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향기로 젖어 있는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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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여연
1993년 11월 141호
마조馬祖의 벼락과 덕산德山의 무지갯빛 언어의 칼날이 역사의 산그늘에 사라져 버린 중국 땅의 사원들. 냄새가 너무나 짙어서 숨을 막히게 하는 법당의 향불들이 마치 이미 아득한 시간 속에 묻혀 버린 옛 진리의 향화들을 대신하며 냄새 피우듯 어지럽게 사원 뜨락에 날리고 있었다.
하염없이 내리는 사월의 햇빛 사이로 선 하품의 기지개는 목련 꽃잎이 지는 아미산 만년사 골짜기나 장장 만리 천 리나 되는 중국의 심장인 양자강 기슭 기슭 어느 골짜기에도 노는 땅이 없는 중국의 산천을 돌아보면서 사람 사는 땅의 고운 냄새를 오랜만에 맡을 수 있었다.
지난 봄, 나는 차 문화 세미나 관계로 항주와 소주를 갔다가 한 달 넘게 중국의 산천을 여기저기 밟고 돌아왔다. 중국의 농촌에서 많은 감동을 받고 온 뒤로 여름이 가고 가을이 벌써 깊었다.
엊그제 일간지에서 중국 대륙에서는 모택동 주석이 태어난 일 백주년 기념식을 대대적으로 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가 죽은지 몇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중국인민들에게 숭앙 받고 자동차 창문, 미장원, 이발소, 시골 이층집 문 창살에도 자랑스럽게 붙어있는 모 주석의 초상화들, 심지어는 모 주석의 초상화가 들어있는 손목시계가 불티나게 팔린다니 무슨 매력이 그토록 있을까.
문득 아미 산의 깊은 골짜기 어느 촌락의 복사꽃 흐드러지던 집, 그 집 가장의 말이 가슴에 떠오른다. 나는 그 때 햇 차를 만드는 집을 찾아 여기저기 촌락을 기웃거리면서 집집마다 마오쩌뚱의 사진틀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이렇게 물었다.
“중국 수천 년의 역사 속에 수많은 왕들, 수많은 정치 지도자들 가운데서 마오쩌뚱은 무슨 치세를 하였기에 그렇게도 중국인민들에게 존경받는지...”
그 물음에 별로 학식이 없을 것 같이 보이는 촌로는 아무 주저 없이 “수천 년 중국의 역사 속에서 어느 누구도 중국의 인민들에게 ‘밥’ 걱정을 해결해 주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마오쩌뚱은 매일 아침 낮 저녁 식탁에 8억 개가 넘는 빵(밥)을 한번도 거르지 않는 역사를 만들었다” 하고 그는 가볍게 얘기했다. 나는 그 때 그 말속에서 당당한 중국인의 건강한 삶, 그 무엇도 부럽지 않는 존재의 중심에서 빛나는 생명감을 맛보았다.
혁명은 밥을 굶지 않는 땅을 만들었다. 중국 땅 어느 곳을 헤아려 보아도 깊고 높은 땅에서는 빈터를 찾아 볼 수 없었다. 우리보다 수십 배가 넘는 광활한 땅에서 중국 인민들의 숨결이 맞닿아 있는 곳, 그 곳은 곧 노동의 보석들이 자리고 있다.
단순히 밥을 굶지 않는 역사를 만든 것이 아니고 노동이 삶의 향기로 젖어드는 성실함, 그것이 바로 마오가 가꾼 중국의 들판이자 오늘의 중국 역사였다.
그러면 ‘잘 살아 보자’로 시작된 우리의 쿠데타 혁명은 무엇이었을까. 땅을 팔아 산업화, 밥을 얻었지만 그 밥인 땅(노동)의 보석은 광채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최소한 밥을 굶지 않는 땅으로 바뀌었지만 우리들 삶의 현장에는 성실함이 사라져 버리고 이미 땅의 노동이 사라져 버렸다.
프랑스 역사학자 샤를르 달레는 그의 저서「한국천주교회사」에서 한국인의 단점으로 경제 윤리의 부재, 낭비성, 조급함, 폭식, 폭음, 가식의 허영을 얘기하고 있고, 외국인들이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지적한 한국인의 단점은 사행심, 비굴함, 모험주의, 무책임성, 이기주의, 기회주의들을 들고 있다.
이런 지적들은 구체적으로 ‘성실함’이 없는 민족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경제 윤리의 부재, 모험주의 기회주의, 조급함, 허영, 가식들의 꽃다발 속에서 우리의 GNP의 조화들이 아무리 화려하게 들판에 나부낀들 무슨 향기가 있겠는가. 참으로 아름다운 삶의 향기, 건강한 생명의 꽃다발을 우리의 식탁에 꽂으려면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을 되돌아 죽어 가는 역사의 땅을 쟁기질 해 보자.
논리의 비약이 심하지만 정신 노동을 하는 출가 수행자인 우리에게 마련된 식탁의 밥은 우리의 노력으로 얻는 것일까. 마오의 혁명과 밥을 생각해 볼일이다. 운문의 떡과 조주의 차가 그들의 세상에서 왜(?) 시들어 버리고 말았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