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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불문으로 이끈 사명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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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자시절 - 박원자 1997년 11월 189호
통광

지리산 자락에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봄이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두번쯤 인생의 방향을 대 역전하는 계기가 있게 마련일 터인데, 나는 그 해 봄 내가 머물던 암자를 찾아든 한 객스님에 의해 인생의 진로를 바꾸게 되었다.
한의사 시험을 준비하려고 연곡사 암자인 서굴엄에 들어가 있을 때였다. 해인사에 있다는 스님 한 분에 지나는 길에 들러 지리산에 있는 묘환대를 찾는데 이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다고 했다. 동화스님이라는 그분은 나와 인연이 있으려고 그랬는지 쉽사리 묘환대를 찾지 못해 한 열흘을 서굴암에 머물렀다. 떠나는 날까지 그 곳을 찾지 못했는데 그 짧은 시간에도 그분은 내게 초발심자경문이며 부설거사 사부시, 순치황제 출가시 등을 가르쳐 주었다. 마침 절에 계시던 여환스님께서 범어사로 출타중이어서 혼자 암자에 있을 때였다.
어느 날, 둘이 앉아 두런두런 초발심자경문을 읽다가 내 가슴을 후려치는 구절을 만났다.
“만 가지 것이나 되어도 가져가지 못하고 오직 업만 따라다닌다.”
“삼 일 마음을 닦는 것은 천 년의 보배요, 백 년 물질을 탐하는 것은 하루 아침 티끌이라.”
한의사가 되어 인술을 펼쳐 병든 이를 고친다고 하나 결국 돈과 관련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의 동요가 일어났다.
그 스님은 또 복사꽃을 소재로 한시漢詩를 지어 내게 풀이를 해 주었는데 그렇게 멋있고 운치가 있을 수 없었다. 한학자인 부친 밑에서 사서삼경이며 고문진보, 통감 등을 두루 읽어 어지간히 한학에 문리가 나있던 터였으나 그 스님의 한시는 어느 누구의 시보다 빼어난 듯 보였다. 나는 그 스님을 통해 차츰 불법에 끌리고 있었다.
그분은 한의사로서 길을 가려던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곤 어느 날 훌쩍 떠나갔다. 마음이 열리면 보인다고 했던가 그분이 그렇게 바람처럼 떠난 뒤였다. 히루는 여환스님의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이종익 박사가 쓴 「사명대사」란 소설이었다. 나는 밤새워 그 소설을 읽으며 울고 웃었다. 그 가운데서도 내 눈길을 오래 머물게 한 내용이 있다. 사명대사가 승과시험을 치를 때 시험관인 보우선사가 사명에게 묻는다.
“청정 본연한데 어찌하여 홀연히 산하대지가 생겼는가”
사명이 머뭇거림 없이 바로 대답한다.
“청정 본연한데 어찌 산하 대지가 생겼겠습니까”
내가 보니 청정 본연한데 왜 차별상을 내십니까 하는 사명의 대답을 들으니 내 마음에 그만 기쁨으로 북받치는 것이었다. 나중에 불문에 들어와 경전을 읽다 보니 그 내용은 능엄경에 나오는 것이었는데, 어쨌든 나는 사명대사의 일생에 매료되어 불문에 귀의할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사실 불교와의 인연은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부친이 아침 저녁으로 불경을 읽어 낯설지 않기도 했고, 언젠가는 부친을 따라 쌍계사 탑전에 계시던 효봉스님의 법문을 들으러 간 적이 있었는데 노스님께서 이런 법문을 한 것을 잊지 않고 있던 터였다.
“몸에 부스럼이 났을 때 부스럼 생각으로 자꾸 긁으면 큰 부스럼이 되지만 무심해 버리면 병이 나아버리듯, 이 세상 살아가는 데 무심한 것이 약 중의 제일이라.”
어쨌든 나는 밤새워 「사명대사」를 읽고 또 읽으며 출가를 결심했는데, 출타했던 여환스님께서 돌아오셨다. 여환스님은 범어사 지호스님의 상좌로 생식을 하며 참선만 하시던 선객이었다. 참선을 하러 지리산에 들어와 계신 중이었는데, 참선이 무엇인 줄 모르던 내 눈에는 종일 앉아 졸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루는 내가 물었다.
“스님은 공부하신다더니 졸기만 하시는 것 같습니다. 무슨 공부를 하고 계시는 겁니까?”
내 당돌한 물음에 스님께서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참선하는 것이다.”
“참선이 무엇입니까.”
“화듀를 참구하는 것이다”
“화두가 뭡니까?”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 곧 온갖 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한 법은 어디로 돌아가는지를 참구하고 있다.”
그러면서 스님은 그것만 깨달으면 우주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으며, 한 생각 돌이키면 일념에도 깨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아, 그러면 나도 이걸 깨쳐야겠구나.’
그 날로 한의책을 치워버리고 참선에 뜻을 두고 앉았으나 웬 졸음이 그리 쏟아지던지. 그래서 책에서 보았던 것을 흉내내어 대들보에 줄을 걸어 내 허리띠에 매어 놓고 일 주일을 앉아 견뎌보기도 했다. 그 때는 며칠이면 곧 도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런 잡념없이 도에 대한 일념으로 꽉 차 있던 참으로 순수하고 무심한 날들이었다.
연곡사 서굴암에서 두 해 남짓 있다가 정식으로 행자생활을 하고 계를 받기 위해 범어사로 갔다. 범어사에서의 생활은 여러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서굴암에서 여환스님과 단촐히 지내다 범어사에 가니 동산스님께서 조실로 계셨고 대중 스님네가 육칠십 명은 족히 되어 보였다. 일이 많았으나 나는 그 시절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음식 만드는 법을 많이 익혔는데, 그 무렵 예순이 넘으셨던 별좌 스님인 석상스님은 우리 행자들에게 일일이 일을 가르쳤다. 장을 만들고 떡을 만드는 큰 일에서부터 자잘한 음식을 만드는 법까지 그렇게 세밀히 가르쳐 줄 수가 없었다.
여름 콩장, 겨울 콩장 만드는 법이며 식은 밥을 막 새로 지은 밥처럼 데우는 법, 밥물이 넘치지 않고 누른 밥이 많이 나오지 않게 밥을 짓는 법, 나물 무치는 법까지 절집에서 하는 모든 법을 익혔다. 겨울이면 여느 집에서나 구수하게 시래기 된장국을 끓여 먹게 되는데, 그 된장국도 덤벙 된장 풀어 시래기 넣어 끓이면 제맛이 안 난다. 물에 불린 시래기를 종종히 썰어 된장하고 빡빡치댄 다음 물을 조금 부어 보글보글 끓이다가 쌀뜨물을 부어 푹 끓이면 제대로 된 된장국을 먹을 수 있다. 그 시절 배운 시래기 된장국 끓이는 법이다.
별좌 스님은 자상하게 우리 행자들에게 채공하는 법을 가르쳤으나 법도에 어긋나는 일엔 한치의 용서도없었다. 하루는 부처님 전에 올리려고 담아놓은 떡을 행자 두서덧이 한점씩 집어먹다가 그만 별좌 스님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가만 있다가는 매를 맞을 터이니 어찌하랴, 도망치는 수밖에. 별좌 스님이 부리나케 따라오자 우린 담장을 뛰어넘어 스님의 매를 피했다. 그 때 한번의 실수로 출가한 지 수십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부처님 전에 올릴 음식엔 손도 대지 않는 법도를 철저히 지키고 있다. 일을 끝내고 잠자기 전 담요를 가사 삼아 몸에 두르고 상에 앉아 큰스님 법문 흉내내기도 했던 추억 많은 행자시절을 한 해 남짓 보내고 범어사에서 여환스님을 은사로 계를 받았다. 내 나이 스무살 안팎, 60년대 초였다.
‘복막대어무화福莫大於無福, 복은 재앙이 없는 것 보다 더 큰 것이 없다.’
이 곳 칠불사에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 지리산 사람이 된 지 수십 년, 늘 변함없이 지리산엔 아름답고 평화로운 가을이 오고 가건만 산문 밖은 늘 소란스러워 보인다. 조금 더 소유하려는 사람들, 조금 더 높이 오르려 하는 마음으로 가득찬 시정 사람들이 이 말의 의미를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