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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용성 선사(龍城禪師)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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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탐구 - 한보광 1990년 04월 98호
2. 대각운동(大覺運動)이 목표
인간에게 있어서 자신의 관념적인 생각이나 사상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행동으로 옮겼을 때 그것은 살아있는 사상이 되는 것이다. 특히 성직자들에게 있어서는 그것을 어떻게 실천할 것이냐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종교가 단순히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공리공론에만 빠져 논리만을 전개한다면 아무런 의의가 없을 것이다. 자신이 수행정진하여 얻은 경험을 어떻게 가시화하고 행동화할 것이냐 라고 하는 문제는 부처님께서 늘 말씀하셨던 중생구체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우리들 수행자들에게 있어서는 상구보제(上求菩提)에 못지않게 하화중생(下化衆生)도 중요한 하나의 과제이다. 이와같은 중생구제를 실천화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표현된 것이 신앙결사운동(信仰結社運動)이다. 이러한 신앙결사운동은 그 연원을 중국의 여산 혜원(慮山慧遠)의 백련염불결사(白蓮念佛結社)에 두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활발하게 전개되어 왔다. 특히 신앙결사는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던지, 혹은 불교가 소임을 다하지 못할 때마다 제기되어 왔다.
용성선사의 대각교운동(大覺敎運動)도 이와같은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선사의 오도후(悟道後)에 전개한 생애는 그것이 그 시대를 산 오도자(悟道者)의 자기실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가장 근원적인 대도를 스스로 체득함으로써 자타를 초월하였으며, 민중을 떠나 불법을 구하지 않았으며 불법을 떠난 민족을 생각할수 없었다. 망국의 시대를 사는 승려는 어떻게 호국하며 국가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아 멸망의 위기에 처한 불법을 불자(佛子)는 어떻게 호법해야 할 것인가를 보여준 기본적 이념의 구현방법이 대각교운동으로 전개되었다.
그는 대각교의 모체요 토대를 민중으로 보았으며, 인인개개(人人個個)의 고유진성(固有眞性)으로서 일체중생은 법성(法性)을 본성(本性)으로 하고 거기서 절대적 혹은 상대적으로 영각성(靈覺性)을 다룬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간본연의 청정각성을 깨닫는 것을 인간의 본분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와같이 모든 사람 각자의 본분을 대원각성(大圓覺性)의 구현으로 보고, 이것을 개척하여 무가보주(無價寶珠)를 자재희롱(自在戱弄)하고 일진대광명체(一眞大光明體)를 자재애용(自在愛用)함을 자신의 불교운동의 궁극적 목표로 삼았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대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그는 대각교의 목표를 「각해일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대각의 진리를 천하대중에게 선전하여 미신을 타파하고 정도를 행하게 하며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보거든 내가 잘되는 것같이 즐거워하며 대각성인전에 성공(聖供)을 드리거든 천하대중과 일체유정 동물이 다 삼계고해를 해탈하고 낱낱이 대각성인이 되기를 원하며 … …우리 대각교는 천당에 가려고 하는 교가 아니라 나의 대원각성을 깨쳐 영원히 생사고해를 해탈하고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는 것이 목적이니라”
라고 하고 있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선사의 목표는 중생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대원각성을 깨우쳐 영원한 해탈이며, 대자유인 안전한 독립인, 즉 대각인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 그의 역경과 저술이 또한 그러했으며 모든 사상과 행동이 그러했다. 그는 대각인이 되는 방법으로 삼처전심(三處傳心)을 종지(宗旨)로 삼았으며, 계(戒)를 스승으로 삼았고 「육조단경」을 대각인의 정신적 지주로 삼아 광도중생(廣度衆生)이 목적이었다. 이러한 ‘각(覺)’이 실현되었을 때 조국의 독립은 물론 도덕, 정치, 사회, 문화, 과학, 종교에 이르기까지 이르지 않는 곳이 없으며, 통하지 않을 것이 없다고 하였다.
선사의 대각교운동은 모든 중생을 대각(大覺)케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실천화하는 과정에 있어서 12가지의 행동강령을 제시하였다. 이는 「대각교의식(大覺敎儀式)」이라는 책에서 밝히고 있는 ‘십이각문(十二覺文)’이다.
첫째, 법을 의지하며 종교를 준행하고 법에 집착하지 말 것.
둘째, 세속에 있어서도 행을 수련하고 세속에 물들지 말 것.
셋째, 마음을 밝혀서 성리를 깨치고 마음을 미혹하지 말 것.
넷째, 강함음 막되 두려워함이 없고 약함을 침노하지 말 것.
다섯째, 욕됨을 참되 가리는 데 가 있고 우치함에 처하지 말 것.
여섯째, 공공한 사업에 목숨을 바치고 사사에 빙자하지 말 것.
일곱째, 자기생활에 힘으로 노동하고 남에게 의뢰하지 말 것.
여덟째, 때를 관찰하여 학문을 연습하고 형세를 추앙하지 말 것.
아홉째, 바른 생각으로 계율을 지켜 삿된 생각을 하지 말 것.
열째, 중생을 위하여 덕화를 전포하고 몸만 이롭게 하지 말 것.
열한째, 서로 평등히 깨침을 성취하고 조금도 차별하지 말 것.
열두째, 믿음으로서 친구를 교제하고 착함을 시기하지 말 것.
이상과 같이 열두가지의 행동지침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이것은 단순한 조항이 아니라 그 시대 상황에서 스스로 뼈저리게 통감한 것들이다. 또한 그 자신 이러한 내용을 스스로 실천하고 그 규범속에서 살아갈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여기서 말하는 ‘십이각문(十二覺文)’은 선가(禪家)에서 이야기하는 하나의 청규(淸規)와도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자신이 이것을 실천하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하였던가 살펴보기로 하자. 즉 첫 번째 항목에서 그는 법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많은 비판과 경멸속에서도 한문경전을 한글로 번역하였으며, 새불교운동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또 두번째 항목에서는 선사이면서도 과감히 산중을 뛰쳐나와 세속 깊숙히 들어가 선(禪)을 현대화하고 대중화하였다. 그의 선에 대한 포교는 우리 역사상 최초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에 의해서 서울 시내에서 처음으로 참선(參禪)이란 말이 유행하였다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세번째 항목에서 모든 민중에게 진성(眞性)을 깨우치게 했으며, 그 실천방법이 바로 대각교운동(大覺敎運動)이라고 할 수 있다. 네번째 항목에서 그는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서러움과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에서 나라가 망하더라도 힘의 강대함에 눌려 조국을 버리는 무리들을 보고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강한 힘 앞에서도 끝까지 항일운동을 전개하면서 언제나 약한 민중과 함께 하였다. 다섯째 항목에서 그는 조국이 일제의 손아귀에 넘어가도 제나라 말과 글을 빼앗기고 급기야는 창씨개명(創氏改名)에까지 이르더라도 말 한마디 못하고 시키는대로 하고 있는 우매한 민중을 보고 개탄하였다. 그의 만년에 무호적(無戶籍), 무승적(無僧籍)으로 되었던 것만 보더라도 선사의 참된 정신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섯째 항목에서 그는 일제밑에서 국가와 민족의 장래는 내팽개치고 개인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운 무리들을 경계하고 꾸짖은 일이 여러번 있었다. 일곱째 항목에서 그는 스스로 호미를 들고 선농불교(禪農佛敎)를 실천하였으며, 생산업에 종사하신 일도 있었던 것이다. 여덟째 항목에서 그는 수행과 정진에 게으르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연마하였다. 아홉번째 항목에서 그는 평생동안 지계생활에 철저하였으며 지계가 없는 선지식은 사마외도(邪魔外道)라고까지 규탄하였다. 열번째 항목에서 그의 일생은 중생과 더불어 살아간 동체대비의 생활이었다고 볼 수 있다.
3·1운동으로 인하여 옥고를 치른 뒤 그 여독도 가시기 전에 삼장역회(三藏羅會)를 설립하여 역경에 착수하였으며, 불편한 몸으로 누워 있으면서도 저술을 계속하였다. 열한번째 항목에서 대각교에서는 출가와 재가의 구분이 없이 모두 평등히 대하였다. 열두번째 항목에서 그는 당시에 뜻맞는 도반이 없을 때는 혼자 고고히 걸어가면서도 한탄하거나 자탄하지 않았다.
이상과 같은 대각교운동의 뚜렷한 방향을 설정하여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나아갔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운동은 때때로 오해를 빗기도 하여 신흥종교로 알려진 때도 있었다. 그의 대각교운동은 새로운 신흥종교단체라고 보기 보다는 기성종단이 일제불교화로 전락되자 일제와 관계없는 순수한 한국전통불교를 찾자는 운동이며, 현대 민중에게 맞게 혁신하자는 새불교운동이라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선사는 민중을 ‘대각(大覺)’케 하기 위하여 참선, 염불, 주력, 기도, 관법 등 어느 것에도 걸림없이 행하면서 각운동(覺運動)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각운동에 대하여는 다음부터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