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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반환을 계기로 문화재 관리에 대한 각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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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3년 10월 140호
제국의 침탈
1866년 음력 8월 경기도 남양만에 나타난 군함 3척 가운데에 2척은 마포 인근까지 거슬러 올라왔다. 이들은 한강 연안을 유심히 살펴보고 측량한 뒤 이내 되돌아갔다.
같은 해 9월에는 군함 7척(전함 3척, 포함 4척)에 병력 2,000명 가량이나 다시 나타나 한강 연안 일대 해안을 봉쇄한 뒤 강화도와 통진해안通津海岸에 무력으로 상륙하였다. 이들은 프랑스인들로서 조선에 침략한 서구 열강으로는 최초였다. 이른바 병인양요 사건이다.
프랑스인들이 무력으로 조선을 침공한 까닭은 대원군이 1865년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일으킨 천주교도와 외국 선교사에 박해 사건에 대한 보복이었다. 베르누이 주교와 외국인 9명을 포함하여 많은 천주교 신자가 처형된 사건의 책임을 물어 조선쪽에 책임자 처벌과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하려고 조선을 무력 침공한 프랑스군은 한 달쯤 강화도에 주둔하였다. 주요 관청을 점거하고 80여 문의 동철제 대포와 6천여 정의 화승총 등 군기 물자를 약탈했다. 그리고 금, 은, 괴 180상자와 보물, 전곡錢穀 그밖에 외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는 각종 사서史書들을 훔쳐 갔다.
이 때 프랑스군의 침공으로 많은 조선 민중이 살상되었다. 그러나 봉건 지배 체제가 내적 모순으로 허물어져 가던 시기에서 민중은 의용군을 결성하여 프랑스군에 대항하였다.
천주교도에 대한 박해와 이 사건을 계기로 청국에 주둔했던 로즈 제독의 침공을 조선 민중의 힘으로 격퇴하였다. 봉쇄했던 한강 연안의 해안과 강화도는 다시 조국의 품에 돌아왔으나 약탈당한 우리의 소중한 역사 기록문헌들은 영영 잃었다. 그들이 약탈해 간 문헌들이 대체 무엇인지, 얼마나 되는지조차 모른 채 세월이 흘러 120년 가까이 되던 79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근무하던 한국인 학자 박병선 씨가 베르사유 궁전 앞 창고에서 병인양요 당시 약탈되어 간 조선의 고문서를 발견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현재 프랑스에 있는 한국 문화재는 대부분 그 가치가 대단한 것들이다.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일명 직지심경)을 비롯하여 신라 스님 혜초가 지은 왕오천축국전, 또한 병인양요 때 약탈해 간 외규장각의 귀중한 문헌들은 국보급이다.
외규장각의 문서는 분명히 약탈당한 것이지만 직지심경은 조선조 말기에 프랑스 대리공사였던 플랑시가 수집해 가져가 도서 수집가 앙리 베베르가 사들였고 1950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었다. 왕오천축국전은 1908년 프랑스인 탐험가 펠리오가 중국 감숙성 돈황의 천불동에서 발견, 수집하여 역시 파리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성보문화재 관리에 무관심
1,600년이라는 한국불교 전통을 곧잘 내세우는 불교계는 민족문화 유산의 유실에 대해서는 거의 속수무책이라 해도 지나친 지적이 아니다.
어릴 적 국민학교 교과서에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는 이른바 쿠텐베르크성서라고 되어 있었다. 그 뒤 70년 ‘세계 도서의 해’를 맞아 직지심경이 공개되면서 이 기록은 바뀌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은 성경이 아니라 불임경이 공인되었다. 그것도 청주 흥덕사에서 고려 백운화상白雲和尙의 손에 의해 제작된 불경이라고 말이다. 불교계는 이러한 성보문화재를 돌려받으려는 어떠한 대책이나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근무하는 이기선 교수는 “해외에 반출된 성보문화재는 고사하고 국내에 있는 성보문화재의 현황과 관리 실태에 관한 보고서조차 단 한건도 작성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민족 문화의 근간인 불교문화재 관리의 허술함을 지적하고 있다.
정부는 그 동안 해외 유출 문화재에 대한 조사를 하는 한편 민간 차원의 반환 교섭을 추진하여 왔다. 프랑스에 보관된 문화재의 반환을 위해 서울대학교 규장각이 프랑스 현지를 방문하여 반환을 요청했고, 지난해에는 바스티유 교향악단의 지휘가 정명훈 씨가 개인적인 친분을 통해 반환 요청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불교계는 이러한 교계 밖의 움직임에 대해 어떤 견해마저 나타내지 않았다. 이번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의 한국 방문을 맞아 고문서의 반환이 가시화되고 직지심경은 반드시 찾아 와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도 교계에서는 성보문화재의 반환에 대한 성명 한 마디 없는 실정이다.
최근 국제적으로 ‘인류 공동의 재산인 문화재는 그것이 탄행한 문화 배경 속에 있을 때 가장 가치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불법 반출, 약탈된 문화재의 반환을 추진해야 한다는 여론이 대두되고 있다.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우리의 고문서를 반환한 것은 고속전철사업과 관련이 있지만 문화재 반환에 대한 세계적인 경향도 한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정부 차원의 교섭과는 별개로 교계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다면 프랑스를 포함한 미국, 특히 일본에 밀반출된 많은 우리 문화재 - 그 가운데에 상당수는 불교문화재 -를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현실성 있는 정책이 시급
대한불교 조계종 종법 가운데 ‘성보보호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72년 5월 30일 자로 제정 공포된 이 법에 따르면 ‘성보보존위원회’의 설치가 명시되어 있다. 또한 동법 제 3조에는, 총무원장은 성보 보유 사찰의 주지 및 기타 불교 전체의 장에게 성보의 보존 관리에 관한 필요한 사항을 제시한다고 밝혔다.
성보보존위원회는 성보의 보존 관리, 성보의 포교적 활용, 조사 연구를 위하여 당국에 건의 등을 하도록 의무가 주어져 있다. 성보보존법이 구체적으로 해외에 반출된 성보문화재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명시하지는 않았으나 앞 문장만으로도 해외 반출 문화재에 대한 불교계의 의무를 규정한 셈이다. 이 법에 따르면, 총무원장은 성보의 효과적인 관리를 위하여 전문승專門僧 양성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 종법에 의해 규정된 의무가 제대로 이행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실제로 성보보존위원회라는 기구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거니와 성보 관리의 총책임자라고 할 총무원장이 성보의 효과적인 관리를 위해 어떤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사찰 문화재가 전문 절도단에게 도둑질 당하고 심지어 훼불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여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그 의지를 의심하게 한다.
이기선 교수의 지적처럼 지금까지 성보에 관한 조사 보고서가 한 건도 없다는 점은 민족문화의 진수를 간직하고 있는 한국 불교계의 책임 방기임에 틀림없다.
이런 교계 현실과는 달리, 문화재 전문가로 구성된 ‘해외전적문화재조사단’이 해외 각국에 흩어져 있는 우리 나라의 문화재급 고문서를 소장처 별로 조사해 목록을 작성하는 ‘해외 유출 전적문화재 조사 사업’을 문예진흥원의 지원으로 지난해부터 8개년 계획으로 추진하고 있다. 작년에는 일본을 조사했고, 올 11월에는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 그리고 미국 국회도서관, 러시아 레닌도서관등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이 조사는 고문서에 국한된 전적 문화재 조사인 까닭에 회화, 조각, 자기 등 다른 문화재에 대한 조사는 배제되어 있다. 비록 제한적인 조사라 하더라도 불교계의 전문인이 이 조사단과 함께 조사 활동을 벌여 유출된 우리 문화재에 대한 불교계의 관심을 보여야 한다. 해외든 국내든 불교문화재에 대한 실태가 파악되야 반환에 따른 대책을 세울 수 있고 전문적인 연구도 할 수 있다.
문화재의 올바른 보존을 위해 학계는 현재의 문화재 관리국을 독자적 행정기구인 ‘문화재관리청‘으로 승격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즉 현행 문화부의 외국外局으로서의 문화재관리국은 좀더 효율적인 관리와 전문 인력의 양성 들에서 정책상 한계가 뚜렷하므로 ’청‘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 예산의 0.2∼0.3페선터에 불과한 예산의 1퍼센트 이상으로 높여야 민족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 조직 체계상 학계의 이러한 주장이 현실화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히려 ‘문화재관리공사’의 신설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듯하다. 이기선 교수는 “현재 걷고 있는 준소세 성격의 각종 입장료, 관람료의 일정액을 ‘문화재관리공사’의 예산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채택하고 또 관람교 수입금 가운데에 30퍼센트가 예치되고 있는 탓에 각종 불사를 명분으로 그 예치금을 사용하는 관행을 탈피하여 진정 성보 문화재의 보존, 관리를 위해 귀중한 예산이 쓰여지려면 문화재관리공사 같은 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프랑스의 고문서 반환으로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때에 교계의 일정한 노력이 안보이고 있는 점은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전통에 대한 자랑보다 그 전통의 주체로서 정통성을 확립하려는 자세가 시급히 요구된다.