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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불교학술회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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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일지 1993년 11월 141호
선禪이 비장한 정신주의의 난해함
선불교가 상상의 벽돌쌓기 놀이를 차갑게 비웃는 이단적인 정신주의이며 동시에 불교의 실천적인 측면을 집약하는 자기 탐구의 수행 체계라는 이해는 익히 확인되고 있다. 그렇지만 선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인가? 현대인에게서 선은 마음의 깨달음에 의해 현실의 질곡을 초월할 수 있다고 선언하는 비장한 정신주의의 암호 해독 자들만의 퍼즐 게임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차라리 불멸의 형이상학적 에너지 장을 갖고 있어서 더 이상 언급될 수 없는 그 무엇이라면 좋겠지만 선이 지향하는 그 장려한 깨달음은 역시 우리의 인생 속에 있다. 그래서 선에 관한 우리의 이야기도 계속된다.
언제부터인가 선은 우리 사회의 문학, 영화, 음악에서도, 혹은 호프집의 고급스런 말 안주 감으로 독자적인 지적 소유권을 주장하는 문화 현상으로 전면에 나서고 있다. 자, 그렇다면 선승들의 곁을 떠나 세속 도시의 오염 속에 편입되기를 바라기라도 한 것일까. 그럴 리는 없다. 대중이, 대중문화가 선을 발견한 것이다. 오늘 이 시점에서도 선이 한국 불교의 저력이라고 인정되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선 불교 특유의 개인적 실존에 대한 투철함, 무모하기조차 한 이단적 정신주의와 옹골찬 반권적反權的 사유를 특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깨달음이라는 압도적인 인간 긍정의 코드를 갖고 있는 선과 우리의 부정확한 시대 상황과 상품주의 문명의 오염, 권력의 폭압 속에서 버틸 수 있는 끈질기고도 강한 정신의 깨달음을 열망하는 현대인들의 정서와 묘하게도 어우러진 것이다. 그래서 선은 오늘의 언어로, 그것도 세속의 언어로 이야기 될 필요가 있다.
선, 이 비장한 정신주의가 갖는 매혹과 의혹을 포함한 난해함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작업 가설 곧, 방법으로서의 선을 오늘의 언어로 검증하려는 최초의 몇 가지 시도들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십 년의 작업 끝에 마침내 완간을 본 선림고경총서 37권과 성철스님의 법어집 11권이 그렇고, 지난 10월 7일부터 9일 까지 ‘선종 사에서 돈오돈수 사상의 위상과 의미’라는 주제로 해인사에서 열린 국제학술세미나가 그렇다.

백련불교학술회의를 보는 눈
10월 7일 아침 해인사로 가는 전세버스 안의 공기는 이상할 만큼 무거웠다.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눈부신 가을 산야로 떠난다는 기대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선을 주제로 하는 세미나에서 언제나 맛보는 낭패감 때문이겠지만 돈오돈수頓悟頓修라는 중량급 주제를 다루는 세미나에서 머리 뜨거워질 일을 난감하게 생각하는 표정들이었다. 세상에는 산사에서 참선에만 전념하는 선승은 아니지만 깨달음을 열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적어도 어떤 분야에서든지 깨달음이 문제되지 않는 인생은 없을 것이다. 그 깨달음이 좀처럼 실현될 수 없는 꿈이라고 절망한 사람들조차 그 꿈과 거리를 두고 흔들리며 회의하고 그 때문에 더욱 치열하게 눈뜨기를 갈망하는 ‘현鉉 위의 인생’들이 아닌가. 그러니까 이런 세미나도 열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저런 상념이 차창 밖에 펼쳐진 가을 산야와 뒤섞이고 있었다.
이번 학술회의의 진행을 맡은 주최측 스님들은 상당히 세심한 준비를 한 듯하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참가 등록을 하고 숙소를 무리 없이 배정 받았다. 새삼 느낀 점이지만 필자가 해인사 뜨락의 낙엽을 밟던 십오 년 전보다는 달라진 점이 많았다. 시간의 흐름이 공간을 그토록 당연하게 바꾸어 놓기라도 한 것일까. 방들과 식당이 대규모의 손님들을 깔끔하게 치를 수 있는 시설로 바뀐 것이다. 손님들을 맞는 원택스님은 대적광전 중수불사로 도량이 어수선하다고 매우 미안한 표정이었지만 우리네 절을 중수하는 일이 어디 하루 이틀, 한 두 곳의 일이던가. 학술회의는 오후 6시 30분부터 시작되었다. 개회사, 그리고 예의 그 빈번하고 지루한 축사 뒤에 선원장 원융스님의 기조 연설이 있었다.
철저한 간화선看話禪의 분상에서 돈오돈수의 위상을 선언적인 톤으로 역설하는 원융스님의 기조연설은 순일純一한 선승의 기량이 느껴져서 내심 기꺼웠다. 그러나 어디건 상반된 평이 있기 마련인 듯 청중들의 반응은 민감했다. 특히 젊은 참석자들은 이번 학술회의가 주제대로 돈오돈수사상의 위상과 의미를 학문적인 입장에서 규명하는 학술회의인가 아니면 돈오돈수를 비판하는 것에 대해 성철스님의 돈오돈수사상을 확고하게 천명하기 위한 법회인가라는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토록 분명하고 강한 어조로 돈오돈수의 절대적 우위를 선언할 수 있는 가라는 의견들이었다. 매번 절에서 주최하는 학술회의는 법회인지, 학술회의인지 분간이 안 된다는 불평이 회의 첫날부터 터져나온 것이다. 돈오돈수의 위상과 의미라는 주제의 무게 때문에 청중 대부분이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던 처에 실참實參 납자가 간화선에 의한 철저한 돈오돈수를 역설하자 종문교학宗門敎學에의 종속을 우려하는 심리적 부담이 더욱 가중된 탓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말대로 구도적 체험으로서의 선이 아닌 냉정한 학문적 입장에서 깨달음과 닦음의 정체를 밝히겠다는 학자의 입장에서는 체험의 영역에는 개입하지 안돼 선의 인문주의적 체계를 밝히는 학자로서의 성실함이 필요하다. 적어도 자신의 분야에서는 불분명한 것은 남겨 두지 않는 것이 전문가의 세계가 아닌가. 그렇다면 체험의 영역도 존중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로서는 학문과 체험의 영역을 분명하게 가르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새삼 느낀 점이 많았다. 자료를 연구하고 논문을 쓰며 강의하는 학문에서 체험적인 문제의식이 빠지면 무엇이 남을 것인가. 학문과 체험의 영역을 잘 구분할 수 없는 필자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반면에 이 문제를 통해서 주최측의 더욱 세련된 회의 진행과 외의 구성상의 탄력이 필요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선종사에서 돈오돈수 사상의 위상과 의미라는 회의 주제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이번 학술회는 성철 종정스님께서 스님의「선문정로禪門正路」를 통해서도 천명하신 돈오돈수사상의 위상과 의미를 규명하는 모임이었다.
그러나 발표된 논문 10편 가운데 성철스님께서 “무릇 이설異說 중에 일례는 돈오점수이다” 하고 단호하게 언명하신 돈오돈수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논문을 없었다. 사상의 문제에서 어느 한 명제를 주장하려면 상대명제에 관한 철저한 이해와 검증이 필요하다. 이것은 기본적인 전략이다. 돈오돈수, 돈오점수간의 어느 한 노선만의 절대성을 천명하기 위한 학술회의라면 회의 결론은 이미 나와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번 회의에서 돈오점수를 정면에서 다룬 논문이 발표되지 않았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즉 이번 학술회의는 - 언론의 표면적인 관측이지만 - 그 동안의 돈점 논의에 대한 해인사 측의 강력한 입장 천명이라는 점에서 안팎의 시선을 끌었지만 그 관심을 하나의 정리된 메시지로 이끌어 낼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흔히 알려진 대로 돈오돈수를 주장하는 해인사 측과 돈오점수를 주장하는 송광사라는 대립 구조를 깰 생산적인 회의가 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번 회의가 돈점의 견해 대립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선종 독자의 수증론修證論에 대한 토의라는 점을 몇 번이고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몇 가지 과제들
모두 열 편의 발표 논문에 대해서 평하는 일은 필자의 분한分限 밖의 일이므로 여기서는 다만 논문의 제목과 집필자를 소개하기로 한다. 발표 논문은 중국 선과 한국선(민영규)·청허휴정의 선사상(석종진)·돈; 동, 서양 신비주의의 열쇠가 되는 중국적 개념(우루스 압) 돈오돈수론(박성배)·신회伸會의 돈오사상(루우열)·유불도삼교에 의용된 돈오사상(채정수)·해동화엄과 해인 삼매(김지견)·남종선의 돈오사상전개(石井修道)·금강삼매경의 연구(柳田聖山)·돈오사상의 현대적 의미(목정배)이다.

이상과 같은 논문이 발표되었지만 논문의 내용이 검증되고 이해될 만한 발표, 논평, 토론이 부족했다. - 곧 회의 자료들을 묶은 논문집이 출간되겠지만 - 따라서 학술회의의 생명인 토론이 아쉽게도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원인은 일차적으로 토론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네의 일방적인 의견 개진 습관에도 있지만 회의 주제 자체가 무겁고 선언적 의미를 갖고 있었으며 깨달음과 닦음이라는 문제를 자신의 체험적인 문제 의식으로 심화시킨 예가 드물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조당집祖堂集을 연구해 온 첫 발표자 민영규 선생은 한 시간 가까이 논문보다는 조당집 연구에 관한 회고로 일관하여 조당집 연구자들에게는 유익했지만 학자가 아닌 사오십 대의 일반청중들조차도 조당집이 어떤 책인지 몰라서 불평하는 일도 있었다. 다수의 발표 논문들이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만큼 청중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논문의 주제를 간결하게 추린 요약 문을 배포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또 한가지 곤혹스러웠던 점은 전공이나 학문적 시각이라는 관점에서가 아닌 친분, 자리 메우기 식의 발표자, 토론자 초청은 학술회의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는지를 절감하게 된 것이다. 연세가 높으신 ㅊ교수는 새로운 논문 쓰기와 차분하고 설득력 있는 논의에 필요한 연구를 소홀히 한 점이 역력히 노출되어 논평자가 당황할 정도여서 민망하기조차 했다. 거듭 확인하는 바이지만 앞으로 개최되는 교계의 학술회의 발표 논문은 해당 주제의 전공자에게 집필을 의뢰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인접 주제의 전공자에게 논문 집필을 의뢰한다면 결국 회의의 주제가 그 집필자의 전공에 의해서 탈색되어 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이미 자신의 전공에 연륜이 쌓여 견해가 굳어진 학자는 자신의 전공이라는 틀에 의해서 세계와 인간을 본다. 이미 자신의 전공이라는 틀이 굳어진 학자에게 전공과는 다른 논문 집필을 의뢰했을 경우 집필자는 자신의 전공이라는 틀 속에서 주제를 다루게 되므로 의뢰했던 논문과는 다른 논문이 쓰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비교사상을 다루는 학술회의가 아닌 이상 주최측이나 집필자, 청중 모두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문제점은 회의 장소의 문제이다. 해인사의 경우 회의가 진행된 보경당은 학술세미나 장소로서는 부적당한 것으로 보인다. 평면, 직선의 좌석 배치와 마이크 설비의 미비로 발표자와 논평자, 청중들간의 교감에 적합한 좌석 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장소를 선정하는 주최측의 의도와 소요 경비도 역시 중요하지만 효율적인 학술회의를 위해서는 우리네 절이 대만의 불광사처럼 국제학술회의를 치를 수 있는 동시 통역 시설이나 휴식에 필요한 시설을 아직 갖추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언젠가는 갖추어야 할 시설이다. 이번 회의 역시 이박 삼일 동안 쉴 공간이 없었다. 해인사는 스님들의 대규모 수도 처로서의 기능을 우선하여 공간 배치가 되어 있기 때문에 수도 처에서 운신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일반 참석자들은 매우 낯설어 하며 우왕좌왕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고려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일라라 일라, 이 돼지 새끼들아!
회의 일정이 모두 끝나고 상경하는 버스 속에서는 음악을 틀어 달라고 조르는 나이 드신 보살 님들과 조용히 가자는 젊은 측들의 가벼운 실랑이가 일어나고 수고하는 버스 기사에게 돈을 조금 모아서 주는 등 사람들은 다시 뜨거운 일상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차들의 불빛이 부서지는 차창에는 지난 일들이 그려지고 있었다. 십 년도 전에 필자는 해인 강원의 학인으로 성철 종정 스님의 사나운 방망이 세례를 받은 적이 있다. 해인총림의 용림정진이란 일 주일 동안 드러눕거나 잠도 자지 않고 스물 네 시간 내내 참선하는 매우 고된 정진이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덜 떨어진 우리는 이 고된 정진의 틈에도 다른 방에 가서 잠시 누워 있는 사치를 누렸다. 어느 날 우리가 이 살인적인 참선의 백해무익함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토론하며 누워 있을 때에 방장 스님께서 그 울퉁불퉁한 혹이 달린 주장자를 들고 기습해 오셨다. 스님은 “일라라 일라, 이 돼지새끼들아!” 하고 호통을 치시면서 주장자로 난타하셨다. 우리는 혼비백산하여 도망 다녔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스님은 애송이 학인들 뒤를 쫓아다니면서까지 그토록 철저한 지도를 베푸셨던 것이다. 아아, 그런 스승이 어디에 있으랴. 그 당시만 해도 스님은 그런 건강과 야성을 갖고 계셨던 것이다. 이제는 그런 추억의 재현을 시간의 흐름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왜 살고 있으며 삶이란 무엇인가.

일지스님은 1974년 출가하여 해인 강원과 율원을 수료하였다.「선사상」,「월간법회」의 편집 일을 했으며 낙산사 교무 등을 역임하였다. ‘현대중공의 불교인식’으로 해인사 학술부문 수상을 비롯하여 여러 편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지금은 불지사에서 사전편찬과 출판기획에 전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