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민족의 조각솜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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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최종태
1993년 11월 141호
우리 나라의 수천 년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문화를 대관해 보면 괄목할 만한 업적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조형 예술이 두드러진 것 같다. 특히 석굴암과 반가사유상 등의 조각과 고려의 불화는 세계 미술사 시각에서 보더라도 정상의 자리에 있다.
나는 다음과 같은 공상을 하면서 가끔 혼자서 즐거워한다. 이집트의 조각을 한 방에 놓고, 비너스 등 그리스의 조각을 석굴암과 불화 등을 각각 한 방에 차려 놓는 가상의 미술관 말이다. 인간 정신 최상의 구현 품들을 한눈에 바라보는 것은 참으로 장쾌한 광경이 아닐까 생각한다. 석굴암을 움직일 수는 없지만 일본에 나가 있는 백제관음과 목조반가상을 함께 놓으면 될 테니까 실현 가능성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생각을 할 적마다 나는 흥분을 가누기 어려웠다.
야스퍼스가 광륭사에 있는 목조반가상을 보고 좋은 말을 아낌없이 모두 동원하여 “내가 철학자로서 세계의 많은 걸품들을 보았지만 이렇게 훌륭한 것은 처음 보았다”고 격찬하였다.
앙드레 말로는 법륭사의 백제관음상을 보고 “일본이라는 땅이 만일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단 한 개의 물건을 건지라고 한다면 백제관음을 잡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그 두 사람의 말은 내 일생을 통해서 지워지지 않는 큰 자국으로 남았다. 만일 그들이 한국에 와서 석굴암과 금동반가사유상을 보았더라면 어떤 말을 할까.
요즘에는 외국 여행이 자유롭고 여비도 큰 걱정이 없지만 십 년 전만 해도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사진을 통해서 상상하고 비교한다는 것은 답답한 일이었다. 몇 해 전에 기회가 생겼다. 어떤 관광회사에서 ‘일본 속의 한국역사탐방’이라는 광고를 냈다. 일본의 아스카와 나라 지역을 탐사하는 것이어서 나도 그 틈에 끼어서 배를 탔다. 난생 처음으로 갖는 백제관음과의 해후였다. 어두컴컴한 법륭사 한구석이었지만 감격적이었다. 참으로 좋았다. 나도 지금껏 세계의 많은 걸작들을 보았지만 참으로 좋아서 감격하는 일은 무척 드물었다. 좋다는 생각에 앞서 감격, 흥분, 기쁨이 밀려들었다. 그렇게 오묘할 수가 없었다. 인간의 정신이 이토록 솜씨 있게 표현될 수도 있구나 생각하였다. 목조반가상의 그 포근한 자태는 최상의 경지였다. 그러나 나는 첫눈에 우리 박물관에 있는 금동반가사유상이 더 높이 자리한 것을 알았다. 나는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을 보려고 돌아오는 즉시 중앙박물관으로 달려갔다. 그 어른은 거기 여여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얼마 전 부여 박물관을 짓고 그 곳으로 옮겼다기에 나는 또 달려갔다. 너무도 좋았다. 있어야 할 자리에서 찬란하게 광채를 발휘하고 있었다. 본존상 뒤에 있는 관음상을 보려고 중앙박물관을 보고 난 다음 날 석굴암으로 갔다. 감히 잡히지 않았다. 법륭사의 백제관음과 석굴암의 십일면관음상 중에 어느 것이 더 좋은지 참으로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그 뒤에도 몇 차례 가서 보고 또 얼마 전에도 보고 왔다. 둘 사이에는 시차가 백 년쯤 나지 싶다. 백제관음이 먼저인데 탈속하기로는 십일면관음상도 마찬가지라 할 것이다. 백제관음은 긴장되고 더 엄숙하고 고요하고 초현실적인 깊이가 있는 반면에 석굴암의 십일면관음상은 부드럽고 능란함과 완숙미가 있었다. 법륭사의 것을 소녀의 청순함에 비한다면 석굴암의 것은 처녀의 청순함이라 할까. 법륭사의 것을 꽃봉오리 같다고 한다면 석굴암의 것은 활짝 핀 꽃, 곧 폭 익은 과일 같다 할까. 서로 성격이 달라서 비교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아직도 그 문제를 풀지 못해서 어떻게 결말을 내야 할지 숙제로 남아 있다.
석가탑도 좋고 다보탑도 좋고 백제 탑도 좋고 왕궁 탑도 좋다. 이 세계 동서양에 탑도 많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탑은 어디에도 없다. 이집트는 오베리스크란을 세웠고 중국은 많은 전 탑을, 그리스도교는 종 탑을, 마호메트교도 사원 모퉁이마다 탑을 만들었지만 우리의 석탑처럼 똑 떨어진 조형미로 완성된 것은 어디에도 없다.
한국의 석탑은 공간 형성은 물론 정신 미까지 성취하고 있는데 그 형태는 무한과 영원이 조형 화되어 있다.
고려의 불화 역시 세계 불교 그림 가운데에서 단연 으뜸이다. 고구려의 전통 그림을 이어받은 것으로 중국에서 배웠지만 중국을 능가하고 있다. 중국은 돈황에 좋은 그림을 많이 만들었지만 그 뒤로는 예술가들이 산수, 화조, 붓글씨 쪽으로 열중한 반면에 고려는 오로지 불교 그림에 정성을 다 바쳤다. 우리 불화를 일본 사람들이 모두 갖고 가서 볼 수가 없는 게 유감이지만 회화의 완성도와 양식 면에서 특히 완전한 경지를 갖추고 있다. 인도의 그림도 그 세련 도와 완성도에는 고려 불화에는 도저히 비교가 되지 못한다. 구성과 소묘는 물론 예술의 품격과 독특함에서 신기하리 만치 잘 되어 있다. 고려 불화의 우수함은 서양 미술사의 다빈치나 라파엘의 완성도에 견주어서 더 높으면 높았지 결코 손색이 없다. 이것을 왜 우리 나라 사람들이 깊이 연구하지 않는지 안타깝기 짝이 없다. 남의 나라 것은 잘 알면서도 제 나라 조상들이 해 놓은 훌륭한 전통을 소홀히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모를 일이다. 서양 사람들은 자기들의 전통에 다른 지역의 좋은 점을 자꾸만 보태어서 더 좋은 것을 만들어 낸다. 서양 사람들도 생각을 하는데 이것은 크게 반성할 일이다.
세계 불교 권에서 불화를 가장 잘 그리고 불상을 가장 잘 만드는 것은 우리 나라이다. 이것조차도 우리 나라 사람이 말한 것이 아니고 서양 사람들이 발표한 것이다. 석굴암 조각을 아시아의 빛이라고 격찬한 것도 서양 학자이다. 아시아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미술사의 시각에서 보아야 하는데 이것도 서양 사람들에게 넘길 것인지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불상이 왜 좋은가. 한국의 불상은 인간적이고 가장 훌륭한 사람을 만들고 있다. 세계 미술사에서 훌륭한 조각이나 그림은 많이 있지만 훌륭한 인간의 모습을 구현하는데 성공한 예술은 없다. 이집트의 조각이나 그리스의 비너스가 조각 예술로는 훌륭하지만 인간 최고의 이상은 표현하지는 못했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 그들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에서도 좋은 불상이 있지만 그런 면에서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다빈치도 그랬듯이 미켈란젤로도 마지막에 가서야 그 점을 생각하고 최후의 걸작 론다니니의 피어따에서 그 점을 실현하려고 애썼다. 처음부터 훌륭함이라든지 인간의 내면적인 이상을 조형예술로서 실현하려는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직 세계에서 우리 나라만 거기에 전력하였던 것이었다. 야스퍼스와 앙드레 말로가 첫눈에 그 점을 본 것이다. 사양 사람들도 석굴암에 들어서면 자기도 모르게 모자를 벗는다고 한다. 그리스도교 천 년의 어느 성상聖像 앞에서 모자가 벗겨지는가. 보는 이의 정신을 밝혀 주고 기쁨을 주고 삶에 대한 희망과 경외 심을 일깨워 주는 것. 그것이 우리 조상들이 만든 반가사유상이고 석굴암이다. 본존상 둘레에 배열된 보살상들을 보면 정말 편안하고 아름답다. 미인들이 아닌 훌륭한 사람들이 거기에 있다. 진선미가 일치한다는 것을 동서양 모두 생각한 것인데, 그것이 한국의 불상과 불화에서 실현되고 있음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아름다움과 좋음과 훌륭함이 함께 어울려 있는 자태, 그것이 석굴암이다. 비석 많이 만들기로는 중국이지만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석은 경주에 있는 태종무열왕릉비 이다. 세 마리의 용은 조형미의 극치이다. 예리함과 명암의 부드러운 조화와 군더더기가 빈틈없이 청산됨과 아취와 생명감은 이집트나 그리스의 명품에 견주어도 한군데 손색없는 완벽함이 있다. 나는 경주에 갈 때마다 감탄 서럽다. 인간의 솜씨가 이렇게 위대할 수 있는 것인지, 볼 때마다 새삼스럽다. 지성과 감성을 돌로 형상화한 높은 시詩의 경지이다. 인도의 조각들은 만드는 데 지나침이 있어서 예술성에 손실이 있고, 중국은 흙(도자기)으로는 성공하였지만 돌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우리 나라의 풍광은 화강석에 어울렸던 것 같다. 부석사의 석등, 경주 남산의 고졸한 레리프들 돌로 등을 만들어 마당을 밝히고 온 산을 사색 공간으로 형성한 우리 조상들의 멋진 지혜는 참으로 인간적이고 겸손한 꿈이었다. 봉덕사 종소리를 들어보자. 소리를 언제 온 국민이 한날 한시에 한번 들어 볼 필요가 있다. 거기에는 우리 민족의 꿈과 슬기와 사랑과 아름다움이 무언의 형상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모든 위대한 유산들을 이어서 쓸 줄 모르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서양을 배우는 것은 좋지만 넋은 살리면서 할 일이지 그것마저 잃어버리면 될 일이 있겠는가. 요즘은 민족주의라는 말이 촌스러운 것으로 퇴색해 있다. 그럼 상대적으로 서양주의를 하자는 말인가. 수신제가를 먼저 하고 치국평천하를 할 일이지 제 몸도 추스르지 못하면서 어찌 평천하를 하려는가. 자기 사랑 먼저, 다음에 세상 사랑이 아닌가 싶다. 진리는 가까운 데 있다 하지 않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