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회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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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 이복구
1989년 11월 93호
내가 태어났을 때 이미 나의 할머니는 일흔이 훨씬 넘은 노인이셨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딸 넷을 낳고 얻은 독자였고 나 또한 그런 아버지가 또 딸 셋을 낳은 다음 얻은 독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연유로 할머니가 나에게 쏟은 정성은 아주 극진했는데, 어머니는 나를 낳기만 했을 뿐이고 사실상 나를 줄곧 기른 것은 할머니였었던 것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내가 네살 때쯤 되었을 때 이미 아버지와 어머니는 누나 셋을 데리고 도시로 나갔는데도 유독 나만을 할머니가 끝내 내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할머니의 손자에 대한 사랑이 무작정 맹목적이었던 건 아니었다. 내 기억에도 할머니를 떠올리면 여러 가지 따뜻한 추억이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버드나무 회초리다.
귀한 자식은 그만큼 더욱 매로 다스려야 한다는 유교적 교육론을 할머니가 믿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다섯 살 이후로 내가 조그만 잘못을 저질러도 여지없이 할머니는 그 버드나무 회초리로 종아리에 붉은 핏발이 서도록 때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때린 날이면 할머니는 밤새 눈물을 흘리며 나를 끌어안고 잠들곤 했다.
“아이구 이놈아. 왜 그런 짓을 해서 이 할미한테 얻어맞냐, 얻어맞길?”
할머니의 회초리는 늘 무섭긴 했지만 이상하게 할머니 당신은 전혀 무섭지 않았다.
할머니의 그 회초리는 버드나무 껍질을 말갛게 벗겨 한쪽에다 구멍을 뚫어 매달게 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 집 안방에 무슨 신주단지처럼 한쪽 벽에 볼썽사납게 항상 걸려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자신을 괴롭히는 그 별것도 아닌 막대기가 원망스러웠던지, 한번은 할머니 몰래 그 놈을 분질러 불타는 아궁이 속에 집어넣어버린 적이 있었다. 대단히 어리석은 짓이 아닐 수 없었다. 내 고향 찬생골은 버드나무가 많기로 유명한 동네였기 때문에 아무리 내가 버드나무 회초리를 없애봐야 찬샘골의 버드나무를 다 없앨 수는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나는 그 회초리를 없앴다는 죄목으로 새로운 버드나무 회초리로 또 얻어맞았다.
중학생이 되면서 학교 때문에 할머니 속아귀에서 벗어났지만 그러나 방학만 되면 또 부리나케 그 폭군의 품으로 달려가곤 했다. 내가 고향을 떠난 다음에도 그 버드나무 회초리는 그 벽에 그대로 걸려 있었고, 오랫만에 내려와서도 내가 잘못했다 싶으면 할머니는 자연스레 그 회초리를 내렸고 나도 당연히 바짓가랭이를 걷어올렸다.
할머니가 도시에서 제법 자리를 잡은 아버지와 합가한 것은 내가 고둥학교에 막 입학한 해였다. 세간살이들은 대개 고향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왔는데 어쩌자고 할머니는 그 버드나무 회초리만은 챙겨와서 대뜸 그것부터 내 방 벽에다 걸어두었다. 내 방은 할머니와 내가 원했기 때문에 함께 쓰기로 돼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도시에 오고서는 할머니가 벽에 걸린 그 버드나무 회초리로 내 종아리를 금가게 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저 그걸 가리키면서 으름장은 더러 놓았을 뿐이다.
“이놈 괜한 짓 했다간 봐라 이 할미가 가만두나. 저기 저게 보이지? 저게 뭐 보기 좋아라고 달아놓은 줄 알아?”
그러다가 그 회초리가 벽에서 내려와 아예 자취를 감춘 건 내가 대학에 들어가면서였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정작 회초리 맞을 짓은 대학에 가고 나서부터가 아니었던가? 그런데도 할머니는 성인이 된 사내 대장부의 인격과 자유를 매우 존중해 주었다. 회초리를 사용하실 기회를 놓친 할머니는 그래서 그런지 무척 심심해 하셨고, 늦은밤 내가 술이라도 한잔 하고 들어가면 아무리 늦은 밤이라도 밥상을 봐주며 옆에 앉아 처녀 아이들과 데이뜨(할머니는 분명히 데이뜨라는 말을 배워 썼다)라도 했는지 묻고 그런 걸 좀 안해줘서 섭섭하다는 표정을 짓곤 했다.
그 때 이미 할머니는 아gms이 넘었지만 부엌에 들어가는 걸 좋아했고 옷차림은 늘 정갈했으며 바늘귀에 실을 뀄고 목욕탕에라도 가면 젖가슴이 하도 탐스러워 동네 여자들이 고개를 홰홰 저었다고 한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 버드나무 회초리를 결코 영영 버렸던 것은 아니었다. 죽기 전에 딱 한번 할머니는 그 회초리를 다시 모질게 사용하셨던 것이다. 바로 할머니 자신이 저승으로 떠나시던 임종 때의 일이었다.
그 때 할머니는 아혼아홉살로 두달만 있으면 백살이 되는 때였고, 나는 스물다섯살로 군에서 제대하고 대학에 막 복학한 때였다. 할머니의 임종은 공교롭게도 내가 자살 계획을 세우고 있던 그 해 봄에 갑자기 왔다.
20대의 내 유일한 관심과 목적은 오로지 죽음이였다. 죽음에게 발목이 잡혀 도무지 헤어날 수가 없었다. 글쎄 그것을 어떻게 설득력 있게 설명해낼 수 있을까? 사람들 중에는 유독 그 부분에 민감한 그런 사람도 있다고만 말한다면 설명이 가능할까?
죽음의 문제는 구체적인 이유가 없이 관념에 의한 것일 때가 훨씬 중증이다. 내가 그랬다. 외형적으로 내가 자살해야 할 이유란 하나도 없었다. 가정이 화목하지 않았거나 신체적으로 이상이 있다거나 하다 못해 실연을 당했다거나 하는 그런 이유 말이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종교를 가지든지 자살하든지 하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사람은 절대로 한 자리에 정지해선 살수 없으니까 결국 나는 자살을 선택했다.
나는 자살을 선택하면서 그것이 가장 적극적으로 죽음을 해결하는 방식이라고 믿었다. 그것도 시간과 타협하여 헌 누더기처럼 된 늙은 죽음이 아니라 싱싱하고 강렬한 죽음을 소유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100그램짜리 빈 커피병에다 많이도 아니고 하루에 꼭 한알씩 수면제를 떨어뜨려 넣으며 그것이 조금씩 위로 차 올라오는 것을 은밀히 즐겼다. 하루에 한 알씩 채워가는 그 알약들이 마침내 병을 다 채워버리면 그것이 이 지상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의 양을 다 채운 것처럼 받아들이고 그 알약들을 내 속에 털어넣는다는 계획이었다. 그 알약들이 병의 절반을 넘어섰을 때 할머니의 임종이 갑자기 온 것이다.
깊은 밤이었다. 할머니가 신음처럼 나를 부르는 소리에 나는 잠이 깼다. 며칠 전부터 감기몸살 비슷한 기운이 있다가 설사까지 해서 심상치 않은 기미는 느꼈지만 전날까지 별탈없던 할머니의 용태가 갑자기 아주 나빠져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고령이라고 하지만 그처럼 급박하게 사정이 달라진 것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할머니는 베개가 낮아서인지 숨이 가쁘다며 좀 안아달라고 했다. 나는 동을 벽에 붙이고 할머니를 가슴에 안았다.
잠시 눈을 감던 할머니는 자신이 그처럼 쉽게 잠드는 것에 놀란 사람처럼 다시 눈을 떴다. 잠들기 전에 해야 할 일을 찾아낸 사람처럼.
“…얘야… 네가 약을 사 모으는 거 이 할미가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약이 뭐라는 것도. 너는 얼굴도 모르지만 네 막내 삼촌이 꼭 스무살 나이에 그런 일이 있었느니라… 얼마 전 내가 약방에 가서 네 약병을 보였더니 그 사람이 그런 약은 없애버리는게 좋다고 그러더구나… 그러나, 얘야, 그걸 없앤다고 이 천지에 있는 약을 다 없애는 것도 아니고… 네 마음 먹기에 달린 거… 어릴 때 네가 회초리를 없애봤지만 그게 어디 없어지더냐? 어쩌다 네 마음 하나 놓을 자리가 그리 없더냐? 불쌍한 것… 아무래도 내가 너한테 너무 일찍 회초리를 거둔 것 같아서 그게 후회스럽구나… 그래 어젯밤에는 아무래도 내가 그만 갈 것 같아 회초리 생각을 안했것냐? … 얘야 저길 봐라… 저것이 보이느냐…”
비로소 내 시선이 맞은편 벽 높이를 더듬었다. 나는 새삼 저 종아리로부터 올라오는 통증을 그리움처럼 떠올렸다.
그날 새벽 할머니는 99년의 긴 생애를 마치셨다. 그러나 나에게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새벽을 남겨준 것이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세상살이에 때로 뜻 모를 허무와 실망을 변치 못할 때면 불현듯 떠오르는 그 새벽을.
그날 밤 무슨 일이 그 방에서 일어났던가? 할머니는 저승으로 떠나며 그날 동이 터올 때까지 아주 오래도록 내 허무와 죽음을 향해 사나운 회초리를 끊임없이 휘둘렀던 것이다. 마침내 내 허무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질 때까지. 정확하게 언제쯤부터 나는 그 매질을 느꼈을까? 그 매질은 할머니의 점점 거칠어져가는 호흡을 지키고 있던 그 순간부터가 아니었을까? 할머니의 호흡은 아주 힘들고 거칠어져 갔다. 99년의 전 생애의 무게가 어떤 큰 힘을 밀어올리며 맞서 싸우는 듯한 숨쉬기였다. 죽음의 무게가 큰 만큼 생명의 무게도 그만큼 비례해 커 갔다. 나는 점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큰 죽음의 무게를 끌어올리는 힘든 노력에 동참해 있는 것을 알았고, 마침내 할머니는 단순히 자신의 생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게 내 생명의 무게를 가르쳐 주기 위해 그처럼 마지막으로 엄청난 고통을 감당하고 있다는 믿음에 이르렀던 것이다. 내 둥에 거대한 회초리가 느껴진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할머니의 몸둥이 전부가 회초리가 되어 나를 내려치는 그때에야 나는 비로소 회초리의 날카로운 통증을 느끼며 울었고 내 죽음과 내 허무를 부끄럽게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순간 이 세상엔 할머니의 모든 생명들은 오로지 할머니의 숨 숨쉬기에만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그와 비례해 내 등에 꽂히는 회초리는 그만큼 참을 수 없이 더 아파갔던 것이다. 동이 터 올 때에야 할머니는 이윽고 그 거대한 회초리를 놓고 마지막 호흡을 끝냈다.
그리고 그 새벽 나는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범종소리와 목탁소리를 들었던 것만 같다. 새벽 안개를 헤치고 하늘로 퍼져가던 그 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