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보문화재 관리에 무관심
1,600년이라는 한국불교 전통을 곧잘 내세우는 불교계는 민족문화 유산의 유실에 대해서는 거의 속수무책이라 해도 지나친 지적이 아니다.
어릴 적 국민학교 교과서에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는 이른바 쿠텐베르크성서라고 되어 있었다. 그 뒤 70년 ‘세계 도서의 해’를 맞아 직지심경이 공개되면서 이 기록은 바뀌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은 성경이 아니라 불임경이 공인되었다. 그것도 청주 흥덕사에서 고려 백운화상白雲和尙의 손에 의해 제작된 불경이라고 말이다. 불교계는 이러한 성보문화재를 돌려받으려는 어떠한 대책이나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근무하는 이기선 교수는 “해외에 반출된 성보문화재는 고사하고 국내에 있는 성보문화재의 현황과 관리 실태에 관한 보고서조차 단 한건도 작성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민족 문화의 근간인 불교문화재 관리의 허술함을 지적하고 있다.
정부는 그 동안 해외 유출 문화재에 대한 조사를 하는 한편 민간 차원의 반환 교섭을 추진하여 왔다. 프랑스에 보관된 문화재의 반환을 위해 서울대학교 규장각이 프랑스 현지를 방문하여 반환을 요청했고, 지난해에는 바스티유 교향악단의 지휘가 정명훈 씨가 개인적인 친분을 통해 반환 요청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불교계는 이러한 교계 밖의 움직임에 대해 어떤 견해마저 나타내지 않았다. 이번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의 한국 방문을 맞아 고문서의 반환이 가시화되고 직지심경은 반드시 찾아 와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도 교계에서는 성보문화재의 반환에 대한 성명 한 마디 없는 실정이다.
최근 국제적으로 ‘인류 공동의 재산인 문화재는 그것이 탄행한 문화 배경 속에 있을 때 가장 가치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불법 반출, 약탈된 문화재의 반환을 추진해야 한다는 여론이 대두되고 있다.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우리의 고문서를 반환한 것은 고속전철사업과 관련이 있지만 문화재 반환에 대한 세계적인 경향도 한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정부 차원의 교섭과는 별개로 교계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다면 프랑스를 포함한 미국, 특히 일본에 밀반출된 많은 우리 문화재 - 그 가운데에 상당수는 불교문화재 -를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현실성 있는 정책이 시급
대한불교 조계종 종법 가운데 ‘성보보호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72년 5월 30일 자로 제정 공포된 이 법에 따르면 ‘성보보존위원회’의 설치가 명시되어 있다. 또한 동법 제 3조에는, 총무원장은 성보 보유 사찰의 주지 및 기타 불교 전체의 장에게 성보의 보존 관리에 관한 필요한 사항을 제시한다고 밝혔다.
성보보존위원회는 성보의 보존 관리, 성보의 포교적 활용, 조사 연구를 위하여 당국에 건의 등을 하도록 의무가 주어져 있다. 성보보존법이 구체적으로 해외에 반출된 성보문화재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명시하지는 않았으나 앞 문장만으로도 해외 반출 문화재에 대한 불교계의 의무를 규정한 셈이다. 이 법에 따르면, 총무원장은 성보의 효과적인 관리를 위하여 전문승專門僧 양성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 종법에 의해 규정된 의무가 제대로 이행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실제로 성보보존위원회라는 기구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거니와 성보 관리의 총책임자라고 할 총무원장이 성보의 효과적인 관리를 위해 어떤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사찰 문화재가 전문 절도단에게 도둑질 당하고 심지어 훼불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여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그 의지를 의심하게 한다.
이기선 교수의 지적처럼 지금까지 성보에 관한 조사 보고서가 한 건도 없다는 점은 민족문화의 진수를 간직하고 있는 한국 불교계의 책임 방기임에 틀림없다.
이런 교계 현실과는 달리, 문화재 전문가로 구성된 ‘해외전적문화재조사단’이 해외 각국에 흩어져 있는 우리 나라의 문화재급 고문서를 소장처 별로 조사해 목록을 작성하는 ‘해외 유출 전적문화재 조사 사업’을 문예진흥원의 지원으로 지난해부터 8개년 계획으로 추진하고 있다. 작년에는 일본을 조사했고, 올 11월에는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 그리고 미국 국회도서관, 러시아 레닌도서관등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이 조사는 고문서에 국한된 전적 문화재 조사인 까닭에 회화, 조각, 자기 등 다른 문화재에 대한 조사는 배제되어 있다. 비록 제한적인 조사라 하더라도 불교계의 전문인이 이 조사단과 함께 조사 활동을 벌여 유출된 우리 문화재에 대한 불교계의 관심을 보여야 한다. 해외든 국내든 불교문화재에 대한 실태가 파악되야 반환에 따른 대책을 세울 수 있고 전문적인 연구도 할 수 있다.
문화재의 올바른 보존을 위해 학계는 현재의 문화재 관리국을 독자적 행정기구인 ‘문화재관리청‘으로 승격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즉 현행 문화부의 외국外局으로서의 문화재관리국은 좀더 효율적인 관리와 전문 인력의 양성 들에서 정책상 한계가 뚜렷하므로 ’청‘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 예산의 0.2∼0.3페선터에 불과한 예산의 1퍼센트 이상으로 높여야 민족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 조직 체계상 학계의 이러한 주장이 현실화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히려 ‘문화재관리공사’의 신설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듯하다. 이기선 교수는 “현재 걷고 있는 준소세 성격의 각종 입장료, 관람료의 일정액을 ‘문화재관리공사’의 예산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채택하고 또 관람교 수입금 가운데에 30퍼센트가 예치되고 있는 탓에 각종 불사를 명분으로 그 예치금을 사용하는 관행을 탈피하여 진정 성보 문화재의 보존, 관리를 위해 귀중한 예산이 쓰여지려면 문화재관리공사 같은 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프랑스의 고문서 반환으로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때에 교계의 일정한 노력이 안보이고 있는 점은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전통에 대한 자랑보다 그 전통의 주체로서 정통성을 확립하려는 자세가 시급히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