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팔만사천 법문이 장엄하고 있는 법보사찰 해인사로 굽이굽이 향하는 큰길이 홍하문(일주문)을 만나고 오른 켠으로 자은 산길이 숨은 듯이 나 있다. 숨 죽이며 묵언할 것을 요구하는 글귀를 마음에 담고 수많은 납자들의 포행으로 하얗게 등을 드러낸 작은 길로 들어섰다. 해인선원이다.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고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라 했던가. 부처님의 마음인 깨달음 자체로 들어서려고 수좌들이 운집하여 정진하는 곳이 바로 선원이다. 작은 폭으로 곧게 오른 돌층계와 지붕을 받쳐 주는 붉은 기둥들, 디딤돌 위에 가지런히 놓인 고무신들만이 보인다. 고요하다. 분심과 신심 그리고 의심이 한 힘으로 내뿜는 기운(?) 그것은 역시 이제 막 산문을 생각없이 들어선 우리에게는 낯설고 벅차다.
긴장을 풀며 ‘선원장’이라고 표시된 문 앞에서 원융스님을 찾았다. 선의 이미지 자체가 무척 고양되어 있는 데다가 정진하는 스님네들의 투명함이 계속 긴장케 한다. 원융스님 앞에서 입을 달싹이지도 못할 것 같은 어려움에 가슴이 벅차기만 하다. 책상 위에 ‘간화선’이라는 책 한 권이 창호지결로 배어 들어오는 아침 햇살에 밝게 드러나 있다. 원융스님이 얼마 전 하루 열두 시간씩 정진하면서 틈틈이 엮어낸 책의 제목이 ‘간화선’이었다. 승복 입은 신사(?)같은 정갈함에 대하는 사람의 마음을 쓸어내리는 편안함이 짙게 느껴지는 원융스님은 한마디로 흔히 말하는 ‘사람 좋은’모습의 전형에 다름 아니지 싶다. 늦깎이라는 초조함에 이십여 년 동안 이 곳 해인사에서 이른바 ‘토박이’스님으로 수행해 왔다.
“선지식을 찾아 여기저기 좋은 도량을 찾아 다녀야 했다면 모를까 저는 저희 종정 성철스님이 이 곳 해인사에 주석하고 계신데 다른 곳을 찾아 나설 이유가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계속 큰스님 시봉하면서 이 곳에서 정진할 생각이지 다른 생각은 없어요.”
선지식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화두를 간하며 일으키는 대의심, 바로 이것이 원융수님 수행의 힘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선원장의 소임을 맡아 결제 때는 사십여 명의 수좌들이 여법하게 정진할 수 있도록 모든 배려를 아끼지 않으며 해제 때에도 선원의 정기가 조금치라도 결제 때와 다르지 않도록 힘써 정진함으로써 여여한 도량으로 지켜 나가고 있다. 방 한구석에 놓여 있는 밤색 방석의 한 가운데가 움푹하다. 귀하고 소중한 시간에 말씀을 청하며 앉아 있는 것이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직지인심 견성즉불’ 이것이 참선법을 단적으로 가장 간명하게 설명하고 있는 말입니다.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룬다는 의미입니다. 돌아서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부처의 자리로 가는 지름길을 안내하는 셈이죠. 구경묘각을 이루는 것, 불성을 찾는 것, 이것이 바로 불교의 종지 아닙니까?”
깨달음이 무엇인지 이해로써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대단히 혁명적인 것임은 짐작할 수 있다. 이는 개개인의 깨달음에 대한 소승적 차원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도인이 한 분 출현하면 그 기운의 파장이 백리를 가고 그만큼 많은 이들이 편안해지고 불법과의 소중한 인연을 맺게 된다고 했으니 이는 대중교화를 말하는 것이리라.
“선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요. 요즘 한창 붐을 타는 비파사나를 비롯해 염불선, 천태선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발달되고 수승한 참선법은 역기 간화선입니다. 간화선은 인도 이래 가장 많이 행해지고 있는 참선법이지요. 훌륭한 전통과 역대 조사 스님들의 법문을 통해서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를 조사선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간화선이 가장 수승할 수밖에 없는 것은 화두를 간하는 활구참선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교리도 모두 사구로 규정합니다. 말과 생각이 끊어져 부여잡을 아무 근거도 없는데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활구참선이라구요. 활구 아래 깨치면 영겁토록 잊지 않고 사구 아래 깨치면 자기마저도 구제 못한다고 말합니다.”
알아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이해하는 것도 아닌 단박에 깨달아 삶과 죽음의 문제를 능히 알아버리는 것이 진정 무엇일까 하는 설레이는 의구심이 든다.
부처닙께서는 가섭 존자에게 법을 전하며 그 신표로 발우와 가사를 주었다. 부처님께서 열도에 드신 뒤 가섭 존자에게 아난 존자가 물었다.
“세존께서 발우와 가사 외에 무엇을 전하셨습니까?”
아난 존자는 법 자체를 묻고 있는 것이다. 가섭 존자는 답하였다.
“문 앞의 찰간대를 넘어뜨려라.”
이 뜻을 아난 존자는 이레 동안의 궁구 끝에 깨달아 마침내 대오하게 되었다 한다.
그리고 달마 대사가 처음 양무제를 만났을 때 양무제가 이렇게 물었다.
“어떤 것이 성스러운 진리의 첫째 가는 도리입니까?”
달마대사는 “성스러운 것이란 없다.”하고 답하였다.
다시 양무제가 물었다. “나와 대하고 있는 분은 누구입니까?”
달마대사는 답한다. “모르겠다.”
뜻 모를 조사들의 선문답이 창끝이 되어 세상살이로 무디어져 가는 우리의 마음을 매섭게 조인다. 생과 사의 본질적인 문제로 우리를 일깨워 내모는 듯하다. 그 풀리지 않는 한마디 화두를 가슴에 안고서 말이다.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의 논쟁은 오랫동안 불교계의 끊이지 않는 관심사였다. 단박에 깨달아 바로 여래의 세계를 보는 것이 돈오돈수이고 깨달은 뒤에도 계속 정진하여 모든 단계를 거친 뒤라야 마침내 확철대오한다는 것이 돈오점수이다. 스님은 단연 돈오돈수 사상을 믿으며 주장한다.
“선종 본래 사상이 돈오 견성법입니다. 부처님 경전의 교리적 견성법이 돈오점수이구요. 교학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서서히 돈오점수 사상이 성해지기 시잣했어요. 그러다가 1967년 성철스님이 해이해지는 선풍을 바로잡으려고 불교의 근본 사상으로 회귀하자는 뜻에서 돈오돈수 사상을 주장하신 것입니다. 이는 역대 조사 스님들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보조 국사의 돈오점수론은 화엄경 교리를 중심으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보조국사가 돈오돈수적인 ‘강화경의론’과 돈오점수인 ‘원돈성불론’ 둘 모두를 서술함으로써 보인 양면성을 간과해서는 아니됩니다.”
스님은 선의 기본과 교의 입장을 잘 이해하도록 말씀한다. 선종의 발전을 위해 본래 선의 근본사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 동안 오래도록 교학적인 깨달음 법인 돈오점수 사상이 만연하였던 것임을 이해시켜 주고 있다. 스님은 선과 교의 두 분야 모두 그 무게 중심을 저울질할 수는 없지만 둘 다 잊어서는 안 될 것이 하나 있음을 말한다.
“무엇이 더 중요하다 말할 수는 없지만 지나치게 교에 치우치다 보면 불교의 핵심종지가 흐려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선, 교 모두 언제나 동일하게 확실히 인식해야 합니다. 무엇이 불교의 본령인가 하고 말입니다.”
말과 이론이 끊긴 깨달음 자체에 대하여 말로 설명한 것이 교이고 깨달음 자체를 보인 것이 선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면 대립의식보다는 필연적으로 공존해야 하는 서로의 의지처로서 불교의 궁극적인 모습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일이지 싶다. 스님은 선의 대중화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참으로 조심스럽다.
“그 동안 선종이 고차원적 테두리에 갇혀 보편화되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요즘 거론되고 있는 생활선은 선을 보편화시킨다는 의미에서 더없이 필요하고 고마운 일이지요. 그러나 이 생활선은 일본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선이 생활 문화로 잘 정착되어 있는 것이 부럽고 높이 살만한 일이지만 문제는 지나치게 생활에 매몰되어 불교의 종지와 선의 참된 의미를 망각하여 그 의미가 다소 왜곡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생활선은 마조스님의 ‘평상심시도’에서 일상선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 한다. 그러나 이는 무념, 무심, 무사, 대무심지에서 일상사를 얘기하고 있음을 명확히 인식한 뒤에 생활에 적용시켜야 함을 스님은 강조하신다. 무엇인가 관습으로 젖어든다는 것은 때로 목적의식을 잃게 할 우려가 있음을 일깨우는 말씀이다. 이십여 년 동안, 아니 거의 반평생을 화두 하나에 불같은 의심을 달고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힘겨울까 하는 겁부터 버썩 난다. 그러나 연기에 의해 끊임없이 반복되는 삶과 죽음, 고뇌의 문제에 생각이 머물면 훌훌 털고 마음자리 찾아 안으로 안으로 나서고 싶은 마음 또한 간절하다. 원융스님의 맑은 모습. 그것은 많은 안도감과 희망을 준다. 과연 그러한 공부가 의미가 있을까 하는 나의 불안감을 스님이 안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공부는 신명을 바쳐서 해야 하는 것이지요. 초발심으로 쉼없이 계속 정진해 나아가야 하니까요.”
스님은 정진 중 힘겨웠을 때를 묻자 납자로서 지조를 지키는 것이 힘들었다고 한다. 책과 말, 잠, 음식, 돌아다니는 것, 오계를 모두를 제어해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 말씀한다. 그래도 십여 년 동안을 정좌불와한 것을 보면 진정 스님을 벅차게 한 것은 육체적 힘겨움 너머의 그 무엇. 화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사시공양을 알리는 운판 소리가 들려온다. 작고 단아한 이 공간을 벗어나자마자 오랜 습대로 떠들고 분주한 움직임으로 오늘의 이 얘기를 잊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견성성불’하라는 글귀를 책에 적어주며 공부 열심히 하라는 얘기를 하는 스님을 뒤로하며 붉게 단장하느라 바쁜 가야산을 대한다. 우뚝 자리한 가야산을 향해 얼마나 수없이 응어리져 되새김질하던 화두를 터뜨리듯 소리 내어 위로 받고자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포행하는 걸음걸음마다에도 맺혀들어 가는 의단이 못내 풀어지지 않아 힘겨워지면 막막히 이 산을 바라보기도 수 없었을 것이다. 가슴이 저릿해진다. 피할 수 없는 연기의 고리를 풀려면 이 일은 언제고 반드시 해야 할 과제임에 틀림없을 터이지만.
“자성을 깨쳐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선문이 가장 수승한 법문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간화선이 가장 수승한 것이구요. 어느 불자님이든지 경전만을 의지하지 말고 참선을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존경하는 큰스님에게 화두를 받아 지금부터 시작하십시오.”
원융스님의 간절한 말씀이다.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삼세 지옥고를 면한다는 우직한 농담처럼 오늘의 이 인연으로 모든 이들의 가슴에 화두 하나씩 품고 작은 불씨를 소중히 피워 가기를 염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