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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 속에 서성이는 잡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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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여연 1990년 04월 98호
봄볕이 길어서인지 벌써 채마밭 가까이 대숲 일렁이는 그림자가 드리운다. 진달래가 연분홍 꽃입술을 머금고 웅트는 산자락은 생명이 열리는 붉은 기운들로 가득하다. 겨울 내내 잠들었던 땅을 일구어 봄 씨앗을 뿌렸다. 쑥갓이랑 상추 그것들의 싹이 자라 밥상에 오를 생각을 하니 벌써 가슴이 설레인다.
몇명 안되는 땅을 삽질하고 이랑을 만들면서도 힘이 든다. 짙은 밤색으로 엎어지는 땅의 속살 속에서 잘 삭은 된장 냄새를 맡는다. 세세생생 푹 삭아서 져며오는 냄새들, 온갖 사물들이 썩어서 다시 풀리는 대지의 거름들, 이런 것 속으로 우리가 함께 엎어져 정말 푹 썩어서 역사의 거름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모두가 셜 삭아 풋풋하기만 하다. 사물들의 생명이 녹아 있는 삭은 땅들은 깊고 넓게 갈아 엎어서 씨를 뿌려야만 한다. 그러면 어느 덤불 속에서 잠든 바람은 엎어진 골을 타고 내려와 대지를 적시며 풍성히 씨앗을 자라게 한다. 우리는 그 썩은 땅들 위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지혜의 싹을 피워내야 할 것이다.
오후엔 야생으로 널려 있는 차밭을 학생들과 더불어 손질했다. 계곡의 넓은 골로 퍼져 있는 차나무는 온통 대나무 숲과 잡목들, 가시덩쿨로 목이 쪼인 채 헝클어져 키만 훤출히 자라 가련했다. 줄기에 살이 껴서 곱고 살찐 잣잎을 피워야 하는데 잡목 밑에 자라다 보니 햇볕이 부족하여 위로만 치솟아 마구 키만 자라고 만 것 같다. 도연명(陶淵明)의 귀전원거(歸田園居)의 한 구절을 생각한다.

남산 아래에 콩을 뿌렸더니 種豆南山下
잡초만 성하고 콩싹은 드물다 草盛豆苗稀
새벽부터 나가 잡초 우거진 밭을 메고 侵農理荒穢
달빛에 젖어 호미 메고 돌아온다. 帶月荷*歸
길은 좁고 초목이 무성하여 道狹草木長
저녁 이슬이 옷을 적신다. 夕露*我衣
옷 젖는 거야 아까울 것이 없으나 衣*系足惜
단지 바라는 농사나 잘 되었으면 但使願無違

벼슬을 버리고 전원으로 돌아와 몸소 밭을 갈며 흙과 더불어 사는 도연명의 소박한 마음이 담담하게 전해 온다. 가시덩쿨로 우거진 차밭에서 나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내 영혼의 뜨락에서 자라는 무성한 잡초들이 무엇일까? 저 끝없는 집착의 벌판 위에 서성이는 끈질긴 소유의 풀잎들 그런 무명(無明)의 풀잎들이 내 마음의 차밭을 흔든다.
바람이 분다. 바람은 차잎을 흔들고 떠나야 하는데 너무나 빽빽히 막혀서 차밭에 빠지고 만다. 차나무들의 밑둥지를 살펴보니 서로 엉켜서 빼빼 말라 있다. 서로의 살들에 부딪쳐서 상처입고 있는 나무들이 꼬옥 사람 사는 동네 같다. 바람이 소통되지 않아 녹녹히 젖어서 썩어가는 나무들은 인간과 인간이 마음이 열리지 않아 막혀 있는 이기利리의 세계 같다.
엉킨 가시덩쿨을 제거해 주고 칡뿌리들을 잘라냈다. 그리고 몇십년 자라 온 차나무가 아까왔지만 대담하게 건강한 차나무를 위해 베어냈더니 막힌 바람이 시원하게 관통된다. 수십년 자라온 차나무들이 넘어져 있는 모습에게 출렁이는 묘한 피의 아픔이 인다. 엉뚱하게도 고요한 전원의 풍랑 속에서 왜 어느 혁명가의 얘기가 맴돌까.
“억압은 고통이며 고통은 의식이며 의식은 운동을 의미한다. 인간성이 재생하여 다시 태어나기까지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고통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차밭이 태어나기 위해서 저렇게 많은 차나무들이 잘려 넘어져 있는 걸까. 아니 오히려 새로운 인간성이 개조될 세계에서 나는 무성한 잡초가 되어 있지는 아니한가.
스스로 엉켜서 상처 입는 차나무가 되지 않기 위해 무한히 고통받고 고통받자. 고통은 의식이고 의식은 운동이다. 내 안에서 자라는 잡초를 제거하는 운동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