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살 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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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의 얼과 멋 - 편집실
1993년 11월 141호
파초 이파리에 서리가 내리면 절집은 겨울 준비로 분주하다. 텃밭의 배추와 무를 뽑아서 김장을 담그고, 법당 앞 파초도 긁어모아 커다란 옷을 입힌다. 콩 몇 가마를 가마 속에 푹 쪄서 메주를 만들고 나면 어지간히 겨울 준비는 끝나는 셈이다. 이 가운데 법당이나 요사체의 창문을 바르는 일은 가장 마지막 겨울 준비이다. 여름날 장마비에 슬어 누렇게 빛바랜 창호지를 뜯어내고 새로 한지를 발라서 양지 마른 곳에 잘 말리면 창문은 창살무늬와 한지가 어울려 산뜻한 새 옷을 입는다.
법당 문의 문창살은 여러 가지 형상으로 조형화되어 우리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준다. 가장 보편적으로 쓰는 무늬는 연꽃이다. 이 연꽃은 다시 몇 개의 크고 작은 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통 세 개쯤의 크고 작은 원이 꽃의 한 형태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 꽃과 꽃 사이의 연결은 서로 교차되는 대각선을 이룬다. 그렇다면 꽃의 기본 구성요소로서 세 개의 원은 시간(三世)을, 그리고 꽃과 꽃을 연결시키는 대각선은 공간(十方)을 뜻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하학적인 무늬의 배치는 깨달음의 절정을 빚어내는 인다라망의 형태와 빛깔을 표현한 상징인 셈이다. 그런가 하면 선재동자의 구도의 행각을 형상화한 환상의 꿈을 시각화한 것도 있다. 선재가 53 선지식을 찾아가는 여정에 만나는 스승을 극히 생략된 형태로 상징한 새와 나비, 물고기 등을 새기고 있는 창살도 있다.
결국 법당 문의 문창살은 정교하게 빚어낸 형태와 빛깔로 그 자체가 깨달음의 세계(理事無碍法界)라는 화엄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강조하고자 함인지도 모른다.
나무는 위로 올라갈수록 그 뿌리는 땅 속으로 깊이 내려간다. 마찬가지로 형상과 빛깔을 넘어선 세계는 오히려 빛깔과 형상의 바다 속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이를 시각화한 것이 만다라의 세계이고, 그것을 간소화시켜 표현한 것이 절 법당의 문창살 무늬인 것이다.
그리고 이 정교한 무늬들은 깨달음을 향한 이들의 간절한 염원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맑은 가을 햇살이 내리는 법당 문 앞에서 저 존재의 근원을 사유하는 시간은 우리에게 얼마나 유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