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틈을 내어 강릉, 속초 지역의 불교 유적을 오랫동안 다시 찾아보았다. 요즈음 이 지역은 이름 난 관광지가 되어 주말이면 관광객이 몰려 교통이 매우 혼잡한데, 여름 피서철에는 몸살을 앓을 정도라 떠나기 전에는 조금 망설여졌다. 하지만 신흥사에 볼일이 있는 참에 다시 보고 싶은 유물과 유적을 돌아보아야겠다고 작정하였다.
배낭을 꾸려 강남터미널에 도착하고 보니 생각보다 교통은 붐비지 않았다. 주말을 피한 데다가 장마전선이 드리워진 때문인가 보다.
설악동에는 인파가 붐볐다. 산 속의 하루해는 짧기만 해서 잿빛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긴 하지만 오후 네 시를 조금 못 미쳤는데도 해거름의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코끝을 스치는 싱그러운 내음, 그리고 온몸을 휘감은 바람결은 잿빛도시에서 맛볼 수 없는 청량감을 안겨다 주었다. 더욱이 골짜기마다 피어오르는 안개 속에서 언뜻언뜻 드러내는 산의 자태는 선경仙境을 방불케 했다.
일주문을 조금 지나 부도 밭에 이르렀다. 부도 밭의 나지막한 담 너머로 솟아있는 우중충한 가건물이 보인다. ‘흉측하군’ 하며 속으로 혀끝을 차며 몇 걸음 걸어가니 석재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고 시멘트 골조가 흉하게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된 보습이 역력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 곳이 바로 ‘세계최대청동여래좌상’ 불사가 이루어지는 현장이었다. 아까 담 너머로 보인 오층 정도 높이로 솟은 가건물은 청동대불을 빚고 있는 곳이고, 시멘트 골조의 흉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일층 높이의 구조물은 청동여래좌상을 안치할 대좌의 뼈대 부분이다. 이 옹색한 자리에 이처럼 거대한 불상을 봉안해야만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한때는 범종불사가 유행처럼 이곳저곳에서 이루어지더니, 최근에는 동양 최대니 심지어는 세계 최대니 하며 거대한 불상을 다투어 조성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만불 조성이 어떤 교화적 전거典據를 지니는지 모르겠으나 많은 대중들에겐 공덕을 쌓는 좋은 인연이라는 내용의 모연문이 교계의 신문 잡지에 빠짐없이 실려 있다. 물론 불사를 하는데 어찌 그 규모의 크고 작음을 따질 수 있으랴. 그 곳에 깃 든 지극한 발원과 정성이 값진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불사를 하는데 한 개인의 발원과 시납施納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우리 불가의 전통은 함께 기뻐하고(隨喜功德) 그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닌 모든 이들에게 되돌리는 회향공덕廻向功德이 있으므로 불사는 이 세상을 더욱 장엄할 수 있게 된다.
키를 넘는 석재들이 널브러져 있는 대규모 불사의 현장에 서서 이 시대의 참다운 불사, 그리고 시대의식이 담긴 공업共業은 무엇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아침에 눈을 뜨니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 가랑비가 촉촉이 내린다. 바쁜 틈을 내어 손수 차를 운전해 준 후배 덕분에 빗속에서도 불적을 찾을 수 있었다. 미안한 마음을 거둘 수 없으면서도 몸은 편안하게 느끼니 이 이기심을 어찌할꼬.
속초 비행장을 끼고 차는 호젓한 길을 달렸다. 진전사지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호젓한 산 속에 말없이 서 있는 석탑. 삼배를 올리고 다시 시계 방향으로 세 번 돌며 우요삼잡의 예를 올렸다.
낙산사를 찾는 이들의 발길은 붐벼도 이 곳을 찾는 불자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 선종을 처음으로 들여온 도의선사가 머물던 이 곳이 지닌 그 성스러움을 모두가 잊어버린 탓인가. 성지순례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 허물어진 절터는 이끼 낀 석탑만이 홀로 시간을 넘어 의젓하게 서 있다.
진전사지에서 느꼈던 애틋함이 건봉사지를 찾았을 때는 산산이 부서지고 슬픔을 넘어서 분노가 치밀었다. 오랫동안 군 통제에 묶여 있다가 참배가 자유로워진 뒤로 크게 바뀐 건봉사지의 모습 - 중창 불사를 한다고 마구 파헤치고 흩뜨려 놓은 모습 - 에 기가 막혔다. 이 귀중한 불적이 몇 사람의 무지 때문에 돌이킬 수 없이 처참하게 파괴될 수 있단 말인가. 이는 중창 불사가 아니라 문화의 말살이요. 역사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일이다. 하지만 누구에게 책임을 묻기에 앞서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선조 들과 후손들에게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이른바 불사란 이름 아래 자행되었거나 진행되고 있는 유적에 대한 직접 또는 간접적인 훼손을 목격한 예가 어찌 하나 둘일까. 더욱 안타까운 것은 간접적인 파괴나 훼손이다. 직접적인 파괴나 훼손은 누구나 알고 있고 또 그에 따른 법적인 금지사항이 있으므로 그 예가 드물지만, 언뜻 눈에 띄지 않거나 구체적인 법규를 벗어나 이루어지는 간접적인 파손과 훼손은 어찌 보면 무지하거나 문화적인 안목이 결핍되어 비롯되므로 그 피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는데 더 큰 비극이 도사리고 있다.
문화란 그 시대 사회가 지닌 지혜와 역량의 집합체이며 결정체이다. 어느 한 분야만 뛰어날 수도 없고 어떤 천재에 의해서 갑자기 어떤 단계를 뛰어넘을 수도 없다.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화재의 파괴나 훼손은 결국 우리 시대가 지닌 문화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도굴이 횡행하고 또 그것이 재화의 증식 수단으로 암거래되고 있는 현상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데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공권력으로 막을 수 있기보다는 근원적으로 사회의식의 변화, 다시 말하면 사회 구성원 각자의 도덕심과 문화의식이 뒷받침되어야만 해결될 수 있다.
가랑비가 계속 내린다. 건봉사 중흥불사의 전모를 알리는 조감도가 그려진 커다란 게시판에도 빗방울이 흘러내린다. 적지만 운치 있던 무지개다리는 중장비가 건너가느라 무게를 이기지 못해 그만 무너졌는데 그 밑으로는 개울물이 졸졸졸 쉼 없이 흐르고 있다.
장하던 금전 벽위 잔재되고 남은 터에 이루고 또 이루어 오늘을 보이도다. 흥망이 산중에도 있다 하니 더욱 비감하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