈오하고 난 뒤에는 “무심하게 현상마다의 성품(法性)에 내 맡겨 절대로 거기에 마음을 흘리지 말라”고 한다.
이상은「위산경책」에 실려 있는 내용을 가려 뽑은 것이다. 이 경책은「치문」의 첫머리에도 실려있고, 요즈음은「위앙록」(백련선서간행회, 장경각, 1989년)에 편입되어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위앙록」과「양산록」그리고「위산경책」을 모아 한 책으로 엮은 것이다.
독립된 어록으로서「위산록」은「오가어록」에 들어 있으면 명나라 사람 원신圓信과 곽응지郭凝之가 1630년에 편집했고, 강희康熙 4년(1665)에 출판한다.「조당집」(952년 편집)과「경덕전등록」(1004년 편집)의「위산장」을 바탕으로 하고 그 밖의 어록에 흩어져 있는 위산스님의 이야기를 모아서 만들었다.
Ⅳ
그러면 위산스님의 선풍은 어떠한가. 뭐니뭐니 해도 대기大機와 大用을 함께 갖추는 것이다. 스님은 모든 상황 속에서 순간순간 깨달음의 문제와 결부시켜 상대방에게 딱 맞는 문제 의식을 던져 준다. 스님은 ‘이것’ ‘저것’등의 대명사를 적재적소에 구사하여 학인 들을 지도한다.
위산스님은 ‘機’라는 표현 말고도 ‘體’ ‘身’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것은 이른바 타고난 자질을 말한다. 그리고 ‘用’은 그것의 쓰임을 말한다. 위산스님에 따르면 이 ‘機’와 ‘用’을 함께 갖추어야 비로소 자유자재한 수행 인이 된다고 한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본디부터 타고난 바탕도 좋아야 하고, 그것을 운용하는 솜씨도 좋아야 완전한 기능을 발휘한다. 훌륭한 스승일수록 제자들의 본바탕에 딱 맞게 지도한다. 위산스님 회상會上에 언제나 1,500명을 웃도는 수행자들이 모였다는 것은 위산스님의 탁월한 지도 법에 원인이 있다.
위산스님은 결코 틀에 박힌 지도를 하지 않는다. 일상생활 속에서 제자들에게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밀도 있고 긴장감이 돈다. 그렇다고 그 물음의 정답을 일러주지는 않는다. 정답은 처음부터 아예 존재할 수 없다. 결국은 본인이 스스로 터득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나무에 기왓장이 부딪치는 소리에 깨달았다는 향엄스님의 이야기는 선가에 유명한 일화이다. 바로 이 향엄스님을 지도한 스승이 위산스님이다.
향엄스님이 백장스님의 회상에서 수행할 때였다. 백장스님이 향엄스님에게 말했다. “부모가 낳아 주기 전 그대의 본래면목을 말해 보라.” 하나를 물으면 열을 아는 그였지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백장스님의 제자인 위산스님 왈 “만일 그대에게 말해 준다면 그대는 뒷날 나를 욕할 것이다.”하고 야박하게 거절한다.
그 뒤로 이 일이 화두가 되어 오매불망하다가 대나무에 기왓장이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확철대오한다. 그제야 위산스님의 큰 은혜를 알고 스님 계신 쪽을 향해 사루고 감사의 절을 올린다.
이러한 일을 당하는 당사자는 야속하겠지만 선가의 스승들은 언제나 제 스스로 깨치도록 한다. 그렇다고 나 몰라 하고 내팽개쳐 두지 않는다. 스스로 깨치도록 그 계기를 만들어 주고 상황에 적절한 질문을 쏘아댄다.
Ⅴ
선사들은 제자의 대답을 통해서 그 깨달음의 깊이를 확인하고 그에 알맞게 지도한다. 위산스님은 제자 앙산스님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대는 스스로를 비추어 보아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그대가 깨달은 깊이를 모르니 실제로 이해한 바를 내게 말해 보아라.”
자신의 깨달음을 자신의 말로 표현하지 못하면 그 깨달음은 어떻게 검증할 길이 없다. 깨달음과 언어는 서로 뒤섞을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따로 떼어 낼 수도 없다.
다음의 대화를 보자.
위산스님의 손에 어떤 물건(「오가어록」에서는 빨래라고 기록되어 있다)을 들고는 제자 앙산에게 물었다.
“이럴 때는 어떠한가?”
“스님께서는 아십니까?”
위산스님이 긍정하지 않고, 도리어 앙산스님에게 ‘이럴 때는 어떠합니까?’라고 묻게 하고는 대답했다.
“그럴 때도 역시 어떻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는 곧 바로 위산스님은 자신이 지금 한 말을 부정한다.
“이렇게 말해도 안 되지.”
이 말을 끝내고는 더 이상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몇 해를 지난 뒤에 제자 앙산이 지난날의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여 이렇게 말했다.
㉢“바로 이럴 때는 느닷없이 불쑥 말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위산스님이 대답했다.
“감옥살이 하는 동안 못된 지혜만 늘었구나.”
이상은「위앙록」(백련선서간행회, 장경각, 1989년, p.97)에 나오는 이야기로「조당집」을 번역한 부분이다. 비슷한 대화가 같은 책 35∼36페이지에 나오는데 그것은「오가어록」을 대본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 대화에 따르면 빨래를 밟다가 그것을 쳐들면서 오고간 대화이다.
사원의 아주 일상적인 일 속에서 제자들을 지도하는 모습이며, 몇 해를 두고 집요하게 달라붙는 제자의 모습은 대단하다.
좀 전문적인 이야기지만 위에서 한 대화의 ㉢은 번역에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이라서 고증을 해 본다.
㉢을 “바로 이러할 때에 간절한 호소는 금물입니다”라고 번역하거나, 또는 “바야흐로 그러할 때에 본을 뜨지 마셔야 합니다.” 또는 “절대로 머뭇거리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번역하는 분도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미심쩍다.
이 부분의 원문은「오가어록」에는 “正恁麽時, 切忌勃訴”이고,「조당집」에는 “切忌敎素箸”이고「경덕전등록」에는 “正恁麾時, 切忌勃塑”이다.
여기서는 “切忌∼”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구문이다. 문제는 “勃訴”이다. 「宋本廣韻」에 따르면 ‘訴’ ‘素’ ‘塑’는 모두 거성去聲으로서 ‘??’자 계열이다.「광운」이 당나라의「切韻」체계를 계승한 것으로 볼 때 당나라 때부터 이 글자들을 혼용한 것은 용례에서 보아도 증명된다. 여기에서의 이 글자들은 그 자체에는 뜻이 없고 앞의 형용사를 부사 화시키는 기능을 갖는다. 마치 ‘∼然’ ‘∼乎’와 같은 용법이다.
그리고 ‘’은 ‘勃’의 이체자異體字로서, ‘왕성한’ ‘발끈 화내는’ ‘느닷없이 불쑥’이란 뜻이다.
한편「조당집」(제 7권, 설봉의존조)에는 ‘敎素’ 외에 ‘敎??’의 용례도 보인다. 이 경우도 역시 ‘??’에는 의미가 없다. 그리고 그 앞뒤의 대화 내용으로 보더라도 ‘느닷없이 불쑥’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으로 번역하는 것이 마땅할 것 같다.
신규탁 선생님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봉선사에서 월운스님에게 경전을 수업하였다. 지금은 동경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에서 당나라 사상사를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